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73화
‘왼쪽 어깨를 가볍게 타격해서 시선을 분산한 뒤 배를 공격한다. 그러면 닐은 몸통을 비틀어 검날을 피해낼 거야.’
그렇게 되면,
‘오른쪽 목덜미가 비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 모든 미래가 눈앞에서 천천히 재생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대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예측되었다.
‘이렇게 쉽게 읽힌다고?’
아무리 닐에 대한 사전정보와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쉬울 일인가?
차진혁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함정?’
사람은 본래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법.
사실은 함정이 있기를 바라는 차진혁의 마음이 투영되어, 닐의 동작들이 페이크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래야 일류 검술가지!’
나는 낚이지 않겠다!
닐과 차진혁은 수십 차례의 공방을 이어갔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검이 기이한 각도로 차진혁을 향해 쇄도했고, 차진혁은 침착하게 검을 막아낸 뒤 거리를 좁히고 반격하는 형태의 검전이 재차 반복되었다.
-와 박진감 개쩐다
-이게 엘튜버의 검술이라고?
-나 숨도 못 쉬겠어
-형들 나 화면 잠깐 껐다가 올게. 지려버렸어.
1인칭 시점으로 차진혁의 방송을 시청 중이던 시청자들 몇몇이 방송을 끄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검전의 압박감과 박진감이 일반 시청자들이 버티기에는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결투에 심취한 차진혁이 송출되는 긴장감을 조절하지 못한 탓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둘은 호각.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닐의 생각은 달랐다.
‘이상하다.’
실체가 없는 유령과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을 베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다스리며 싸우고 있는데, 김철수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
겉으로 보이기와는 달리, 이 검전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차진혁이었다.
‘마치 저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또 찜찜한 것이 있었다.
‘왜 공격할 타이밍에 공격을 하지 않고 멈칫거리는 거지?’
그 시간이 무척 짧아서 거의 티가 나지는 않았으나 그 찰나의 순간 덕택에 닐이 여지껏 호각을 유지하며 싸울 수 있었다.
반대로, 차진혁은 전투가 지속될수록 의아해졌다.
‘엥? 전부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네?’
오히려 처음 검을 맞부딪쳤을 때보다 더 확실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설마 함정인가, 나를 끌어들이는 건가 싶어서 조심을 해봤으나, 왠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설마 그조차도 나를 방심하게 하려는 건가?’
미리 또한 아쉬워하고 있었다.
-방금 뒤통수를 쑤실 수 있었는데!
-깊이 박을 수 있었는데!
-왜 자꾸 안 찔러요!
시간이 흘러 차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함정이나 페이크가 아니야.’
이건 엄연한 실력 차이였다.
강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
누군가 앞에서는 엄청난 강자도, 또 다른 누군가 앞에서는 약자이기 마련이었다.
‘어떡하지?’
차진혁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 * *
‘과거의 닐은 나를 좀 봐줬던 것 같군.’
철부지 검왕(?)이었던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닐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당시의 닐은 이미 심검의 경지에 이르렀을 거야.’
아무리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는 해도 당시의 자신을 꺾을 정도의 힘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닐은 자신에게 져주었다.
아마 진짜 ‘경쟁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삼촌이 조카를 놀아주듯, 치열하게 싸우는 척하며 져주었던 것이겠지.
‘지금은 내가 그럴 수 있는 입장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닐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닐은 순수한 호의에서 나를 그렇게 대했을 거다.’
하지만 차진혁은 달랐다.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방송을 잘 살릴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만 했다.
‘어차피 연출은 둘 중 하나야.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든, 아니면 치열하게 싸우다가 극적으로 이기든.’
먼치킨이나 성장이냐.
이건 장르의 문제였다.
‘미안하다, 닐.’
검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기대를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해. 신성이자 루키. 이 검전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는 걸 보여주려면, 결국 압도적으로 찍어눌러야겠지.’
닐의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차진혁의 기세가 바뀌었다.
“똑똑히 보아라, 닐.”
부캐의 등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검철수의 시간이다.”
김철수의 부캐.
검철수의 시간이 도래했다.
* * *
닐은 황당했다.
‘검철수?’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대충 방송용 멘트라고 판단했다.
‘젠장. 몸이 너무 뻣뻣해.’
그에게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었다.
검술가가 엘튜버에게 패배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중압감 때문에 오히려 몸이 둔해졌고 호흡이 금방 가빠졌다.
‘빠, 빨라!’
닐은 김철수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왼쪽! 아니, 오른쪽!’
가까스로 공격들을 막아내면,
‘위! 아니다!’
눈 앞에서 미리가 번뜩이며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정작 김철수 본인은 천천히 여유로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었다.
여러 명의 김철수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냐!’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미리의 검날이 닐의 목덜미에 닿아있었다.
와아아아-!
함성 소리가 검투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해설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미, 믿을 수 없습니다!
-김철수가 검술만으로 닉을 압도했습니다!
전광판에는 ‘전초전은 끝났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철수는 전력을 아끼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보입니다.
-저희가 보기에는 최선 같아 보였는데요.
-나의 최선이 누군가의 워밍업일 수 있지요. 제가 보기엔 최선이었는데 김철수에게는 워밍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1차전은 김철수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 * *
1차전이 끝난 뒤, 차진혁은 마시멜로와 티타임을 가졌다.
마시멜로의 머리에서 스팀이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아주 거만한 자세로 턱을 쳐든 뒤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나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나를 중계해 줘.”
그건 부탁하지 않아도 할 건데?
요즘 ‘김철수’ 세 글자만 들어가면 조회수가 보장된단 말이야. 천연 어그로지.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독점 중계?”
“어. 맞아.”
“네 스스로도 이미 영상 송출하고 있잖아. 꽤 호평이던데.”
“우리 쪽 분석은 좀 달라.”
검술에 있어서 차진혁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만약 그가 검술가였더라면 마냥 기뻐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엘튜버.
“이런 하드코어한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매니악한 이들은 이번 영상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대중들의 성향에 안 맞다?”
“맞아. 아무래도 압박감이 너무 센 모양이야. 실시간 시청자 숫자도 12억 명밖에 안 됐고.”
12억 명이면 나보다 많은데?
그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검전’은 호불호를 많이 타는 콘텐츠였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다 보니 보는 사람만 보는 콘텐츠.
그렇다 보니 시청자의 절대 숫자는 일반적인 플레이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적긴 하네.”
“아직까지 나는 검술과 방송을 동시에 잘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
마시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멀티태스킹이 좀 어렵긴 하지.’
만약 이 자리에 차진혁처럼 ‘심검 운영’이 가능하면서 차진혁 수준의 ‘방송 송출’이 가능한 사람이 또 있었더라면 아마 게거품을 물었을 것이었다.
마시멜로는 차진혁 수준의 ‘방송 송출’은 가능하지만 ‘심검 운영’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뛰어난 검술가들이 의지로 검의 형상을 바꾸어 다양한 권능을 선보이는 힘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다.
문제는 이게 가능한 사람이 현 우주상에 차진혁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시멜로는 엘튜버로서 진지한 표정으로 조언했다.
“화면이 좀 흔들리기도 하고 좀 난잡하긴 하더라. 화면을 통한 생동감 전달도 너무 지나쳤어. 너무 지나치면 독인데 말이야.”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잖아. 나는 녹화만 하려고.”
마시멜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흐 웃었다.
“이 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로군.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한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 수밖에. 으하하하핫!”
공식 철수랜드 1000번 마시멜로는 ‘김철수가 나를 필요로 한다!’라는 사실에 흠뻑 취해버렸다.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 모양으로 변한 것도 모른 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콘텐츠 포인트는? 네 치열함? 성장기? 검에 대한 광기? 검술가로서의 능력 입증? 피지컬로 어느 정도까지 기술을 극복할 수 있는지?”
차진혁은 마시멜로와의 대화가 여러모로 꽤 유익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와중, 마시멜로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하나 짚었다.
“그도 아니면 후에 따라올 달콤한 보상?”
“…….”
차진혁이 대답하지 않자 마시멜로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마시멜로 형상의 머리가 [!!!]로 변했다.
“보상을 생각 안해놨단 말이야? 미친 거 아님?”
“…….”
“이런 류 콘텐츠를 진행하면서 보상 계획을 안 짜놨다고? 야 너 진짜 혼나볼래? 야 시청자들이 그냥 너 개고생하는 거 보고 싶겠냐? 아니! 물론 그것도 보고 싶지! 너는 그냥 숨만 쉬어도 잘생겼다고 찬양할,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그런 보상계획 없이 콘텐츠를 진행하는 게 말이 돼? 기승전결에서 기승전까지만 있으면 누가 보냐! 이 머저리같은 놈아!”
“…….”
차진혁은 마시멜로의 폭언을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니 저 말이 다 맞았던 것이다.
‘나도 진짜 정신 못 차렸구나.’
생각해 보면 검을 참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검황전에 참여한다는 것에 들떠서, 검황전에 참여하는 최초의 엘튜버라는 차별화에만 기뻤던 나머지, 검황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어떤 게 따라오는지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쓴 것이 사실이었다.
신청 자체도 차진솔이 대신 해줘서 신경 못 쓴 것도 있었고.
“너, 검황전 우승 보상이 뭔지는 알아?”
“…….”
“그것도 모르면서 네가 엘튜버라 할 수 있냐? 목적지를 알아야 그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거지. 아오, 진짜 열 받네.”
“……미안하다.”
“검황전 우승 보상은 피사트 가문의 성지. [검이 노래하는 절벽]에서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다. 전 우주의 수많은 검술가들이 꿈꾸는 기회지.”
“검이 노래하는 절벽?”
검왕 시절에는 몰랐던 것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거기서 수련하면 몇 단계는 더 강해진다고 한다. 이전 검황전의 우승자인 카일도 그랬고 말이야.”
“…….”
“혹시 알아? 엘튜버인 너라면 거기서 또 무언가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될지?”
* * *
차진혁의 검황전 참가는 강렬한 돌풍을 일으켰다.
엘튜버가 순수 검술가를 상대로 압도적인 검술을 선보인 것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차진혁은 말 그대로 검황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루키였다.
-무명 선수. 대단합니다.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멜릭을 상대로 단 열 합만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멜릭 선수도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인데요?
이름을 ‘무명’이라 밝힌 지옥 출신의 검술가가 검황전에서 대단한 실력을 선보이며, 우승 후보인 멜릭을 꺾었다.
이것은 커다란 이변이었고, 차진혁 못지않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승자 인터뷰에서 무명이 차진혁을 직접 언급했다.
“나는 김철수를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검황전은 검술가들의 축제.
이념이나 사상, 종교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이유는 덧붙이지 않고 한 마디를 짧게 이었다.
“나는 지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