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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313화 (31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13화

지옥여제가 말했다.

“정말 우리는 구면인 것 같군.”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통한다!’

지옥여제는 정신을 다루는 능력이 특출났는데, 이번에는 그 능력이 독으로 작용했을 것이었다.

사실 차진혁이 지옥여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회귀자였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는 지옥여제에 대한 정보들이 조금씩 풀리게 되니까.

“많은 것들이 뿌옇게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군. 내가 보는 차원에서 너는 내게 적대적이었다.”

지옥여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호의적인 것 같군. 왜지?”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우리는 별로 좋지 않게 헤어졌거든. 근데, 시간이 많이 흘렀어. 지금까지 널 미워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잖아.”

지옥여제는 원수라면 원수였다.

당시 동료 여럿이 지옥여제의 손에 죽었고, 차진혁 또한 생사를 오갔었으니까.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먼저 쳤잖아?’

이렇게 대화를 할 줄 아는 녀석이었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덤볐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잘못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내 동료들도 다 살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지옥여제에게 굳이 원한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지옥여제의 눈꺼풀이 한차례 떨리는가 싶더니 물었다.

“혹시 내 전 연인이었나?”

그와 동시에 지옥여제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물들며 살기를 쏘아냈다.

‘이야, 찌릿찌릿하네.’

이 정도 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전 연인들에 대한 기억이 무척 나쁜가 보다. 바로 이렇게 발작하는 걸 보면.’

지옥여제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무척 더러운 인연이었겠군.”

“…….”

“다시 눈에 띄면 죽이겠다고 경고했을 터.”

지옥여제의 손끝에 시퍼런 한기가 밀려들었고, 보스룸 전체에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진혁은 직감했다.

‘쟤가 뭘 쏘면 죽겠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겨울이 강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겨울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차진혁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환상이 보였다.

‘……신난다!’

그는 이런 진행이 좋았다. 발단. 전개. 위기. 결말.

모든 스토리에는 굴곡이 있어야 하는 법.

지금은 ‘위기’였다.

* * *

어린 시절, 가희는 자신의 신체를 저주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지옥에 위치한 대다수의 가문이 그러하듯, 그녀 가문의 비전 또한 남성들에게 맞게 개발되었고 오랜 시간 발전되어 왔다.

필연적으로, 여성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가희에게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었다.

가문의 사람들 또한 그녀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을 정도였다.

-“가문의 비전을 익히고 싶다? 네가 여자임을 잊은 것이냐?”

-“여자는 강해질 수 없다. 강해질 필요도 없고.”

-“좋은 혼처를 구해줄 테니 내조나 열심히 하도록 하여라.”

……가 보편적인 반응이었다.

그녀의 가문이 유독 보수적이었다라기보다는, 지옥의 분위기가 그랬다.

-“저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가문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사람의 정신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정신계.

지옥의 불꽃이라 불리는 ‘묵화(墨火)’를 다루는 화염계.

-“글쎄, 안 된다니까! 어찌 여자가 신성한 묵화를 어찌 다룰 수 있느냔 말이다!”

가문 고위급 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몰래 묵화 다루는 법을 익혔다.

제대로 된 스승 없이 귀동냥으로 배운 것치고 무척 훌륭한 성장이었다.

-“가주, 가희가 묵화를 다루는 재능이 제법 뛰어납니다.”

-“그래봤자 계집 아닌가. 세상이 어찌 되려고. 쯧.”

가주이자 그녀의 아버지는 가희가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하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미 가희에 대한 소문이 지옥 곳곳에 퍼진 상태였고, ‘여자가 그리 드세서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래도 본인이 그토록 열심히 한다고 하니, 한 번 자네가 가르쳐는 봐보게.”

가희는 끈질긴 집념을 보여주었고 결국 가문의 비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가주…… 어쩌면 우리가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가희의 발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희는 천재였다.

만약 그녀가 4지옥이 아니라 1지옥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래서 여자의 몸에도 잘 어울리는 무학(武學)을 익힐 수 있었더라면, 아마 판도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그러나 가희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더 이상…… 묵화가 소환되지 않고 있습니다. 묵화가 가희를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제 그만 두고 신부수업이나 받으라 하여라.”

결국 정략혼이 결정되었고, 그녀는 결혼하기 3일 전 밤을 틈타 도주했다.

가문과 연을 끊고 대륙을 돌아다니며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묵화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어!’

맞지 않는 무학을 익힌 것에 대한 부작용이었을까.

그녀가 피워올린 것은 묵화가 아니라 명빙(明氷)이었다.

가희의 의지에 따라 맑고 투명한 얼음 결정이 생성되었다.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얼음계 능력으로 탈바꿈된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가문으로 복귀했으나 가문은 잿더미가 된 지 오래였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가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멸문당하는 것을 원한 적은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일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아, 그 한 10년쯤 됐나? 혼기가 가득 찬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혼인식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다더군. 상대 가문에서 화가 잔뜩 나서 이 가문을 쓸어버렸지. 유명한 사건인데 처음 듣나? 쯔쯧, 딸 하나 잘못 둬서 가문 전체가 화를 입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리고 그녀는 홀로 상대 가문을 찾아가서 모조리 죽였다.

그게 지옥여제 가희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제4지옥을 통합하고 다스리는 지옥여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도 그녀에게는 늘 목마름이 있었다.

‘아주 약간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내 앞에 놓인 벽을 부술 수 있을 텐데.’

아무리 명상을 하고 내면의 소우주를 관찰해도, 이 거대한 벽을 깨뜨릴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첫 단추 자체를 잘못 끼운 것 같다.’

뭐든지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한 법.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무학을 익혔다.

많은 기연들 덕택에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는 했으나, 첫 시작점에 생긴 균열이 그녀의 성장을 막고 있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제4지옥을 넘어, 5개의 지옥을 모두 통솔하는 대군주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그녀의 욕심을 노린 지옥의 많은 가문들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정략혼을 제시하거나 미인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다수 존재했다.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가문의 비전이라면 당신의 도약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간절하면 사기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혼인을 빌미로 접근했던 대다수의 남자 및 가문들은 지옥여제의 능력을 탐했을 뿐이었다.

지옥은 수천 년간 남자들이 지배해 왔고 여전히 그녀를 얕잡아 보는 자들이 많았다.

“우리 내기할까? 누가 먼저 가희를 꼬시는지?”

“좋지. 내가 꼬셔서 가희의 비기를 뽑아내야겠네.”

“운이 좋아 저 정도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봤자 계집이지.”

자신과 잠자리를 하면 벽을 깰 수 있다던 놈도 있었다.

계약 연애든 결혼이든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해봤다.

많은 이들이 가희에게 접근했고, 그들에게서 강함의 계기를 찾고자 했던 가희는 점점 지긋지긋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대충 말만 잘하면 지옥여제랑 잘 수 있다. 황홀하더라.”

……등의 낭설이 돌기 시작했고, 이후 가희는 자신에게 계약 연애나 결혼 등을 제시하는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렇게 100년이 흘렀다.

* * *

차진혁은 지옥여제 가희의 서사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뒤, 가희와 관련된 내용이 전 우주에 퍼지게 되니까.

참고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전 우주에 송출했던 사람이 바로 우주랭커 마시멜로였다.

마시멜로는 지옥여제와 관련된 스토리를 5부작으로 만들어 진행했고 전 우주적으로 초대박을 쳤었다.

그러니까 이건 흥행이 보장된 콘텐츠였다.

‘미안하다, 마시멜로.’

지옥여제와 관련된 콘텐츠를 먼저 좀 쓰기로 했다.

“네 비극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넌 여전히 남자가 되고 싶어 하고 있지.”

“…….”

차진혁의 몸 주변에 날카로운 얼음창이 생성되었다.

처음에 푸른빛을 띠던 그것은 이제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맑고 투명한 빙창이 되어 있었다.

‘살벌하네.’

너무 좋았다.

1인칭 시점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명빙창의 이 살벌함이 시청자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을 터!

“내 정신을 온전히 네게 맡긴다. 잘 살펴봐라. 내가 네게 어떤 기적을 선물할 수 있는지.”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레 지옥여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면 티없이 맑은 내 소우주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겠지.

차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입에 발린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다. 이제 그따위 사탕발림에 더 이상 속지 않아.”

……라고 말은 했으나 지옥여제는 이미 차진혁의 정신을 훔쳐보는 중이었다.

‘혼탁하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속이 뿌연 느낌이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훔쳐본 차진혁의 우주에는 질서가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을 보고 있는 것 같구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저자(차진혁)의 정신에 오염될 것 같은 위기감마저 들 정도였다.

‘나한테 저항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저항하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이건 정신방벽 같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냥 저자의 정신세계가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이었다.

‘이러한 우주는…… 진실로 미쳐버러니 광인에게서나 보이는 우주인데.’

그런데 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이 불가사의했다.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최근의 기억을 읽어내는 데에만 겨우 성공했다.

“이제 나를 두더지 우먼으로 불러라, 두지.”

차진혁의 몸을 둘러싼 얼음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갓핑거. 그자에게 나를 안내해라.”

그녀가 스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처음 등장 때보다 걸음이 훨씬 빨라졌다.

‘저자가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만약 그렇다면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차진혁은 히죽 웃고서 지옥여제와 함께 보스룸의 문밖을 나섰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알림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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