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33화 >
* * *
신우는 후회했다.
‘하...이게 이렇게 힘든 거였냐?’
혼잣말을 뱉은 대가는 가혹했다.
그의 훈련을 봐주면서 자세를 교정해줘야 했다.
문제는 젝슨의 질문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허리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힘이 들어가도 되긴 하는데. 허리로 들면 안 된다는 거야. 너 그렇게 하다가는 허리 나간다. 이제 막 빅리그에 올라왔는데, 부상 때문에 내려가고 싶은 건 아니지?”
“물론이지. 그럼 이렇게 하는 거야?”
“좋아. 그렇게 천천히 근육의 자극을 느끼면서 올리는 거야.”
이런 설명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질문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궁금한 게 생긴 듯,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보는 통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더 정신이 없는 건.
[ㅋㅋㅋㅋㅋ 제대로 걸렸누.]
[네가 우리한테 했던 거 그대로 당하네.]
[그런데 저게 당연한 거임.]
[ㅇㅇ 트레이너 애들도 AAAA급 애들한테는 사실 큰 관심이 없으니까.]
[걔들도 사람인데 차등을 둘 수밖에 없지.]
[어쨌건 잘 알려줘라. 궁금한 게 많은 거 같은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놀림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으어어어-! 내가 훈수를 두나 봐라!!’
신우는 다짐했다.
다시는 훈수를 두지 않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까?]
스판의 의미심장한 채팅이 그의 눈에 아른거렸다.
* * *
스판의 채팅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이-! 시누!”
다음 날.
구장에 도착하자 젝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다가오는 젝슨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신우였다.
[오늘도 시달리겠네.]
[훈련시간 다 날아가누.]
‘아뇨! 저도 제 훈련을 해야죠!’
신우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투수의 루틴은 무척이나 민감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젝슨의 훈련을 봐주다보면 자연스레 루틴이 어긋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단호하게 그걸 거부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젝슨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제는 고마웠어!”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신우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어? 어어...”
“이야-!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데 네가 말해준 곳들의 근육들이 심하게 땡겨서 놀랐다.”
[제대로 운동했나 보네.]
[근육이 당긴다는 건 그만큼 자극이 잘 갔다는 의미지.]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제 그 짧은 시간에 자극이 갔다는 소리면 평소에 엉망으로 했다는 소리지.]
[어쩔 수 없지. 옆에서 차분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아메리칸 스타일을 흔히 선수에게 자유를 준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선수가 모든 걸 알아서 해야 된다는 소리와 같았다.
코치가 도움을 주긴 한다.
하지만 한계가 존재했다.
빅리그까지 올라온다면 모를까 마이너리그에서는 수십명의 선수를 2-3명의 트레이닝코치가 서포트해야 되니 말이다.
[불가능이지.]
[트레이닝코치도 임금이 많은 게 아니니까, 적극적일리 없고.]
[너도 알잖아? 걔네들 근무시간 끝나면 바이바이하는 거.]
신우도 트리플A를 경험했다.
한국과 전혀 다른 코치와 선수의 관계를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깟 문화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포기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니 전혀 달랐다.
만약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없었다면 자신도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한테 고마워하란 말이지.]
[네가 우리한테 후원해야 하는 각이다. ㅇㅈ?]
‘언제나 재밌는 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서어어언?!]
[어그로는 오질나게 안끄는 놈이 무슨 최선?]
[제대로 좀 끌어봐라-!]
[잘 나갈 때 훅훅 치고 올라가야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걸 잊지마라.]
[재미없으면 우리도 딴방 찾아갈거임.]
현생을 볼 수 있는 건 제 방밖에 없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목젖을 때렸다.
하지만 신우는 애써 말을 삼키며 젝슨을 바라봤다.
“어제도 말했지만, 운동할 때 어디에 자극을 줄 건지 제대로 느끼는 게 중요해. 그리고 무게는 중요하긴 하지만 자세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해. 우리는 보디빌딩이나 파워리프팅을 하는 게 아니니까.”
“오케이! 고마워!!”
젝슨은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곧 훈련을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신우는 민망함을 느꼈다.
‘젝슨은 그냥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한 건데...’
[설레발 오졌쥬?]
‘크흐흠...’
[네가 걱정한 건 괜한 게 아니다. 실제로 한 번 도움을 주면 뼛속까지 빼먹으려는 놈들은 많은 법이니까, 잘한 거야.]
[하긴 싸이코 같은 애들도 많지.]
[ㅇㅈ 전 세계 또라이들 다 모아놓은 거 같음.]
[이제 신경끄고 집중해서 훈련하자.]
‘예!’
12번째 등판을 위해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4월에 이어 5월 역시 이달의 투수를 수상했습니다.
5월 5경기에 등판하여 4승 0패 36이닝 9피안타 1실점 5볼넷 61탈삼진, ERA 0.25 WHIP 0.17을 기록했습니다.
정신우 선수는 6월 첫 선발 등판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10승 수확에 성공하며 데뷔 이후 첫 메이저리그 두자릿수 승수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전반기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정신우 선수가 어떤 기록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개월 연속 이달의 투수 수상.
당연한 결과였다.
개막 이후 신우보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아니, 메이저리그 역사를 보더라도 신우를 뛰어넘는 투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4월 5월 두 달의 성적이 무려.
10전 9승 0패 1노디시전.
75이닝 18피안타 3실점 7볼넷 124탈삼진.
ERA 0.36 WHIP 0.34.
메이저리그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었다.
무엇보다 이 기록이 2년차 투수가 거두고 있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였다.
[우리는 게임체인저를 보고 있는 겁니다.]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물었다.
[게임체인저요?]
[예. 단순히 게임 그 자체를 다루는 선수가 아니라 종목 자체의 역사를 바꾸는 선수를 의미하죠.]
[아...혹시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 선수로는 역시 야구의 신! 베이브루스를 들 수 있겠죠. 그의 등장으로 메이저리그는 데드볼에서 라이브볼의 시대로 바뀌었을 정도니까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빠지지 않는 베이브루스.
그만큼 그의 존재는 베이스볼이란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후 재키 로빈슨이나 행크 애런과 같은 선수들이 등장하며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죠.]
[아...즉, 기존의 틀의 바꾸는 선수를 의미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고정관념을 부수는 선수.
그러한 선수들을 일컬어 게임체인저라 불렀다.
캐스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정신우 선수가 뛰어나긴 하지만 아직까지 기존의 틀을 부수진 못한 거 같은데.’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뭇매를 맞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캐스터는 조용히 일에 전념했다.
[양키스와의 첫 인터리그 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가져간 메츠는 홈인 씨티필드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탬파베이 레이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대표적인 스몰마켓이었다.
1998년 창단 이후 아직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팀이었지만, 유망주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구단이었다.
올 시즌 역시 레이스는 유망주들의 활약으로 동부지구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메츠의 마운드에는 정신우 선수가 올랐습니다.]
양키스와의 3연전은 메츠가 2승 1패로 승리했다.
메츠는 그 기세를 이어가며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2연승을 거둔 상황.
“우-! 우-! 우-! 우-!”
[씨티필드에 정신우 선수를 응원하는 챈트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서브웨이 시리즈에서의 승리는 메츠 팬들의 기세는 올라갔다.
홈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채.
연습투구를 끝낸 신우가 손 끝에 로진을 묻혔다.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 시작됩니다!!]
“플레이볼!!”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늘 경기 4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며 3회 역시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몰아쉰 신우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4회는 되어야 호흡이 거칠어지던 신우였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상대 타자들이 끈질기네.]
[빠른 공에 제법 대처를 하는데?]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평가는 정확했다.
탬파베이 레이스 타자들은 전반적으로 빠른공에 대처를 잘 하고 있었다.
그것도 첫 타석부터 말이다.
[4회부터는 위험할 수도 있겠네.]
벤치에 앉으며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맨드는 어땠나요?’
컨트롤과는 다른 의미로 커맨드는 변화구와 패스트볼 등.
어떤 구종을 던지더라도 포수가 원하는 코스에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였다.
[굿.]
[언제나처럼 좋았음.]
[커맨드가 흔들렸으면 투구수가 더 늘어났겠지.]
다행이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커맨드가 흔들리는 걸 투수가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포수나 코치가 이걸 빠르게 캐치한다면 좋겠지만 경기도중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투수에게 바로 해준다면 그 순간 맨탈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경기가 끝난 뒤에나 할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 하지만 힘을 쏟는 게 점점 커지고 있다. 슬슬 더워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던져야 된다.]
‘예.’
신우도 느끼고 있었다.
평소와 몸의 상태가 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없었다.
[기온이 변하고 있는 거다.]
‘아...’
[7월이 되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겠지. 하지만 체력을 갉아먹는 건 6월부터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체력소모는 많아지지. 4-5월 대비 5-10퍼센트가량 체력소모가 커진다. 선수들은 당연히 체력소모가 심해지니 더욱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움직이려 하고.]
[6월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간 게 아닌데다가 비축했던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
[대부분 선수는 부상도 없는 상태고.]
[문제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에너지의 소모가 커지는 거지. 시즌이 진행되면서 부상은 어김없이 찾아오니까 말이야.]
아직 신우는 그것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첫 시즌에서 신우는 클로저로서 팀과 동행했다.
전력투구를 이어나가긴 했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1년만에 체질을 바꾸어 선발이 된 지금.
신우는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체력적인 안배를 해야겠네요.’
[우리가 몇 번이나 말했누?]
[지금부터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늦는다.]
대다수의 레전드플레이어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신우의 페이스는 확실히 빨랐다.
보통의 선수라면 7월이 되기 전에 체력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튜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금 상태에서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예?’
[일단 너의 한계를 제대로 아는 게 필요해.]
‘저의 한계...’
[다른 이들의 한계가 꼭 너의 한계라곤 할 수 없어.]
[나도 동감이다.]
타이콥이 매튜슨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선수들은 기계가 아니지. 일반적인 케이스를 벗어나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 그걸 제대로 파악해야 한계를 알고 멈출 수 있게 된다.]
[쩝, 맞말이라 할 말이 없누.]
[제에에엔장~]
[근데 넌 갑자기 왜 얘한테 조언해줌?]
[그러게?]
평소의 타이콥이라면 관망만 했다.
말 그대로 시청자였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건 처음이었다.
[말했잖아?]
타이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채팅을 쳤다.
[너희들이 으스대는 꼴을 보니, 나도 한 번 이 녀석한테 타격을 시켜보고 싶었다고.]
‘...그냥 해본 소리 아니셨습니까?’
[내가 비싼 제삿밥 먹고 실없는 소리하겠음?]
‘...미국은 제사 없지 않습니까?’
[배달 시켜먹으니까 비싸지.]
무슨 저승에 배달이...
[궁금하면 와보던가.]
저 말은 궁극의 치트키나 다름없다.
말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치트키 말이다.
한숨을 내쉬는 신우의 눈앞으로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웃음이 끊임없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