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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72화 (37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2화

4주 전.

그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일에게 물었었다.

“카일 경. 나는 이제 많이 늙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히기에는 많이 늦었지.”

“왜 또 그리 엄살입니까? 무슨 꼰대같은 말을 하려고?”

“그게 아니라…….”

그리들은 차진혁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철저한 계산을 하고서 성유물을 내어줬더니 그대로 성유물로 파괴해 버리는 미친놈.

도저히 계산 안에 머물지 않는 괴팍한 인간.

“김철수 말일세.”

“예.”

“설마 4주 안에 심검의 경지에 이르거나 하지는 않겠지?”

“노망났습니까?”

“아니.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사이, 세상이 많이 바뀌지 않았겠나?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고 내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발전하고 있어. 그러니까 심검의 경지에 이르는 것에도 이제 꽤 많은 노하우가 쌓이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빨리 성취를 이루는 것 아닌가 하여…….”

“그래도 최소가 반년 입니다.”

“김철수 그자의 잠재력을 감안하더라도?”

“당연하죠. 심검이 무슨 옆집 개이름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들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되지만 김철수가 그것을 해낸다면, 검술가들의 위상이 곤두박질 칠 것이 뻔했다.

-엘튜버가 4주 만에 하는 걸 검술가들은 왜 못함?

라든가,

-검술가들 개허세였네 ㅋㅋㅋㅋㅋㅋ

와 같은 조롱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그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카일. 나에게 징표를 주게.”

“예?”

“김철수가 4주 안에 룰 브레이커를 검의 형상으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약속하는 징표 말이야. 아니면 조건을 걸어주든가.”

“내가 왜요?”

“그냥 나한테 그게 필요해서 그러네. 자네가 징표를 제공해 준다면 이 늙은이가 밤잠을 좀 편히잘 수 있을 것 같아.”

카일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영감님이 나이를 먹더니 감상적으로 변했단 말이야.

“예. 김철수가 절대 못한다에 내 불알 두 짝을 걸겠습니다. 됐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지. 고맙네.”

그리고 오늘.

카일은 차진혁의 오른손에 들린 미리를 발견했다.

“씨X. 내가 고자라니.”

그리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심사관은 바로 카일이네.”

* * *

카일은 다리와 다리 사이가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설마 진짜 내놓으라고 하진 않겠지?’

그는 겉으로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4주나 걸리다니. 느리군.”

“…….”

얼굴이 조금 붉어진 차진혁은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나는 엘튜버니까.”

“검을 쥔 순간, 너는 엘튜버가 아니라 검객이다, 김철수. 그런 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

기분 나쁘냐? 물론 그렇겠지. 화를 내라. 그리고 전력으로 나와 한 번 붙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차진혁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카일.”

“……인정하는 거냐?”

“그래. 나는 엘튜버니까. 엘튜버니까 4주 만에 해도 괜찮아. 그래도 잘한 거야. 그렇게 자위하며 나 스스로를 속였다.”

“…….”

“그래서는 안 되는 거겠지.”

“…….”

“따끔한 충고 고맙다. 과연 나의 스승님다운 조언이었다.”

“무, 물론이지.”

카일은 차진혁과 함께 피사트 가문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자, 검을 들어라. 과연 검황전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지, 너를 판단해 주마.”

* * *

그리들은 차진혁과 카일의 대련을 살펴보았다.

‘빠르다.’

차진혁의 움직임은 일류 검술가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능숙하게 검을 다루어본 사람같았다.

‘검과 관련된 스킬은 전무하다.’

그렇다는 건, 지금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기술이 아니라 피지컬에 의한 것.

기술의 정교함이나 디테일에 있어서는 카일이 압도적이었으나, 그 기술의 부족함을 레벨과 피지컬로 극복해 내고 있었다.

‘심지어 이곳은 수호수의 권능이 닿지 않는 곳인데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철수는 검황전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들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제 그만. 심사는 이쯤 하는 게 어떻겠나?”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영감님.”

그리들이 고개를 저었다.

“검황전이 코 앞이네. 여기서 너무 진을 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내일 먹을 것을 있다 하여 오늘의 식사를 거르지는 않죠.”

그리들은 이제 막 불 붙기 시작한 대련을 멈출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못 말린다.’

그래서 카일 맞춤형 전략을 사용하기로 했다.

“김철수는 이제 갓 심검의 경지에 들어섰네. 아직 검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그러나 지금 그대가 겪고 있듯, 잠재력은 어마어마하지. 그러니 며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김철수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일세.”

김철수가 강해질 거라는 말에 카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제야 말이 조금 통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때의 김철수를 위해 지금은 이쯤 하는 게 어떻겠나?”

* * *

그리들이 내어준 숙소로 돌아온 차진혁은 오른손을 심장 부근에 가져다대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카일과 싸우던 그 순간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검과 검이 맞닿는 그때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들이 말릴 때에는 차진혁 본인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좀 슬픈 거 아닌가?’

-뭐가 슬퍼요?

‘내 재능은 방송과 망치질이잖아.’

검을 무척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것에 비해서 재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건 조금 슬픈 일이었다.

-취미인데 뭐가 슬퍼?

그 말에 차진혁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맞네?’

물론 카일의 말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검을 쥔 순간, 너는 엘튜버가 아니라 검객이다, 김철수. 그런 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덕분에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가짜였다.

차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누웠다.

“지나치게 치열할 뻔했네.”

치열한 것에도 올바른 방향이 있는 법.

저런 잘못된 가르침에 속게 되면 본업에 지장이 갈 수도 있었다.

“취미를 1등 하려다 본업에서 1등 못하면 안 되잖아?”

-맞는 말씀!

오늘따라 미리의 말이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것 같았다.

따뜻한 위로를 건넨 미리는 흐흐흐흐 웃고 있었다.

-칼날의 모습으로 뒤통수를 쑤시는 것도 제법 황홀할 듯. 히히히히히.

* * *

엘튜버 ‘김철수’의 검황전 참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 참가자 명단에 김철수 있는데?

-결국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엘튜버가 검황전엨ㅋㅋㅋㅋㅋㅋ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비 검술계열 플레이어가 검황전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

심지어 비전투계 플레이어가 참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데 검황전은 검술가계열 스킬만 사용할 수 있잖아.

-김철수한테 검술계열 스킬이 있음?

-검술 스킬은 딱히 없는 것 같던데

-응 신비는 사용 가능함 ㅋㅋ 신비만 사용해도 검술가들 쌉바름

각종 커뮤니티에서 설전이 오가기 시작했다.

-검술가들이 호구로 보이냐? ㅋㅋㅋ 김철수가 아무리 대단해도 엘튜버임.

-검술로 상대가 되겠냐?

-전능의 연출가 같은 스킬은 쓰지도 못함

-오냐오냐하니까 김철수가 무슨 신이라도 된 것처럼 찬양하네 ㅋㅋㅋㅋㅋ

간간이 김철수를 옹호하며 김철수가 이길 수도 있다는 분석글들이 올라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소수였다.

대세는 김철수가 압도적으로 패배한다는 의견이었다.

-순수 검술로만 싸우면 아예 상대도 안 됨.

-피지컬도 ㅈ밥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거지 검황전 참가하는 검객들 정도면 이미 초일류들임 ㅋㅋ 피지컬이 다가 아님 ㅋㅋㅋ

-나 아는 사람이 검술계열 랭커인데 자기도 검술로는 김철수 쉽게 제압할 수 있다던데?

차진혁은 대중들의 반응에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언더독인 건 맞지.’

딱히 검술 계열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피지컬과 과거의 경험으로 싸워야 하는데, 진짜 검술가들에게 이게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근데 다행인 건 내 첫 상대가 닐이라는 건가?’

닐은 강대 서버 중 하나인 프레앙 출신의 검술가였다.

레벨은 300대 초반.

참가자들 중에서는 약한 축에 속하는 검술가였는데, 차진혁은 닐과 만나게 된 것이 기뻤다.

‘전에 내가 정말 겨우겨우 이겼었는데.’

우연히 지구에서 만나 싸웠던 적이 있었다.

당시 호각을 이루며 싸웠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닐은 이미 지친 상태였었다.

‘닐은 변명하지 않고 그냥 패배를 받아들였었고.’

-“사내는 변명하지 않는 법. 내가 졌다.”

그 모습이 꽤 멋있어서 함께 악수를 나눴던 기억이 있었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검이 꽤 까다로운 녀석이었었는데.’

그래도 한 번 싸워본 사람이다 보니, 닐의 습관과 공격 패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한 상태였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다 기억이 나네.’

마치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당시 닐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다 기억이 나는 느낌이었다.

‘이런데도 검술가로서의 재능이 별로라니.’

그럼 진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검술가들은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겠지?

그 세계는 얼마나 황홀할까?

차진혁은 문득, 저도 모르게 최상급의 재능을 가진 검술가들이 부러워졌다.

* * *

피사트 검황전은 피사트 가문에 의해 엄선된 100인의 검객들이 자웅을 겨뤄 최종 승리자를 뽑는 검객들의 축제.

이번 검황전은 특이하게도 검객들이 아니라 엘튜버에게 가장 많은 관심이 쏠렸다.

수많은 엘튜버들이 검황전이 열리는 검투 경기장으로 촬영을 왔는데, 그중에는 마시멜로도 있었다.

“모두 아시다시피 32강까지는 예선전으로 분류되잖아요?”

사실 예선전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검투장이 꽉 찼네요.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군집했어요. 예선전 역대 최고 기록인 것 같습니다. 아마 김철수를 보기 위해 모인 철수랜드들 같아요.”

암표의 가격이, 원래 가격의 100배 이상으로 거래되면서 우주인들은 김철수 효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일부러 닐을 붙여준 것 같아요. 물론 전 우주적으로 봤을 때 닐이 강자인 건 맞지만, 검황전에서는 약자니까요.”

김철수를 일부러 위로 진출시켜서 이 흥행돌풍을 이어가겠다는 주최 측(피사트 가문)의 속셈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상관없죠. 철수랜드는 김철수를 많이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검투장에 커다란 함성 소리가 가득 찼다.

옆 사람과의 대화조차 힘들 만큼 수많은 소음으로 꽉 찬 이곳에서, 마시멜로는 일류 엘튜버다운 실력으로 닐과 차진혁의 대화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닐이다.”

“김철수다.”

닐이 철검을 꺼내 들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채찍처럼 갈라져 뱀처럼 움직이는 연검이었다.

차진혁도 그에 맞추어 미리를 꺼냈다.

마시멜로의 머리가 [?] 모양으로 변했다.

“엥?”

망치의 모습인 미리 위로, 반투명한 형상의 검이 생성되어 있었다.

마시멜로는 눈을 비빈 뒤 차진혁 쪽을 확대해서 중계했다.

“내 눈이 잘못됐나? 아무리 봐도 저건 심검인데.”

마시멜로가 이 의외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사이, 차진혁의 첫 번째 검투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격 전에 늘 왼발을 내딛는 습관이 있었지.’

그 습관은 여전했다.

왼발을 내딛는 것이 보였다.

‘내 왼쪽에서 연검이 날아들 거다.’

상대의 호흡, 눈빛, 근육 결의 움직임이 모두 보이는 것 같았다.

검왕 시절 때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온몸을 통해 전해졌다.

마치 닐의 모든 생각을 다 읽어낸 것만 같았다.

‘보인다.’

검을 피해낼 길이.

그리고 곧장 반격할 수 있는 검의 경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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