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10화
차진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을 짚었다.
“설마 목재현을 떠올리고 있는 거냐?”
“거기에 왜 설마라는 말이 붙는 거지, 두지? 목재현은 목왕이다, 두지.”
차진혁은 약간 허탈해져서 웃고 말았다.
“목재현이 어떤 계열의 플레이어인지는 알고 있는 거겠지?”
“탱커!”
“그리고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계열은?”
“목수나 장인? 아니면 조각가 계열?”
“그래.”
두더지맨, 아니, 두더지우먼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나무를 다룬다고 해서 아무나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진심?”
차진혁의 반응을 보며 두더지우먼은 크게 오해했다.
‘이런 식으로 답답하게 구는 것도 연출의 일종이지!’
역시. 이러니 갓철수라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이 재미난 연출에 어울려주마, 두지!’
“김철수. 아무리 막내라지만 그래도 동료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닌가, 두지?”
“……뭐?”
두더지우먼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김철수 방송의 일부가 되어, 김철수의 각본과 연출 속에 녹아드는 이 기분!
마치 우주 랭커가 된 기분이어서 상당히 짜릿하고 즐거웠다.
“막내의 치열함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 같군. 목재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수호수의 나무로 신비로운 말뚝을 만드는 것 정도는. 김철수 너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두지?”
“…….”
마침 방송을 보고 있었던 건지, 목재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 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목소리에서는 꽤 큰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윽고 반얀트리 호텔까지 삽시간에 달려온 목재현은 후후- 웃었다.
“진정한 탱커라면 장인의 기술을 하나쯤은 연마하고 있어야 하는 거겠죠.”
차진혁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다른 애들은 그렇다 치고, 탱커와 장인이라니.
너무 결이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무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똑같구나.’
아무래도 두더지우먼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목재현의 치열함을 우습게 봤던 거야.’
차진혁은 스스로를 또다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 * *
시청자들은 굉장히 황당해했다.
-김철수 반성하는 거 같지?
-저런 거까지 반성하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
-보통은 그게 무슨 해괴한 말이냐고 따지지 않음?
탱커와 조각가라니.
어떻게 이게 어우러진단 말인가.
-치열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
-ㅋㅋㅋㅋ근데 생각도 못했넼ㅋㅋㅋ
-탱커와 조각가라 진짜 생뚱맞긴 한데 또 목왕이니까 그럴듯해 보이기도?
많은 이들이 목재현의 실력을 의심했다.
-목재현의 실력이 좋을 수는 없음. 직업과 서브 직업 사이에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전혀 없음.
-말세다 말세. 한 우물만 파도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인데 ㅉㅉ
-김철수가 애들 사상 다 버려 버리는 중 ㅠㅠ
-하, 나 때는 안 저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저럼 ㅉㅉㅉ
반얀트리 호텔에 도착한 목재현은 약간 눈치를 살폈다.
‘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치열하지 못했다고 혼날 수도.’
두더지우먼을 보니 그게 확실해졌다.
정말 치열했더라면 성전환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 더욱 뛰어난 실력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진혁형이야 존재 자체가 중요한 스트리머니까 그렇다 쳐도, 나는 아니잖아?’
그의 본질은 탱커.
남자든 여자든 공격이나 잘 막으면 그만이었다.
“목재현.”
“……네, 형.”
“내용은 방송으로 봤지?”
목재현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형의 시험 같은 거다.’
K사단의 중추로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비록 주 직업은 탱커지만, 남들처럼 보조직업도 훌륭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줘야해.’
목재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답했다.
“목왕으로서, 혹시 수호수로 뭔가를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 중이었어요.”
“그래?”
“네.”
목재현은 비장한 마음을 품은 채 차진혁과 수호수로 향했다.
* * *
수호수는 차진혁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무거웠는데 잘 되셨도다, 어서 거추장스러운 가지를 쳐주길 바라시도다.
수호수가 워낙 거대해진 탓에 상당히 높이 올라가야 했는데, 목재현이 커다란 나무줄기 하나를 소환해 냈다.
그것은 덩굴이 되어 수호수의 몸을 뱀처럼 휘감으며 위로 뻗어나갔다.
목재현은 그 덩굴을 탈 것처럼 타고서 수호수의 몸통을 올랐다.
도끼를 든 목재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형, 아무 가지나 베면 안 될 거 같아요. 딱 좋은 것들이 있을 거 같은데, 지금 제 안목으로는 구별하기가 좀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이해한 차진혁은 곧장 트리투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르비스는 물론이고 지구에서도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 트리투리는 잔뜩 거들먹거리며 수호수 쪽으로 걸어왔다.
“던전을 활성화시키는 데 말뚝이 필요하고, 그 말뚝의 재료가 될 가지를 골라달라? 내게 그런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하지. 내 친구 중에 아주 뛰어난 목수가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하면 쉬운 일이기는 해.”
“오, 그렇습니까? 스승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일이 정말 쉬워질 것 같군요.”
그러나 트리투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 안 했나? 나 고소공포증있어.”
좋은 나뭇가지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하는데,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사정을 알게 된 테르서박이 입이 아주 큰 거대 펠리칸으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이 거대 펠리칸의 입은 마치 최고급 승용차처럼 편안한 승마감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테르서박은 은근히 기대했다.
최근 김철수의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철수의 방송에 출연한다는 건 수억명에게 눈도장을 찍는 거나 다름 없었다.
“에잉,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못해.”
트리투리는 ‘그런 일은 나랑 내 친구밖에 못하지’라고 잘난척하면서도, 막상 본인이 그 일은 해주지 못한다며 버텼다.
“스승님. 제 구독자가 몇인 줄 아십니까?”
“구독자? 뭐 한 1,000만쯤 되나?”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20억 명쯤 됩니다.”
“뭐어?! 그렇게 많아? 그 정도였어?”
아르비스인들, 그중에서도 농부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지, 얼마나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쨌든 트리투리의 귀가 쫑긋거렸다.
요즘 그는 명예욕에 찌들어 있는 중이었다.
어딜 가도 영웅이라 대접해 주고 치켜세워주니, 그 맛이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이었다.
그런데 20억이나 되는 구독자가 있다니?
그 정도 되면 파급력도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나를 더 많이 알아보겠지?’
애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아우성을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위대한 영웅이라며 만세를 불러줄지도!
행복한 상상에 잠겼으나 수호수를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 그래도 저 높은 곳은 무리지.’
“게다가 저를 전문적으로 찍어주는 전속 촬영가가 존재합니다. 모든 순간을 예술처럼 포착해 주죠.”
“……그런데?”
“아르비스 출신도 아니고,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제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구독자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겠습니까?”
“…….”
“이게 다 전속 촬영가가 제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우주의 커뮤니티들에 크게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이렇게 구독자가 많아질 수 있었죠.”
차진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실력의 촬영예술가가 아르비스의 영웅 트리투리를 촬영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 *
거대 펠리칸이 날개를 펼치고서 천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거대 펠리칸의 커다란 입에는 트리투리와 그 친구.
그리고 차진혁과 목재현이 탑승해 있었다.
“승마감이…… 제법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스승님. 지금 방송 켜겠습니다.”
트리투리의 혈색이 갑자기 좋아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앞을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가 자연스레 밖을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바람결에 그의 수염이 휘날렸고, 그는 우수에 가득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차진혁은 트리투리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렸다.
잠재되어 있던 특성, ‘방송체질’이 깨어난 것이다.
‘농부가 사실은 방송체질이었다니.’
탱커가 목수고.
농부가 방송체질이고.
‘과거의 나는 정말 편협했었구나.’
그 사실을 다시금 느끼며 날아오른 차진혁 일행은, 트리투리와 아르비스 출신 목수의 도움을 얻어 수호수의 가지들을 잘라냈다.
거대 펠리칸의 입이 굉장히 커서 한쪽에 가지를 잔뜩 쌓아놔도 공간이 충분했다.
지상으로 돌아온 차진혁은 트리투리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이 정도쯤이야 뭘. 으하하핫!”
차진혁과 헤어진 뒤, 트리투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라?’
요즘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
우주 곳곳에서 연사로 서달라며 초청이 오고 있었고, 강연 한 번에 수백만 다이아를 받는 중이었다.
농업기술과 관련된 강의 또한 마찬가지였고.
‘나…… 돈을 안 받았잖아!’
이건 심각한 사실이었다.
그는 명예욕뿐만 아니라 금전욕도 상당히 강한 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다시 돌아가서 제자에게 출장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좀 머쓱한 상황이었다.
‘제자 녀석이…… 일부러 떼먹은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르게 정신없이 휩쓸린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구독자가 20억 명이나 되는 유명 스트리머가 출장비를 일부러 떼어먹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라고 믿었다.
* * *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돈 굳었다.’
돈도 돈이지만, 능수능란한 방송 진행을 통해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얼마 후, 차진혁은 약간 감탄했다.
‘목재현. 정말 치열했구나.’
목재현이 만들어온 말뚝은 척 봐도 명품이었다.
솜씨 좋은 명인이 정성스레 빚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나무에서 빛이 난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재현은 조금 아쉬운 듯했다.
“아직은 나무로밖에 못 만들어요.”
“아냐. 이 정도면 충분해. 수고했다. 훌륭한 실력이네.”
“지, 진짜요?”
목재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혀, 형에게 인정받았어?’
성전환 왜 안 했냐고 혼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정과 칭찬을 받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더, 더 치열하게 할게요!”
-ㅋㅋㅋㅋ 진짜 치열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닼ㅋㅋㅋㅋ
-지구 좀 이상한 거 아님?
-좀 아니고 존나 이상함ㅋㅋㅋㅋ
-저렇게 뒤틀리고 이상한 서버 처음 봄ㅋㅋㅋㅋ
-처음에는 지구 폭망할 줄 알았는데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는 보통 레벨 100 전후에 도태된다.
그건 비단 스트리머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주 직업의 능력이 아닌 다른 직업의 능력을 이래저래 탐하다 보면,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김철수를 비롯하여 한국의 랭커들은 기존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다.
이대로 가다가 지구 서버가 통째로 망하는 거 아니냐고.
-왜 도태 안 됨?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음ㅋㅋㅋㅋㅋㅋ
-서버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듯 ㅋㅋㅋ
-와 저게 되는 서버가 있넼ㅋㅋㅋㅋ
-내 시대에 이런 기괴한 걸 보다니 레전드다 ㅋㅋ
그리고 백과사전 또한 차진혁의 방송을 보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김철수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타자를 치는 그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김철수가 직접 말뚝을 이리저리 박고 있잖아.”
이런 작업에는 보통 아주 뛰어난 결계술사가 동원되기 마련이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고, 굉장히 세밀하게 작업해야 한다.
주변의 흙 한 톨, 공기의 성분 및 농도까지 조절해 가면서 말이다.
결계술사들이 지금의 차진혁을 보면 게거품을 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방송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그런데 왕유미의 중계채널에도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치열 유니버스에서 이 정도는 별로 치열한 것도 아니라는 듯!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고 있는 거야.’
아마도 훗날, 플레이어들의 기준은 김철수의 등장 이전과 등장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제 한 열 개 정도만 더 박으면 될 거 같습니다!”
백과사전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듯 타자를 이어갔다.
[보통의 결계술사들은 체력이 부족하여 하루에 2~3개 작업하면 많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김철수의 작업 속도는 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철수가 작업한 것이 정말 훌륭하게 작동을 할 수 있을지.]
이윽고, 차진혁이 모든 말뚝을 박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