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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로 메이저리거-71화 (7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71화 >

* * *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한선예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아들, 이거 봐. 단톡방이 난리났어.”

“왜요?”

“오늘 우리가 간 베이커리 가게. 거기 주인분이 정말 유명한 분이거든. 그분과 찍은 사진이랑 주방 찍은 거,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디저트를 올렸더니.”

말을 멈춘 한선예가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했다.

그러자 단톡방의 반응이 한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열광 그 자체였다.

“특히 베이커리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정말 놀라셨어.”

“그 정도면 정말 유명한 분이었나 보네요.”

“응! 아들 덕분에 귀한 구경을 한 거야.”

그러면서 다시 채팅에 열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미소가 그려졌다.

새삼스레 자신이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하루였다.

* * *

다음 날.

신우가 구장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제이슨이 다가왔다.

“신우씨.”

신우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죄송합니다!!”

제이슨이 고개를 숙였다.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에 어머님의 가이드로 붙여드렸던 김수진씨가 어제 체포됐다고 하더군요.”

“체포요?”

“취업사기와 명의도용과 절도 혐의로 긴급체포됐다고 하더군요. 최근 저희쪽과 일을 했기 때문에 경찰쪽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허...”

막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혹시 어머님이 피해를 받으신 건 없으신 가요?”

“예, 딱히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신분이시니 불편함이 없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정신우 선수에게 염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이슨씨도 그런 걸 알고 고용한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괜찮습니다.”

제이슨과 대화를 나눈 신우는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어머님 선견지명이 대단하시네.]

[ㅇㅈ.]

[괜히 더 엮어 있었다가는 일 복잡해질 뻔 했었네.]

레전드플레이어들의 말에 동감이 됐다.

어머니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앞으로 어머니 말씀 잘 들어야지.’

[ㅇㅈ]

신우의 결론에 동감을 하는 레전드플레이어들이었다.

* * *

딱-!

“와아아아-!!”

경쾌한 타격소리와 함께 타구가 담장 밖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토마스가 배트를 가볍게 던졌다.

툭-!

[역전 쓰리런을 터트리는 토마스 에드윈이 배트를 던졌습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배트플립이 자주 등장을 하는군요.]

[팬들이 좋아하니까, 선수들의 인식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문제로 인해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고 있지만 투수들 역시 조금씩 인식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신우의 배트플립 이후, 메츠의 타자들은 하나 둘 배트플립을 선보였다.

특히 토마스와 알론소가 주도적으로 보여주면서 팬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팬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입장에선 그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리그 전반적으로 배트플립을 하는 타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수들 역시 불만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선수협에서도 배트플립과 관련된 보복구를 금지하자는 안건도 논의되고 있다 합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이상 불문율만을 고집하는 건 사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이 없다면 메이저리그란 사업은 결국 사양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선수들은 적응해가고 있었다.

경기시간이 길어 지루함을 느끼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며 다시금 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었다.

투타겸업의 오타니 쇼헤이의 등장만큼이나 정신우의 배트플립은 팬들에게 큰 임팩트를 남겼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 신우가 전문타자로 나섰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선수들과의 배트플립과는 차이가 있어.’

펜스에 기댄 채 경기를 바라보던 베켓의 시선이 토마스에게 향했다.

‘미국선수들의 배트플립은 화려하지가 않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신우의 빠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때 장면은 각종 프로그램에서 수십번 리플레이가 될 정도로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장에서 봤던 베켓이지만 다시 보더라도 가슴이 뛰는 장면이었다.

‘투수로도 완벽하지만...’

베켓은 구단을 운영하는 단장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되는 것도 그의 관심사였다.

구단이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스타플레이어가 많아야 한다.

메츠에서 신우의 유니폼 판매량은 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최고의 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 하지만 그의 보직이 그 자질을 막고 있다.’

야구에서 가장 화려한 보직은 어디에 있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선발투수라고 말할 것이다.

팀의 승리를 책임지는 역할.

그가 무너지면 팀은 일찌감치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선발은 야구를 꿈꾸는 대부분의 어린선수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다음은 바로 타자다.

그냥 타자가 아니라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

그들이 점수를 내지 않으면 팀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거지.’

프로선수에게 연봉은 곧 그 선수의 가치를 의미한다.

단순히 실력만이 아니라 스타성까지 겸비한 것이 바로 연봉이 된다.

그렇기에 신우가 아쉬웠다.

이미 스타였지만 그는 슈퍼스타가 될 자질이 있었다.

(자네는 착각하고 있군.)

그때 마치 환청처럼 스캇 보라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연장계약을 통해 그를 메츠에 붙잡아두려고 했었던 그의 제안에 보라스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협상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보라스는 애초에 연장계약이 트렌드가 된 시장 상황에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라 생각했었다.

신우가 슈퍼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고 자신이 말했을 때.

그가 그런 말을 한 이유도 그저 도발이라 생각했다.

(슈퍼스타?)

클로저란 보직에서도 신우는 스타가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경력을 쌓으면 마리아노 리베라를 뛰어넘는 투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선발로 전환을 한다면?

타자로 전환을 한다면?

그는 단숨에 슈퍼스타로 올라설 것이다.

그런 자신의 의견에 보라스는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야구의 트렌드를 바꿀 선수야.)

그 말과 함께 협상은 끝났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

베켓은 당연하게도 테이블을 접었다.

급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트렌드를 바꿀 선수라...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그러한 선수는 단 한 명밖에 없었지.’

베이브루스.

그는 베이스볼이란 스포츠 자체를 바꿔놓은 선수였다.

이후 많은 슈퍼스타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누구도 베이브루스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오타니 쇼헤이가 투타겸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을 했을 당시, 수많은 사람이 환호했던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수고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하는 것.

그러한 모습은 신선함을 주고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게 된다.

‘트렌드를 바꿀 정도의 선수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건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2-3년의 준비를 충분히 한 뒤에 일어날 일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본격적인 협상을 하면 충분하겠지.’

그때 신우가 불펜을 나와 마운드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메츠 팬들이 일제히 환호를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한 가지 확실한 건 시간은 아직 자신의 편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성적을 기반으로 신우와 계약을 체결할 것이다.

그가 슈퍼스타가 되건, 야구의 트렌드를 바꿀 스타가 되건 미래를 메츠와 함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 * *

[토마스의 역전 홈런으로 승기를 잡은 메츠가 경기를 끝내기 위해 정신우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카메라가 신우를 잡았다.

평소와 같이 로진을 손에 묻히며 평화로운 그의 모습에 캐스터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정신우 선수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군요.]

그의 말에 시청자들도 공감했다.

- 캬하-! 아시아인 최다세이브 기록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건가?

ㄴ 오늘 올리면 45세이브임?

ㄴㄴ ㅇㅇ

아시아인 최다세이브 기록.

2001년 일본인투수 사사키 가즈히로가 메이저리그 2년차에 올린 45세이브.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그 기록은 불멸의 기록이 되어 있었다.

[오늘 세이브를 기록하면 20여년전, 사사키 가즈히로 선수가 올린 아시아출신 선수 최다세이브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되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본인은 괜찮아보이지만 아마 긴장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대기록과 상관없이 평소대로 피칭을 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따라오게 될 겁니다.]

해설위원은 신우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때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고 한국인 선수로서 족적을 남겼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언이었지만.

신우의 곁에서는 그러한 조언을 해줄 인간들이 참으로 많았다.

[심장박동 빨라지쥬?]

[기록 생각하니까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냐?]

[보아하니 기록은 물 건너갔네.]

[ㅇㅈ. 빨랑 점수 내주고 돌아가자. 볼 것도 없을 듯.]

아주 치고 빠지기가 우화등선의 경지에 이른 레전드플레이어들이었다.

‘하나도 안 떨리거든요?’

그렇기에 더욱 악에 받치는 신우였다.

가볍게 그들의 도발을 무시한 신우가 허리를 폈다.

‘젠장.’

그들의 말이 맞았다.

처음 마운드로 달려올 때만 하더라도 평소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시야가 좁아 관중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마운드로 오면서 주위에 있던 동료들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덕분에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오기 일쑤였다.

‘나중에 사과해야겠어.’

그들도 이해하고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정말 인터뷰는 모두 거짓말이라니까.’

기록달성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뒤의 선수를 인터뷰할 때, 기자들이 이렇게 물어본다.

[Q. 기록을 신경쓰셨나요? A. 기록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입발린 소리지.]

[솔까,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됨?]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다고 하는 거지.]

[그래도 요즘 애들은 알고 있었다고 하더만.]

레전드플레이어들이 자기들끼리 채팅을 주고받는 모습에 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인정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지.’

저들의 채팅을 본 이후.

시야가 다시 넓어졌다.

관중석이 눈에 들어왔고 준비하는 타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어차피 과정에 있는 작은 장애물 중 하나다.]

‘예.’

그리고 매튜슨이 마지막으로 신우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신우가 피처플레이트에 발을 걸치고 준비에 들어갔다.

* * *

[시즌 45번째 세이브기회를 잡은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합니다.]

와인드업을 한 신우가 1구를 뿌렸다.

쐐애액-!

딱-!

“파울!!”

날카로운 스윙에 맞은 타구가 1루 라인을 벗어났다.

[초구 파울입니다.]

[타자의 컨디션이 좋아보입니다. 커터였기에 파울이 되었지만 포심이나 반박자정도 스윙을 늦게 했다면 정타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위험한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최근 동부지구 타자들의 컨택비율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시즌 초반과 달리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같은 동부지구 타자들의 스윙 타이밍이 점차 정신우 선수의 커터에 맞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해지고 있다고 봐야 될까요?]

[그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소속지구의 선수들이다보니 다른 타자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른 이유도 있나 보군요?]

[일단 체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시기상 체력저하가 찾아올 시기가 됐습니다. 사실상 풀시즌이 처음인 정신우 선수가 마무리투수로만 40이닝을 넘게 던졌으니 체력적인 부담이 올 시기가 됐죠.]

[최근 정신우 선수의 구속저하가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 신우의 포심 평균구속은 약 98마일이었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평균구속이 96마일까지 떨어지면서 그의 체력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실점피칭을 이어가면서 위기론을 잠재웠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은 신우의 체력저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2구 던집니다.]

신우도 알고 있었다.

본인의 구속이 떨어졌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전문가들과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다.

과거 워렌스판이 체인지업에 관련해서 알려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체인지업을 다른말로 체인지 오브 페이스라고 한다.)

상하체를 틀어 등번호의 절반이 타자에게 노출이 되었을 때, 멈춘 신우가 회전을 하며 스트라이드를 했다.

(체인지 오브 페이스는 럭비에서 수비를 피하기 위해 속도를 올리는 걸 의미하지. 즉, 속도를 조절해 타자를 속이는 것이 체인지업의 진정한 의미다.)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상체를 회전했다.

(굳이 구종을 제한할 필요도 없다. 그저 속도를 조절해주는 것만으로 타자를 속일 수 있지.)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후웅-!

타자는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스윙을 돌렸다.

초구보다 빨랐기에 커터가 아닌 포심이라 판단을 내린 스윙의 궤적이었다.

그 순간.

공의 궤적이 더욱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콰직!

[배트 부러집니다!!]

부러진 배트로 제대로 된 타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타구는 내야에 떠올랐다.

2루수는 거의 제자리에서 타구를 잡아냈다.

퍽-!

“아웃!!”

[초구 92마일의 커터에 이어 2구는 95마일의 커터로 타자의 배트를 부러트리면서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린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히고 있을 때, 스판의 채팅이 올라왔다.

[나이스 체인지 오브 페이스다.]

체인지업이 아닌 체인지 오브 페이스.

워렌 스판에게 배운 건 바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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