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61화 (61/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61화 >

* * *

어수선한 상황이 진정되고 경기가 재개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두 팀의 신경은 날카롭게 서있었다.

퍽-!

“볼!!”

“우우우우우-!!”

그렉 버드의 공이 몸쪽에 붙어오자 양키스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타자나 벤치의 선수들 역시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자세를 취했다.

재빨리 구심의 경고가 날아왔다.

“또 난리 피우면 어떻게 될지 두고보자고.”

“쳇!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제구도 못 하는 저 새끼한테 한 마디 해주시죠?”

“우리 투수한테 혓바닥 함부로 놀리지 마라.”

“투수? 웃기고 있네. 동네에서 캐치볼하는 애들도 저 새끼보다 제구가 더 잘 되겠다.”

“그 정도면 너는 공을 맞추지도 못하겠네.”

“뭐라고? 이 새끼가!”

마이클의 도발에 오히려 타자가 넘어왔다.

금방이라도 둘이 충돌하려는 순간.

“거기까지 해.”

구심이 둘을 제지했다.

“그렇게 한판 붙고 싶으면 UFC에 나가든가. 왜 야구장에서 그 지랄들이야?”

“쳇!”

“거기서 내 몸값을 맞춰준답니까?”

“그럼 닥치고 경기나 하도록 해.”

구심도 심기가 불편한 듯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경고라는 걸 안다는 듯 충돌이 마무리됐다.

[일단 벤치클리어링이 다시 일어나진 않았습니다만...과열된 분위기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았습니다.]

구심의 경고가 있어서일까?

퍽!

“볼!! 베이스 온 볼!!”

충돌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이미 흥분했던 투수의 제구력은 흔들리고 있었다.

‘젠장...’

메츠의 임시감독인 된 드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렉의 제구가 흔들리고 있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드빌이 걱정하는 건 그렉의 제구가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불펜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로스터를 다시 확인했다.

오늘 경기는 6회부터 불펜이 가동됐다.

특히 구종이 다양한 선수들을 일찌감치 내보냈다.

어제 회의의 작전대로였다.

문제는 그러한 투수들이 이제 떨어졌다는 거다.

‘시누밖에 없는 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

하지만 불안한 부분도 있었다.

‘시누가 던질 수 있는 공은 세 개밖에 되지 않아.’

구종으로 분류를 하면 두 개에 불과하다.

커터와 포심은 같은 패스트볼 계열이니 말이다.

그리고 체인지업은 완성도가 아직까지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신우의 체인지업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는 건 패스트볼의 강력한 회전력과 구속 그리고 구위에 있었다.

타자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는 피칭을 할 수 있기에 신우의 체인지업은 본래 능력보다 더 강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사인을 훔친다.’

사인은 바꾸었다.

하지만 구종이 적으면 금방 노출이 된다.

신우의 구위가 강하다 하더라도 구종이 노출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일단...지켜보자.’

결국 정석대로 가는 걸 택했다.

그라운드로 향한 그의 시선에 타석으로 들어서는 양키스 슈퍼스타 애런 저지가 보였다.

* * *

“와아아아아아!!!”

애런 저지의 등장에 양키스 팬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양키스타디움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환호성이 이 선수에 대한 기대감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양키스의 판사! 애런 저지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그가 신인으로서 최다홈런을 기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을 했습니다. 이제 타석에 서면 여유로움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애런 저지.

양키스의 슈퍼스타이자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분위기가 뜨겁네요.’

신우는 불펜에서 애런 저지를 바라봤다.

시범경기에서 그와 승부를 했었던 신우였다.

당시 컨디션을 점검하느라 제대로 된 승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투수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무슨 일이 터지지.]

매튜슨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딱-!!

4구까지 이어간 승부.

투볼 투스트라이크에서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간 5구에서 애런 저지의 벼락같은 스윙이 나왔다.

[넘어갔네.]

[갔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확신.

[아아-! 이건 큽니다!! 애런 저지도 본인의 타구를...]

그때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됐다.

휙-!

[던졌습니다!! 메츠의 더그아웃을 향해 배트를 던지는 애런 저지!!! 양키스의 신사가 메츠를 도발합니다!!]

모든 이들이 놀랄 장면이었다.

애런 저지는 큰 덩치와 달리 얌전한 선수였다.

굳이 비교를 하면 마이크 트라웃과 비슷한 유형의 타자였다.

홈런을 쳐도 얌전히 베이스를 도는 그런 유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해 일어난 흥분은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저지 잘했다!!”

“개자식들아!! 우리의 판사가 너희들한테 엄벌을 내렸다!!”

팬들은 그런 애런 저지를 향해 환호했다.

* * *

201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하락했다.

투고타저의 흐름.

개성을 잃은 선수들.

그로 인해 생기는 지루한 경기까지.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스피드업 규정이란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홈런을 늘리기 위해 공인구의 규정을 바꾸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2010년대 후반.

홈런의 개수는 크게 늘어났고 스피드업 규정으로 인해 경기시간은 줄어들었다.

또한 사무국은 유튜브와 MLB.COM을 통해 대중이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영상을 소개했다.

그중에 하나가 KBO의 배트플립이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소개한 배트플립은 젊은층의 큰 지지를 얻었다.

메이저리그에는 불문율로 금지되어 있던 배트플립.

간혹 등장을 하더라도 보복구가 날아오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그만큼 선수들에게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인식된 게 배트플립이었다.

그런데 사무국에서 오히려 배트플립과 관련된 영상을 개재하고 선수들의 불문율에 대한 의문을 표하자 몇몇 선수들은 그런 행동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팬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배트플립이 신선하다, 재밌다, 화려하다 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그에선 왜 이런 걸 볼 수 없냐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전히 쉽게 볼 순 없었지만 몇몇 경기에서 배트플립이 나왔고 투수들도 그것을 무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타자들이 배트플립을 하지 않았다.

불문율을 착실하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애런 저지가 대표적이었다.

그런 애런이 배트를 던졌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 * *

- 애런이 배트를 던져?

ㄴ 구라 ㄴ

ㄴㄴ 진짜임. 메츠와 벤치클리어링까지 일어났음.

- 헐 진짜네.

- 유튜브에 업로드 됐다 ㄱㄱ

- 어디서 방송함?

ㄴ ESPN

ㄴㄴ ㄱㅅ

애런이 배트를 던졌다는 소식에 시청자들이 빠르게 늘어갔다.

그 사이 메츠는 투수를 교체했다.

신우는 일단 아꼈다.

경기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올릴 필요가 없었다.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대니얼 피셔였다.

베테랑 투수인 그는 다양한 구종을 던지며 2개의 아웃카운트를 빠르게 잡아냈다.

‘일단 여기서 흐름을 막을 수 있을 거 같군.’

드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점차라면 9회초에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다.

더 이상 점수를 잃는다면 그 기회마저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대니얼이 이닝을 막아주는 게 고마웠다.

“드빌.”

그때 에이든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통로에서 그를 불렀다.

“이닝 끝나고 잠깐 봐요.”

“알았어.”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딱-!

[타구 높게 뜹니다! 중견수 자리를 잡고 안전하게 포구합니다. 이닝 종료! 하지만 양키스의 슈퍼스타 애런 저지가 투런홈런을 기록하며 역전에 성공합니다!]

이닝이 마무리됐다.

드빌은 곧장 더그아웃을 빠져나가 에이든을 찾았다.

에이든이 복도에 서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마이크의 전언이에요.”

감독이 퇴장을 당하더라도 작전이나 선수의 활용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이크 역시 에이든을 통해 작전을 지시했다.

“9회초에 지명타자까지 순서가 온다면.”

“응.”

“정신우를 타석에 세우라고 했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믿을 수 없는 말에 드빌이 되물었다.

에이든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누가 투수들 중에는 타격을 잘한다는 걸 알지만 전문타자들이 있는데, 굳이 시누를 타석에 세워야 되는 건가?”

“남은 타자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그래요.”

드빌은 바로 납득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남은 타자들의 타격이 떨어진다 해도 전문적으로 타격만 하는 선수들이다.

투수인 신우보다는 능력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우를 타석에 세우라니?

“자네 생각은 어때?”

“...저도 동의합니다.”

“뭐?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타자들이 더 뛰어나잖아?”

“예. 정신우의 데이터는 무척 적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어요. 하지만 마이크가 이런 말을 했어요.”

“무슨 말?”

“그는 특별하다고요.”

“메이저리거는 모두 특별해.”

“그들중에서도 특별한 선수가 시누라는 거예요.”

“으음...”

마이크가 저렇게가지 이야기를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시간 됐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드빌이 다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에이든을 바라봤다.

“자네는?”

“예?”

“데이터를 신봉하는 자네의 의견은 어떠냐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응?”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에이든의 대답에 드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다른 대답이 떠오르면 알려달라고.”

“그러죠.”

이내 홀로 남은 에이든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버매트릭스.

수학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기 위해 고안된 학문.

에이든은 그것을 신봉했다.

‘그런 내가 모른다고?’

그것은 굴욕적인 일이었다.

‘답을 찾아내겠어.’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신우는 더그아웃으로 이동했다.

아직 9회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의 이동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갑자기 웬 이동임?]

‘글쎄요.’

신우도 더그아웃으로 오라는 연락만 받았기에 이유를 몰랐다.

의문을 가진 채 도착한 더그아웃.

곧 그를 발견한 드빌이 손짓을 했다.

“부르셨어요?”

“그래. 이번 이닝에 4번까지 타순이 돌아오면 자네가 나갈 거야.”

“예?”

“그리고 다음 이닝까지 이어지면 그때는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를 해야 돼.”

저 말의 뜻은 간단했다.

[투수한테 한 방 치라하누.]

[실화냐? ㅋㅋ]

[벤치클리어링 하다가 머리에 충격받았나?]

[감독 없으니까 개판이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신우는 거기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분명 작년 포스트시즌에서 홈런과 안타를 때려내긴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반년동안 가벼운 연습을 제외하고는 타격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신에게 타격을 맡기다니?

신우가 아무 대답이 없자 드빌이 물었다.

“왜? 자신없나?”

그의 질문에 신우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자신없다고 할 선수가 있겠습니까?”

[오올~]

[뿌-! 뿌-! 뿌-!]

[멋짐폭발!!]

“좋아. 그럼 자네만 믿겠어.”

드빌이 신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신우는 벤치로 돌아가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제발, 내게 기회가 와라.’

오늘 경기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또 경기장에 나가지 못하고, 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오늘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있냐?]

그때 베이브루스가 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