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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71화 (27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71화

트리투리는 거의 100년 전, 할아버지가 해줬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최고의 농부는 농작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농부지!

-에이, 거짓말! 농작물과 대화를 어떻게 나눠요?

-나눌 수 있단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수호수랑 대화를 하셨어.

-우와, 진짜요?

-그럼!

-저도 대화할래요!

-식물과 대화를 한다는 건 하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농부들만이 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트리투리는 분명히 가능할 거야.

-저는 수호수랑 대화를 나눌 거예요.

할아버지는 큼지막한 손으로 트리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었다.

-허허. 그게 내 꿈이란다.

그 이후로 트리투리의 꿈은 수호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수호수를 키워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의 꿈은 절반가량 이루어졌다.

아르비스에 거대한 수호수가 자리 잡도록 만든 1등 공신.

매지크 제국 선정 올해의 가장 훌륭한 농부로 꼽히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트리투리는 기쁘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의 성공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그런데 100년가량이 지난 지금, 지구의 초짜 플레이어 하나가 나타나서 수호수와 대화를 나눴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졌다.

[#진실인가?]

저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럽고 질투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내 평생소원이었는데]

눈앞의 청년이 잠깐 미워졌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질투가 났고, 거짓이라면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거니까.

그러나 그는 곧장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 싫을 것이 아니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였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내 후계자를 통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기필코 #제자_삼으리]

그는 굳게 결심했다.

차진혁을 농부로 키우겠다고 말이다.

“흐음, 자네 이름이 김철수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차진혁은 순간 긴장했다.

미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광기가 트리투리의 눈에도 깃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랭커들 중에는 미친 사람들의 비율이 높기 마련이었고, 차진혁은 저런 눈빛을 알아차리는데 이제 도가 텄다.

“직업은 농부고?”

“스트리머요.”

“그래 그거.”

“스트리머라고…… 방송하는 직업인데.”

“알아, 알아. 농부의 일종이잖나?”

여지껏 그래왔듯 트리투리는 차진혁의 말을 잘 안 들었다.

그는 그냥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농부=스트리머’였다.

[#내 제자는 #너로_ 정했다]

차진혁은 직감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코 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라는 것이 제 어릴 적 꿈이었습니다.”

“뭐?”

“수호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 말입니다.”

“그니까, 그게 꿈이었다?”

“네.”

트리투리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지만 더 코치코치 캐묻지는 않았다.

“하긴.”

생각보다 쉽게 납득했다.

차진혁을 제자 삼고 싶다는 마음도 진짜이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 수호수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차진혁이 ‘그게 꿈이었습니다’라는 말을 금방 받아들였다.

“제가 농부에 별로 재능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어차피 물어봐봤자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할 것이 뻔해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수호수랑 관련된 겁니다.”

“물론이지.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

“수호수를 잘 키우려면 특별한 비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뭡니까?”

“아, 그거 특별한 건 없네. 수호수의 아주 신령한 영목이지. 그래서 영적인 힘이 담긴 모든 것들이 수호수의 양분이 되네.”

“영적인 힘이 담긴 것이라면……?”

“정령석도 좋고 에고가 담긴 뭐든.”

그는 또 그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옛날이 좋기는 했어. CB를 갈아서 주면 됐는데 말이야.”

“……예?”

“CB라고 생명체의 정신을 파고드는 기생충이야. 한 마리 한 마리가 가진 영적인 힘은 아주 미약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해서 비료로 만들면 그것만큼 가성비가 좋은 게 없거든.”

“…….”

“생각해 보게. 이 세상에 에고가 있는 물건이 얼마나 있겠나?”

잘 생각해 보니 차진혁도 에고가 있는 아티팩트는 미리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를 잘게 부숴서 수호수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 정령석이 제일 좋은 거 아닙니까?”

“정령석은 그 성질이 뚜렷해서 가끔 탈이 나기도 하거든. 수호수랑 잘 맞으면 괜찮은데, 잘 안 맞으면 병나. 게다가 수급도 불안정하고 말이야.”

“…….”

“아주 좋은 걸 한 번 먹이는 거보다, 적당히 좋은 걸 꾸준히 먹이는 게 최고네. 여러모로 CB만큼 좋은 게 없지. 근데 요즘에는 인권이다 뭐다 해서 CB를 금지시켰단 말이야. 옛날이 참 좋았어.”

* * *

농부들은 차진혁을 무척 좋게 봤다.

“명예시민이 되고 싶다고? 3등 시민이?”

건방지게 그게 무슨 말이냐, 하는 농부들도 있기는 했지만 트리투리는 앞장서서 그들을 설득해 주었다.

3등 시민이지만 아주 괜찮은 녀석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굉장히 열정이 뛰어난 -노예스러운- 일꾼들을 200여 명이나 데려오지 않았는가.

덕분에 이번 해에는 일이 아주 쉬워질 예정이었다.

“흠, 그래도 이 정도면 명예시민 정도는 시켜줄 수 있겠지.”

“나도 동의.”

“동의해 주지 뭐.”

결국 차진혁은 아르비스의 명예시민이 되었고, 아르비스 3제국령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법적으로 10년간 차진혁은 아르비스의 시민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마시멜로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당연히 다 큰 그림이었지.”

마시멜로의 드라마에 그의 팬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믿고 있었다고!

-역시 마시멜로는 마시멜로다!

“당연히 날 비웃고 조롱할 거라고 생각했지. 이 또한 다 예상했어. 사이다를 위한 약간의 고구마랄까?”

-마시멜로 조롱하던 새끼들 다 나와보라그래 ㅋㅋㅋㅋㅋ

-다 마시멜로 손바닥 위에서 놀아남ㅋㅋ

-진짜 한 치 앞밖에 못 보는 새끼들ㅋㅋㅋ

어쨌든 마시멜로의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좋아요 숫자도, 조회수도, 간만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방송을 마친 마시멜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농부들한테 어떻게 동의를 받았지?”

그 또한 일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다만, 저번에 올린 영상은 대박이 났다.

[김철수는 김철수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222

-333

마시멜로는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진짜…… 김철수는 김철수인가? 아이씨,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아주 잠깐, 철수랜드 같은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큰 자괴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영상들 조회수, 좋아요, 댓글 수가 올라가는 걸 보니 다시 기뻐졌다.

저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그냥 철수랜드 할까?”

……2기 모집이 언제더라?

* * *

명예시민 자격도 획득했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사이나제도로 향했다.

뇌룡은 무척이나 뛰어난 탈 것이었고, 차진혁과 르세핌은 비교적 쉽게 사이나 제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르세핌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여길 이렇게 쉽게 오다니.”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일단 뇌룡을 테이밍한 것부터가 대단한 일인데, 사실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뇌룡을 타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지.”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게 대단해?’

“뇌룡을 테이밍하는데 성공한 사람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테이밍한 이후에 뇌룡에게 죽은 사람이 과반이 넘거든.”

“뇌룡에게 죽어? 어떻게?”

“열받은 뇌룡이 직접 죽이는 경우도 있고, 아까처럼 날아가다가 실수인 척 떨어뜨려서 죽이기도 하고.”

……그런 게 있다고? 차진혁으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회귀 전에 테르서박이 하도 잘 타고 다녀서 그냥 똑같이 했을 뿐.

이게 우주 기준에서 보면 대단한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르세핌은 신발을 벗고 걷기 시작했다.

“여기 모래가 엄청 고와서 밟으면 기분 좋기는 한데, 모래 지렁이 같은 애들 나오거든?”

“머리를 부수면 되나?”

“……그래.”

적당히 피해서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꼭 머리를 부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딜러가’ 그게 편하다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발자국을 남기며 앞장서서 걷던 르세핌이 물었다.

“나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은사 타란튤라 상대할 때 왜 뇌룡을 부르지 않았냐? 아까 협조하는 거 보니 뇌룡 불렀으면 훨씬 안전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궁금해하던 르세핌은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아! 혹시 네 뇌룡은 전투는 거부하는 타입인가?”

“아니,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아냐. 그렇게 자존심 세우지 않아도 돼.”

테이머들은 뭘 못한다고 그러면 지나치게 자존심 상해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르세핌은 테이머들의 경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 뇌룡은 내 말 안 들어서 전투 안 해줘, 같은 말은 죽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뇌룡들은 원래 까탈스럽고 자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해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게 아니라 최후의 패로 쓰려고 아껴둔 거야.”

“……최후의 패?”

르세핌은 미공개 녹화분을 이미 확인한 상태.

영상은 1인칭으로 촬영되었고, 이미 ‘최후’라고 여길 만한 지점들이 꽤 있었다.

“잡아먹히기 직전이던데?”

보통 그 정도가 최후 아닌가?

“CB가 통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잖아.”

CB가 통해서 다행이지, 안 통했으면 아마 잡아먹혔을 것이 분명했다.

차진혁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비교적 상식적인 반응에 르세핌은 왠지 모르게 조금 기뻐졌다.

그래도 완전히 돌아버린 놈은 아니구나 싶어서.

“혹시 잡아먹히면 0.1초 만에 소화되는 놈이었나?”

“……뭐?”

“그렇게 강력한 소화력을 가진 놈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니, 그렇게 곧바로 소화되지는 않지.”

“아니면 씹히면 즉사하는 즉살의 독니 같은 걸 갖고 있어?”

“……아니.”

“그런 거 아니면 상관없지 않나?”

차진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머리만 보호하면 많이 씹혀도 몇 분 정도는 살 수 있잖아.”

르세핌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솔직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너 진짜 멋있는 애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한다.”

‘철수랜드 2기 공식 가입 일정이 언제지?’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그것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 * *

사이나 제도의 도로 사정은 꽤 열악했다.

물론, 여기서 열악하다는 건 ‘아르비스치고’ 열악하다는 얘기였다.

아르비스의 3대 제국 도시는 하늘길이 자유로이 열려 있고, 곳곳이 워프포탈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이곳은 그렇지 못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구의 수준과 비슷했다.

바퀴로 지상을 달리는 탈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워프포탈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아, 거기 알지. 이용요금은 38만 다이아요.”

택시도 있기는 했는데 요금이 무척 비쌌다.

르세핌의 말에 따르면 10배가 넘는 바가지라고 했다.

차라리 뇌룡을 타고 날아갈까 싶기도 했는데, 사이나 제도 내에서는 비행이 금지였다.

“싫으면 타지 말고.”

택시 기사는 외지인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차피 여기 택시는 몇 대 없수. 나 정도면 상당히 양심적인데 그냥 타시지?”

“…….”

“아 시간 아깝게 뭐하는 거요? 난 시간이 돈인 사람이야!”

택시기사의 태도는 약간 고압적이었다.

승차를 거부했다가는 주먹이라도 날아올 기세였다.

“그러죠.”

“현명한 선택이요. 화날 뻔했네.”

꽤 비싼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탔다.

“좋은 하루 보내슈!”

10배에 가까운 바가지를 씌우고 무척 신이 난 기사를 보며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곧 저 택시에서는 불이 날 겁니다.”

택시의 트렁크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여자애 하나가 앉아서 차진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엘리, 옴총 신나게 놀 거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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