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60화 >
* * *
야구란 스포츠의 기본은 투수와 타자의 싸움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투수가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열 번의 세 번만 때려내도 훌륭한 타자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네 번을 때려낼 수 있다면 역사에 남을 타자로 인정했다.
그럼 투수가 유리한 이유가 뭘까?
‘던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죠.’
[정답!]
[올~제법인데.]
[구종과 코스 거기에 구종이 가지고 있는 무브먼트와 속도의 변화까지 생각하면 투수의 무기는 수십, 수백가지로 늘어나는 셈이지.]
[타자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있으니 타격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 물론 이 같은 것들은 투수의 제구력이 잡혀 전제가 깔려야 되지만 말이야.]
[그런데 투수가 던질 공을 알게 된다면?]
‘경우의 수가 줄어들겠죠.’
[정답. 특히 체인지업은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기 위한 유인구로 사용되는 일이 많아. 즉, 볼성 공이 들어올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걸 알려줬다는 건가요?’
레전드 플레이어들은 양키스가 사인을 훔쳤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레이먼드가 난타를 당했다.
레이먼드가 한이닝에 3실점 이상을 한 것은 올 시즌 처음이었다.
언론에서도 충격적인 결과라고 보도를 했다.
당사자의 충격은 더욱 컸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레이먼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뭐, 정확한 코스나 구종을 알려주진 못했겠지.]
[그런 시스템은 사실상 과거에도 불가능했고 지금 시대에도 거의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대체적인 부분은 알려줬을 가능성이 큼.]
‘대체적인 부분이요?’
[패스트볼, 브레이킹볼 그리고 오프 더 스피드 정도.]
‘으음...’
신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잖아요?’
[뭐, 그런 셈이지.]
시대가 변화하면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의 숫자는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것들을 통합하는 종류는 변하지 않았다.
포심, 투심, 싱커, 커터 등의 패스트볼 계열.
커브, 슬라이더와 같은 브레이킹볼 계열.
마지막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오프 더 스피드 계열.
이렇게 세 개의 계열로 나눌 수 있었다.
어떤 공이 날아올지 타자가 알 수 있다면 거기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다.
거기에 볼카운트까지 나와 있다면?
경우의 수는 더 줄어들어 하나 내지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인훔치기는 사무국에서 금지하고 있잖아요.’
[들키지 않으면 모르지.]
황당한 대답.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었다.
신우 역시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 수 있었다.
최근에도 사인훔치기는 논란이 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실제 2019년에는 휴스턴의 사인훔치기가 내부폭로로 알려진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매년 한 번씩은 반복되는 게 사인훔치기였다.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한 번씩 언급이 되는 내용이었다.
2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이슈된 적이 없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체감도 되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되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글쎄.]
[일단 팀에서 뭔가 대안을 생각하겠지.]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안 된다면?’
[알아도 못칠 공을 던져야지.]
워렌 스판의 대답에 신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 *
같은 시각.
메츠의 수뇌진 역시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다.
“분석결과.”
회의에 참가한 이들의 시선이 에이든에게 향했다.
“사인이 노출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으음...”
“확률이 높다는 건 백퍼센트는 아니라는 건가?”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까, 백퍼센트는 아닙니다.”
“자네의 생각은?”
“노출됐을 겁니다.”
말장난과도 같은 말.
하지만 에이든과 오랜 시간 일을 했기에 그들은 그냥 넘어갔다.
“어떤 방식이지?”
“고전적인 방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휴스턴이 썼던 방법은 아니고?”
“사무국의 감시체계를 생각하면 가능성이 낮습니다.”
휴스턴의 사인훔치기 사건 이후.
사무국은 여러 대안을 내놓았다.
그렇기에 그 방법을 다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주루코치들이 사인을 준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1, 2루에 주자도 있었고 타자에게 사인을 주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을 테니까요.”
사인을 훔치는 건 의외로 쉬웠다.
이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난이도가 쉬워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중계기술의 발전 때문이었다.
중계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인의 노출은 더욱 쉬워졌고 분석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개자식들.”
마이크가 이를 갈았다.
사인훔치기는 규정으로 금지를 했고 또한 현업인들끼리도 지키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부분이다.
우승에 양심을 판 것이다.
“대안 방법은?”
“사인을 바꾸면 됩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방법이다.
사인이 노출됐다면 그걸 바꾸면 그만이다.
“거기에 또 하나,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구종이 다양한 투수 위주로 배치하는 게 좋습니다.”
“음...확실히 그렇군.”
사인을 바꾸더라도 단순하면 금방 간파된다.
하지만 구종이 다양하다면 사인을 단시간에 파악하는 건 어려워진다.
단순하지만 단기전에서는 좋은 방법들이었다.
“그런데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십니까?”
벤치코치인 드빌이 마이크에게 물었다.
“절대 그럴 순 없지.”
에이든은 둘의 대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야구 구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전 야구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야구계의 불문율이나 선수들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왜 이렇게 불필요한 일을 하려는 거지?’
그렇기에 내일 복수를 다짐하는 저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브웨이 시리즈의 일차전 밤이 저물고 있었다.
* * *
퍽-!
둔탁한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퍼졌다.
미트에 꽂혔어야 될 야구공은 타자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이런 씨발!”
탕-!
욕설과 함께 타자가 배트를 내던졌다.
그리고 투수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토마스가 그의 앞을 제지했다.
“에헤이, 왜 이러실까? 실투야, 실투.”
“실투? 저 새끼가 날 정확히 보고 던졌는데?!”
“그만들 해!”
구심이 타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제지했다.
“짐! 당신도 봤지? 저 새끼가 나를 똑바로 보고 공을 던진 거!”
“진정하고 루상으로 나가, 그리고 토마스. 적당히 하도록 해.”
“예, 예.”
토마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운드로 올라가 오늘의 선발인 미구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 주자는 1루로 나갔고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데드볼만 벌써 세 번째네요.]
[메츠에서 첫 번째 이후 양키스에서 보복성 힛 바이 피치볼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과열된 양상입니다. 거기에 다시 메츠가 다소 의도성이 짙은 공을 던지면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힛 바이 피치볼.
간단히 말해 몸에 맞는 볼이다.
보통의 경우 실투로 인해 발생하나 간혹 일부러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가 불문율을 어기거나 무언가 페어플레이에서 벗어나는 일을 벌이면 나왔다.
[지역라이벌전이라서 그런 걸까요?]
[사실 지역라이벌이긴 하지만 메츠와 양키스의 라이벌리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닙니다. 물론 서브웨이 시리즈라 하여 매년 인터리그에 추가되는 시리즈입니다만...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임은 분명해 보이네요.]
[그 이유가 뭐라고 보이시나요?]
[글쎄요. 발단이라면 어제 경기에서 일어났을 거 같은데, 사실 큰 문제는 없었던 경기였거든요?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경기의 흐름입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어제 경기는 문제가 없었다.
그저 양키스 타선이 더 잘 때려서 이긴 경기로 보였다.
그렇기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 그리고 양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딱-!
[타구 높게 뜹니다, 세 번째 아웃카운트 잡히면서 이닝 마무리됩니다. 과열된 분위기가 8회초 메츠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그 모습을 불펜에서 지켜보는 신우 역시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네요.’
[ㅇㅇ]
[곧 터질 듯.]
[세 번이나 참은 거 자체가 기적이지.]
[나였으면 진즉에 배트 돌렸다.]
[아니, 님아. 그건 우리때나 가능하고요.]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배트를 돌림?]
베이브루스의 말에 극딜이 쏟아졌다.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었나?
의문이 들었지만 괜히 묻지 않았다.
설마 하는 대답이 나올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몸이나 풀어라.]
‘예.’
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코어는 1 대 0.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었지만 어찌어찌 팀은 이기고 있었다.
만약 9회까지 이어진다면 자신의 차례까지 올게 분명했다.
퍽-!
그때 옆에서 공을 던지는 그렉에게 시선이 갔다.
‘레이먼드는 오늘 제외시키나 보네.’
1차전에서 난타를 당했던 레이먼드의 제외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도 있을 거다.]
‘다른 생각이요?’
[오늘 등판한 투수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스판의 질문에 신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떠올렸다.
‘구종이 다양하다는 거?’
[올~정답.]
[어케 맞췄누?]
‘이 정도는 껌이죠.’
[ㅋㅋㅋ 바로 콧대 올라가는 거 보소.]
[하여간 알기 쉽다니까.]
왠지 부끄러워진 신우는 헛기침을 하며 공을 뿌렸다.
뻐억-!
“굿!! 아주 손바닥이 쩍쩍 갈라지겠어!”
불펜포수가 자신의 멘트를 날리며 신우의 기운을 복돋아주었다.
‘그런데 구종이 다양하다는 게 다른 생각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구종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사인이 다양하다는 이야기지.]
‘아...’
[오늘 회의에서 사인을 바꾸겠다는 것과 합치면 답이 나오지?]
‘즉, 새롭게 바꾼 사인까지 간파하기 어렵게 한 거군요.’
[정답.]
벤치의 생각을 알게 되자 이해가 됐다.
평소와 다른 투수운용을 가져간 이유를 말이다.
‘그런데 저는 구종이 다양하지 않은데요?’
[그러니까, 그렉만으로 경기를 끝낼 수도 있지.]
그건 좀 곤란했다.
세이브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와아아아아!!”
그때였다.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저 새끼들이!!”
“야! 가자!!”
그리고 불펜에서 대기하던 투수들이 외쳤다.
신우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터졌네.]
거기에는 선수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벤치클리어링이었다.
* * *
[결국 벤치클리어링이 터졌습니다!]
[아-! 주먹까지 오가네요.]
[감정이 쌓이다가 터져서 그런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두 팀입니다.]
벤치클리어링은 격하게 일어났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뒹굴고 주먹이 오갔다.
유니폼이 찢어지고 욕설이 난무했다.
[불펜도 비어지면서 모든 선수들이 뛰쳐나왔습니다!!]
신우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실 벤치클리어링 자체가 낯설었다.
2군에서 이런 걸 경험할 기회가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와 KBO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살벌하네...’
KBO는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였다.
그렇기에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져도 격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해관계가 섞인 선수들이 아니라면 대충 잡담을 하다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같은 협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게 전부다.
동료의식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벤치클리어링을 커버해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
마치 서로가 부모님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둘렀다.
심지어 감독들도 유니폼이 찢어지고 코치들도 몸싸움에 휘말렸다.
자신이 봐오던 벤치클리어링과 완벽하게 다른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되가고 있네요.]
[하지만 이거 꽤 크게 벌어졌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양팀 선수들 각자의 더그아웃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심판들이 두 팀의 더그아웃으로 다가가서 퇴장을 명령합니다.]
[한 두 명이 아닌 거 같은데요?]
당연하게도 퇴장명령이 나왔다.
이미 경고도 이루어졌었고 주먹질까지 나왔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얼마만큼의 선수들이 퇴장당하는가였다.
신우도 불펜에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구심과 더그아웃 사이에서 언쟁이 오가다 결국 더그아웃에서 몇몇 선수들이 통로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4명이라고?”
“양키스는?”
“저쪽도 4명이야!”
“젠장! 저쪽이 먼저 공을 던졌잖아!”
8회초에 이루어진 벤치클리어링의 시발점은 양키스에서 던진 힛 바이 피치볼이었다.
그럼에도 같은 숫자의 선수가 퇴장당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불펜투수들이었다.
거기다 충격적인 건.
“뭐야?”
“마이크도 퇴장인 거야?”
“젠장!!”
마이크 감독마저 더그아웃에서 걸어나갔다.
[최악이네.]
[메츠 오늘도 지나요?]
레전드플레이어들의 채팅에 신우가 주먹을 쥐었다.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죠.’
자신이 있는 이상 메츠가 지게 둘 순 없었다.
어떻게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