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17화 >
보라스 코퍼레이션.
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스캇 보라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신우 정이 또 한 번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썼습니다!!]
캐스터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5번째 퍼펙트게임.
개막 이후 첫 번째 등판에서 달성한 역사상 첫 번째의 퍼펙트게임.
“거기에 선발로 전환한 그의 실질적인 첫 등판이란 점 역시 빼놓을 수 없지.”
“기뻐보이시네요.”
그와 함께 앉아 TV를 보던 데니가 물었다.
“하나 물어보지.”
“예.”
“나름 유망해보이는 회사에 투자를 했어. 기술력도 나쁘지 않았고 나름 비전도 보였지. 그런데 그 회사가 애플이 됐어. 어떨 거 같나?”
“그야...”
데니가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죽이겠군요.”
“내 기분도 딱 그렇다네.”
신우는 본인이 직접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찾아왔다.
굴러들어왔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만약 경쟁이 붙었다면 그를 잡을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지잉-!
그때 보라스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으하하! 이 친구도 오늘 경기를 보고 느꼈나 보군.”
“누군데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베켓.”
“메츠의 단장이군요. 그가 전화했다는 건...”
데니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지금 메츠의 단장이 전화를 걸어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보라스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낸 뒤, 전화를 받았다.
“베켓, 오랜만이군.”
신우가 모르는 곳에서 보라스의 협상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 * *
메츠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전용기는 한 마디로 축제의 장이었다.
“으하하! 필리스 녀석들의 얼굴 봤어? 아주 똥씹은 표정이더라고!”
“난 필리스 팬들이 조용해지는 게 얼마나 통쾌한지 모르겠어!”
개막 이후 2연패.
이 결과는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트렸다.
하지만 신우의 퍼펙트게임으로 사기는 무섭게 치솟았다.
‘시리즈에서는 졌지만 결국 이긴 건 우리로군.’
3차전까지 진행되는 첫 번째 시리즈.
승자는 필리스였지만 필라델피아를 떠날 때 승자가 된 것은 메츠였다.
메이저리그에 25번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에 희생되었으니 시리즈에서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셈이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야.’
마이크의 시선이 토마스와 함께 축제를 즐기는 신우에게 향했다.
데뷔 첫 선발에서 퍼펙트게임이라니.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자신이 감독으로 있을 때 일어나다니.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까?’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다.
신우가 어떤 시즌을 만들어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신우는 호텔에서 눈을 떴다.
“후우...”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건 피로감이었다.
클로저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게 선발과 클로저의 차이다.]
[클로저는 몸의 회복이 빠르지. 그렇기에 연투도 가능한 거고.]
[선발은 절대 불가능. 연투를 하면 그 영향은 바로 나타남.]
레전드플레이어들이 기다렸다는 듯 훈수를 이어갔다.
“이렇게 차이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더 큰 이유는 어제 네가 던진 투구내용에 있다.]
침대에서 일어난 신우는 침실을 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투구내용이요?”
[어제 5회부터 네가 던진 건 선발투수로서가 아니었다.]
[완전 마무리투수였지.]
[ㅇㅈ]
[이건 부정할 수가 없음.]
팩트폭력에 심장이 아팠다.
테이블에 놓인 적색의 음료를 컵에 따라 그대로 들이켰다.
각종 과일과 야채 그리고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계산해서 만든 음료였다.
모두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조언해준 레시피를 가지고 호텔에 부탁해서 만들어둔 것들이었다.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네요. 건강한 건 맛이 없다는 게 정설인데.”
[조합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지.]
[맛없으면 오래 못 먹음.]
[사과가 치트키지.]
[한 잔 더 마셔라. 어제 무리를 많이 했으니까.]
“옙.”
신우는 주스를 한 잔 더 마시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면 어제처럼 던졌다가는 이번 시즌 전반기도 채울 수 없다.]
“으음...”
[전반기가 뭐임? 한 10경기 하면 퍼진다.]
[나는 9경기.]
[난 8경기!]
갑자기 내기가 시작됐다.
중요한 건 몇 경기인지가 아니라 결국 퍼진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던진다면 말이다.
‘분명 몸이 힘들긴 해.’
시범경기에서도 몇십구를 던지긴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력투구가 아니었다.
체력을 확실히 분배했고 짧은 이닝을 던졌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제 80구가 넘어가니 본격적으로 힘들다는 게 느껴졌다.
만약 이런 경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대로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다.
“영역은 양날의 검이네요. 제대로 쓴다면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컨트롤을 할 수 없다면 선발에게는 독밖에 아니에요.”
[정답이다.]
[네가 말하는 영역이란 것도 결국 고도의 집중상태야. 문제는 그 상태가 무한하지 않는단 거야.]
[집중력이란 것의 동력은 결국 체력이야. 일반인도 회사를 오래 다니면 결국 체력이 떨어지면서 일에 대한 효율이 떨어지지.]
[하물며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집중력은 일반인을 훨씬 상회한다. 특히 너와 같이 영역이라 불리는 곳으로 접어드는 무아지경에 빠지면 체력소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표절하누.]
스파이더맨의 명대사가 나오면서 다시 투닥거리는 레전드플레이어들.
신우는 채팅창에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확실히 바꿔야 된다.’
하루 이틀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최대한 길게 야구를 하는 것이 신우의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스타일을 버릴 필요가 있었다.
[꼭 영역이란 걸 버릴 필요는 없다.]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력을 발휘하는 훈련을 해야 해.]
그들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자신이 다루기 힘든 능력.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란 다짐을 하며 말이다.
* * *
선발과 클로저는 모든 부분이 달라진다.
클로저는 전날 투구를 했다 하더라도 다시 불펜에서 대기해야 한다.
하지만 선발은 달랐다.
한 번 등판을 한 뒤, 다시 마운드에 서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1-3선발의 경우 큰 변수가 없는 이상 4일 휴식 5일 등판이 고정된다. 시즌 초반의 경우 3선발에게 변수가 조금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신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호텔로 돌아오기 전.
마이크에게 직접 다음 등판일정을 언질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우는 4일 휴식 5일 등판의 간격을 생각하고 루틴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호텔을 나선 신우는 차를 몰고 구장으로 향했다.
호텔의 시설로는 제대로 된 루틴을 밟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수전용주차장에 차를 세운 신우는 차에서 내려 구장으로 향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그는 곧 볼 수 있었다.
‘사람이 많네요.’
[너 보러 왔나 본데?]
스판의 대답에 신우가 그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구장 앞에 모인 팬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2번이란 등번호가 찍힌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거기에 한글로 적힌 플랜카드 역시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 온 팬들도 다수 있었다.
[휘유~얼마나 사람이 많으면 직원들이 나와서 정리를 하고 있누.]
[크-! 우리 시누 확실히 성공했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호들갑을 뒤로 하고 신우가 팬들을 향해 다가갔다.
곧 그를 발견한 팬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시누다!!”
“미스터 퍼펙트!!”
“미스터 퍼펙트가 왔다!!”
퍼펙트게임을 한 신우에게 쏟아지는 새로운 별명.
미스터 퍼펙트.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당일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별명이었다.
[ㅋㅋ 별명 웃기누.]
[퍼펙트게임 못한 놈이 웃기다고 하는 게 넌센스지.]
그때 사이영의 채팅이 올라갔다.
레전드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퍼펙트게임을 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렇기에 사이영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선배님들.’
[응?]
[왜?]
‘사인 좀 해드리고 들어가도 되죠?’
[괜찮겠냐?]
매튜슨이 물었다.
사실 지금 신우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근육통으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였다.
당장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저 보러 오신 거잖아요.’
[뭐, 사인 좀 해준다고 해서 무리될 건 없지.]
[ㅇㅇ 괜찮음.]
[짜식, 이런 건 마음에 드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허락을 받은 신우는 곧 팬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신우에게 에이든이 다가왔다.
“잠깐 사인 좀 해드리고 갈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잠깐이면 돼요.”
에이든의 걱정을 뒤로 하고 신우는 팬들에게 다가갔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를 보며 환호를 지르고 너나할 것 없이 야구공을 내밀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에도 신우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사인을 해주었다.
팬서비스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그였다.
그런 신우를 위해 에이든은 주위의 직원들을 지휘하며 안전에 대비했다.
* * *
[첫날에는 회복에 중점을 맞춰야 된다.]
[가장 좋은 건 마사지지.]
[크...정말 요즘 애들이 부럽다니까. 우리 때는 이런 게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는 하루 등판하고 다음날에도 등판했어야 하는데, 말 다 했지.]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라떼를 들으며 신우는 구장에 있는 마사지룸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시누,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도록 해.”
“응.”
메이저리그의 각 구단에는 선수들의 회복을 위해 많은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마사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투수의 어깨가 얼마나 예민하고 투구로 인해 얼마나 데미지를 입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마사지를 하며 투수가 상태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호텔에서 받았던 마사지도 좋았지만, 구장에서 받는 것도 정말 좋네요.’
[마사지라는 건 어디까지나 그걸 시술하는 전문가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까.]
100구가 넘는 투구를 기록한 이후.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회복을 하지 않으면 다음 투구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기 위해 해야 하는 건 훈련이었다.
[밴드를 이용해서 어깨의 상태를 체크하는 거다.]
‘예.’
신우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조언을 들으며 단계를 밟아갔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개인훈련을 하는 동안 했던 것을 반복하면 된다.]
‘예.’
[이미 너의 회복루틴은 완벽에 가까운 상태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선발로 전환하면서 레전드플레이어들이 가장 중점으로 두었던 게 바로 회복루틴이었다.
제대로 된 회복을 하지 못하면 다음 투구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알기에 신우는 개인훈련기간부터 루틴에 맞춰 회복을 해왔다.
밴드를 당기며 어깨상태를 살피는 1단계를 지나 2단계는 가벼운 아령을 들어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훈련을 하면서 집중해야 되는 건 호흡이다.]
[팔의 수축과 이완을 느끼면서 제대로 호흡을 해줘야 혈액이 제대로 전달되기 때문이지.]
[지금 너의 심폐지구력을 생각하면 회복에 필요한 충분한 혈액을 보내줄 수 있어.]
파열된 근육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혈액이 이동하며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된다.
이러한 부분을 생각해서 레전드플레이어들은 신우의 심폐지구력의 훈련에 중점을 두었다.
‘알겠습니다.’
신우는 이런 순간에 드러나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지식과 과학적인 훈련에 감탄하며 집중력을 올렸다.
* * *
첫날 훈련은 가볍게 끝났다.
어디까지나 회복에 중점을 둔 훈련이었기에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있었다.
“보라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였다.
미리 연락이 없었던 그의 방문이었기에 반가울 따름이었다.
“퍼펙트게임을 축하합니다, 시누.”
“하하, 감사합니다.”
“당신이 언젠가 사고를 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그것도 이런 대형사고라니. 라이브로 보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스캇 보라스가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신우가 자리에 앉자 보라스가 뒤이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놀란 건 저만이 아닌 거 같더군요.”
“예?”
“어제 기록을 달성한 순간, 베켓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단장의 이름이 나오자 신우가 보라스를 바라봤다.
“그가 연장계약을 새로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