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3화
2번 늪지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어린애처럼 뿌애애앵!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테르서박은 자애로운 표정과 몸짓으로 2번 늪지대를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2번 늪지대는 칭얼대며 말했다.
“저는…… 역사를 좋아하는 역사학도였습니다. 과거는 곧 현재와 미래의 이정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래. 착하지.”
테르서박이 2번 늪지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걸 테이밍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테이밍이 아니라 최면 같은데? 아니면 세뇌?’
왜 사람을 테이밍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동종(同種) 테이밍을 하게 되면 대부분 저런 모습이 돼서 약간 반인륜적이었다.
그래서 회귀 전 테르서박이 이런 걸 극도로 반대했던 거고.
“하지만 저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 흔한 교과서도 제게는 너무 비쌌고. 잃어버린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거든요.”
역사를 사랑했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번 늪지대는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모든 것을 말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테르서박은 그의 말을 들어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느덧 2번 늪지대의 칭얼거림이 멈췄다.
눈동자는 여전히 멍한 상태.
“그래서, 1번 늪지대는 어디에 있니?”
“그분은 아르비스 서버…….”
거기까지 말한 2번 늪지대가 왈칵! 피를 토했다.
“웨에에엑!”
그 통증에 2번 늪지대는 정신을 되찾은 듯했다.
“1번 이 개…….”
2번 늪지대는 강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차진혁이나 테르서박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1번 늪지대를 향한 분노였다.
[#나한테 이걸 먹여?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웨에에에엑!
2번 늪지대는 여러차례 피를 토했다.
2번 늪지대와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 테르서박이 다급하게 외쳤다.
“힐러! 힐러!!!”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여러차례 피를 토하던 2번 늪지대는 파르르 떨며 쓰러진 채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곽도형이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 보십시오, 형님.”
2번 늪지대가 토한 피 사이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냐?”
[LV239/C.B]
[LV238/C.B]
[LV237/C.B]
기생충의 한 종류인 것 같았는데 레벨이 급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숙주의 레벨로 변하는 기생충인것 같습니다.”
2번 늪지대의 레벨이 239였으니 239로 시작해서 쭉쭉 떨어지고 있었다.
[LV177/C.B]
“C.B가 뭘까요?”
궁금해서 눈에 힘을 꽉 줘봤다.
보일까?
[LV122/C.B]
보였다.
밑줄 표시를 통해 상세 설명을 열어보았다.
[LV100/C.B(Control bug)]
“이름은 컨트롤 버그. 아마도 몸 속에 주입해서 숙주를 컨트롤할 수 있는 형태의 기생충인 것 같습니다. 인공 마물 같기도 하고요.”
상황을 보아하니 이건 1번 늪지대가 2번 늪지대의 몸에 몰래 심어놓은 것 같았다.
[LV92/C.B]
‘잠깐.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보아하니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명을 듣기 전에 미리를 들어 올렸다.
‘살살 팬다.’
[스킬,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합니다.]
사람보다는 훨씬 길들이기가 쉬웠다.
“저는 편하게 조종벌레라고 부르겠습니다. 방금, 조종벌레를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안 죽었네요.”
* * *
차진혁은 바닥에 꿈틀거리는 조종벌레를 몽둥이(미리)로 보드랍게 다스린 뒤, 집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사실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 장면을 보며 검은가시 연합의 암살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걸 다시 삼킨다고?’
‘저걸 한다고?’
‘우린 아직 멀었구나.’
우리 나름대로 꽤 열심히 플레이한다고 자부했는데, 역시 김철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 곽도형은 생각했다.
‘진정 존경스러운 형님이시다.’
테르서박은 깊이 반성했다.
‘저기서 저걸 테이밍할 생각을 했다고?’
왜 나는 저 생각을 못했지.
‘심지어 저걸 삼켰어?’
게다가 기생충 형태의 마물에게 자신의 몸을 숙주로 내어주는 저 ‘진정성 있는 테이머의 자세’에 몹시 감동받았다.
‘나와 가는 길이 다르기는 하지만…… 김철수는 테이밍에 진심이구나.’
어쨌든 차진혁은 조종벌레를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오. 기억들이 전이되고 있습니다.”
조종벌레는 숙주의 몸에 기생하면서 많은 기억들을 지니고 있었다.
“아쉽게도 1번 늪지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르비스 서버라는 것은 알겠네요. 그놈 잡으려면 아르비스 서버 루트를 뚫어야할 거 같습니다.”
이후 기억 속에서 역사공부에 진심이었던 2번 늪지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2번 늪지대는 정말로 역사를 사랑했던 역사학도였네요.”
사실 그의 배경에는 별로 관심없기는 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중요한 건 2번 늪지대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만약 자신이 약했더라면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능력도 빼앗겼을 거고.
‘중요한 건…… 얘가 준비한 최후의 안가가 존재한다는 거겠지.’
2번 늪지대는 나름 이름있는 각성자 사냥꾼이었다.
이자가 준비한 최후의 안가.
그러니까 아지트에 가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을 것이었다.
‘의외로 연희동이었네?’
2번 늪지대가 판단하기에 연희동이 안가로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안가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마침 연희동이네요.”
* * *
연희동으로 돌아가는 길.
테르서박은 몹시 궁금했다.
“이봐. 김철수. 조종벌레는 어떻게 됐지?”
“……아.”
인지하지 못하던 사이, 조종벌레와의 교감은 끊어졌다.
차진혁의 몸이 조종벌레는 일종의 독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체내의 화기(火氣)가 조종벌레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이었다.
테르서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그런 것인가.”
“?”
“교감할 수 있는 생명체가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던 그 정성어린 마음. 나는 다 이해한다.”
딱히 그 정도 경건한 마음은 아니었는데.
차진혁은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교감을 이어가고 살리려고 했던 네 희생정신은…… 다시 한번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군. 결국 조종벌레는 죽었고, 너도 무척이나 슬프겠구나.”
“…….”
“그래서 언급하기도 꺼리는 것이구나.”
[#더 강해지자]
테르서박은 회귀 전과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 테르서박은 그냥 즐기다 보니 랭커가 된 타입인데?’
테이밍이 좋아서, 교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테이밍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랭커가 된 타입이다.
저렇게 열의를 불태우면 강해지겠다고 생각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튼 좋은 거지 뭐.’
저런 향상심이 사람을 발전시키는 법 아니겠는가.
* * *
어느덧 연희동에 도착했다.
곽도형 및 검은가시 연합원들과는 헤어졌고, 대신 한 사람이 합류했다.
바로 천사소녀 송하영이었다.
“이제 내 차례네.”
“그래. 잘 부탁한다.”
“근데 집주인은 죽은 거지?”
“어.”
“그럼 좀 덜 쫄리는데.”
송하영은 무척 아쉬운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뭐, 나름 이름있는 각성자사냥꾼이니까 좋은 거라도 나오겠지! 가보자.”
차진혁과 송하영은 2번 늪지대가 준비한 최후의 안가에 도착했다.
겉보기로는 여느 가정집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이라면 특이점을 찾지 못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2번 늪지대는 꽤 꼼꼼한 성격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함께 온 사람이 도둑질이라면 최고라 자부하는 송하영.
이내 그녀는 책장 뒤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송하영은 책장에 꽂혀 있던 책 몇 권을 임의로 꺼내서 자리를 바꿔 끼웠다.
그러자 드르륵- 소리와 함께 책장이 반 바퀴 돌아 안쪽에 공간이 생겨났다.
송하영을 따라 걷다 보니 안쪽에 두꺼운 철문이 하나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미리는 약간 흥분했다.
-부술까요?
그러나 송하영의 생각은 달랐다.
부수는 건 도둑으로서 품위없는 행동이었다.
모름지기 훌륭한 도둑이라면, 집주인이 뭘 잃어버렸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했다.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움직여야 도덕적인 도둑질 아니겠는가.
“지문인식이네. 그것도 열 손가락이 전부 있어야 해.”
“확실히 꼼꼼한 놈이었네.”
“그러게.”
“그럼 이제 부숴도 되겠냐?”
“응? 무슨 소리야?”
송하영은 인벤토리를 열어 보존마법이 걸린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지문은 다 떠왔지.”
송하영은 준비된 도둑이었다.
* * *
안쪽에는 2번 늪지대의 보물들이 쌓여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서재에 가까운 형상.
책상이 하나 있었고 책장에 책이 빼곡히 보관되어 있었다.
송하영들은 신이 나서 모든 걸 다 훔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고, 차진혁은 이중에서 뭐가 제일 쓸 만할까를 고민했다.
“다행히 이곳은 연희동입니다.”
이곳은 수호수의 영역.
차진혁의 모든 능력이 대폭 높아지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제대로 다루기 어려운 ‘행운의 신’도 마찬가지였다.
“수호수의 도움을 받으며 행운의 신을 사용해도 기절까지는 하지 않을 듯합니다.”
수호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이 몸이 나설 때가 되신 것인가!
수호수는 정신적으로 차진혁과 단단한 결속을 이룬 상태.
그렇다 보니 또 다른 결속상대인 미리에게 은근한 불안감을 느끼던 상태였다.
미리는 주인과 늘 함께하며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조심하여야 한다, 주인이여, 왜냐하면은요, 주인이 쓰러지면 저 도둑이 주인의 주머니를 털어버릴 것이 분명하니까도다!
오, 그럴듯하군.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하영은 도둑질에 진심인 플레이어.
그러니까 자신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주머니를 털어갈 수 있는 도둑이었다.
“대비는 살짝 해놓겠습니다.”
차진혁은 송하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송하영은 완전히 방심한 채 책장을 뒤지던 중이었다.
‘살살해라, 미리야. 진짜 부수면 안 된다.’
차진혁은 송하영의 뒤통수를 향해 미리를 휘둘렀다.
빠각!
적당히 힘 조절을 잘한 덕분에 송하영은 별다른 고통 없이 기절했다.
방송멘트도 잊지 않았다.
“알고 맞는 강한 공격보다 모르고 맞는 약한 공격이 때로는 위협적인 법이죠.”
정확하고 올곧은 플레이에 내심 뿌듯해진 차진혁은, 이내 ‘행운의 신’을 사용했다.
공간 전체가 웅웅거리며 떨리는가 싶더니, 책장에서 책 한 권이 툭! 떨어져 내렸다.
잠깐이지만 책이 번쩍이는 것처럼 보였다.
‘헉…… 헉……!’
겨우 신비 한 번 운용했을 뿐인데 또 체력이 바닥났다.
수호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것 같았다.
역시 송하영을 기절시켜놓길 잘한 것 같았다.
“이 책이 뭐길래 행운의 신이 이렇게까지 반응했던 걸까요?”
책의 제목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였다.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2번 늪지대.
2번 늪지대가 스스로 편찬하고 있던 역사서 비슷한 책 같았다.
[아르비스에는 분명 왜곡된 역사가 존재한다. 잃어버린 역사.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
“음.”
솔직히 역사에는 별로 관심없었다.
방송각을 살려줄 만한 뭐가 안 나오나?
어그로가 좀 끌려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모두가 잃어버렸다. 모두가 지워버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찾아내야만 한다. 마왕 이전의 통치자. 가장 위대했던 여왕 베셀리티를.]
‘……어?’
낯익은 이름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