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훈수로 메이저리거-33화 (33/281)

< 훈수로 메이저리거 - 33화 >

* * *

뉴욕에는 두 개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인 양키스.

그리고 메츠였다.

두 팀이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뉴욕은 자연스레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메츠 팬들은 생각지도 못한 팀의 선전에 환호를 질렀다.

“토마스!! 사인 좀 해줘요!”

“레이먼드 여기요!!”

디비전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날.

메츠의 홈구장인 씨티필드에는 일찌감치 팬들이 찾아와 장사진을 이루었다.

선수단이 등장하자 그들은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했다.

팬이 있기에 야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봉과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이 팬서비스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포스트시즌 진출 이후 메츠 선수들의 인기는 폭등했다.

그 증거로 유니폼과 선수관련 상품들의 매출이 크게 뛰었다.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의 인기도 높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아진 선수는.

“시누!!”

“우-! 우-! 우-!”

당연히 신우였다.

구장으로 들어가는 신우를 향해 수많은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신우는 발길을 멈추고 안전선 너머에서 내미는 그들의 손에 들린 공을 집어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고마워요!”

“저야말로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오늘 경기 꼭 이겨야 돼요!”

“최선을 다할게요.”

신우는 팬들과 소통을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당황도 했다.

팬들이 이렇게까지 모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시러큐스에 있을 때보다 배 이상은 많은사람들에 겁을 먹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다니거나 호텔에서 자주 나가지를 않았다.

그런 그에게 매튜슨이 말했었다.

[직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직업이 필요한 이들이 있어야 된다. 운동선수에게는 그 운동을 좋아하고 선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어야 돼.]

정신우란 야구선수가 인정을 받기 위해선 팬들이 있어야 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굳이 팬들을 피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가오면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고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현재 신우는 메츠에서도 가장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슥슥-!

“신우! CS에도 나가야 돼요!”

“물론이지.”

어린이 팬이 내민 주먹에 주먹을 부딪힌 신우가 공을 건네주었다.

“신우씨, 이제 들어가셔야 됩니다.”

그때 메츠의 제이슨 킴이 다가와 말했다.

교포 2세인 그는 얼마 전부터 신우의 전담직원이 되어 있었다.

“예.”

신우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디비전 시리즈 3차전.

최종전이 될 수도 있는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집중력을 높여 훈련에 임했다.

신우도 불펜피칭을 끝내고 타격훈련에 들어갔다.

투수가 웬 타격훈련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투수도 자신의 타순에 타석에 서야 했다.

마무리투수인 신우가 타석에 설 일은 사실 잘 없었다.

기본적으로 마무리투수는 1이닝이 끝나면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

9회초에 올라가든 9회말에 올라가든 관계없이 타석에 들어설 일이 거의 없는 셈이다.

만약 블론세이브가 나와 연장이 되더라도 정말 투수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무리투수의 타순이 오면 교체를 시킨다.

그리고 다음 이닝에는 새로운 투수를 올리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간혹 마무리투수가 긴 이닝을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

정규시즌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간혹 이런 일이 발생했다.

단기전은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서 투수들이 무리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조금씩 연습을 하며 타격을 갈고 닦았다.

“그럼 20개만 치자고.”

“예.”

타격코치인 존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팅볼투수가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신우는 가볍게 스윙을 했다.

딱-!

“나이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외야로 날아갔다.

딱-!

“굿!”

이번에는 라인드라이브로 내야를 벗어났다.

존슨이 연신 감탄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리 뛰어난 타격은 아니었다.

단순히 신우의 기를 살려주긴 위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신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웃이죠?]

[유격수가 점핑캐치로 낚아챘죠?]

[타격코치 호응 잘하누.]

[괜히 호응해주면 기 살아서 타석에서 이상한 짓 한다니까.]

[ㅇㅈ]

처음에는 존슨의 반응에 정말 자신이 잘 치나?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쏟아지는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팩트폭력에 그 생각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존슨, 이제 번트연습 할게요.”

“그래? 알겠어.”

존슨이 수신호를 주자 배팅볼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날아오는 공들을 일일이 번트로 쳐내며 신우는 타격연습을 마무리해갔다.

‘타격에는 욕심내지 말자. 난 투수지 타자가 아니잖아?’

투수로서 주자들이 진루시킬 번트에 집중하며 신우는 이날의 훈련을 마무리했다.

* * *

[전국의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메츠 대 컵스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3차전 중계를 맡게 된 캐스터 이우진입니다. 옆에는 해설을 해주실 정태일 해설위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중계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중계방에는 수많은 시청자들이 입장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은 한국선수가 뛰지 않더라도 많은 시청자가 보는 경기였다.

그만큼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메츠에서 신우가 놀라운 활약을 이어나가며 자연스레 시청자는 더욱 많아졌다.

순식간에 40만명의 동시접속자가 들어오며 오늘 경기 역시 높은 관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컵스가 오늘 경기에서 의외의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원래 로테이션 대로라면 컵스는 3선발인 알졸레이를 등판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의 선발투수를 1차전에 등판했던 칸투 선수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고작 이틀 쉬고 올린다는 건 다소 무리로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진다면 뒤가 없는 컵스이기에 모험을 건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2차전 선발투수인 다르빗슈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불펜에서 대기를 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총력전이란 소리군요.]

[예. 단기전에서는 이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번 경기를 지면 모든 게 끝이기 때문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4차전에는 꽤 어려워지겠는데요.]

[분명 그렇습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현재 컵스는 뒤를 보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뒤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과연 컵스의 오늘 결과를 낳을지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컵스의 1차전 선발이었던 호세 칸투.

그는 올 시즌 15승 10패를 기록한 컵스의 1선발로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도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칸투의 호투에 막혀 메츠의 타선은 이렇다할 점수를 내지 못했었다.

신우는 불펜에서 모니터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팀은 정석대로 라인업을 짰다.’

컵스가 배수의 진을 쳤지만 메츠는 아직 여유로웠다.

확실히 경기를 끝내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 경기를 만약 내주더라도 전력을 소모한 그들은 4차전에서 분명 타격을 입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메츠는 정석적인 라인업으로 컵스를 상대했다.

무엇보다 홈경기라는 점이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우리는 승리한다!!”

“챔피언십에 가자!!”

“컵스 새끼들아!! 집에 돌아가라!!”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가 시작됐다.

* * *

[양팀 투수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차전 선발투수였던 칸투 선수가 얼마나 회복이 됐을지 의문이었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잘 된 거 같네요. 현재까지는 좋은 피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5회말까지 삼진 5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호투를 이어갔습니다. 1선발로서 그리고 3차전을 책임질 선발투수로서의 역할은 모두 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휴식일이 짧았기에 투구수를 조금 짧게 가져가는 거 같네요.]

[아무래도 휴식일이 짧으니 긴 이닝은 부담이 될 겁니다.]

[투수가 바뀐 이상 여기에서 점수를 내는 게 메츠에겐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지금까지 칸투 선수에게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선 점수를 내줘야 합니다.]

[6회말, 컵스의 바뀐 투수. 머든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컵스의 투수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점수를 내지 못한 메츠이기에 점수를 낼 수 있는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그건 선수도 알고 있었고 코칭 스태프 역시 모두 알고 있었다.

마이크는 여기에서 대타와 함께 작전을 사용하며 어떻게든 점수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야구는 마음대로 풀리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딱-!

[아-! 타구 높게 뜹니다! 우익수 거의 제 자리에서 잡아냅니다. 6회말! 2사 2, 3루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는 메츠입니다.]

[아쉽네요. 무사 1루의 찬스를 2사 2, 3루까지 만들었지만 결국 점수를 내지 못했어요. 메츠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악의 결과였다.

작전이나 대타를 사용해서 점수를 내면 팀에는 엄청난 플러스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반대로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6회말은 메츠에게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반면 컵스는 분위기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위기의 상황이었는데 그걸 이겨냈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마이크는 7회초, 다시 한 번 패를 꺼내들었다.

[아-! 7회초에 레이먼드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이건 승부수네요. 사실 지금 분위기는 컵스 쪽으로 미묘하게 기울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 셋업맨 역할을 하는 레이먼드를 등판시켜 그 흐름을 끊어놓겠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8회가 비지 않습니까?]

[일단은 지금에 집중을 하겠다는 생각이겠죠.]

[그렇군요. 과연 마이크 감독의 작전이 잘 먹힐지 기대를 해봐야겠습니다.]

마운드에 레이먼드가 오르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불펜에서는 신우 역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기 후반이 되면서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게끔 어깨를 달구고 있었다.

파앙-!

“굿!”

“지난번보다 체인지업의 각이 더 날카로워졌어.”

불펜코치인 글렌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인지업을 던질수록 손에 익어갔다.

그때 불펜장으로 제이슨이 들어왔다.

“신우씨. 어머니가 곧 공항에 도착하셔서 제가 모시러 다녀올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아마 공항에 다녀오면 9회쯤 될 거예요. 그러니 파이팅하세요!”

“예.”

어머니는 오늘 뉴욕에 도착하신다.

메츠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한국에서의 일이 잘 처리되어 빠르게 들어오실 수 있었다.

“오늘 승리를 하면 어머니와 시간을 좀 보낼 수 있겠군.”

글렌의 말에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에서 이긴다면 메츠는 다른 시리즈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식시간이 생긴다.

‘그게 아니더라도...’

신우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야구공을 바라봤다.

‘어머니 앞에서 하는 첫 경기인데. 질 수는 없지.’

의욕이 샘솟는 신우였다.

* * *

딱-!

“아아-!”

경쾌한 소리.

그리고 관중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내야를 벗어나는 안타! 2루 주자는 3루에 멈춥니다! 1사 주자 만루가 됐습니다!!]

레이먼드가 마운드에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 레이먼드 선수 7회초는 잘 막았는데요. 8회초에 올라와서 1사 이후에 연달아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7회초에 너무 많은 투구수를 기록한 게 탈이었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컵스 타자들이 물고 늘어지면서 7회초에만 27개의 공을 던졌으니까요.]

[마이크 감독, 결국 마운드에 오릅니다. 레이먼드 선수는 여기까지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상황에 어떤 선수를 마운드에 올릴까요?]

[만약 제가 감독이라면...]

카메라의 앵글이 바뀌었다.

그리고 불펜에서 뛰어오는 한 선수가 보였다.

[정신우 선수를 올릴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기를 이겨낼 선수는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메츠의 수호신 정신우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8회초.

신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1사 주자 만루.

신우는 마운드 위에서 가볍게 공을 던지며 상태를 점검했다.

“어때?”

“좋습니다.”

좋다는 말에 마이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신우에게 말했다.

“시누.”

“예.”

“난 오늘 경기로 시리즈를 끝내고 싶다.”

즉, 한점도 주고 싶지 않다는 소리였다.

“널 믿는다.”

“맡겨주십시오.”

신우의 말에 마이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마운드에 홀로 남은 신우가 로진을 손에 묻혔다.

[야야!]

그때 채팅이 올라왔다.

[저기 너희 어머니 아니냐? 너희 팀 더그아웃 위.]

홈팀 더그아웃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위의 관중석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제이슨과 함께 앉아 있는 한선예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지만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녀의 품에는 한 장의 액자가 들려 있었다.

그 액자 안에는 한 남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자신이 야구를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

신우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긴다.’

그런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 * *

[8회초! 1사에 주자는 만루!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마무리인 정신우 선수가 일찌감치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초구가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초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보더라인에 걸치는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96마일이 찍혔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9회가 아닌 8회에 올라왔음에도 평소와 같은 모습입니다.]

[2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후웅!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공이 뱀처럼 휘면서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투!!”

[2구 크게 헛칩니다!]

[커터로 완벽하게 타자의 스윙 궤적에서 도망치는 공을 던졌습니다.]

[와...이번 공도 95마일이 찍혔네요.]

[오늘 정말 대단한 공을 연달아 뿌리는군요. 평소 정신우 선수의 커터 평균구속이 92마일임을 감안했을 때, 기합이 팍 들어간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우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3구 던집니다!]

신우는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주자는 만루다.

홈스틸이 아닌 이상 도루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홈스틸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신우가 구속이 느리거나 제구가 떨어지면 홈스틸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우는 둘 모두 뛰어난 투수였다.

거기다 스코어 0 대 0인 상황.

컵스가 굳이 무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신우는 주자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흡!!”

쐐애애액!

기합소리와 함께 뿌린 공이 타자의 가슴 높이로 들어갔다.

그 순간 타자의 배트가 돌아갔다.

하지만 배트의 궤적 위를 공이 지나가며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입니다!!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해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와...이번 공의 구속이 97마일이 찍혔습니다. 이건 정신우 선수 최고구속인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이전 최고구속은 96마일이 찍혔는데, 위기상황에서 정신우 선수! 본인의 최고구속을 갱신합니다!!]

[오늘 평소와 다른 정신우 선수입니다.]

신우의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우-! 우-! 우-! 우-!!”

씨티필드에는 마치 인디언들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한선예에게 제이슨이 말했다.

“메츠 팬들이 정신우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응원가입니다.”

“아...”

한선예는 놀랐다.

설마 아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을 던질 줄이야.

더 놀라운 건 저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선예는 자신의 품에 들린 남편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여보, 우리 아들 성공했네. 자랑스럽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사랑하는 남편에게 아들의 모습을 자랑하는 한선예였다.

[이제 투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면 만루의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신우가 1구를 뿌렸다.

후웅!

타자가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까지 공은 도착하지 않았다.

퍽!

“스트라이크!!”

[허를 찌르는 써클체인지업! 첫 번째 스트라이크가 올라갑니다!]

[완벽하게 타자의 허를 찔렀습니다. 설마 초구부터 써클체인지업이라니. 완벽하게 타이밍을 뺏어내면서 헛스윙을 만들어냈어요.]

2구.

뻐어어억!

후웅!

“스트라이크!! 투!!”

[다시 한 번 97마일의 하이 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힙니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어내고 있습니다!!]

[아...완벽하게 타자를 농락하고 있습니다. 초구 82마일의 써클체인지업을 보여주고 2구에서 97마일의 하이 패스트볼이라니. 게다가 써클체인지업은 바깥쪽으로 던졌거든요? 타자의 눈에서 멀기 때문에 이번 하이패스트볼의 체감속도는 더욱 빨랐을 겁니다.]

신우는 타자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공을 받고 사인을 교환한 뒤.

빠른 템포로 3구를 던졌다.

쐐애애애액!

‘가운데...!!’

존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그 순간.

공이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 들어왔다.

후웅!

뻐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마지막 공은 93마일의 커터로 타자가 헛치게 만듭니다!! 1사 만루의 위기에서 단 1점도 주지 않은 채 단 6개의 공으로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정신우 선수!!

그런 그에게 씨티필드의 모든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 정말 대단한 선수에요! 팀의 위기를 이렇게 구해내네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신우가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흔들었다.

한선예 역시 자랑스런 아들을 보며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뒤이어 팬들에게도 모자를 흔들어준 신우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의자에 앉은 신우의 곁으로 마이크가 다가왔다.

“시누.”

“예.”

“다음 이닝도 자네가 맡아줬으면 해.”

이제 컵스의 공격은 9회초만 남았다.

마지막 순간.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를 올려야 했다.

그건 당연히 신우였다.

“알겠습니다.”

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번 이닝에 자네의 타석이 온다면 타격을 할 수도 있으니, 준비하도록 해.”

“아, 예.”

9회를 위해서라면 신우의 타석에 대타카드를 쓸 수 없다.

즉, 신우가 직접 타격을 해야 된다는 소리였다.

‘타격은 크게 자신없는데.’

[설마 오겠음?]

‘그렇겠죠? 4번부터 시작인데.’

[ㅇㅇ]

8회말 공격타순은 4번부터 시작이었다.

신우는 9번이었으니 그의 타석까지 올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야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딱-!

원아웃이 올라간 상황.

5번 타자가 안타를 때려냈다.

‘오...’

뒤이어 6번 타자는 삼진.

그런데 7번이 안타를 때려내며 주자는 1, 2루가 됐다.

“시누 준비하도록 해.”

만약 8번 타자가 출루를 하게 된다면.

타순은 신우까지 돌아오게 된다.

[2사 1, 2루! 8회말에 메츠가 기회를 잡습니다!]

[어...그런데 더그아웃에서 정신우 선수가 헬맷을 쓰고 나오는데요?]

[정신우 선수가 타석에 서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메츠 입장에선 그를 9회까지 쓰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정신우 선수는 올 시즌 타석에 서본 적이 없을 텐데요?]

그리고 그 사실을 컵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응?”

대기타석에서 가볍게 배트를 돌리고 있던 신우의 눈에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곧 구심이 1루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고의사구입니다! 컵스 벤치는 루상을 모두 채우고 정신우 선수를 상대하는 걸 택했습니다!!]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8번 타자는 어쨌건 전문적으로 타격을 하는 선수거든요? 하지만 정신우 선수는 투수라는 거죠. 거기다 올 시즌 한 번도 타석에 서지 않았고 마무리투수이기에 타석에 설 일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당연히 정신우 선수를 택하는 게 더 유리한 상황입니다.]

완벽한 기회.

하지만 승률이 낮은 상황.

마이크는 고민했다.

과연 이 상황에서 투수를 교체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신우 역시 고민했다.

‘만루라고?’

[ㅋㅋㅋㅋㅋㅋㅋ]

[개꿀잼.]

[허니잼.]

‘이런 상황에서 내가 때려야 돼?’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때였다.

[타이콥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신우의 눈이 커졌다.

[여기서 디비전시리즈 방송한다며?]

[ㄷㄷ;;]

[더티 떴다.]

[님이 여기 왜 옴?]

[투수 방송은 안 보지 않음?]

[디비전시리즈니까, 왔는데? 왜? 꼬움?]

[ㄴㄴ]

[절대 아님.]

[ㄷㄷㄷㄷ;;]

타이콥의 등장에 채팅방에 살기가 감도는 분위기였다.

최초의 5인.

데드볼시대 최고의 타자.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8관왕을 이룬 타자.

전설 그 자체.

그게 바로 타이콥이었다.

그리고 그때.

[베이브루스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야, 콥. 여기에서 뭐하냐?]

[네가 여기 왜 왔냐?]

[너 접속했는데, 여기에 있길래 왔음. 그런데 뭐야? 디비전시리즈? 이거 현세방송이야?]

[어.]

[그런데 우리가 왜 몰랐지?]

[투수 카테고리에 있었으니까.]

[ㅇㅎ.]

야구 그 자체.

야구의 신.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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