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11화
이번 차진혁의 도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게 되겠냐?
-ㅇㅇ철수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함.
-컨셉질도 적당히 해라, 결계술사들 커뮤니티에서도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러더만.
특히 결계술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이는 시청자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왕유미로부터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해받고 있는 차진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렇게 저변을 넓혀가는 거지!’
솔직히 반얀트리 던전을 활성화시키지 못해도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강화든 원정이든,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잘 없었으니까.
한 번에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스트리머잖아?’
덕분에 그는 마음이 무척 편했다.
어차피 본질이 결계술사가 아니기에, 별로 잃을 것이 없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만이 가득했다.
‘스트리머하길 잘했다.’
이런저런 도전들을 별다른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건 그에게 무척 큰 축복이었다.
“시간이 조금 소요되었는데요.”
실패인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뭔가 다른 걸 더 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던 그 시점,
콰광- 하고 작은 지진이 일었다.
‘어?’
그리고 말뚝을 박았던 곳들의 틈새가 벌어지며 형형색색의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변화가 있습니다.”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 흥분을 최대한 감추며 방송을 이어갔다.
땅 속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증기는 일종의 돔을 형성하며 주변을 덮기 시작했다.
그것을 발견한 호텔 투숙객들이 헐레벌떡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비, 비켜!”
“비켜!”
차진혁은 약간 놀랐다.
‘안에 사람이 많았네?’
이미 여기서 던전을 활성화시켜 보겠다고 방송도 했고 공지도 했다.
호텔 측에 공문도 보내놓았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던전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정당한 플레이였고, 그것을 미리 공지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던전이 활성화되는 경우도 태반이었고 말이다.
차진혁이 도의적인 차원에서 미리 알려주었던 것이었으나 호텔 측은 계속해서 영업을 했었고, 투숙객들도 설마 싶어 계속 투숙을 한 것 같았다.
차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검왕 시절의 나였으면…… 저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겠지?’
평화에 너무 찌들어서 상황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안전불감증.
여기서 던전이 활성화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단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 시민들의 훌륭한 자세인 것이다.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올랐다.
‘저런 애들이 진짜 많기는 했어. 마물 사진 찍겠다고 옆에서 깝죽대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고.’
그때는 정말 성가시고 짜증 났었는데 이제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저들 또한 방송의 훌륭한 요소였다.
저 급박한 표정과 행동들이 방송의 긴장감을 올려줄 테니까.
“게이트가 따로 생기는 던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지금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게이트가 따로 생성되면 공간 자체가 분리된다.
입구만 반얀트리 호텔에 생기는 거지, 사실상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리고 차진혁은 알고 있었다.
호텔 정문 부근에 게이트가 생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차진혁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일단 호텔 내부로 들어가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급박한 표정의 사람들을 많이 찍을 수 있겠다.
차진혁은 설레는 마음을 숨기고서, 비장한 모양새로 호텔 안쪽을 향해 뛰었다.
-이 와중에 사람들 안전 챙기는 거 봐라 ㅋㅋ
-저기서 저걸 신경 쓴다고?
-역시 빛, 그저 빛철수 그 잡채.
다만 결계술사들은 경악했다.
-정신을 집중하며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컨트롤해도 모자랄 판에.
-제대로 안 배운 티가 너무 난다.
-너무 무모한 시도. 저러다 잘못돼서 던전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 자체가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음.
-던전 활성화 작업에서 멀티태스킹이라니 진짜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는 건가?
결계술사들 입장에서 차진혁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막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는데, 그 에너지에 집중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다니.
그때 즈음, 국정원 소속 플레이어들도 도착했다.
과거 차진혁의 동료들과는 다른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헬기까지 동원되어 반얀트리 호텔에 머물던 투숙객들과 직원들을 구출해 냈다.
‘쯔쯧, 이렇게 느려서야.’
나 때 저랬으면 진짜 욕 엄청 먹었을 텐데.
차진혁은 플레이어 한 명에게 다가갔다.
“던전 활성화될 거라고 그렇게 미리 얘기하고 공지했는데도 여지껏 대피 안 시킨 건 어째서인가요?”
“씨X, 꺼져.”
덩치 큰 플레이어 한 명이 차진혁을 밀치고 지나쳤다.
그는 차진혁이 누군지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 공간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고 있었다.
차진혁은 속으로 황당해했다.
‘진짜 개판이구나. 겨우 이 정도로 저렇게 호들갑을 떤다고? 국정원 소속 플레이어가?’
던전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그냥 전조증상일 뿐인데?
아주 위험한 보스급 마물이 튀어나온 것도 아닌데 애들이 왜 저렇게 죽기살기로 뛰어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경험 없는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이런 건 확실히 수호수의 병폐야.’
사람들이 평화에 너무 찌들은 나머지 위험을 체감하질 못한다.
그렇다 보니 위기대응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말을 이었다.
“뿜어져 나왔던 기운들이 정문 쪽으로 모여서 문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거대한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문 같았다.
갈비뼈처럼 생긴 커다란 뼈가 문을 감싸고 있었다.
문 위에는 여자 얼굴 형상의 조각상이 붙어 있었는데, 그 눈에서는 붉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문을 적시고 있었다.
차진혁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
[반얀트리 던전]
──────
“던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다행히 게이트가 따로 생기는 형식이네요.”
차진혁은 게이트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공무원 플레이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출동이 너무 느립니다. 헬기는 왜 띄웠을까요? 비행 마물이라도 나타났으면 진짜 큰일 났을 겁니다. 이건 완전 보여주기식이죠. 차라리 테르서박 같이 유능한 테이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텐데. 게다가 심지어 급박한 상황을 컨트롤해 줄 군주 계열 플레이어는 나오지도 않았네요. 원격으로 지시하고 있을 거 같은데 현장에 나오지도 않고 그게 제대로 된다고 본다면 지나친 오만이군요. 어쨌든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하하!”
공무원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고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절대 나만 당할 수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참고로 이런 내용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면, 공무원 플레이어들은 진짜 죽어난다.
여기저기서 어마어마하게 깨지는 것이다.
차진혁이 또 히죽 웃었다.
‘나한테 욕해서 그런 거 아니다.’
이건 공공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였다.
정당하고 정확한 지적을 함으로써 공무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차진혁은 아까 자신에게 ‘꺼져, 씨X’하고 욕했던 플레이어를 확대해서 모습을 잡아냈다.
저 작은 명찰까지 확실히 보이게 말이다.
“구출현장에 그런 무거운 은색갑주가 말이 됩니까? 기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겠네요. 도대체 위기 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룰루.
몸과 마음이 무척 가벼웠다.
* * *
활성화된 게이트를 살펴보던 두더지우먼이 말했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인원제한이 있는 던전이라고?”
차진혁은 두 귀를 의심했다.
원래 반얀트리 던전은 인원제한이 없는 던전이었으니까.
‘설정이 바뀌었다?’
그때, 왕유미로부터 쪽지가 전달되었다.
[키하엘과 세르찬 라인을 통해서 알게 된 건데여, 서울 관리국 국장이 새로 배치되었대여! 이름은 베르팔토. 완전한 강경파이고, 진혁 님을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하는 것 같아여. 어쩌면 진혁 님을 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당.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여!]
‘베르팔토?’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차진혁은 무척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군요.”
그의 표정에는 깊은 고뇌가 묻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을 옆에서 본 두더지우먼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김철수는 1인칭으로 방송을 진행 중이다, 두지.’
다른 사람들에게 김철수의 표정은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 완벽한 표정 연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겉으로는 엄청나게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지 기뻐하고 있다! 분명해!’
그런데 저런 표정이라니.
배우를 해도 될 정도였다.
만약 두더지우먼이 뛰어난 길잡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바로 옆에서 차진혁을 관찰한 게 아니었더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라면 저 정도 표정연기는 못할 것 같아.’
차진혁이 말을 이었다.
“일을 벌인 자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시민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제 플레이가 비록 정당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의적으로 무거운 마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두더지우먼. 이번 기회를 나에게 양보해 주면 좋겠군.”
“양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두지. 이 던전은 특수한 기운을 가진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 두지.”
“특수한 기운?”
“아마도 수호수와 관련된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던전을 활성화시키는 데 유용하게 쓰였던 저 말뚝들 말이야, 두지.”
말뚝들은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빛무리 속에서 약간 위태로운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장을 시도해 봐야겠군.”
“부럽다, 두지. 네 활약은 방송으로 마저 보겠다, 두지.”
전직 두더지맨.
현직 두더지우먼은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발랄하게 말했다.
“구독과 좋아요, 알람설정 부탁드려요, 두지두지!”
차진혁이 던전에 입장했다.
* * *
‘내가 알던 거랑 너무 다른데?’
물론 솔로잉 전용 설정이 붙으면서 뭐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여긴 꼭대기층이잖아.’
거대한 방이었다.
벽면 곳곳에 외눈박이 거인 형상의 조각상들이 서 있었고, 그들의 손에 푸른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어제 이곳에 들렀던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긴 지옥여제가 등장하는 보스룸.’
저만치 멀리, 어둠 가운데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
키가 아주 작은, 고블린 형상의 마물이었다.
뿔나팔을 따로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둥이 자체가 뿔나팔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옥여제의 등장과 똑같은데?’
뿌우우-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중간 과정을 다 생략하고 바로 보스가 튀어나올 확률은 별로 없는데…….’
기괴하게 생긴 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계자의 통찰은 그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서 ‘지옥 군세’라고 읽어냈다.
‘설마 진짜 지옥여제가 나오지는 않겠지?’
뿔나팔 소리가 멈추고, 괴물들이 양 옆으로 쭈욱 갈라섰다.
그리고 고개를 조아리고 바닥을 향해 엎드렸다.
괴물들이 갈라진 사이로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 한 명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여.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였구나.”
차진혁은 깜짝 놀랐다.
‘진짜 지옥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