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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69화 (69/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69화 >

* * *

경기종료 이후.

신우는 운전석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후우-!”

[아놔.]

[쫄보쉑!]

[언제까지 전화기만 노려보고 있을 거임?]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닦달이 이어졌다.

“합니다! 해요!”

[자신감을 가져라.]

그때 매튜슨이 말했다.

[한국에서 이미 너는 스타다. 그것도 아직 대중에게 노출이 되지 않은 스타, 그런 네가 먼저 연락을 취한다면 에이전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다.]

같은 채팅이지만 매튜슨은 뭔가 사람을 안정되게 해주는 느낌이 있었다.

자신에게 야구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던 게 그였던지라 더욱 그럴 수도 있었다.

“예.”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신우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 * *

신우는 조금 늦은 시간에 호텔로 돌아왔다.

“왔니? 오늘은 좀 늦었네.”

“잠깐 해야 될 일이 있어서 늦었어요. 안주무시고 계셨어요?”

“나도 정리할 게 조금 있어서, 밥은?”

“괜찮아요.”

짐을 내려놓으며 테이블을 힐끔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는 태블릿PC와 노트 한권이 놓여 있었다.

태블릿PC에는 디저트와 사진이 찍혀 있었고 노트에는 그 디저트를 분석한 듯한 그림과 글씨가 적혀 있었다.

신우의 시선을 본 듯 어머니가 쑥스럽게 웃으며 노트를 정리하셨다.

“최근에 뉴욕의 유명 베이커리들을 다니면서 모은 자료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곳들이 있어서 정리할 게 많더라고.”

“직접 다 하신 거예요?”

“응? 응. 다른 사람을 시킬 수 없는 일이잖아.”

어머니가 가진 열정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신우의 기억속 어머니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신 적이 없으셨다.

자신이 야구를 할 때는 아버지와 함께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공장을 다니시는 모습이 기억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지금 어머니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소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으셨던 걸 참고 기다리셨다는 거잖아.’

[부모란 토양과 같다. 자신의 영양분을 씨앗에 넘기고 자신은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지. 그렇게 성장한 새로운 나무는 또 다시 토양이 되어 다시 새로운 나무를 키우는 것.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다.]

매튜슨의 말에 심장이 조여왔다.

“응? 아들, 왜 그래?”

“아니에요. 다음에 엄마가 해주는 빵 먹어보고 싶어요.”

“그래? 그럼 날 잡아서 엄마가 해줄게. 여기 오븐도 있고 하니까, 간단한 건 만들 수 있을 거야.”

“기대할게요.”

“그래!”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신우는 다짐했다.

더 많은 돈을 벌겠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동안 못하셨던 걸 하게 해드리겠다고 말이다.

* * *

일주일이 흘렀다.

신우는 전용기를 타고 신시내티로 향했다.

“흐아...무슨 12연전이나 원정이냐.”

게일러가 옆자리에 앉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놈 친화력 지리네.]

[합류한지 고작 2주밖에 안 됐는데, 누가 보면 팀에서 3-4년은 구른 줄 알겠음.]

“시누, 너도 패 한 번 돌리는 게 어때? 내가 여기에 판 깔아줄게.”

전용기에서는 일찌감치 카드판이 열리고 있었다.

두 테이블이나 만석이었는데, 그 테이블 모두 게일러의 주도로 열렸다.

각 구단에는 분위기메이커가 존재한다.

대부분 그들이 카드판을 열고 원정길에서의 분위기를 책임진다.

최근 메츠에서는 그 역할을 게일러가 하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카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 그럼 술이나 한 잔 할까?”

“아니야. 나는 내일 경기에 나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컨디션관리 좀 할게.”

“루키라서 그런가? 빅리그에 왔으면 즐기라고 친구.”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게일러가 신우의 어깨를 툭 치며 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는 고개를 저으며 이어폰을 착용했다.

[싸가지없는 놈일세.]

[각자의 스타일이 있는 걸 인정 못하는 놈 같은데?]

[굳이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을 듯.]

[ㅇㅈ]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을 보며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끄고 루틴에 집중하자.]

‘예.’

신우는 곧 자신만의 루틴을 위해 눈을 감았다.

* * *

신우가 전용기를 타고 뉴욕을 떠나고 있을 때.

한선예는 뉴욕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쪽이에요.”

앞장서 한선예를 안내하는 건 20대 초반의 동양여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김수진으로 유학을 온 23살의 한국인여성이었다.

제이슨이 구직사이트를 통해 한선예의 가이드를 구했고 베이킹을 좋아한다는 말에 그녀를 채용한 것이다.

“뉴욕은 며칠을 다녀도 너무 헷갈리네.”

“좀 그렇죠? 지도가 없으면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구글에 언제나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김수진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구글지도가 켜져 있었는데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저쪽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그래.”

팔짱을 끼며 자신을 리드하는 김수진의 모습에 한선예는 미소를 지었다.

김수진과 함께 다닌지 일주일 정도 됐다.

그동안 그녀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살가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편하게 뉴욕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베이커리 전문점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지금 가는 곳은 뉴욕에서도 정말 유명한 곳이에요. 베이커리쪽으로 커리큘럼을 밟고 있는 학생들은 꼭 한 번씩 찾아가는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 그럼 수진이도 가봤어?”

“저는 열 번도 더 가봤죠!”

“와...정말 열정적이네. 그렇게 자주 갔었는데, 나 때문에 또 가야 돼서 괜히 미안하네.”

“아니에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 또 갈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요!”

수진의 이런 점이 한선예는 좋았다.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커리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 호감이 갔다.

“여기에요!”

수진이 안내한 곳은 고풍스런 분위기의 베이커리 가게였다.

갓 구운 빵의 냄새가 좋고 건물에 고풍스러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주방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네. 빵을 만드는 사람들도 하나 같이 청결하고. 역사가 오래된 곳들은 청결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무척이나 깔끔하네.’

한선예는 가게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머니, 사진도 찍고 하세요.”

“사진 찍어도 되는 곳이야?”

유명 맛집들 중 일부는 사진을 찍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한선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이, 괜찮아요. 찍으세요.”

“그래?”

김수진의 장담에 한선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녀가 자주 와봤다고 하니 개의치 않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사진을 막 찍으려고 할 때였다.

“헤이!”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며 한선예를 제지했다.

“돈트 테잌 픽처스!”

스마트폰을 손으로 가리며 말하는 그의 태도는 강압적이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은 이해했지만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될지 머리가 새카맣게 변했다.

‘수진이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수진이었다.

이럴 때 도움을 받기 위해 가이드인 그녀를 고용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응?’

그때 가게밖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수진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몸을 휙 돌렸다.

황당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고용을 한 것인데, 외면을 하다니.

한숨을 푹 내쉰 한선예는 번역어플을 켜서 직원에게 사과를 하고 대응을 시작했다.

* * *

원정 세 번째 경기.

신우는 불펜에서 게일러가 던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퍽!]

[스트라이크!!]

게일러가 던진 공이 존의 중심을 꿰뚫었다.

[화끈하게 던지네.]

[성격은 별론데 공격적으로 던질 줄은 아네.]

[괜히 트레이드를 통해서 데려온 건 아닌 듯.]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전 마무리투수인 그렉 버드를 내주고 데려온만큼 제 몫을 해주고 있는 게일러였다.

무엇보다 메츠의 선발진에 사이드암이 없다는 것 역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선발이 해결되니...’

신우의 시선이 옆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표정이 굳어 있는 레이먼드가 앉아 있었다.

[불펜이 지랄이군.]

[ㅇㅈ.]

[작년에도 이 시기부터 무너지더니, 올해도 비슷하네.]

‘체력문제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높긴 한데...]

[작년하고는 조금 다르다고 봄.]

현재 언론에서는 대부분 레이먼드의 상태를 체력문제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일종의 입스다.]

‘입스라면 트라우마 같은 거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그런 상태가 되기 위해선 강한 사건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의외로 작은 일에도 입스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런 경우 본인이나 주위에서 알아채는 게 어렵다는 거지.]

[ㅇㅇ 차라리 큰 사건을 겪으면 주위에서도 바로 알아챌 수 있어서 편한데, 작은 사건의 경우에는 알아내기 어려움.]

‘그럼 선배님들은 레이먼드가 입스에 걸린 이유를 알고 계시는 건가요?’

[대충은.]

[아마 작년 이 시기에 부진했던 게 그 이유겠지.]

[나도 비슷하게 생각함.]

[작년에 부진했으니, 올해도 부진할 거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고 언론이랑 SNS에서 팬들도 그렇게 때리고 있으니까,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지.]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

[투수에게 체력저하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떨어지는 건, 구속이다. 하지만 레이먼드의 구속은 비슷하잖아? 문제는 본인의 공에 자신감이 없으니 제구와 구위가 떨어진 거고.]

신우도 투수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투수 본인이 얼마나 자신을 믿느냐에 따라 공의 위력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본인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구위와 제구력에 문제가 생기고 그런 공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겠네요.’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지만 본인이 그걸 언제 깨닫는지가 문제지.]

‘해결법이 간단해요?’

[응. 본인의 공에 대한 자신감만 가지면 되거든.]

매튜슨의 말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

에이든은 자신의 노트북으로 데이터를 내고 있었다.

‘원정으로 온 뒤에도 레이먼드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있어.’

엔터키를 누르자 레이먼드의 자세한 데이터가 나왔다.

‘언론에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체력문제로 보는 것 같지만, 데이터는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노트북에 뜬 레이먼드의 데이터는 무척이나 자세했다.

작년과 올해 같은 시기에 던진 공의 코스, 구속, 회전수, 수직, 수평 무브먼트 등.

또 다시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이 바뀌면서 레이먼드의 투구폼이 나타났다.

‘투구폼 역시 작년에는 체력저하인 선수들이 흔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들이 모두 나타났어.’

체력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팔의 각도가 내려간다.

사이드암 투수라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릴리스포인트 역시 정확하지 않고 매번 달라지면서 제구력에 문제가 생긴다.

스트라이드의 폭 역시 좁아지면서 하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엔터키를 다시 누르자 올해의 투구폼이 겹치면서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투구폼에 별 다른 변화가 없다는 게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심리적인 문제다.’

에이든은 과학적으로 답을 돌출해냈다.

그 증거들을 클라우드서버에 올려 자신의 태블릿PC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게 업데이트 했다.

태블릿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 그의 발걸음이 불펜으로 향했다.

‘게일러가 6회까지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 내려갔군.’

선발로서 본인의 임무를 마무리한 게일러 덕분에 팀은 5 대 2로 승리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레이먼드가 등판할 건 불보듯 뻔했다.

최근 그의 상태가 나쁘다고 해서 페넌트 레이스에서 셋업맨을 함부로 바꿀 순 없었다.

상태가 나쁘다면 그의 상태가 좋아질 때가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구단의 상황이 언제까지고 레이먼드를 기다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 선두에서 물러난 뒤, 메츠는 매 경기가 중요하게 되었다.

와일드카드보다는 디비전시리즈 직행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무리로 이어지는 셋업맨인 레이먼드의 상황을 빠르게 개선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레이먼드와...’

퍽-!

“나이스!”

“응?”

불펜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에이든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시누의 목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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