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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94화 (39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4화

왕유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동글뱅이 안경을 고쳐 썼다.

“아마 철수 님은 저기 암살자가 몇 명인지. 그리고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도 다 알고 있을걸요? 생각해 봐요. 철수 님은 검황전의 우승자라고요.”

확신이 가득한 그녀의 말에 욜린은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과 이건 엄연히 달라요. 완전히 다른 장르라구요. 게다가 보세요. 두더지우먼조차 위기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두더지우먼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고요?”

“네. 길잡이조차 암살자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엘튜버인 사장님이 기척을 느낄 수 있겠어요?”

“아닐걸요?”

“맞다니까요?”

이쯤 되니 욜린은 마음이 급해졌다.

일분이라도 빨리 차진혁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왕유미는 송출되는 영상을 뒤로 돌려 보여주었다.

“여기 보이죠?”

“뭐가요?”

“두더지우먼이요.”

“예쁜 여자라는 건 알겠네요.”

“아니, 눈동자를 보라구요.”

“눈동자요?”

욜린은 연거푸 영상을 돌려보았으나

왕유미는 영상을 분석하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

“정확히 철수 님과 같은 곳을 보고 있죠? 아마 둘 다 같은 곳에서 암살자의 기척을 느꼈을 거에요.”

그 시간은 정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왕유미 정도의 영상분석 전문가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수준.

영상을 살펴본 욜린은 왕유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때요, 내 말이 맞죠?”

“아뇨, 전혀 모르겠어요.”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죠?”

왕유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답답해하다가 스스로 납득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 칠게요. 아무튼 저 두 사람은 암살자의 존재를 이미 확실히 알고 있어요. 방송을 위해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죠! 어? 여기 봐요. 누군가 나타났어요.”

* * *

키옌의 봉신가문 중 하나.

마이에르 가문의 암살자 셰비안은 김철수가 이곳에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드디어 강한 놈이 오는구나!’

세자매 예언가들의 예언 탓에 강자들은 판게아 신전에 오질 않았다.

김철수는 여지껏 이곳을 침범한 애송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자였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 20억명을 달성한 우주 랭커급 엘튜버.

엘튜버라는 사실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놈은 검황전의 우승자니까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는 없겠지!’

셰비안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셰비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흥분한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아버지. 저는 이날을 기다려왔습니다.”

“아들아. 우리의 사명을 잊지 말아라. 우리 일족은 이곳이 미공략 던전으로 남도록 만들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우리는 강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잊었습니다. 암살자 가문의 랭킹을 매길 때, 우리 가문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고서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암살에 집중하거라.”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암살은 비겁한 소인배들이나 하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인식이 그런 것이지 우리는 비겁하지 않다. 이것이 암살자의 방식일 뿐이다.”

“세상이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니까요!”

셰비안의 말은 일부 사실이었다.

가르비누가 아르비스를 정복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접어들면서, 암살이나 기습은 비겁한 행위로 치부되게 되었다.

7대 가문 중 하나였던 키옌 가문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게된 것에는 그러한 배경이 영향을끼쳤다.

“저는 정정당당하게 싸워 검황전의 우승자를 쓰러뜨릴 겁니다.”

“허락하지 않는다. 그건 비효율적인 짓이야.”

“언제까지 그렇게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실 겁니까? 그자는 현재 전 우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마이에르 가문의 명성을 전 우주에 떨칠 때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셰비안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대었다.

“안 된다고 말하였다. 아들아. 아무래도 이번 작전에서 너는 빼…….”

말을 하던 그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셰비……안!”

“기강이 해이해지셨군요, 아버지.”

셰비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암살자가 독에 당하시다니.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아버지가 깨어나기까지 최소 24시간은 필요할 터.

‘그 시간이면 김철수를 꺾고 마이에르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에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다.’

* * *

차진혁이 정문에 들어서기 직전.

검은 복면을 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김철수군.”

그의 손에는 푸르스름한 단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그는 몇 걸음 가까이 다가오더니 스스로 복면을 벗었다.

잿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앳된 소년이었다.

“반갑다. 내 이름은 셰비안. 마이에르 가문의 암살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네 목을 벨 자이기도 하지.”

“…….”

차진혁은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했고 셰비안이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왜? 겁이라도 먹은 건가?”

“암살자가 왜…….”

“검황전 우승자라니 별 거 없는 듯 하군. 마이에르 가문이 숨 죽여 지내는 동안, 검술가들의 실력이 미천해진 모양이야.”

차진혁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 읊조리듯 말했다.

“암살자가 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걸어오는 거지?”

“나는 마이에르 가문의 장남 셰비안 마이에르다. 정정당당하게 네 목을 취할…….”

셰비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황급히 뒤로 몇 걸음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방금 그건……!’

날카로운 예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기를 머금은 미리가 주욱 늘어나 셰비안의 머리가 있던 곳을 베었다.

살기에 무척 예민한 셰비안의 등줄기를 따라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서늘한 감각이 목 주변에 남아 있는 듯하군. 몹시 예리한 기운이다!’

드디어 강자를 만난 셰비안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 * *

효율적이고 훌륭한 기습을 기대했던 차진혁은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암살자가 암살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승부라니.

얼마나 플레이에 치열하지 않으면 저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건 마치 엘튜버가 검을 들고 설치는 꼴과 똑같잖아!’

즉석에서 연출 컨셉을 정했다.

‘슬슬 압도하는 콘텐츠를 보여줄 때가 됐지.’

차진혁이 입을 열었다.

“방어신비, 환상검희.”

크고 검은 몽둥이를 든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내자 셰비안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방어신비라. 생각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

크고 검은 몽둥이가 길쭉하게 늘어났다.

‘변칙적인 공격에 능하다.’

방어신비라고 해서 마음을 좀 놓았는데 아무래도 속임수인 것 같았다.

저 몽둥이로부터 전해지는 파괴력은 결코 방어신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속도를 쫓아올 정도는 아니지!’

그의 몸이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속도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느려진 기분을 받았다.

[‘시간배율 촬영’의 영향을 받습니다.]

[속도가 0.1배로 제한됩니다.]

차진혁은 당황한 셰비안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암살자이면서 비겁하게 정면에서 승부를 걸어오고. 심지어 암살 대상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암살자들은 이런가요?”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사도를 걷다니.”

환상검희를 통해 틈을 만들었고 그 틈을 이용하여 시간배율 촬영을 정확하게 적용시켰다.

덕분에 차진혁은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스킬, ‘전능의 연출가’를 사용합니다.]

“너무 여유로워서 이 궁극의 스킬마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차진혁은 여유로운 태도로 셰비안 앞으로 다가가 셰비안이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삭제해 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차진혁은 짜릿한 살기를 느꼈다.

‘오!’

잿빛으로 물든 이 전능의 연출가 공간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침투한 것이었다.

‘위험한 것이 온다!’

일순간 집중력이 풀리자 전능의 연출가 효과가 풀려 버렸다.

차진혁은 절대결계를 사용하여 등 뒤를 향해 날아오는 독침을 막아냈다.

“이걸 노린 거였나?”

치기 어린 암살자가 굳이 정면승부를 하겠답시고 덤벼들어 시선을 끈 다음, 큰 기술(전능의 연출가)를 유도하여 틈을 만들고서 또 다른 특급 암살자가 공격한다라.

“사실 치열하지 않았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군.”

상대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방심했다.’

차진혁은 또 반성하는 한편, 의도치 않았던 위기감 연출에 기분이 좋아졌다.

‘방금 이 쫄깃한 긴장감이 잘 전달 됐으려나?’

* * *

셰비안은 방금 무언가 큰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운이 나빴더라면 자신의 목이 날아갔을 거라는 것도 충분히 느꼈다.

죽음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다가 물러난 느낌.

“이걸 노린 거였나?”

김철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치열하지 않았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군.”

갑자기 셰비안 자신을 바라보는 김철수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뀐 것도 영 이상했다.

다만, 그 또한 한 가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암살자들이 배치되었다?’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군.’

마이에르 가문의 가주인 아버지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이미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예언가 세 자매가 따로 고용한 특급 암살자들이었다.

아르비스에서 첫 손 꼽히는 암살자 연합인 시릴 연합에서 파견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차진혁의 약점을 공략했다.

현 시점에서 차진혁의 가장 큰 약점은 비전투 클래스인 두더지우먼.

“으…… 어질어질하다, 두지.”

-두더지우먼 절대지켜!

-저 더러운 새기들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봐 ㅂㄷㅂㄷ

-비겁하게 길잡이를 치냐?

-근데 왜 엘튜버 치는 건 뭐라 안함? 스트리머 보호조약 언급 외않해?

두더지우먼은 정체 모를 약에 중독되어 비틀거렸다.

“독에 당한 것 같다, 두지.”

정신이 희미해지는 그 와중에서도 두더지우먼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빠르게 말했다.

“새로이 나타난 암살자는 세 명이다, 두지. 저기 나무 위. 여기 기둥 뒤. 그리고 저기 기둥 뒤!”

두더지우먼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차진혁도 아차 싶었다.

‘요즘 많이 느슨해진 모양이다.’

처음, 셰비안이 헛점을 노렸을 때부터 방심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더지우먼을 먼저 노릴 거라는 걸 당연히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암살자 하나가 차진혁에게 달려들고, 또다른 암살자가 두더지우먼의 옷깃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암살자는 극독이 발린 단검을 두더지우먼의 목에 가져다댄 뒤 말했다.

“김철수. 무기를 버려.”

“…….”

어느덧 시점은 3인칭으로 전환되었고, 화면 속 차진혁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무기를 버려.”

암살자는 좀 더 위협적인 태도로 차진혁을 협박했고 차진혁은 결국 미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두 손을 들어 올려라.”

차진혁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나만 방심한 게 아니었군.”

“뭐?”

그 순간, 암살자의 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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