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25화 >
* * *
공격의 물꼬가 트이자 메츠는 확실히 무서운 팀이 되었다.
딱-!!
[로빈슨 초구를 강타!!]
7회초의 선두타자인 7번 로빈슨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로버트는 안도했다.
‘이 팀을 감독하는 건 정신건강에는 너무 해롭다니까.’
업다운이 심하다는 건 젊은팀의 특징이었다.
메츠는 이게 무척이나 심한 편이었다.
이번 로키스전에서 확실히 보여주었다.
1차전과 2차전.
그리고 3차전 초반까지 제대로 된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신우의 3루타와 함께 타자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대단한 녀석이야.’
신우가 다시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6, 7회에 타선이 폭발하면서 고작 한 이닝만에 신우의 타순이 돌아오고 있었다.
‘굳이 무리를 시킬 필요는 없지만...’
마이크는 신우를 교체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히터라니...’
6회말까지 신우는 단 1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았다.
에러로 타자 한 명이 출루하면서 퍼펙트게임이 깨졌지만 노히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한 시즌에 퍼펙트게임과 노히터를 기록했던 선수가 있었나?’
마이크의 기억에는 없었다.
확실하진 않다.
메이저리그의 긴 역사를 모두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만에 하나 녀석이 달성하게 된다면 두 번째가 되겠군.’
쿠어스필드에서의 노히터.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한 명만이 기록했었다.
토네이도 피처.
노모 히데오.
일본의 레전드투수인 그는 1996시즌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터라는 업적을 세웠다.
2001년에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노히터를 달성하며 양대리그에서 노히터를 작성한 투수가 되었다.
이후로는 누구도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터를 달성하지 못했다.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 신우는 여기에 또 하나의 기록이 진행중이었다.
‘사이클링히트라니.’
현재까지 신우는 두 번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에서는 안타.
그리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3루타를 때려냈다.
‘사이클링히트에서 사실상 가장 어려운 건 3루타다. 그런데 그걸 달성했다는 건 고지를 넘었다는 것과 다를바 없어.’
노히터와 사이클링히트.
따로 달성해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걸 한 경기에 모두 달성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가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이미 시누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꾸고 있다.’
데뷔 2년차의 선수.
이제 갓 루키의 탈을 벗은 선수에게 붙이기에는 과한 수식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그 수식어를 붙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메이저리그라는 스포츠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선수야.’
“와아아아아-!!”
“우-! 우-! 우-! 우-!!”
그때 상념을 깨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타석으로 들어가는 신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2번...’
등번호 2번.
미래에는 그 번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 전체의 영구결번이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 * *
[정신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첫 타석에서 안타, 그리고 두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때려내며 막혀있던 공격의 물꼬를 틔웠습니다.]
[투수에게 꽉 막혀 있던 메츠의 타자들은 투수가 바뀌자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쏟아부었죠.]
[덕분에 7회초, 스코어 4 대 0으로 앞서나가는 메츠입니다.]
타석에 선 신우가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루틴을 밟았다.
[경기의 흐름상,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조금 아쉽네요.]
[그렇습니다. 9회초까지 경기가 이어지더라도 9번 타순인 정신우 선수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출루율이 높은 타자에게 1번 타자를 주는 이유.
베이스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서 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9번 타자에 투수를 배치하는 이유는 기회가 덜 가기 때문이다.
원정팀의 경우 1개의 안타가 나오고 더블플레이가 없다면 1번 타자는 총 4번,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9번 타자는 3번밖에 타석에 들어서지 못한다.
타순을 짤 때는 이러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짜게 된다.
해설위원과 캐스터는 이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우의 현재기록은 대단했다.
[타석에 들어선 정신우 선수, 매서운 눈빛으로 투수를 노려봅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만.
[투수가 바뀌었다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지고 있는 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어떤 기분일지를 생각해.]
‘어...’
신우는 순간 당황했다.
[너 모름?]
[얘 작년부터 마무리로 뛰어서 팀이 지는 상황에 등판한 게 손에 꼽을 정도임.]
[비유가 잘못 됨.]
[ㅅㅂ 대충 그런 이미지를 잡으라고!]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핀잔에 타이콥의 채팅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엌ㅋㅋ 빡쳤누.]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후우-!]
한숨을 내쉬는 타이콥을 뒤로 하고 신우가 배팅 자세를 잡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크허험!! 뭐, 당사자가 대충 안 거 같으니 다행이네.]
[이제 또 부끄러워하누.]
[콥 조울증 왔네.]
[야 이쉑들아! 너희들 대가리 딱 대!!]
콥과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한바탕이 이어졌다.
신우는 채팅에서 시선을 돌려 투수를 노려봤다.
사인을 교환한 그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큰 점수차, 상대는 투수.’
일반적인 경우 투수가 같은 투수에게 도망가는 피칭을 하진 않는다.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하지만 신우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라면?’
만약 자신이 마운드에 있다면.
반대로 타석에는 자신과 비슷한 스팩의 투수가 들어서 있다면 어떻게 던질까?
‘아니,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한 방을 가진 타자라고 생각할 거다.
그런 타자를 상대로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들어갈까?
‘들어오겠지.’
투수가 스트라이드와 함께 몸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정석적인 공보다는...!’
상체를 회전시킨 투수가 공을 뿌렸다.
우완 사이드암.
우타자인 신우의 등뒤에서 날아오는 듯한 궤적을 그렸다.
신우는 그 궤적에 맞추어 배트를 돌렸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궤적보다 조금 아래, 그리고 바깥쪽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포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겠지!!’
따아악-!!
배트가 공을 낚아채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오오오-!!]
[이건 갔다!!]
[가즈아!!]
[빠던! 빠던!!]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환호성과 호응을 하듯, 신우가 배트를 던졌다.
[잘 맞은 타구!! 그리고 정신우 선수는!! 배트를!!! 던졌습니다!!!]
[아-! 이건 큽니다!!]
[우익수!! 타구를 쫓다가 이내 포기합니다!! 그리고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를 멍하니 지켜봅니다!! 넘어갔습니다아아아!!]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며 화면에는 베이스를 도는 신우가 잡혔다.
[올 시즌 두 번째 홈런을 때려내는 정신우 선수!! 쐐기타점을 스스로의 힘으로 기록합니다!]
홈으로 들어온 신우가 로빈슨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됐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다시 한 번 삼진을 잡아내며 7회말에도 단 하나의 안타를 내주지 않고 이닝을 마감합니다!!]
7회말이 끝났다.
남은 이닝은 단 2이닝.
양팀은 각각 2번씩의 공격이 남아 있었다.
공격을 퍼붓던 메츠는 투수가 바뀌면서 다시 타선이 잠잠해졌다.
딱-!!
[빗맞은 타구!! 유격수 잡아 2루로! 그리고 다시 1루로!! 6-4-3 병살타로 이닝 마감합니다!]
[아쉽습니다. 선두타자인 알론소 선수가 안타를 때렸지만 후속타가 막히면서 공격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8회초 메츠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선두타자가 출루했는데 점수를 내지 못하면 흐름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말이다.
하지만 마운드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선수가 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4구 보더라인에 걸칩니다!! 타자가 미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좋은 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8회임에도 정신우 선수의 컨트롤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쿠어스필드! 그곳에서 정신우 선수는 퍼펙트게임 때만큼이나 뛰어난 피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뛰어납니다.]
[그렇습니까?]
[예. 오늘 경기에서는 동료의 에러도 존재했고 또 구장이 구장이니만큼 어려운 경기가 예상됐지만, 무척이나 훌륭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쿠어스필드에서 이러한 투구를 해낼 것이란 걸 말이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8회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5구만에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오늘 경기 12번째 탈삼진을 기록합니다!!]
12개의 탈삼진.
이것만으로도 신우가 얼마나 훌륭한 피칭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4개!!]
신우가 역사를 쓰고 있다고 말이다.
딱-!!
[높게 떠오른 타구!!]
퍽!
“아웃!!”
[좌익수가 거의 제 자리에서 잡아냅니다!]
그리고 노히터까지 단 3개의 아웃카운트가 남게 되었다.
* * *
No-hitter.
간단히 말해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
완투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다른점은 안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팀 노히터를 공식기록에 포함하기에 300번이 넘는 기록이 작성되어 있었다.
퍼펙트게임에 비해 많은 숫자였지만, 14탈삼진 이상을 거두면서 노히터를 작성한 투수는 7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노히터를 기록한 투수 중 가장 많은 탈삼진을 기록한 선수는 맥스 슈어저 선수입니다. 1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죠. 공동 2위는 놀란 라이언과 게릿 콜 선수의 16개가 있습니다.]
[이후로는 클레이튼 커쇼가 15개로 4위에 올랐고 맷 캐인, 저스틴 벌랜더 그리고 놀란 라이언 선수가 14개로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군요.
놀란 라이언 선수가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게 눈에 뜨입니다.]
[놀란 라이언은 통산 7번의 노히터를 기록한 선수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죠.]
8회가 끝난 현재 시점에서 신우는 1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3개.
공동 5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최소 2개의 탈삼진이 필요했다.
“후우...”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신우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벤치에 앉아 말없이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단지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그의 곁에 동료들이 없단 것이었다.
[마치 한 달 전의 모습을 연상케하네요.]
한 달 전.
퍼펙트게임을 진행하던 신우의 곁에는 동료들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이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딱-!!
[베이크 4구를 강타! 하지만 타구 3루수가 안정적으로 잡아 1루로-! 아웃입니다!]
타자가 아웃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노히터와 관련된 기록을 찾던 와중 흥미로운 기록을 찾았습니다. 혹시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퍼펙트게임과 노히터를 달성한 선수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역시 김 위원님입니다. 역사상 단 한 명이 존재하죠. 바로 “Doc” 로이 할러데이입니다. 국내팬들 사이에서는 교수님으로 불리던 레전드플레이어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메이저리그에 남긴 족적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한 시즌 퍼펙트게임과 노히터 기록은 정말 엄청난 대기록이었죠.]
로이 할러데이.
40세의 나이에 비행기사고로 세상을 떠난 레전드플레이어였다.
후웅-!
퍼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스윙!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로이 할러데이 선수의 한 시즌 퍼펙트-노히터 기록은 정말 대단했죠.]
[그렇습니다. 설마 그런 기록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노히터 기록은 포스트시즌 역사에 남을 정도로 위대한 기록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그의 포스트시즌 노히터 기록은 1956년 돈 라슨이 이룬 퍼펙트게임 이후 54년만에 나온 대기록이었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할러데이의 역사에 도전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이미 관심밖이 되어버린 캐스터와 해설위원이었다.
딱-!!
[투수 앞 땅볼!! 투수 직접 잡아 1루에 던지면서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갑니다! 9회초, 정신우 선수가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사이클링히트는 다음 기회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이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이클링히트의 기회는 일단 무산됐다.
하지만 아예 제로가 된 건 아니었다.
만약 연장으로 가면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해설위원은 그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있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9회말 정신우 선수가 깔끔하게 이닝을 막아내고 경기를 종료시켰으면 합니다!!]
만약 그 기회가 온다면 노히터가 깨진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