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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70화 (27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70화

백과사전은 크흠, 하고 턱을 매만졌다.

“이걸 반려하네.”

“……야, 너 때문에 나만 쪽팔리게 된 거 알지?”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마시멜로를 비웃고 있었다.

-???: 내가 추천했으니 어지간하면 명예시민 될 듯하네요.

-저번 방송에서 근자감 보이더니ㅋㅋㅋㅋ

-저번 표정 캡처해 옴.

마시멜로는 저번 방송에서 김철수를 명예시민으로 추천한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추천했으니 김철수가 아르비스의 명예시민이 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도 사람이다 보니 은근한 자부심이 표정에 묻어났는데, 편집자가 일부러 그걸 강조해서 연출했다.

사실 마시멜로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김철수가 명예시민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건 백과사전도 마찬가지였다.

마시멜로에게 김철수의 추천인이 되라고 추천한 사람이 바로 백과사전이었다.

백과사전이 민망한 듯이 말했다.

“반려 사유를 확인해 봤는데 말이야. 좀 납득이 어렵긴 하거든?”

“그래. 핑계 대봐라, 똑똑한 내 친구야.”

“솔직히 명예시민 줄 거 같은데…… 여론도 나쁘지 않고 말이야.”

“근데 안 줬잖아.”

“그니까 이상하지. 디온 시장 자살사건도 그렇고. 아무래도 영 수상해.”

너무 신속 정확하게 자살했다.

백과사전은 솔직히 자살했다라기보다는 자살당했다라고 보는 입장이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만 말해. 조롱당해서 기분 나쁜 상태니까.”

“진짜로 하르코엔이 개입되어 있는 거 아닐까?”

“……설마. 하르코엔이 왜 이렇게까지 김철수 일에 관여하겠냐?”

“김철수 얼굴 못 봤냐?”

“봤지.”

“그 얼굴을 보고도 그런 의문이 생기디?”

마시멜로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백과사전의 저 말 같지도 않은 설명이 이해되는 게 짜증 났다.

백과사전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정말 하르코엔 부인이 개입되어 있다면 말이야. 결국 김철수와 하르코엔 부인은 언젠가 부딪치게 되겠지?”

늪지대 크루와 하르코엔 가문은 그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늪지대 크루가 병사1이라면, 하르코엔 가문은 군단1쯤 됐다.

말하자면 김철수는 계란이었고 하르코엔 가문은 바위였다.

마시멜로는 인상을 찡그렸다.

“화제 돌리지 말고. 그래서 반려 사유가 뭐래?”

“제국이 지정한 추천인들의 부재.”

“그런 게 있어?”

“최근에 생겼다더라.”

최근, 명예시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하나 추가되었다.

제국이 지정한 몇몇 집단의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특정 집단의 지지를 받아 명예시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회 각계각층의 집단에게 두루두루 인정과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농부들의 지지를 받아 오라고 보완서류를 요구했나 봐.”

“하필이면 농부들을?”

마시멜로는 인상을 찡그렸다.

마시멜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직업군이었다.

마시멜로가 만나본 대다수의 농부들은 여전히 ‘최고의 스트리머? 당연히 초르콜리지!’ 라고 대답했다.

초르콜리는 마시멜로의 아버지였고, 수십 년 전 아르비스 서버 랭킹 1위의 스트리머였다.

“아직도 100년 전을 사는 그 농부들?”

“직업 비하하냐?”

“역사와 전통과 경험을 중시하는 그 농부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가고 있는데, 농부 계열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라는 것이 마시멜로의 평가였다.

백과사전의 평가도 마시멜로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는데, 백과사전은 이렇게 표현했다.

[……(중략)…… 그들은 아르비스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들 중 하나이며, 직업군의 평균 연령 또한 다른 직업군들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집단이다.]

온라인상에서도 이견이 별로 없을 만큼, 아르비스의 농부들은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으로 통했다.

마시멜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정도면 김철수를 안 받아주겠다는 거 아니냐?”

“원래는 그렇지.”

보통은 여기서 포기할 것이었다.

농부들의 추천을 받아오라니.

게다가 보완서류 제출 기한도 겨우 2주일에 불과했다.

“야, 마시멜로. 진짜 나 한 번만 더 믿어볼래?”

“……널 또 믿으라고? 내가 요즘 얼마나 조롱당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놈이?”

“이번엔 진짜 믿어봐.”

“일단 말해봐라.”

“김철수가 명예시민이 될 수 없는 이유로 해서 매일같이 영상 쏟아지고 있는 거 알지?”

“알지.”

“그럼 너는 김철수가 명예시민이 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로 영상 찍자.”

“농부들한테 추천 받아오라고 했다며? 이건 승인 안 해주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내가 굳이 그 짓을 왜 해?”

백과사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김철수는 김철수다.”

“……뭐?”

“그 이유로 방송하자고.”

“미쳤냐? 무슨 김철수 헌정 영상도 아니고 제목이 왜 그따위냐? 내가 무슨 철수랜드인 줄 알아.”

“…….”

“너도 정신 좀 차려라. 빠는 것도 적당히 빨아야지.”

다음 날, 마시멜로가 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다.

[김철수는 김철수다.]

* * *

지구 서버에 나름대로 큰 이슈가 하나 생겼다.

-김철수가 내건 조건 봤음?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ㅋㅋㅋㅋㅋ

-열정페이 강요 미쳤냨ㅋㅋㅋ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도를 모르네 ㅉㅉ

김철수가 직접 농부 플레이어들을 모집한다고 말했다.

선진 서버인 아르비스로 파견나가서 선진 농업기술들을 배워올 플레이어들을 모집한다는 얘기였다.

-해외 파견도 아니고 서버 파견인데 최저시급만 겨우 맞춰주는 거 실화냐?

-스칸노르비아 때랑 차별 너무 큰 거 아님?

스칸노르비아 때에는 농부 플레이어들에게 땅도 주고 월급도 많이 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을 주기는커녕 월급도 겨우 법적 최저임금에 맞췄다.

-임금만 적은 게 아님 ㅋㅋㅋㅋ

몇몇은 모집요강의 내용들을 퍼와서 이리저리 게시했다.

[*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다소의 모욕과 불합리함을 참아낼 수 있는 분]

[* 적정수준의 노동시간과 강도를 보장해 줄 수 없음]

[* 본인 사업처럼 열심과 열정을 다해 임하실 분]

[* 숙식의 열악함을 참고 인내할 수 있는 분.]

수많은 이들이 비웃었다.

-저 정도면 그냥 모집 안 한다고 얘기하지 ㅉㅉ

-모집할 생각이 없는듯 ㅋㅋ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아무도 안 감.

사실 차진혁도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 또한 본래는 스칸노르비아때처럼 하려고 했다.

월급을 많이 주고 혜택을 크게 줘서 아르비스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걸 왕유미와 한세린이 반대했다.

“저는 반대입니당!”

“나도 반대.”

둘은 마치 일심동체라도 된 것처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오히려 돈을 안 줘야 한다고 봅니닷!”

“순수한 열정을 시험하는 거지.”

차진혁이 보기에 둘의 눈에는 비슷한 종류의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돈을 보고 지원하는 애들은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당연합니닷!”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솔직히 차진혁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리고 모집 당일, 겨우 20초만에 모집이 마감되었다.

경쟁률은 무려 300:1.

전 세계에서 농부계열 플레이어들이 밀려들었다.

각 국가 서버의 최상위 랭커들이 대다수였다.

차진혁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정도는 치열해야지.’

다소 불합리함을 참을 수 있어야, 돈쯤은 못 벌어도 된다는 마인드로, 모욕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플레이에 임해야 최상위 랭커가 될 수 있다.

‘내가 틀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커뮤니티 여론을 보면서 좀 흔들렸었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받은 느낌이었다.

1차 서류 통과자들을 걸러내는 건 이번에 새로 입사(?)한 욜린이 맡았다.

욜린은 사무능력에 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1차적으로 지원자들을 걸러내주었다.

“특별한 지원자가 한 명 있어서 따로 보고 드리려고요.”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다.

‘어?’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키마에프?’

스칸노르비아를 지날 때 인상깊게 보았던 플레이어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LV209/키마에프/수목영양사/수목의 은인]

실제로 농부들의 평도 좋았고.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저 양반 손을 타면 수확이 엄청 잘 됩니다.”

“엄청 희귀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9성 직업이자 레벨 200대 농부인 그가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다.

[……(중략)…… 저를 뽑아만 주신다면, 스칸노르비아의 땅을 MK재단에 헌납하고, 매월 300만 다이아를 후원하겠습니다.]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내면서 파견가고 싶어 한다니.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치열함의 그릇이 남들과 달랐다.

차진혁은 약간 감탄하고 말았다.

“역시, 뛰어난 농부답네.”

아르비스로 넘어갈 플레이어들 200여 명이 꾸려졌다.

각 국가의 최상위 랭커들이었다,

* * *

농업 계열 플레이어들은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는 중.

농업 계열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아르비스의 3대 제국은 1차산업 육성을 위하여 많은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노동력 투입제도’였다.

농업계열 플레이어들은 타 서버의 플레이어들의 아르비스 입국을 요청할 수 있었다.

타 서버 플레이어들은 노동비자를 발급받아, 일손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이 제도를 사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식민지 제도가 사라진 지금, 아르비스의 농부들이 요청한다고 해서 그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무려 200명가량의 사람들이 아르비스에 파견된 게 아닌가.

“눈빛들이 아주 마음에 드는 구만!”

“식민지 애들은 보통 동태 눈깔인데 말이야. 하하핫!”

“부려먹을 맛이 나겠군!”

“간만에 3등시민 수혈이라, 이번 가을은 좀 편하겠어!”

차진혁은 노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저번에, 황금 수호수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었던 그 노인이었다.

이름은 트리투리.

“정말로 3등 시민들을 데려왔구만?”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게 벌써일 줄은 몰랐지만.

“요즘 3등시민 애들은 정신이 좀 글러먹었는데 말이야. 뻑하면 임금이 어쩌니, 처우가 어쩌니, 숙소가 어쩌니, 말이 많아서 말이지. 아, 옛날이 좋았어.”

“어르신,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물론 노인은 차진혁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수다가 또 오래 고팠는지, 그는 자기 하고 싶은 말과 자랑만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자랑이 사실 차진혁이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오, 정말입니까? 수호수에게 아주 특효인 비료가 있다고요?”

“그래.”

트리투리는 차진혁이 제법 괜찮은 3등 시민이라고 느꼈다.

그는 황금 수호수를 키워낸 것을 일생 일대의 자랑이자 훈장이라 여기는 농부.

어딜 가나 수호수 얘기를 달고 살았는데,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무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차, 차진혁이 굉장히 흥미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니 절로 신이 난 것이었다.

“……해서, 이렇게 한 거지.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어린 수호수가 순식간에 수호수로 자라났지, 엣헴.”

“그것 참 대단하군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 차진혁은 본인도 수호수의 파종꾼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아주 기특한 새싹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차진혁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지?”

“이후 수호수와 정신적인 연결이 생겨서 여러모로 대화를 나누는 중입니다. 요즘에는 자꾸 적극적으로 마물을 깨부수겠다며 욕심을 내고 있지만요. 이거, 정상적인 성장이겠죠?”

어느덧, 트리투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진지하다 못해 자못 심각해 보였다.

‘내가 뭐 실수했나?’

“농부님?”

“아, 그러니까, 아, 어, 그래. 수호수랑…… 대화를 나누고 있단…… 말이지?”

트리투리는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수호수와 대화? #그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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