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12화
베르팔토는 이번에 지구 서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파된 이사급 관리자였다.
그는 강경하고 급진적인 스타일의 인물.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김철수라는 자가 존재하지.”
그는 서울 관리국의 국장으로 부임하면서 곧장 극단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즉, 김철수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뜻이다. 이 머저리들아. 이 쉬운 걸 두고 뭘 자꾸 이리저리 머리를 싸매고 있어?”
“하, 하지만 국장님. 김철수는…….”
“알아, 알아.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아무 잘못도 없는 플레이어 하나를 명분도 없이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스트리머라면 더더욱.
“그래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방관하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나?”
베르팔토는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검은색 뿔과 험상궂은 외모. 그리고 이사라는 직함은 서울의 관리자들을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추후의 일은 내가 책임진다. 마침 놈이 재미있는 걸 진행하고 있더군.”
그는 차진혁이 ‘반얀트리 던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반얀트리 던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돕지.”
“하, 하지만 국장님!”
“그놈의 하지만!”
베르팔토가 버럭! 소리쳤다.
“앞으로 하지만은 금지다.”
직원들은 또다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알아. 아직 지구 수준에서 나오면 안 되는 던전이라는 거.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럼 그렇게 잘 아는 자네들이 이 밸런스 붕괴를 막아보든가.”
“…….”
“원리원칙 다 따지다가 아르비스의 눈 밖에 나면? 우리 시스템 후원은 누가 하지? 자네들 월급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아?”
결국 이 시스템을 구동하는 것 또한 막대한 재화가 필요했고, 그 대다수의 재화는 아르비스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아르비스를 통치하는 위정자들은 너무 독보적인 신성의 등장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구의 성장세는 지나치게 과한 감이 있었다.
“타 서버들에서 형평성 논란 이는 거 몰라? 윗분들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고.”
“…….”
“우리 권한으로 설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설정하도록 한다. 김철수를 없앨 수 있는 최적의 방법들을 고안해서 제시하도록.”
이사급 관리자에게는 막강한 권한들이 부여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실무진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김철수는 정말로 솔로잉에 도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들의 분석에 따르면 김철수를 상대할 때에는 많은 수의 잡좁들보다는, 강한 하나의 적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전투 영상을 분석한 결과였다.
“그러므로 잡다한 관문이나 자질구레한 설정값들을 과감히 삭제하고, 그것을 보스룸에 몰아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던전에는 관리자들이 말하는 ‘난이도 보존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각 던전의 난이도 총합은 고정되어 있다는 뜻.
이를테면 100의 난이도를 적재적소에 분산 배치하는 내용으로써, 분산된 모든 난이도를 다 합치면 100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었다.
“다만 지옥여제 한 명에게 난이도를 모조리 몰아넣으면…… 이런저런 페널티가 부여되기는 합니다.”
“총합을 100이라 하면?”
“정확한 숫자로 표현하기는 애매하지만 80 정도일 것 같습니다.”
100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150이 되기도 하고 50이 되기도 한다.
보스 하나에게 모든 난이도를 부여하면 체감 난이도 자체는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최대한 끌어 올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고 승인한다.”
실무진들은 밤새워 야근을 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새로 배치된 관리자들이 대다수여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인위적인 설정을 억지로 부여하려니 일이 산더미처럼 밀리게 된 것이었다.
서울 관리국의 부국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국장님,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혹시라도 지옥여제와 김철수가 손을 잡게 된다면…….”
베르팔토가 피식 웃었다.
“자네는 김철수를 전혀 모르는군.”
“……네?”
“김철수는 싸움에 미친 자다. 전사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광기에 절은 특유의 눈빛이 있다. 뿐만 아니라 놈은 분명 [솔로잉]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놈은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병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 그러니 반드시 솔로잉을 시도한다.”
부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파악한 김철수도 그렇기는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하다.’
김철수와 관련된 일이면 보통 이렇게 불안했다.
부국장이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그때에, 베르팔토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놈에게는 상대를 파악하는 아주 특별한 눈이 있지. 보자마자 깨달을 것이다. 지옥여제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김철수가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결국 답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기습 아니면 도망.
“김철수. 그 미친놈이 과연 도망을 칠까?”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기습밖에 없었다.
“마침 놈에게는 즉살과 범의 노래라는 아주 그럴듯한 스킬도 있다. 그러니 기습을 선택하겠지.”
“…….”
자신만만한 베르팔토의 모습을 보며 부국장은 점차 설득되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김철수에 대해 훨씬 잘 알고 계셔.’
명확한 분석에 따른 근거들을 제시해 주니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김철수를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데 김철수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다니.
역시 저 정도 통찰력을 가져야 이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밸런스 파괴의 원흉.
김철수라는 버그가 삭제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베르팔토가 다시 한번 확신을 심어주었다.
“걱정 마라. 그런 눈을 가진 놈은 지옥여제를 보자마자 환장해서 달려들 것이다.”
* * *
보스룸은 그렇다 치고, 이렇게 곧장 보스가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무거운 공기가 내리깔렸다.
지옥여제에게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LV???/지옥여제/?/?]
간만에 모든 것이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상대를 만났다.
이를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전생의 지옥여제가 우릴 봐줬던 거다!’
그도 아니면,
‘지금의 지옥여제가 그때의 지옥여제보다 훨씬 강하게 세팅되어 있거나.’
당시의 지옥여제와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싸우다가 정신계 저주에 당했었다.
지옥여제는 정신계 공격에 유독 특출난 보스였다.
지금은 딱히 어떤 정신계 공격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다.
‘엄청나게 강한 놈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은 발걸음을 하였구나.”
또각, 또각.
하이힐의 굽이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괴하게 생긴 생물체들은 절하듯 바닥에 엎드려 숨을 죽인 상태.
차진혁은 지옥여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냅다 공격부터 했었지.’
다들 너무 지쳐 있었고 지옥여제의 말을 들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왔고, 살기 위해 먼저 급습했다.
그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마치 겁에 질린 야생동물 같았어.’
도와주려고 다가가는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거나 도망치는 야생동물.
그랬다.
당시의 자신과 동료들은 그랬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잠깐 동안 회상에 빠졌던 차진혁은 심장이 뛰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얘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군.’
보스 몬스터의 ‘세팅된 대사’라고 생각했었다.
이 ‘세팅된 대사’는 말하자면, ‘로보트의 변신 시간’ 정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투 진입 전 가장 무방비하고 약한 상태.
‘기습해야 하나?’
즉살과 검은 범의 노래.
그리고 행운의 신까지 모두 사용해서 모든 힘을 한 번에 쏟아내며 어찌어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만약 오늘이 마지막 전투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즐거워!’
저런 강자와 싸우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또다시 미친놈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스트리머다!’
검왕이었다면 당장 달려들었겠지만 이제 그는 스트리머였다.
모든 이벤트에는 응당 서사가 깃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은 스트리머로서 옳은 선택이 분명했다.
혹여 나중에 불리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좋은 콘텐츠를 위하여 상대의 약점쯤은 외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김철수다. 지옥여제를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쁘군.”
지옥여제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가 구면이었던가?”
차진혁은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영상을 뽑아낼 수 있을지, 조금 더 흥미로운 내용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콘텐츠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제4번 지옥의 지배자, 연옥왕 가희. 나를 기억 못한다고?”
* * *
실시간으로 던전을 모니터링 중인 베르팔토는 부국장과 실무자 몇을 긴급소집했다.
“김철수가 지옥여제와 구면인가?”
“……저희가 알기로는 아닙니다.”
“모니터링 철저히 한 게 맞겠지?”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했습니다.”
베르팔토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놈의 가능가능, 그렇게 해서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걸 따질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면 김철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아마. 같습니다. 모조리 추정형이군. 보고를 참 맛깔나게도 해, 아주 훌륭하게 X같아, 그렇지?”
“죄송합니다.”
대답하는 부국장도 죽을 맛이었다.
그 또한 정확히 모르니 추정형으로밖에 대답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
베르팔토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앉았다.
“지옥여제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 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의 과거와 미래도 모두 볼 수 있지. 그것이 지옥여제의 무서운 점이지.”
지옥은 남성과 여성의 능력 차이가 두드러진 서버였다.
지옥여제는 그런 곳에서 4번 지옥을 제패한 절대자.
“과연. 그렇군요!”
“물론 반얀트리 던전에 소환된 지옥여제는 본신체가 아니라서 능력의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김철수의 거짓말 정도는 쉽사리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놈이 거짓말을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은 끝났다고 볼 수 있지.”
부국장은 이번에야말로 국장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여제에 관해 저렇게 잘 알고 있다고?’
지옥 자체가 많은 비밀에 둘러싸인 서버였다.
부국장은 반얀트리 던전의 지옥여제가 4번 지옥의 절대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국장은 지옥여제의 상세한 능력까지도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김철수가 지옥여제를 보자마자 달려들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지만, 아무리 국장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맞추기는 어려운 법.
‘그래, 이번에야말로 국장님의 말이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