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124화 (124/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124화 >

* * *

역지사지였다.

같은 상황에서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들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제구를 잡기 위해 노력한만큼 상대 투수 역시 마찬가지다.’

퍽!!

“볼!!”

신우는 초구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리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마운드 위의 투수를 살폈다.

‘가슴이 움직이는 게 평소와 다르다. 호흡이 가파르다는 증거다.’

[정답.]

[체력이 떨어질 때 흔히 생기는 현상이지.]

[그래도 이곳의 투수라면 어느정도 고지대에 적응한 거 아닌가?]

츠측-!

타석에 들어서 배터박스의 흙을 골랐다.

그리고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시간을 끌며 투수의 정보를 떠올렸다.

‘에이든이 준 정보에 의하면 녀석은 작년에 로키스로 트레이드가 됐습니다.’

[오홍...확실히 1년이면 적응하긴 전이겠네.]

[ㅇㅇ 그럼 호흡이 어려운 것도 있겠지.]

[거기다 80구가 넘어가고 있으니까.]

6회.

호투를 하더라도 대부분 투수가 지칠때다.

거기다 쿠어스필드라는 고지대라면?

‘실투가 올 거다.’

[그걸 놓치면 끝이다.]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이밍.

신우의 눈이 빛났다.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와인드업을 했다.

[네가 지쳤을 때, 어떤 공을 던질지 생각해라.]

[대부분 투수들은...]

‘지쳤을 때.’

“흡!!”

마운드 위의 투수가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기합을 터트렸다.

뒤이어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패스트볼을 던지죠!’

타닥!!

발을 내디딘 신우가 견갑골을 조였다.

그러자 배트가 뒤로 당겨졌다.

뒤이어 골반을 회전시키며 시선은 공에 고정을 시켰다.

절반쯤 날아온 공은 변화가 없었다.

그 너머로 투수의 얼굴이 보였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황했네.]

[실투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확신했다.

뿌드득-!!

하체와 골반의 회전을 멈추는 순간.

엄청난 힘이 올라오며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졌다.

신우는 그 힘을 해방시키지 않고 마지막 한올까지 모았다.

그렇게 모인 힘을 상체의 회전과 함께 방출시켰다.

후웅-!!

‘무슨...?!’

배터박스 뒤, 포수의 눈앞으로 검은물체가 훅 지나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강렬한 풍압과 함께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따악-!!!

“와아아아아!!”

포수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신우가 1루를 향해 질주했다.

[때렸습니다!! 이건 큽니다!!!]

타구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좌익수는 급히 워닝트랙을 향해 달려갔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캐스터는 타구가 넘어갔다고 판단을 내린 듯 했다.

본인의 시그니처 멘트를 터트리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신우의 생각은 달랐다.

‘너무 잘 맞았어.’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너무 잘 맞았기에 타구가 넘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다니.

그러나 그게 정답이었다.

[라인드라이브성이다.]

[넘어가긴 글렀는데?]

[2루에서 멈춰야 될 듯.]

레전드플레이어들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신우가 1루 베이스를 도는 순간.

고개를 돌려 외야의 상황을 살폈다.

퍽!!

[아-!! 펜스 직격!!]

예상대로 너무 잘 맞은 타구는 담장을 넘지 못했다.

라인드라이브로 펜스에 맞고 튕겨져나왔다.

[불규칙하게 튕겨져 나온 공을 좌익수가 놓칩니다!!]

너무 강하게 튕겨져 나와서일까?

타구는 좌익수가 서있던 방향이 아닌 3루 파울라인 밖으로 흘러나갔다.

‘이건...’

그걸 본 신우의 머리가 번뜩였다.

그리고.

[달려!!]

타이콥의 채팅이 보였다.

신우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무 잘 맞은 타구, 하지만 2루까지는 안전하게...!]

그때 예상밖의 장면이 화면에 송출됐다.

[아아-!! 2루를 그냥 지나칩니다!! 3루로 전력질주!!]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며 외야를 비추었다.

어느새 좌익수가 공을 잡아 3루를 조준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던졌다.

[공 송구됩니다!! 절반쯤 온 정신우 선수!!]

[아...이거 위험합니다!!]

좌익수의 어깨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리그 평균을 상회하는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다소 늦은 타이밍에 공을 잡았지만, 신우가 몸을 날리는 순간.

퍽!!

[공이 먼저 도착합니다!!]

3루수의 글러브에 공이 꽂혔다.

거의 동시에 신우가 몸을 날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전했다.

3루수는 그런 신우를 향해 글러브를 밑으로 꽂았다.

[늦었다!]

스판의 채팅이 올라갔다.

하지만 신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실패하면 무리한 주루가 된다.

2루에서 멈췄다면 득점권에서 상위타선으로 이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살겠어!!’

그 순간.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글러브를 내리는 3루수의 동작이 느려졌다.

덕분에 3루수가 내리는 글러브를 피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을 뒤로 빼면서...!’

신우는 전력을 다해 왼손을 뺐다.

‘어?’

분명 전력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느리게 움직였다.

마치 3루수의 글러브가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젠장...!’

고도의 집중상태.

덕분에 상대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행동도 느려진다는 의미다.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서 공을 떠나기 전까지 타자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다.

공을 떠난 뒤에는 컨트롤할 수 없다.

타격 역시 비슷했다.

하지만 주루플레이는 그것들과 달랐다.

수비수가 있었고 주자는 그를 피해 베이스에 손을 올려야 된다.

즉,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가 있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같은 타이밍에 움직이기에 목적보다 몸이 느리게 움직이게 됐다.

그때였다.

[타이콥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호흡을 멈춰!!]

콥의 외침과 동시에 신우는 호흡을 멈췄다.

그러자 놀랍게도 한박자 빠르게 손이 당겨졌다.

하지만 이대로는 태그에 어깨가 걸릴 수 있는 상황.

신우는 슬라이딩하며 몸을 비틀었다.

옆구리로 쓸리듯 들어가며 오른손을 있는 힘껏 뻗었다.

촤아아앗-!!

퍽!

카메라가 3루를 비추었다.

순간적으로 흐르는 적막.

모든 이들의 시선은 3루심에게 향했다.

“세이프!!”

“우우우우-!!”

“와아아아아!!”

이내 양손을 좌우로 펼치는 3루심의 판정에 야유와 환호가 뒤섞였다.

[3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입니다!!]

[타이밍을 봤을 때는 아웃으로 보였는데, 의외의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마, 카메라가 잡아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로키스에서 바로 비디오판독을 요구합니다.]

곧 비디오판독이 진행됐다.

-아웃아님?

ㄴ 타이밍상 아웃이었음.

ㄴㄴ 3루수와 가려져서 태그장면이나 베이스터치는 보이지 않았지만, 타이밍이 아웃이긴 했지.

-심판이 문제인건 메쟈나 게비오나 똑같네.

ㄴ ㅇㅇ 똑같음.

ㄴㄴ 레알 로봇으로 다 바꿔야 됨.

-이건 신우가 개오바했다.

ㄴ 솔까 무사 2루면 상위타선이라서 충분할 텐데. 왜 오버해서 3루까지 갔냐?

ㄴㄴ 오늘 타자들 보고도 몰라서 묻냐?

ㄴㄴㄴ ㅅㅂ 진짜 메츠 타선 다 갈아야 된다.

비디오판독이 진행되는동안 온갖 의견들이 중계방에서 오갔다.

그때 판독을 끝낸 심판이 헤드셋을 벗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예상보다 빨리 끝난 비디오판독.

그리고 나온 결과는.

“세이프!”

[아-!! 판정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이게 번복이 아니라고?

-어떻게 이게 세이프임?

-말도 안 돼!

중계진은 물론이거니와 시청자들 역시 패닉에 빠져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화면이 바뀌었다.

[3루수 뒤가 아닌 머리 위에서 잡은 그림입니다. 여기에서는 확실히 보이겠네요.]

카메라 각도가 마치 하늘에서 찍는 듯 했다.

이런 각도가 나올 수 있는 건 관중석의 폴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이 다소 높게 들어왔지만, 이후 동작이 빨랐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공을 잡은 브라이언 덤프의 후속동작이 좋았다.

제 2의 아레나도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대처가 빨랐고 동작은 깔끔했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신우의 슬라이딩의 길목이 막혔다.

[여기까지는 누가 보더라도 아웃이 될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때 변화가 나타났다.

[아-! 여기에서 정신우 선수가...!]

슬로우가 걸린 화면이 진행되면서 신우가 오른팔을 뒤로 빼는 게 보였다.

[오른팔을 빼면서 몸을 비틀어 태그를 피하고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주루플레이였다.

브라이언 덤프가 다급히 신우의 움직임을 뒤따랐지만, 한박자 빠르게 손이 베이스에 닿았다.

직후 글러브가 신우의 옆구리를 때렸다.

[이건 완벽한 세이프입니다!]

[정신우 선수의 야구센스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대단한 플레이였습니다! 마치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를 연상케하는 주루플레이였어요!]

엄청난 주루센스로 만들어낸 3루타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중계는 보는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걸 저렇게 들어갔다고?

ㄴ ㅁㅊ!! 투수가 저게 가능해?

ㄴㄴ 부상 안 무섭나?

-얘 타자시켜도 단숨에 메쟈 씹어먹을 거 같은데?

ㄴ ㅇㅈ.

ㄴㄴ 3할은 그냥 때릴 각.

ㄴㄴㄴ 3할 30홈런 가즈아-!

-아니, 그런데 투수가 저렇게 주루플레이 해도 됨? 부상 안 입나?

ㄴ ㅈㄴ 불안하긴 함.

ㄴㄴ 저러다가 언젠가 부상당하지.

-너네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프로선수들이 쉽게 부상을 입진 않는다.

ㄴ 뭔 개솔? 샤워하다가 부상 입었다는 기사도 뜨는데.

ㄴㄴ 그런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프로선수들의 신체능력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음. 저런 플레이가 위험한 건 분명하지만 제대로 하면 부상입는 건 어렵다.

ㄴㄴㄴ 업계인인가?

부상을 우려하는 댓글과 달리 신우는 멀쩡하게 일어나 흙을 털어냈다.

타임이 걸렸기에 베이스를 벗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신우에게 주루코치가 다가왔다.

“괜찮아? 어디 이상한 곳은 없고?”

“괜찮습니다. 제대로 들어가서 다친 곳은 없어요.”

“어후...그럼 다행이지만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조금 식겁하긴 했네요. 설마 저렇게까지 어깨가 좋을지는 몰랐거든요.”

“그러게 말이야. 생각보다 더 좋네. 무엇보다 공이 이상한데로 튀었는데도 대처하는 게 빨랐고. 어쨌건 정말 잘했어! 네가 3루에 왔으니 선취점은 우리거야!”

주루코치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분명 일리가 있었다.

무사 2루와 3루의 생각보다 크다.

3루에 주자가 있다는 건, 외야플라이 한 방이면 곧장 점수로 이어진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 사실은 타석에 들어서는 1번 타자, 모슬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무사 3루.’

타석에 들어서기 전.

루틴을 밟은 그의 집중력은 이전보다 높았다.

‘이 기회를 또 놓친다면...’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투수의 시선은 불안했다.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만큼 같은 투수에게 맞았다는 건 맨탈을 흔들리게 만드는 일이었다.

‘야구를 그만해야지!!’

쐐애애액-!!

투수가 뿌린 초구가 밋밋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모슬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딱-!!

[초구를 강타!! 1루 라인 안쪽에 떨어집니다!! 3루 주자 홈인! 선취점의 주인공은 정신우 선수입니다! 그리고 모슬리 선수는 1루 베이스를 지나 2루로 전력으로 달립니다!!]

우익수가 파울라인 밖으로 굴러가는 공을 잡아 곧장 2루로 뿌렸다.

[공 송구됩니다! 하지만 모슬리 선수 굉장히 빠릅니다!! 슬라이딩으로 가볍게 2루에 도착합니다!! 이번 로키스와의 시리즈에서 첫 번째 장타를 터트리는 게리 모슬리 선수가 더그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보입니다!!]

[흔들리는 투수의 초구를 노리고 제대로 때려냈습니다. 메츠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였지만 로키스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가 됐어요.]

[투수를 교체했어야 될까요?]

[결과론이지만 그랬어야 됐다고 봅니다. 투구수는 87구라서 여유가 있었지만, 정신우선수에게 허용한 장타는 투수의 멘탈을 강하게 흔들어놓기 충분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 선취점으로 메츠의 막혔던 공격의 혈이 뚫리길 바랍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신우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벤치에 설치된 산소마스크를 착용했다.

고지대의 특성상 산소가 부족하기에 선수들에게 산소를 공급해줄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후우...후우...!”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신우는 마스크를 쓰고 숨을 헐떡였다.

3루까지의 전력질주는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길게 호흡을 해라. 최대한 많은 산소를 깊숙한 곳까지 보내야 돼.]

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호흡을 조절했다.

매튜슨의 말대로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몸을 회복하는데 전념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잘했네.]

그때 타이콥의 채팅이 올라갔다.

[거기서 그런 플레이를 보일 줄은 몰랐어. 어떻게 한 거냐?]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습니다.’

[...설마 영상으로 본 걸 그대로 따라했다고?]

신우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쉑.]

[재능충이라고?]

[우리도 알아.]

[이쉑이 처음 커터를 던졌을 때부터 네가 봤어야 돼.]

[하루 이틀 일이 아님.]

타이콥이 채팅을 끊어서 치는 순간.

뒤의 채팅을 입력하기도 전에 피처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이해한다는 듯한 채팅이 이어졌다.

그들도 경험을 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신우의 재능을 말이다.

[씨불! 나도 말 좀 하자!]

채팅창이 얼어버리기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아니, 그런데 이런 재능있는 녀석이 왜 2군에서 빌빌거리고 있었어? 그것도 메쟈도 아닌 KBO에서?]

[재능이 있다고 모든 재능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지.]

매튜슨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들어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렇기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후회를 말이다.

따악-!!

“와아아아!!”

그때 경쾌한 소리와 함께 메츠의 공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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