< 훈수로 메이저리거 - 137화 >
* * *
다음 날.
신우는 구단버스를 타고 호텔을 떠났다.
‘토론토는 선선하네요.’
[그러게.]
[감기 조심해야 될 듯.]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창밖을 바라봤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구단 중 하나였다.
2019시즌이 끝난 뒤, 류진현 선수가 4년 8000만 달러를 받으며 이적한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곧 버스가 구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신우를 반기는 건 한국교민들이었다.
“정신우 선수 파이팅!!”
“오늘 경기 이기세요!!”
백명은 훌쩍 넘는 교민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서있었다.
캐나다는 한국교민이 많이 살았다.
유학은 물론이거니와 이민을 온 이들도 많았다.
류진현이 뛸 당시에는 교민들로 이루어진 응원단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들이 신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응원단은 캐나다 교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누-!!”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신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에는 주황색 저지를 입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신우가 한시즌을 뛰었던 시러큐스 메츠의 팬들이었다.
“오늘 경기 보러 시러큐스에서 왔어!!”
“오늘 꼭 이겨야 해!”
“지면 다시는 우리 스테이크 안 줄거야!”
스테이크라는 단어에 신우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고정됐다.
그는 데이빗이었다.
“그건 곤란하죠. 내기에서 제가 이기고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흐흐, 그렇다고 트리플A로 내려오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이 몸의 스테이크를 먹고 싶으면 시즌 끝나고 시러큐스에 놀러와. 다들 널 그리워하고 있어.”
“예. 꼭 갈게요.”
시러큐스는 특별한 도시였다.
한국인 교민도 많지 않은 그곳에서 신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시러큐스를 떠난 신우를 아직도 응원하고 있었다.
[꼭 이겨야겠네.]
‘예.’
신우가 결의에 찬 얼굴로 구장으로 들어갔다.
* * *
두 선수의 대결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네이트 피어슨 투수! 1회초 최고구속 99마일이 찍히며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줍니다!!]
공격적인 피칭으로 11구만에 1이닝을 마감한 피어슨.
파이어볼러란 명성에 걸맞는 피칭이었다.
그가 내려간 마운드에는 신우가 올라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르는 광속구!! 구속은 100마일이 찍혔습니다!]
경쟁하듯 100마일을 찍으며 토론토 타자들을 압박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데이빗은 감격어린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가게에서 스테이크를 3kg이나 먹을 때부터 저놈이 크게 될 줄 알았다니까.”
“으하하! 그때 정말 눈을 의심했지. 혼자 앉은 자리에서 고기 3kg을 먹을 줄이야.”
“아마 녀석이 시러큐스에 1년만 더 있었어도 데이빗 네 가게는 파산했을 거다.”
“그래도 상관없었어. 녀석이 던지는 걸 1년이라도 더 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지금도 만족이야. 녀석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말이야.”
“그건 그렇지.”
데이빗의 말에 그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시러큐스에서 신우는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그렇지!!”
“우-! 우-! 우-! 우-!!”
삼진이 나오자 시러큐스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신우의 챈트를 외쳤다.
* * *
“그럼 저희는 6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멘트가 끝나고 소형모니터에 광고가 나가는 게 보였다.
김진철은 한숨을 내쉬며 헤드셋의 한쪽을 벗었다.
“와...오늘도 장난없는데요?”
그가 감탄하는 이유는 두 선수의 기록 때문이었다.
피어슨은 5이닝 무실점 3피안타 7탈삼진.
신우는 5이닝 무실점 2피안타 8탈삼진을 기록중이었다.
해설위원인 이용대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이러다가 두 선수 모두 사고치겠다.”
“선발로 100마일을 던진다는 게 납득이 되세요?”
“눈 앞에서 던지는데, 납득이 안 되면 또 어쩔 거냐?”
“그건 그렇네요.”
우문현답이었다.
분명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
그러한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는데,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그때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PD가 말했다.
“궁금하면 한 번 보시겠어요?”
“응?”
“뭘?”
“정신우 선수가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는 이유. 뭔가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방금 메츠 구단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왔습니다. 이제 D.E에이전시와 접촉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될 거 같아요.”
“오-!”
방송국은 꾸준히 특별프로그램을 기획중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던 것이 바로 신우를 취재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투수를 취재하는 것만큼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드디어 구단의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신우의 에이전시에서만 오케이 사인이 나오면 끝이었다.
“올스타전 직후로 스케줄을 잡으면 베스트겠군.”
“예. 미국에 간 김에 취재까지 하고 오는 거죠. 아, 광고 끝납니다.”
“오케이!”
두 사람이 다시 헤드셋을 쓰고 중계준비를 했다.
후반으로 치닫는 경기.
지금까지는 투수들의 압도적인 피칭이 이어졌지만, 균형은 곧 무너질 것이다.
* * *
두 투수는 6회까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감했다.
선수들이 별 다른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벤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메츠의 마이크 감독이었다.
[7회 1사에서 마이크 감독이 대타카드를 꺼냅니다.]
[당연한 수순입니다.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니 뭔가 변화를 줘야 되는 거죠.]
[대타로 들어서는 선수는 하파엘 도슨입니다. 이 선수는 전반적인 스탯이 낮지만 강속구에 특출나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딱 피어슨을 상대하기 적절한 타자죠.]
피어슨은 대타가 들어섰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3구를 연달아 뿌려 타자를 몰아붙였다.
뻑-!!
“볼!!”
[투스트라이크 이후 커브로 유인을 했지만, 배트 돌지 않았습니다.]
[타자의 움직임을 봤을 때 브레이킹볼을 아예 포기하고 나온 거 같습니다.]
해설은 정확했다.
하파엘 도슨은 더그아웃을 떠나기 전.
마이크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
‘브레이킹볼은 버려. 패스트볼 하나에만 집중하도록 해.’
자존심이 상하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살리는 것보단 임무를 수행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야지만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패스트볼을 노린단 말이지.’
그리고 그러한 작전은 피어슨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패스트볼은 그의 자존심과 같았다.
빠른 공이 있었기에 유망주가 될 수 있었고 빅리그에 콜업될 수 있었다.
그런 패스트볼을 노린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쳐봐!!’
[피어슨 선수 4구 던집니다!!]
피어슨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그리고 그건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딱-!!
[4구 강타!!]
제대로 맞은 타구가 낮게 날아갔다.
유격수는 타구를 본 순간 맹수처럼 땅을 박찼다.
날아오른 유격수가 있는 힘껏 팔을 뻗었다.
퍽-!!
[유격수 글러브를 스치고 외야로 빠집니다!! 안타입니다!!]
만약 유격수가 3cm만 더 점프를 했다면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야구에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가 전부인 셈이다.
메츠는 안타를 만들어냈고 메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 *
7회말.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상체를 일으키며 전광판을 확인했다.
전광판에는 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 이닝만 잘 마무리하자.]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면 12승이 보이네.]
시즌 12승.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승수를 채우고 싶었다.
기회가 온 이상 이것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늘 경기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정신우 선수, 피안타 단 2개만을 허용할 정도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정신우 선수가 퀄리티스타트를 하는 게 말이죠. 하지만 이번 이닝만큼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7회말, 토론토는 캐번 비지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그리고 보 비셋 선수를 만납니다.]
세 선수 모두 유망주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한 이들이었다.
[올 시즌 이 세 타자의 홈런 총합이 벌써 60개를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파워와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선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올 시즌 벌써 2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우 역시 세 타자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깥쪽, 커터.’
첫 타자인 캐번 비지오를 상대로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커터.
와인드업을 한 신우가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보더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며 공이 날아왔다.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코스였다.
휘릭!
홈플레이트 앞에 도착한 순간.
공이 변화를 일으키더니 보더라인 안쪽으로 휘었다.
그 순간.
후웅-!!
캐번 비지오의 배트가 돌았다.
누가 보더라도 타이밍이 늦은 상태.
하지만 비지오는 스윙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배트를 돌렸다.
[오-!]
[빠르네.]
그런 비지오의 스윙을 본 레전드플레이어들의 감탄하는 것과 동시에.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타구는 빠르게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잘 맞은 타구!!]
캐스터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타구를 쫓아간 좌익수 젝슨은 폴대 밖으로 휘어나가는 공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폴대 밖으로 떨어집니다!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된 타구, 하지만 정말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분명 타이밍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캐번 비지오 선수의 빠른 배트 스피드가 공을 낚아챘어요.]
비지오의 배트 스피드는 위협적이었다.
‘분명 앞선 타선에서도 스피드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녀석이 내 공에 타이밍을 맞춘 건...’
그의 배트스피드는 앞선 타석에서 경험했다.
방금 전 스윙에서도 딱히 달라진 건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변화는 자신에게 있다는 소리였다.
[정답!]
[네 힘이 생각보다 빠졌음.]
[구속도 줄었고.]
신우가 전광판을 확인했다.
91마일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생각보다 구속이 더 떨어졌다.
‘아직 투구수에 여유가 있는데...’
7회 초구를 던지면서 신우의 투구수는 82구가 되었다.
구속이 떨어질 때가 되긴 했지만, 낙폭이 너무 컸다.
[날씨의 영향임.]
‘날씨요?’
[여기 기온이 뉴욕보다 낮잖아. 그러니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한 거지.]
[즉, 체력소모가 평소보다 심한 거다.]
‘음...’
미세한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투수의 체력을 갉아먹기에는 충분했다.
로진을 손에 묻힌 신우가 생각에 잠겼다.
그때 매튜슨이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체력이 떨어져서 구속이 떨어졌어도 동료를 믿고 던져라.]
[너는 너무 혼자 하려고 함.]
[때로는 동료를 믿으면서 해야 될 때도 있음.]
상체를 든 신우의 시선에 2루수 로이스가 보였다.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글러브를 쳤다.
그 너머에는 중견수 모슬리가 있었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자 젝슨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섰다.
* * *
[사인을 교환한 정신우 선수, 2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딱!!
[잘 맞은 타구!! 외야로 날아갑니다! 게리 모슬리가 타구를 확인하고 내달립니다. 담장 앞에서 슬라이딩!]
퍽!
[잡아냈습니다! 절묘한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는 게리 모슬리선수!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까지 타구의 위치를 파악하고 잡아내는 환상적인 수비였습니다.]
[원아웃을 잡아낸 정신우 선수, 두 번째 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를 맞이하게 됩니다. 앞선 두 번의 대결에서 1안타를 허용했던 정신우 선수인데요.]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를 보여준 게레로 주니어였습니다. 이번 이닝에서 가장 조심해야 될 타자에요.]
[그렇습니다.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하고 초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몸쪽을 강하게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 게레로 주니어는 반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구속은 96마일! 확실히 구속이 떨어진 느낌이네요.]
[그렇습니다. 평소보다 추운 환경에서 피칭을 하다보니 빠르게 체력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신우와 게레로 주니어의 대결은 길어졌다.
딱-!!
“파울!!”
[7구 다시 파울을 만들어내는 게레로 주니어! 끈질긴 승부가 이어집니다!]
[투스트라이크를 잘 잡아낸 정신우 선수, 하지만 게레로 주니어가 뛰어난 집중력으로 연속 파울을 만들어내며 볼카운트를 동률까지 만들어냈습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었다.
풀카운트가 되면 게레로 주니어가 유리하게 된다.
신우는 거기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8구를 앞두고 정신우 선수, 직접 사인을 냈습니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우가 투구에 들어갔다.
와인드업과 함께 모든 힘을 끌어모은 그가 8구를 뿌렸다.
“흐아아앗!!”
쐐애애애액-!
그의 기합소리가 중계방송을 통해 전달될 정도였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공에 게레로 주니어가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공은 떨어지지 않고 배트 위를 지나갔다.
후웅!!
뻐억!!
“스윙!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8구까지 가는 긴 싸움 끝에 게레로 주니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신우 선수! 오늘 경기 12번째 탈삼진을 기록합니다!]
12번째 탈삼진을 기록한 신우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삼수 끝에 시즌 12승을 달성하며 다승 단독 1위를 다시 탈환했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3피안타 1볼넷을 기록한 정신우 선수의 활약 끝에 메츠는 토론토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7회말 1사에 나왔습니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를 상대로 8구까지 가는 긴 승부 끝에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습니다.
이후 보 비셋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다음 타자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감했습니다.
8회말에는 대니얼 피셔가 마운드에 올라와 11개의 공으로 세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며 클로저인 레이먼드까지 이어주었습니다.
이날 경기로 뉴욕 메츠는 시즌 48승을 거두며 2위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4게임차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정신우 선수는 올스타전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이전까지 4번의 선발등판이 더 가능한 상황입니다.
과연 정신우 선수가 전반기를 어떤 성적으로 마감할지 기대가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