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34화 (134/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34화 >

* * *

4회초.

신우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3점의 리드를 안고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3회말에 터진 토마스 선수의 투런포가 정신우 선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을 거 같네요.]

[무엇보다 파트너가 내준 점수이기에 더욱 뜻깊은 점수라 할 수 있습니다.]

마운드에 오른 신우는 어깨가 가벼웠다.

분명 벤치에서 쉴 때는 조금 힘들었는데, 마운드에 오르니 가벼워졌다.

[점수 나니까 가볍지.]

[초반 3점 리드는 오랜만이긴 하지.]

[자주 점수를 내줘야 좀 편하게 던질 텐데 말이야.]

신우의 시선이 전광판에 향했다.

3이란 글자가 큼직막하게 걸려 있었다.

리드를 안고 공을 던지는 건 심리적으로 무척이나 편했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이 항상 맨탈관리를 해준다지만 그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압박감이 없다는 건 좋은 점이지.]

‘예.’

고개를 끄덕이고 상체를 숙여 마이크와 사인을 교환했다.

‘바깥쪽 하이.’

타자는 좌타.

컨택이 조금 떨어지지만 한 방을 가지고 있다.

약점은 스윙이 퍼올리는 듯한 궤적을 그린다는 것이다.

마치 코디 밸린저와 같은 어퍼스윙, 문제는 처음부터 밑에서 시작하는 어퍼스윙이란 점이다.

당연히 존에 배트가 머무르는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코디 밸린저의 어퍼스윙 다운그레이드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저런 스윙의 가장 큰 약점은...’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촤앗-!!

킥킹과 함께 몸을 비틀어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함께 차례대로 힘을 방출, 이동 그리고 응집시켰다.

그렇게 모인 힘을 공에 담아 방출시켰다.

‘하이 패스트볼이지!!’

“흐아앗!!”

쐐애애애액-!!

공이 신우의 손을 떠났다.

그 순간 타자가 발을 내디디며 스윙을 시작했다.

팔로스로와 함께 하체와 허리를 돌렸다.

그렇게 시작된 회전을 상체로 옮겨 배트를 회전시켰다.

[팔이 같이 도네.]

[스윙의 궤적이 나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였다.

타자의 스윙궤적은 공의 궤적을 따라가지 못했다.

뻐어억-!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97마일의 빠른공에 배트 헛돕니다!]

[아주 좋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타자의 배트가 따라오지도 못했어요.]

절묘하게 들어간 공이었다.

어퍼스윙은 높은 코스에 약점이 있었다.

그것을 보완해서 나온 것이 코디 밸린저의 어퍼스윙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나 코치들 사이에서는 배럴스윙이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다.

배트의 배럴 부위가 존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스윙의 궤적을 바꾼 것이다.

배럴은 배트회사에서 사용하는 명칭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스윗스팟이라고 알려져 있던 부위다.

이곳에 공이 맞으면 이상적인 타격이 가능하다 해서 붙은 명칭이었다.

[쟤 스윙법으로는 배트를 돌릴 때 배럴을 존에 머물게 할 수 없어.]

‘왜 저런 방법을 쓸까요?’

[상체와 손이 같이 돌아서 그래. 원래는 상체의 회전이 끝났을 때 배럴이 존에 들어가야 되는데, 쟤는 둘이 같이 돌아.]

[간단히 말하면 네가 하체를 돌리기 전에 골반과 상체를 같이 돌린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팔이 어떻게 되냐?]

‘앞에서만 돌리게 되겠죠.’

피칭에 있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팔의 가동범위다.

프로는 뒤에서부터 팔을 끌고 와서 크게 반원을 그린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동작이 되지 않는다.

상하체가 같이 돌기 때문이다.

[간혹 상하체를 따로 돌리는 아마추어들도 있지만, 대부분 팔과 상체는 같이 돌리지. 왜냐하면 팔을 뒤에 두고 돌리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는 어려워야 정상이지만 사람이란 원래 쉬운 걸 찾는 법이지.]

‘그럼 타격에서도 비슷하단 소리네요.’

[그래. 저런 유형의 스윙을 가진 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예.’

많은 이들이 말한다.

신우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라고 말이다.

촉망받던 유망주.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프로계약이 늦었다.

계약 이후에도 1군이 아닌 2군에서만, 그것도 육성선수로 시간을 보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오히려 초고속이었다.

마이너리그의 대부분 단계를 패스했다.

그나마 트리플A에서 제대로 된 시간을 보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제대로 된 풀시즌 1년차에는 클로저로서 활약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상대가 가진 약점이 무엇인지 알겠지?]

‘예.’

[약점만 알고 있는 걸로는 부족하다. 약점은 데이터팀에서도 알고 있어. 그럼 데이터를 받은 모든 선수들이 공략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여기서부터는 선수의 능력이야.]

문제와 정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풀이를 완벽하게 적어야지만 합격이 되는 시험이다.

[피칭이란 그런 거다. 아무리 답을 알고 있더라도 투수가 그 답에 따른 풀이를 입력하지 못한다면 점수가 되지 않는다.]

매튜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정신우 선수, 다시 사인을 교환합니다!]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 * *

6이닝 무실점.

큰 위기는 없었다.

18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데 22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피안타는 2개, 볼넷 1개.

모두 산발성으로 나오면서 위기다운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시누가 마운드에 있으면 안심이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진다면 우리 불펜이 병신짓을 해서 지는 거겠지.”

“하긴, 시누가 빠진 뒤로 불펜이 좀 약해지긴 했지. 레이먼드는 꽤 괜찮지만 말이야.”

“레이먼드밖에 볼 게 없어서 문제지.”

팀이 이기기 위해선 여러 요소가 맞물려야 된다.

예를 들어 신우가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더라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이길 수 없다.

8이닝 무실점을 하더라도 뒤에 나온 불펜투수가 점수를 내준다면 경기에선 진다.

선발투수는 승패를 기록하지 못하는 노디시전이 되고 말이다.

“그나마 작년에는 대니얼이 괜찮았는데, 올해는 영 아니네.”

대니얼은 작년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62경기에 나와 71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했다.

특급까지는 아니지만, 상위권 불펜투수임은 확실했다.

덕분에 올 시즌 연봉 300만달러에 재계약을 하며 메츠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실패였다.

장점이었던 제구력이 흔들리고 디셉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구종의 노출이 심해졌다.

자연스레 타자들이 그의 공을 공략하기 쉬워졌다.

“작년에는 로테이션이 딱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영 부실하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 대니얼, 레이먼드, 시누로 이어지는 최강 라인업이 사라졌으니까 말이야.”

작년 메츠의 필승조는 최강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 중심에는 역시 신우가 있었다.

클로저에 0점의 평균자책점 투수가 버티고 있으니 레이먼드라는 걸출한 불펜투수를 셋업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니얼이 예상밖으로 선전을 하면서 7회부터의 투수운용이 그려졌다.

즉, 선발이 6회까지만 막아준다면 이후에는 필승조가 나오면서 경기를 마무리하는 형태로 승리를 수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올 시즌 이러한 이상적인 형태가 깨졌다는 점이다.

클로저로 보직이동을 한 레이먼드의 성적은 좋았지만 그 앞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불안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메츠가 불펜에 돈을 투자해야 된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와아아아아-!!”

“크-!! 내가 이 맛에 시누를 보러 온다니까!!”

“타자가 꼼짝도 못하는 거 봤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한 걱정들은 신우의 K퍼레이드에 가라앉았다.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감하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6이닝 무실점.

하지만 신우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경기초반에 난 석점의 리드.

하지만 이후로 메츠는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에이스인 신우를 강판시킬 수 없었다.

‘아직 투구수도 여유가 있으니까.’

투구수 83개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평소 신우의 평균투구수가 102구였으니, 조금 더 던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불펜을 믿을 수 없었다.

‘녀석이 이번 이닝까지만 막아주면 대니얼을 한 번 더 올린다.’

대니얼 역시 신뢰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를 8회에 올려야 될 정도로 메츠의 불펜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7회초, 정신우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투구수로 보아 이번 이닝이 마지막 등판이 될 거 같습니다.]

마운드에 선 신우가 사인을 교환했다.

‘몸쪽.’

토마스는 망설이지 않고 사인을 냈다.

포수 입장에서 신우에게 사인을 내는 건 무척이나 편했다.

커맨드가 정확히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코너와 구종을 결정해주면 그곳으로 공을 던져준다.

이 능력을 가지면서도 광속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커다란 장점이었다.

‘커터.’

구종까지 결정해주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촤앗-!!

와인드업과 함께 킥킹을 한 신우가 스트라이드를 하며 발을 내디뎠다.

[정신우 선수 초구 던집니다!]

“흡!!”

기합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쐐애애애액-!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공격적인 피칭을 한다는 게 알려진 신우다.

그렇기에 타자들 역시 볼을 지켜보는 것보다 공격적인 스윙을 가져갔다.

후웅-!!

빠각!

[배트 부러졌습니다!! 높이 떠오른 타구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얼굴로 1루를 향해 달려가는 타자주자!]

퍽!

“아웃!!”

[우익수가 거의 제 자리에서 잡으며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아-! 좋은 공이었어요. 타자의 파워가 제법 좋았던지라 외야까지 날아갔지만, 평범한 플라이볼이었습니다.]

해설위원은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신우는 물론이거니와 토마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왜 저 타구가 저기까지 날아가지?’

‘시누의 구위가 떨어진 건가?’

평소 시누의 커터라면 타구가 외야까지 날아가지 않는다.

멀어야 내야가 잔디로 뒷걸음질을 치다 잡을 수 있는 공이었다.

‘선배님들.’

[응?]

[와이?]

‘구위가 떨어진 거죠?’

[오올-! 눈치 빠르네.]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정확히는 팔의 각도가 조금 내려왔다.]

[각도가 내려오니 공의 변화가 일찍 시작됐어.]

[일찍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타자가 거기에 대응할 시간이 많아진 거지.]

‘대응할 수 있어서 배트의 중심부에 맞췄다는 거군요.’

[정답!]

[상품은 없습니다!]

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다.’

신우 역시 이번 이닝이 마지막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기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고 싶었다.

[뭘 걱정하는 거냐?]

그때 매튜슨이 말했다.

[타자가 네 공을 정타로 맞춘 것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ㅇㅇ 걱정이 많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임.]

[괜히 걱정할 시간 있으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려고 노력하겠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은 정확했다.

지금 투수가 해야 될 일은 걱정하는 게 아니다.

안타를 맞은 것도 아니었고 주자가 쌓인 것도 아니다.

단지 타자가 타구를 외야로 보냈을 뿐이다.

‘제가 생각이 많았네요.’

그걸 떠올린 신우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변한 건 없었다.

[호흡을 골라라. 우리의 훈련을 받은 네 체력이 그렇게 바닥날 일은 없어.]

[우리가 해준 체력훈련은 너의 몸에 예비 산소통을 구비해둔 거라고 보면 됨.]

[깊게 호흡을 하면서 그것들을 끌어올려 지친 근육들에 보내주는 거다.]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심호흡을 했다.

평소보다 몇 초가 더 긴 호흡을 끝낸 신우가 눈을 떴다.

[어떠냐?]

단순히 정신이 안정이 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 예비산소통에서 산소를 꺼낸 걸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체력이 조금 돌아온 게 느껴졌다.

‘직접 보여드리죠.’

[오올-!]

[자신감 뿜뿜!!]

[가즈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응원을 받으며 신우가 마운드에 섰다.

‘바깥쪽, 슬라이더.’

토마스가 사인을 냈다.

구종과 코스를 봤을 때 정면승부가 아니었다.

그 역시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아놔-!]

[저놈도 너무 쫄보네.]

[저대로 갈 거임?]

만약 1분 전이었다면 동의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아니죠.’

고개를 저은 신우가 직접 사인을 냈다.

[아-! 직접 사인을 내는 정신우 선수! 과연 어떤 공을 택한 걸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경기후반이니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공을 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인교환을 끝낸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와인드업을 한 신우가 두 번째 타자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흐아앗!!”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타자 역시 기다렸다는 듯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배트의 스윙궤적이 공의 궤적과 일치하려는 순간.

공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배트의 위를 지나갔다.

‘젠장...라이징!!’

뻐어어억-!!

부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트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공은 미트에 꽂혔다.

토마스는 미트를 뚫고 느껴지는 쩌릿쩌릿한 감각에 혀를 내둘렀다.

‘이거 참...’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녀석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네.’

신우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괴물이란 걸 말이다.

[초구 헛스윙!! 그리고 전광판에는 100마일이 찍혔습니다!!]

이날 최고구속을 7회에 찍는 정신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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