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70화 >
불펜에서 공을 받아주면서 외치는 파이팅 넘치는 응원은 대부분 불펜포수들이 내는 소리다.
그런데 방금 전 난 소리는 분명 신우의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에이든이 불펜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에이든 왔나?”
그런 에이든을 불펜코치인 글렌이 맞이했다.
에이든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불펜을 살폈다.
불펜에는 총 세 명의 투수가 서있었다.
두 명씩 몸을 풀어야 되는 불펜에 세 명의 투수가 몸을 풀고 있다는 건 분명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그 이색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건 신우였다.
그는 포수가 앉아 있어야 될 캐처박스에 서서 레이먼드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시누가 왜 캐처박스에 있는 거죠?”
“몰라. 갑자기 몸을 푼다면서 레이머드와 캐치볼을 시작했어.”
“아직 6회인데요?”
“조금 일찍 몸을 풀고 싶다더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펜투수들의 경우 루틴이 딱 정해진 게 없었다.
경기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경기에 나서야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저의 경우에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모습은 분명 평소와 다른 것이었다.
“으흠.”
이상함을 느꼈지만 선수들에게 별 말을 하지 않고 에이든은 두 사람의 캐치볼을 지켜봤다.
KBO와 메이저리그는 이러한 점 역시 차이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는 프로라고 생각을 한다.
자신만의 방법이 존재하고 선수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KBO에서는 신인선수나 연차가 적은 선수의 경우 코치와의 관계를 사제관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코치나 감독은 선수를 가르치고 성장을 시키는 역할을 해야된다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점은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뻐억-!
“오늘 브레이킹의 각이 날카롭네.”
“그런가?”
“내것도 좀 봐줘.”
신우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넘기며 레이먼드의 구위를 체크해주었다.
이러한 역할을 자처한 것은 신우 본인이 팀에서의 위치를 알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자신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투수가 구위가 좋다고 말해주면 선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
[불펜포수가 해주는 말보다 더 신뢰가 갈 듯.]
레전드플레이어들은 신우의 생각을 읽었다.
신우는 굳이 자신이 나서서 레이먼드의 공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듯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분명 레이먼드의 심리에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과거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신우에게 해주었듯이 말이다.
뻐억-!
“어때?”
“네 커터는 언제 변할지 몰라서 잡기 너무 어려워.”
“그게 내 공의 장점 아니겠냐?”
“그거야 그렇지.”
신우는 거기에서 한단계 나아가 조언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이는 오직 신우만의 생각이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오히려 빅리그에서의 연차는 자신보다 높은 레이먼드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라온 신우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오히려 레이먼드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가르치듯 이야기를 했다면 거부감을 느꼈을 거다.
‘마치 레이먼드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에이든은 신우의 행동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데이터를 알고 있지는 않을 텐데.’
최근 젊은 선수들은 데이터를 신뢰한다.
하지만 구단이 보유한 데이터처럼 자세한 것들을 찾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그게 당연했다.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시간이 없었다.
즉, 신우는 데이터가 아닌 본인의 감으로 레이먼드의 문제점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역시 특이해.’
한 번 더 신우의 행동에 놀라며 에이든은 과연 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를 가졌다.
* * *
[8회말, 메츠의 마운드에 레이먼드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최근 좀 부진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레이먼드 선수지만 아직까지 구단에선 그를 신뢰하고 있는 듯 합니다.]
[최근 좀 부진하지만 팀내에서 레이먼드 선수보다 뛰어난 불펜투수는 사실 정신우 선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신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작년 이맘때에도 체력저하로 인해 구위와 구속이 떨어지면서 성적이 나빠졌다는 부분이겠죠.]
[현지언론에서도 최근 그와 관련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렇기에 메츠 구단에서도 빠른 판단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에서 중계를 하는 중계진들 역시 레이먼드의 체력문제를 거론했다.
언론들 역시 하나 같이 레이먼드의 체력을 문제 삼고 있었다.
- 레이조루 올라왔누.
- 3점 리드하고 있는데 왤캐 불안하냐?
- 오늘 시누 못 볼 듯.
ㄴ ㅇㅈ
ㄴㄴ 얘 올릴바에는 신우를 2이닝 던지게 하는 게 낫지 않냐?
ㄴㄴㄴ 그럼 혹사라고 또 ㅈㄹ 할 거면서 ㅋㅋ
댓글들 역시 호의적이지 않았다.
최근 레이먼드의 난타로 인해 신우의 등판이 물 건너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신우는 자신의 등판과 관련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다.
‘잘 해라.’
신우는 오직 레이먼드가 잘 던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근데 넌 속도 좋다.]
[맞음. 레이먼드는 네가 팀에 왔을 때부터 그리 싹싹하게 대하진 않았잖음?]
‘그건 그냥 자기의 보직이 뺏겨서 그런 거잖아요? 그 후에는 팀내에서 가장 절 챙겨준 것도 레이먼드였고요.’
[그건 그렇긴 하지.]
[ㅇㅈ]
레이먼드와의 사이는 묘했다.
클로저였던 그의 보직을 뺏은 뒤로 사이가 나빴다.
하지만 신우의 실력을 레이먼드가 인정한 뒤에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오는 레이먼드였다.
그렇기에 그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딱-!
[파울!]
초구는 파울이었다.
97마일의 싱커.
퍽-!
[볼!]
2구는 하이 패스트볼에 타자의 배트가 나오다 멈췄다.
좋은 현상이었다.
배트가 나오다 멈췄다는 건 중간까지는 속였다는 것이니 말이다.
퍽-!
[스트라이크!!]
3구는 싱커가 타자의 몸쪽을 정확히 꿰뚫었다.
타자가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의 공이었다.
평소보다 느낌이 확실히 좋았다.
그리고 결정구로 레이먼드가 던진 공은.
후웅-!
퍽!
[스윙! 아웃!!]
신우가 칭찬을 했던 슬라이더였다.
고속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면서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 모습을 본 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뉴욕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시즌 38번째 세이브를 거두며 40세이브 고지까지 단 2개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인 최다 무실점이닝 피칭을 38이닝까지 늘리는 기염을 토하며 리그 유일의 평균자책점 제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와...신우 레알 레전드시즌이네.
ㄴ 시즌 후반인데 여전히 평자 제로 실화냐?
ㄴㄴ 38이닝 무실점 ㅋㅋㅋㅋㅋ 작년까지 합치면 49이닝 연속 무실점 아님?
ㄴㄴㄴ 메쟈에서 두시즌 합쳐서 연속이닝 무실점을 기록으로 치더냐?
ㄴㄴㄴㄴ 메뽕들 또 부글부글하쥬?
- 국뽕들 또 달아오르네.
ㄴ 하여간 냄비근성 오진다.
ㄴㄴ 조금만 잘하면 아주 난리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이브 못 올린다고 난리더니.
ㄴㄴㄴ 하루이틀임?ㅋㅋ
- 도대체 국뽕이라고 까는 인간들은 뭐냐? 너희들은 한국인 아님?
ㄴ 그냥 한국인 잘할 때만 와서 아는 척 하는 인간들이 싫은 거임 ^^
신우의 활약에 따라 댓글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후반기 들어 세이브 기회가 줄었던 신우이기에 댓글 여론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불과 같은 토론이 열렸다.
하지만.
[정신우 선수가 2경기 연속 세이브에 성공하며 시즌 39세이브를 올렸습니다. 셋업맨인 레이먼드 선수가 1점차의 리드를 지켜내며 넘겨준 9회말의 기회를 잡은 정신우 선수는 삼자범퇴이닝을 만들어내며 39이닝 연속 무실점기록과 39세이브를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 캬하-! 이틀 연속 세이브! 지렸다!
ㄴ 이대로 40세이브 ㄱㄱ
ㄴㄴ 내일도 세이브 가즈아-!
ㄴㄴㄴ 세이브기회가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지 암?
[워싱턴과의 첫 번째 경기에서 메츠의 정신우 선수가 3경기 연속 세이브포인트이자 시즌 40세이브 고지에 양대리그 최초로 올라섰습니다.
이는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 기록으로 최초의 기록은 2001년 사사키 가즈히로 선수가 세웠습니다. 아시아 최다세이브 기록 역시 사사키 선수가 보유한 45세이브로서 정신우 선수가 이를 갱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40세이브!!!
ㄴ 실화냐?
ㄴㄴ 3경기 연속 세이브!!
ㄴㄴㄴ 메이저 전문가님들 어디감?
신우의 40세이브 달성과 동시에 댓글창에선 자칭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
12경기 연속 원정경기를 마무리하고 메츠는 홈으로 돌아왔다.
신우는 12연전을 치르면서 무려 6세이브를 올리며 시즌 44세이브를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레이먼드의 활약이 있었다.
레이먼드 역시 신우와 같은 6경기에 등판해 모두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레이먼드와 관련된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메츠의 뒷문은 단단해졌다.
오랜만에 홈으로 돌아온 메츠의 선수단에게는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휴식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선수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원정경기를 12경기나 치렀기에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런 날에는 쉬어도 되는데.”
한선예는 그런 날을 자신과 함께 외출을 한 아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아니에요. 저도 뉴욕에 살지만 가는 곳들만 가거든요. 그래서 엄마 핑계 되면서 관광이나 하려고 나온 거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자신의 마음까지 챙겨주는 아들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는 한선예였다.
“그런데 제가 원정 가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제이슨에게 들어보니 엄마가 먼저 가이드를 그만두는 쪽으로 말씀하셨다면서요?”
사실 이게 가장 마음에 걸려서 함께 외출을 결심했던 신우였다.
“응? 아니, 별일은 없었어. 약간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래요?”
“응. 처음에는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다보니까 조금씩 안 맞는 부분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이 편할 거 같기도 해서.”
“그럼 다른 가이드를 찾아드릴까요?”
“응? 아니야. 지내다보니까 번역어플로도 충분하더라. 그리고 나도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영어가 빨리 늘거 같아서 가이드 없이 혼자 다녀보려고.”
“괜찮겠어요?”
“물론이지!”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가이드를 붙여드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뉴욕은 크게 위험한 도시가 아니니 어머니 혼자 다니셔도 큰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잠시 후.
신우의 차가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주차장이 좀 머네요. 엄마, 먼저 내려서 보고 계실래요? 저 주차하고 올게요.”
“그럴까?”
“네.”
차에서 내린 한선예는 신우의 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 목적지로 정해두었던 빵집으로 향했다.
이번에 찾아간 빵집은 자신에게 베이커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추천해준 곳이었다.
장인정신이 투철한 디저트가게로 쿠키 등이 정말 유명한 곳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쉬운 점은 사진을 찍거나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찍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찍을 수 없게 바뀌었다지?’
관광지에 있는 가게들 중에서는 이러한 곳들이 많았다.
특히 유튜브가 유행하면서 가게 내부를 촬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아예 스마트폰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이전에 갔던 베이커리 가게도 비슷한 사례였다.
원래는 촬영이 가능했지만 점점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며 클레임이 들어와 금지를 했던 것이다.
김수진도 그것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이후의 대처가 나빴다.
그래서 한선예는 그녀를 그만두게 했다.
사회인으로서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쨌건 다시 마주칠 일이...’
“어머?”
가게로 막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김수진이 서있는 게 보였다.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어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투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김수진이었다.
단정했던 옷차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랗게 염색한 모습이나 몸매가 확연히 드러난 옷차림 등.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오...오랜만이에요.”
“또 빵집 찾으러 오신 거예요?”
“네.”
“누구야?”
그때 한 백인 남성이 다가와 그녀에게 물었다.
영어로 물어봤지만 간단한 단어였기에 한선예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나오는 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워낙 빠른데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정이나 제스처들은 좋은 대화가 아닌 듯 했다.
자신이 자른 인물과 오래 대화를 나누는 게 불편했기에 한선예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럼 전 바빠서 먼저 들어가볼게요.”
“그래요? 그럼 같이 들어가죠.”
“네?”
“저도 여기에 갈 목적으로 온 거예요. 왜요? 저는 여기에 오면 안 되나요?”
“아...아뇨. 그런 뜻이...”
딸랑-!
한선예의 말을 듣기도 전에 김수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선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올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일부러 같이 와준 곳이다.
거리도 멀었기에 나중에 온다면 시간낭비가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들어가자.’
한선예도 뒤이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정말 맛있는 디저트가게는 문을 열 때부터 냄새가 진동을 해.’
좁지 않은 가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선예는 인파에 섞여 가게 안을 살피면서 어떤 디저트들이 있는지 눈에 담았다.
‘사진을 못 찍는 게 아쉽네.’
사진으로 담아둘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어머니, 사진 안 찍으세요?”
“네? 하지만 여긴 최근에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바뀌었다고...”
“아, 아셨구나. 아쉽네요.”
김수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쉽다는 것도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쉬운 게 아니라 자신이 걸려들지 않아서 아쉽다는 뜻인 듯 했다.
그 모습에 한선예도 폭발하고 말았다.
“저기요, 수진씨.”
“안젤라라고 불러줄래요?”
“예?”
“미국까지 와서 유치하게 한국이름을 왜 써요?”
“하...좋아요, 안젤라씨. 최근에 제가 일방적으로 가이드를 그만두게 했지만 이런 태도는 좀 아니지 않나요? 분명 그때도...”
“헤이!”
그때 김수진의 일행이었던 백인남성이 인상을 구기며 한선예를 향해 다가왔다.
문신을 하고 피어싱까지 한 그의 모습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빠르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한선예는 숨이 턱 막혔다.
그때 김수진이 일행을 뒤로 물러서게 하며 한선예에게 말했다.
“아줌마, 왜 과거 이야기를 하고 그래요? 사람 기분 좆같게? 미국에서 한국처럼 훈계하다가는 총 맞아요.”
명백한 협박에 한선예는 할 말을 잃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모습에 김수진이 일행과 비웃음을 지었다.
“장애인이...”
“이봐요.”
그때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김수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런 그녀의 눈에 건장한 체격의 동양인 사내가 보였다.
그의 등장에 가게가 술렁였다.
“시누?”
“시누 정?!”
“왓 더?!”
그는 다름아닌 신우였다.
최소한 뉴욕에서 신우를 몰라볼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신우는 그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김수진에게 말했다.
“한 마디만 더 우리 어머니한테 함부로 지껄이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신우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김수진의 귀를 파고들었다.
같은 메이저리거들끼리야 신우의 피지컬은 일반적이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절대 아니었다.
190cm의 키에 100kg이 넘는 근육질의 체형인 그가 내뱉는 낮은 목소리는 위압감이 넘쳐 흐르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김수진은 겁에 질린 채, 자신의 일행을 바라봤다.
무언가 도움을 원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일행이 한 행동은.
“헤이! 시누!! 나 당신의 팬이야! 여기에 사인 좀 해줄 수 있어?!”
사인을 받기 위해 자신의 자켓을 벗고 있었다.
그렇게 드러난 티셔츠를 본 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내 져지가 아니면 사인을 할 수 없어. 다음에 야구장으로 오도록 해.”
“아...그래?”
아쉬워하는 그를 뒤로 하고 신우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으응.”
“누군지...”
“오우-! 시누!!”
그때 셰프복장을 한 노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나는 이곳의 주인이야! 메츠의 슈퍼스타가 우리 가게를 찾아주다니, 너무 기쁘군!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별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 그럼 쿠키를 사기 위해 들린 거야?”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베이커리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국에서 찾아오셨는데, 꼭 여길 오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자네의 고향에서? 그 먼곳에서 우리 가게를 찾아와주시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베이커리의 주인이 어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신우는 그런 주인장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뒤를 슬쩍 바라봤다.
거기에는 가게를 부리나케 빠져나가는 김수진이 보였다.
“이봐, 시누.”
“아, 예.”
“혹시 어머니가 관심이 있으시면 주방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의사를 물어봐주겠나?”
“알겠습니다. 엄마, 셰프님이 직접 안을 안내해드리고 싶다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정말?!”
방금 전까지 떨고 있던 한선예의 눈이 빛났다.
그 모습을 보며 신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셰프, 그럼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지! 대신 이따 갈 때 글러브에 사인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제 차에 여유분이 있으니 거기에 해드릴게요.”
“으하하! 이거 오늘 횡재했군!!”
기뻐하는 주인장의 모습에 신우가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선예는 새삼스레 알 수 있었다.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해졌구나.’
미국으로 떠난지 2년.
아들이 훌쩍 커버렸다는 걸 실감한 한선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