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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96화 (39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6화

“잡몹들은 스킵하자.”

“그럴 줄 알았다, 두지.”

그 사소해 보이는 잡몹이 무슨 변수를 일으킬 줄 알고?

카일은 끼어들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둘 다 내 움직임을 잘 따라야 한다, 두지.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똑같이 따라 하면서 따라와야 한다, 두지.”

“그래.”

두더지우먼은 차진혁의 대답이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카일 쪽을 바라보았다.

“검황대장, 그쪽은?”

“나?”

“내 움직임을 잘 따라할 수 있나, 두지?”

“…….”

“네 동작을 카피할 수 있느냐 묻는 거라면 상당히 실례군. 몸으로 하는 것을 해내지 못한 경우는 여지껏 없었다.”

“그게 아니라.”

두더지우먼은 대놓고 한숨을 푹 쉬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동작들도 잘 따라 할 수 있냐고 묻는 거다, 두지.”

힐끗 차진혁을 바라보았고 차진혁은 눈치껏 음소거 모드를 사용했다.

“버그성 플레이를 할 거다. 이렇게 굳이 설명해 줘야 하는 건가, 두지? 봐라. 김철수는 내가 아무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이해하고 저렇게 음소거해서 방송도 송출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던전 공략 이해도가 떨어지는 플레이어를 데리고 스피드런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안하군, 두지.”

던전 공략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말을 처음 들어본 카일이었다.

“……협력하지.”

“흠, 그러면 배치를…….”

두더지우먼은 턱을 매만지다가 말을 이었다.

“그쪽이 중간. 김철수가 마지막에 따라오는 것이 좋겠다, 두지.”

차진혁이 되물었다.

“이유는?”

“아무리 무빙을 잘 쳐도 큰 공격 몇 방은 맞으면서 전진해야 한다, 두지. 그럼 우리 중에 방어력이 가장 강한 네가 맞는 것이 좋겠지. 공격 흘리지 말고 그냥 다 맞아라, 두지.”

카일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꺼냈다.

“큰 공격을 미연에 방지할 방법은 없는 건가?”

“물론 있지.”

두더지우먼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진다, 두지!”

“…….”

“10억 명의 시청자들이 기다린다, 두지. 1초 늦어질 때마다 10억 초를 빼앗는 꼴이다, 두지. 그럼 1초당 27만 시간이다, 두지. 시간 도둑놈이 되고 싶은 건가, 두지?”

두더지우먼은 손을 탁! 탁! 털고서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동여맸다.

그사이, 하얀 목덜미가 포착되었는데 또다시 ☆가장 많이 다시 본 장면☆으로 등극하여 차진혁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반대로, 차진혁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는 카일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내가 아니라 저 여자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다고?’

그 또한 경쟁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 * *

카일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공략이었다.

‘저 트랩을 그냥 두고가?’

‘이 공격을 그냥 무시한다고?’

‘이 공격은 결국 김철수에게 닿을 텐……!’

혹시나 싶은 마음에 뒤를 슬쩍 보았다.

‘김철수의 방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

적어도 방어력 측면에서 보자면 김철수는 자신보다 몇 수는 더 위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체감하니 사뭇 색다른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땅굴을 파서 이동할 건데…….”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일종의 버그였다.

땅을 팔 수 없는 곳인데 땅을 파서 이동하는 버그.

그러나 생방송이 송출되고 있는 지금, 굳이 ‘버그’라는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옷차림은 최대한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두지.”

두더지우먼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어버렸다.

“나 혼자였다면 당연히 알몸을 선택했겠지만.”

두더지우먼은 단순히 ‘뛰어난 길잡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어필하고 싶은 것은 ‘방송에 적합하면서 뛰어난 길잡이’라는 사실이었다.

알몸을 노출했다가는 김철수의 방송에 악영향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두더지우먼은 안 쪽에 비키니 비슷한 의상을 받쳐입은 상태였다.

“따라와라, 두지.”

두더지우먼은 바닥을 향해 다이빙했다.

분명 흙바닥이건만, 그녀의 몸이 물 속으로 들어가듯 쑤욱- 들어갔다.

“뭐해, 안 가고?”

“…….”

두더지우먼이 ‘버그’라고 말을 안 했다뿐이지, 사실상 이게 버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카일은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두면 길 사라진다.”

마음이 급해진 차진혁이 먼저 몸을 던졌다.

통로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모두가 네 발로 기어서 이동하는 중.

차진혁이 두더지우먼의 뒤에 따라 붙었다.

‘시청자 숫자가 급증한다?’

갑자기 좋아요 숫자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건 왜일까?

시청자들도 버그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가?

‘눈앞에서 직접 봐야 버그라는 걸 좀 느끼지, 방송으로 보면 스킬처럼 느껴질 텐데?’

차진혁은 이 장면의 어떤 부분이 이렇게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건 잘 단련된 대둔근뿐.

‘조형미가 뛰어난 대둔근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건가?’

또다시 경쟁심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대둔근의 조형미라면 어디가서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저걸 입고 대둔근을 보여줘야 할지도?’

* * *

“하나, 둘, 셋, 하면 지면을 박차고 뛰어 오른다, 두지!”

엎드린 상태의 두더지우먼이 양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나, 둘, 셋!”

신기하게도 두더지우먼의 몸이 쑤욱- 떠오르는가 싶더니 땅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면으로 이동한 것이다.

차진혁도 별다른 위화감 없이 지면에 복귀했다.

다소 떨떠름한 표정의 카일도 도착.

[보스룸, ‘잊혀진 마법학교의 교장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보스룸에 도착했습니다. 꽤 빠르군요.”

판게아 신전에 도전한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잊혀진 마법학교의 교장실’에 도착한 플레이어들도 꽤 되었다.

-왘ㅋㅋㅋㅋㅋ 이게 되네

-정확히 18분 걸림 ㅋㅋㅋㅋㅋ

-최근 공개된 영상이 여기까지 오는데 180시간 쯤 걸렸는데

-근데 좀 있으면 교장 나타나지 않음?

판게아 신전의 보스, ‘잊혀진 마법학교의 교장’은 이곳이 미공략 던전으로 남아있게한 일등 공신.

불멸의 마도병들을 모두 처치하고나면 관 뚜껑이 스르르 열리면서 압도적인 존재감과 덩치를 가진 교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관을 무기삼아 휘두르며 온갖 마법에 통달한 던전 보스.

여지껏 이곳에 도전했던 플레이어들이 이곳에서 죽거나 도망쳤다.

-추정 레벨이 300대 중반쯤 되는데 거기에 보스몹 보정 들어감

-실질적으로는 400 이상으로 봐야지

“저만치 앞에 커다란 관 하나가 보입니다. 저게 던전 보스가 잠자는 곳이군요.”

[교장의 휴식처]

“그리고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리치들이 보이는군요.”

로브를 뒤집어쓴 수십 마리의 해골들.

상당히 강한 마법력이 느껴졌다.

[LV298/불멸의 마도병/스킬]

리치들은 저마다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를 흔드는 중.

잠시 고민하던 두더지 우먼이 말했다.

“내가 탱킹한다, 두지.”

카일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길잡이가 탱킹이라니.

아르비스에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검황대장. 당신도 최대한 날뛰어라, 두지! 김철수한테 시간을 벌어줘야 해, 두지.”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카일은 두더지우먼의 명령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광이 번쩍였고, 레벨 300에 달하는 ‘불멸의 마도병’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르르륵-

그르륵!

쓰러졌던 불멸의 마도병들이 다시 일어섰다.

카일의 검에 잘려 나간 육체들이 저절로 다시 붙어 재생된 것이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카일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스킬 대신 기본기에 집중한 베기.

그때, 조금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건 리치들을 상대하는 정공법 중 하나! 재생속도보다 육체의 붕괴를 더욱 빠르게 일으켜 재생이 불가하도록 만드는 검술가들의 방식?!”

* * *

두더지우먼은 검황대장 카일을 조금 의심하던 중이었다.

무슨 말만하면 자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지시에 제대로 따라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실력은 진짜였네!’

살아온 세계는 분명히 달랐다.

두더지우먼 자신이 탱킹을 자처했을 때 카일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무슨 길잡이가 탱킹을 한단 말이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 맵에서는 너무 당연한건데.’

아르비스는 너무 오랫동안 번영과 평화를 누려왔고, 아무래도 치열함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지구. 그중에서도 김철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맵에서 길잡이가 탱킹을 하는 것쯤은 꽤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죽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저 정도 검술이면 굳이 내가 어그로를 끌지 않아도 되겠어.’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멸의 마도병들이 붉은 안광을 뿜으며 카일을 노려보았다.

주문을 외우며 카일의 머리 위로 작은 운석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카일은 번뜩이는 칼날로 운석들을 베어낸 뒤 또다른 불멸의 마도병을 쓰러뜨리는 중.

어느덧 차진혁은 커다란 관 앞에 선 채 눈을 감고 집중하는 중이었다.

‘나라도 사운드 채워야겠다!’

방송에 적합한 길잡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수없이 애써왔다.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때였다.

“아니, 저건 리치들을 상대하는 정공법 중 하나! 재생속도보다 육체의 붕괴를 더욱 빠르게 일으켜 재생이 불가하도록 만드는 검술가들의 방식?!”

마치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으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귀엽눜ㅋㅋㅋㅋㅋ

-애쓴다 애써 ㅋㅋㅋ

-누가 뭐래도 한국맵 랭킹 1위 길잡이는 두더지우먼이 맞다 반박 시 네 말이 틀림

아무튼 두더지우먼의 활약(?) 속에 차진혁은 ‘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스킬,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합니다.]

영상으로 접한 ‘잊혀진 마법학교의 교장’은 매우 강력한 개체였다.

수호수 버프를 받고 있는 차진혁도 긴장해야할 정도로.

이 정도로 신나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기에, 만약 일반적인 플레이 중이었더라면 차진혁은 전력을 다해 던전 보스와 싸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교장의 휴식처’를 삭제합니다.]

[시스템 설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삭제할 수 없습니다.]

차진혁은 룰 브레이커(미리)를 들어 올렸다.

‘부탁한다, 미리.’

-거칠게 다뤄주마!

관에 대갈통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미리의 전신이 검게 물들었다.

콰과광!

전능의 연출가가 펼쳐진 잿빛 공간.

그곳에 커다란 진동이 있었다.

관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으로 보호받는 것처럼 미리를 튕겨냈다.

-가라, 너는 먼 곳으로 갈찌어다!

콰과광!

콰과광!

-고 투 더 홍콩!!!

결국 룰 브레이커 미리는 시스템 설정을 깨부수는 데 성공했다.

[‘교장의 휴식처’를 삭제합니다.]

관이 사라졌다.

-던전보스 잡는데 4초 걸림.

-이걸 잡았다고 해야함?

-아무튼 던전보스 사라짐.

아쉬움을 표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왜 판게아 신전의 보스가 마법학교의 교장인 건지 다들 안 궁긍함?

-정공법으로 클리어해야 숨겨진 스토리가 나올 텐데 아쉽.

-응 안 궁금해

-클리어 갸꿀 >_<

차진혁은 거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사이 카일이 불멸의 마도병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물론 그 사이 몇몇 마도병들이 차진혁을 향해 불덩이를 쏘아내기는 했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던전보스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아래, 새로운 공간이 있었군요.”

관이 사라진 아래, 사람 두어명이 들어갈 정도의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거기에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검 한 자루가 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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