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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95화 (39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5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더지우먼이 미리 내놓았던 길을 따라 검을 든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의 등장에 차진혁의 목소리도 조금 커졌다.

“검황대의 대장, 카일이 나타났습니다.”

갑작스러운 거물의 등장.

그것만으로도 꽤 큰 어그로가 되리라…… 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반응은 싱거웠다.

‘보통 저 정도 거물이 나타나면 좋아요 숫자가 엄청나게 오르는데?’

물론 좋아요 숫자가 오르고 있기는 했지만 차진혁의 기준에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쓰러져 있는 두더지우먼을 앵글에 잡을 때 좋아요 숫자가 더 빨리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카일이 생각보다 어그로가 약하구나.’

강자인 줄 알았던 카일이 사실은 두더지우먼보다 약자였던 것이다.

차진혁은 금방 냉정을 되찾고서 말을 이었다.

“검황대 대장의 등장에 암살자들은 바람을 따라 사라져 버렸습니다. 탁월한 선택이군요.”

암살자라면 응당 뒤통수를 노리는 것이 인지상정.

기습에 실패한 시점에서 저들의 계획은 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여기서 괜히 더 욕심 부리는 것은 암살자답지 못한 생각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카일이 차진혁 앞에 섰다.

“김철수. 너와 결착을 내러 왔다.”

“그것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농담이지?”

“농담처럼 보이나?”

“…….”

차진혁은 한숨을 내쉬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지금 근무시간 아닌가?”

“그것은 우리의 승부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지.”

“제정신이 아니군.”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일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차진혁에게 저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궁금해진 카일이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혹시 네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혹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각자의 눈에는 각자의 확신과 신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진짜 자기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건가?’

‘내 어딜 봐서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두 사람의 생각은 애초에 통일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겉으로는 대화하는 척하면서 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끝낸 차진혁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결판을 내는 것은 중요하지. 그렇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었다.

무려 우주급 시나리오의 일환이었고, 위대한 검령을 찾아내야 했다.

카일과의 결투처럼 훌륭한 콘텐츠와 병행해서 진행하는 것은 별로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콘텐츠의 방향이 너무 뒤죽박죽 섞여 버려.’

아무리 좋은 재료들로 요리를 한다고 해도 배합이 이상하면 실패하는 것처럼, 콘텐츠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마치 김치찌개에 오렌지를 섞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도망치는 건가?”

“나는 사실 너와 결판을 내고 싶지 않거든.”

“뭐?”

“중요한 걸 잊고 있나본데 나는 검객이 아니라 엘튜버다.”

“……겁쟁이 소인배 같은 소리하지 마라.”

카일의 낯빛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설마 김철수와의 결판을 내지 못하는게 아닐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정 나와 싸우고 싶다면 조건이 있다.”

“그게 뭐지?”

“나를 도와라. 이번 공략은 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은 물러간 암살자들이 언제 다시 기습해올지 모르는 상황.

솔플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듀얼 플레이도 솔플 못지않게 파급력이 있으니까.’

* * *

셰비안은 잠자코 차진혁과 카일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정당당함’이었으니까.

이윽고 카일과의 대화를 끝낸 차진혁이 셰비안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꽤 괜찮은 전략이었다, 암살자 소년.”

나의 전략?

“나를 방심하게 만든 다음 또다른 암살자를 투입하다니.”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다!”

차진혁 입장에서는 굉장한 칭찬이었지만 셰비안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비겁하지 않아.”

“훌륭한 암살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겠지. 무릇 암살자들은 음모와 배신을 일삼으며 훌륭하게 뒤통수를 쳐야 하는 기습러들이니까.”

뒤에서 대화를 듣던 카일은 약간 알쏭달쏭한 마음이 들었다.

저게 칭찬인지 욕인지.

말투를 보면 더없이 칭찬이었지만 내용은 욕 같았다.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의 간계였다!”

“네 아버지?”

“그래. 대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 사무엘 마이에르 경이시다.”

“대단한 실력자겠군.”

“그렇다.”

“또다시 덤빌 참이냐?”

셰비안은 단도를 쥔 오른손에 힘을 꽉 주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도무지 빈틈이 보이질 않아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검황대장 카일이 신경 쓰여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너와 정정당……”

“물론 그럴 리 없겠지. 넌 치열한 암살자니까 말이야.”

차진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간만에 긴장감을 연출해 준 이 고마운 소년을 죽이고 싶지 않아졌다.

살려두면 또 훌륭한 엘튜브각을 잡아줄 각도기가 틀림없었다.

“그토록 훌륭한 암살자인 네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

“미안하군, 너를 너무 얕보는 발언이었다. 취소하지.”

차진혁은 셰비안을 스쳐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아까같은 기습은 언제든 환영이다, 암살자 소년.”

그리고 셰비안은 기회를 포착했다.

‘빈틈!’

차진혁이 무척 가까워졌고 오른손을 휘두르기만 하면 차진혁의 목을 찌를 수 있다는 강렬한 직감이 있었다.

이것은 암살자로서의 직감이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지향하는 그였지만 오랜 세월 세뇌되다시피 수련해 온 암살자의 수련법 때문에 몸이 저절로 반응해 버린 것이었다.

그때, 바닥에 내려두었던 미리가 저절로 튀어올라 셰비안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빠각!

요란한 격타음과 함께 셰비안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카일이 셰비안의 목을 베려할 때, 차진혁이 말렸다.

“왜 말리는 거지? 이자는 위험한 암살자다.”

“어리잖아.”

“……뭐?”

네가 그런 사정을 봐주는 인간이었나?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이 있는 거였나?

스릉-

약간 부끄러워진 그는 검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얼른 정신 차려서 제대로 기습해 주면 좋겠다.’

최신 각도기의 성능이 몹시 기대 되었다.

* * *

진지한 표정의 카일이 물었다.

“이기어검의 경지에는 언제 들어선 거지?”

“이걸 이기어검이라고 하는 거였군.”

“…….”

무구를 손에 대지 않고 움직여 적을 말살하는 기술로써, 검객들은 이 것을 일컬어 이기어검이라 불렀다.

기술적 검술 경지의 끝단에 있는 극악 난이도의 기술.

최상위 랭커들 중에서도 이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자는 극소수였다.

비효율적이라 하여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만큼 기술적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이기어검의 경지를 모르고 이기어검을 사용했다?’

카일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심검의 경지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기어검을 깨우쳤단 말인가.

‘무시무시한 재능이군.’

“누구에게 사사받은 거지?”

“사사받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인가?”

“…….”

“이런 사소한 걸로 너무 치켜세워줄 필요 없다.”

“…….”

한동안 침묵하던 카일은 크하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그래야 김철수지!’

호승심이 들끓어 올랐다.

그때, 두더지우먼이 잔발로 카일을 스쳐지나갔다.

“자. 길잡이인 이 몸이 먼저 입장하겠다, 두지!”

“잠깐.”

카일이 두더지우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냐, 두지?”

“넌 언제 깨어났지?”

사실 카일은 두더지우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사람은 차진혁 한 명 뿐이었으니까.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군, 두지?”

“너는 분명 독에 당해 쓰러졌었는데.”

“한국 맵 랭킹 1위의 길잡이가 그런 독에 당해 쓰러질 리가 있나, 두지!”

두더지우먼의 말은 허세였다.

실제로 그녀는 잠깐 동안 기절했었다.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두지.’

암살자의 기척을 느낌과 동시에 두더지우먼은 온갖 종류의 해독제를 미리 복용했다.

차진혁과의 플레이는 상당히 비일상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곳이었으므로 그녀는 온갖 종류의 위험에 미리 대비를 해온 것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서 미리 대비를 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독에 당해 죽을 뻔했다.

그러나 랭킹 1위라는 자부심을 가진 그녀는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김철수는 방심했을지 몰라도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두지.”

금세 정신을 차렸던 두더지우먼은 일부러 좀 더 요염한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그것이 김철수 방송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나의 가치다, 김철수! 2등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1등의 가치. 지금은 전직했다지만 패스파인더보다 더 훌륭한 길잡이! 방송에 더없이 어울리는 진짜 인재다, 두지!’

차진혁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두더지우먼을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두더지우먼이 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카일이 또 묻고 말았다.

“김철수. 너는 저 여자가 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길잡이가 기절할 리 없지.”

“……뭐?”

“치열하다면 말이야.”

카일의 상식과는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말이었다.

그의 상식상, 모든 계열 플레이어들 중 가장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이들은 바로 길잡이였다.

원정대의 선봉에서 길을 개척하는 플레이어들이었으니까.

그들에게 기절 정도는 일상이었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길잡이는 기절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더지우먼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김철수가 단서를 덧붙였다, 두지.”

그녀는 자신이 기절했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치열한 길잡이는 절대 기절하지 않는다, 두지.”

그것은 그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자 세뇌이기도 했다.

* * *

두더지 우먼이 물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잡몹들을 모조리 사냥하여 완벽한 클리어를 해내는 것에 주안점을 둘 건가, 두지. 아니면 최대한 빠르게 위대한 검의 영령을 만나는 것에 집중할 건가, 두지?”

“음.”

“만약 후자라면 잡몹들은 전부 쌩 까고 지나갈 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두지.”

아르비스 서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카일에게는 역시 생소한 개념이었다.

아르비스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안전을 제1 목적으로 한다.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모든 공간을 깨끗하게 클리어하고, 완벽하게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플레이.

잡몹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플레이’ 같은 건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다.

안 그래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가득한 던전 내에 더 많은 변수들을 풀어놓겠다는 거니까 말이다.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겠지. 쓸모없는 질문을 하는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 경험이 미욱한 길잡이라서 그런가.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아니, 하지 않아야 할 질문을 하는 꼴이 조금 우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차진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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