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52화
최갑수의 공방 내, 최고의 시설을 갖춘 멀티 미디어룸에 늘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
이름은 김민지. 늘 그렇듯 김철수의 방송을 시청하던 김민지는 무척 분노했다.
“이 새끼 용서 못 해.”
또다시 청담동 일대에 지진이 일었다.
요즘 들어 꽤 잦은 현상이었고, 최갑수는 이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진 상태였다.
“워워.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방장 사기맵? 맵핵? 거기까진 봐줬어. 근데 저건 버그잖아!”
최갑수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마왕 지원해 줄 때는 더 심했잖아요.’
유효기간 5분-실제로는 3분-짜리 히드라 한 마리?
편애광신이 했던 것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
편애광신이 눈 돌아가면 온갖 버그와 핵이 다 튀어나온다.
괜히 그간 봉인되어서 잠들어 있던 게 아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실 예정입니까?”
“아 몰라. 나 개빡쳤어.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러면 김철수가 슬퍼할 텐데요?”
“……!”
이제 최갑수는 김민지를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깨우친 상태.
“철수 님이 슬퍼한다고?”
“그럼요. 김철수는 구독자를 무척 아낍니다. 그중에서도 철수랜드에게는 아주 각별한 정을 품고 있겠죠. 철수랜드 1호인 민지 양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게 된다면, 김철수는 무척 슬플 겁니다.”
“여, 역시 그렇지?”
청담동의 지진이 잦아들었다.
“너무 직접 관여하시면 김철수 방송을 오래 못 보실 겁니다.”
“좋아. 그럼 조금만 관여해야겠어.”
2번 늪지대의 위치를 추적해서 은근슬쩍 흘리기로 했다.
“그게…… 추적이 됩니까?”
“저런 등신이 히드라를 소환하려면 아주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분명 많은 흔적이 남아 있겠지.”
김민지는 실제로 2번 늪지대의 은신처를 찾았다.
경기도의 한 던전에 은신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최갑수의 공방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앉은 자리에서.
최갑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눈빛이…… 돌았군.’
김민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냥 던전 붕괴시켜 버릴까…….”
* * *
김민지는 손톱을 살살 물어뜯었다.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는데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 나는 철수 님 방송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려 버렸단 말이야.”
“…….”
“언제 방송 켜시지? 지금쯤 2번 늪지대를 잡았을 텐데.”
최갑수가 딱히 대답하지 않자 김민지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본심을 꺼냈다.
“……해킹해도 될까?”
사실 최갑수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해킹을 통해 김철수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
이것은 ‘미공개 방영분’을 심지어 ‘선공개’로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최갑수는 김민지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자꾸 그러시면 김철수가 화낼 수도 있습니다.”
“여, 역시 그렇겠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김민지의 금단증상은 더 심해졌다.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철수랜드를 사랑하는 김철수니까, 조금은 이해해 주겠죠.”
“여, 역시 그렇지?!”
“혹시 김철수가 실망한다고 하면 제가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시죠? 저랑 김철수랑 꽤 친한 거.”
“알지, 알지.”
“혹시 문제되면 제가 나중에라도 얘기 잘 해보겠습니다.”
“역시 영감이야. 고마워!”
김민지의 얼굴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최갑수 역시 꽤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허공에 미공개 방영분이 재생될 것이었다.
‘역시 녹화 중이었군!’
허공에 현재 김철수의 모습이 보였다.
김민지의 말대로, 이미 2번 늪지대를 사로잡은 상태였다.
영상 속, 곽도형이 물었다.
-“네. 혹시 철수랜드 1호 아십니까?”
-“아, 민지?”
그 말에 김민지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 영감. 지금 내 이름 불러주신 거 맞지?”
“예. 맞는 거 같은데요.”
“내 이름 기억해 주신 거지?”
“예.”
최갑수는 말하고 싶었다.
수호수의 결계를 뚫고 비집고 들어가서, 설정값을 매만진 다음, 피카소의 붓을 활용하여 먼치킨 스트리머로 각성시킨 장본인……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요란하게 만났으면 기억 못하는 게 이상할 거 같은데요.
“감동이야……!”
그렇지만 김민지는 크게 감동받은 듯했다.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당연하지. 뛰어난 해커고,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
-“아…… 그럼 이거 전해드려도 되겠네요.”
-“이게 뭔데?”
김민지가 보낸 쪽지였다.
[늘 응원해요. 사랑해요. 화이팅♡]
차진혁은 피식 웃었다.
실제로 만나면 수줍어서 아무말도 못하면서 글로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인사도 건넸다.
-“고마워, 민지야.”
김민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심장에 통증이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
“저번에는 나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더니…….”
최갑수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김민지의 상태는 김철수가 똥을 싸도 ‘나를 위해 똥을 싸시는 거야! 감동!’을 외쳐댈 것이 뻔했으니까.
“이번에는 나를 기억해 주고 칭찬해 주시는구나.”
얼른 앱에 접속해서 2호 녀석에게 자랑해야 하는데.
철수 님이 내 이름 불러줬다, 고맙다고 해줬다, 자랑하면 아마 복장이 뒤집어지겠지!
철수랜드 2호와 1호 사이에는 이렇게 엄청난 갭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저 핵쟁이 새끼가 또 무슨 함정을 파놨을지 몰라.’
그녀는 던전 내부를 샅샅이 탐색했다.
“저 치사하고 더럽고 옹졸한 늪지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려놨을지 몰라.”
버그급 마물인 히드라까지 불러왔다.
저런 치졸한 놈이 또 얼마나 사악한 짓을 해놨을지 모를 일이었다.
“버그는 바로잡아야지.”
또 여기에 히드라 같은 게 튀어나오면 그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타닥! 타닥!
그녀의 손가락이 재빨리 움직여 허공에 생겨난 자판을 두드렸다.
“나는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거야. 아주 정의롭지. 그렇지?”
“……예.”
* * *
“너는 진짜 용서가 안 된다.”
차진혁은 미리를 꺼내 들었다.
미리는 어느새 뭉툭한 몽둥이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우리 함께, 쾌락을 즐겨보아요.
미리 또한 2번 늪지대를 용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 이 모습이 더 아름답겠어요.
미리의 몸이 또 저절로 변했다.
이번에는 기다란 쇠꼬챙이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일단은 애피타이저부터 즐겨볼까요?
메인은 역시 머리.
그렇지만 황홀한 메인을 맛보기 전, 애피타이저는 필수였다.
-아주 거칠게 다뤄주세요.
차진혁은 미리의 겉모습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쇠꼬챙이든 방망이든 망치든, 어쨌든 후려치면 둔기니까.
“사실 2번 늪지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2번 늪지대가 선을 넘은 건 사실이지만 2번 늪지대가 끝이 아니다.
2번 늪지대가 혼자 움직였을 리 없다.
“아마 1번 늪지대까지 연관되어 있겠죠.”
각성자 사냥꾼들이 자신을 노리는 건 솔직히 조금 설레는 일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꾸 꼬이는 건 별로였다.
심지어 핵쟁이 같은 놈은 더욱 별로였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1번 늪지대까지 엮어서 처단하기로.”
이쪽을 먼저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어중이떠중이들은 지레 겁먹고 나서지 않겠지.
진짜배기들만 덤벼서 쫄깃하게 해주겠지.
“그러려면 1번 늪지대의 위치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요.”
어느덧 정신을 차린 2번 늪지대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말했다.
“너 따위가 형님 계신 곳을 알 수 있을 것 같으냐?”
2번 늪지대는 흐흐-웃었다.
“나는 다음의 다음의 다음을 준비한다.”
이 은신처가 발각될 것도 예상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 같이 죽는다.”
이 던전 자체가 통째로 붕괴될 예정이었다.
김철수의 능력을 빼앗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제 여한은 없었다.
‘곧, 이곳은 무너진…… 응?’
그런데 너무 평온했다.
지금쯤이면 진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어째서……?’
던전은 멀쩡했다.
차진혁이 미리를 들고 다가왔다.
“뭐 잘못 먹었냐?”
차진혁이 히죽 웃으며 미리를 휘둘렀다.
“빠각, 빠각, 또 빠각.”
* * *
‘생각보다 꽤 단단한 정신력을 가졌네.’
솔직히 몇 대 때리면 1번 늪지대의 위치를 알려줄 것 같았다.
그렇지만 2번 늪지대는 완강했다.
솔직히 폭력을 더 쓰면 해결될 사안이기는 했지만, 현재 2번 늪지대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 패면 죽겠다.’
그래서 작전을 조금 바꿨다.
[스킬, 길들이기(물리)를 사용합니다.]
폭력의 강도는 낮추고 스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2번 늪지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따위 조잡한 스킬에 당할 것 같으냐!”
빠각!
“어림도 없다!”
빠각!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빠각!
“차라리 죽여라!”
빠각!
“제발…… 죽여줘.”
차진혁은 솔직히 2번 늪지대의 정신력에 감탄했다.
‘오, 확실히 네임드는 다르다 이건가.’
우주급 랭커라고 보기에는 애매해도, 어쨌든 이름이 꽤 알려진 크루의 크루원.
겨우 3인 크루인데 이정도 명성을 가졌다는 건 역시 실력이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결국 2번 늪지대는 기절했고 차진혁은 턱을 매만졌다.
“길들이기가 안 통하네요. 제가 테이머가 아니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테르서박이 합류했다.
차진혁은 마음 속으로 테르서박을 설득할 준비를 끝마쳤다.
‘사람을 테이밍하는 건 반인륜적이고 어쩌고저쩌고, 동종 간의 교감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차진혁이 아는 테르서박이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실제로 회귀 전 테르서박은 ‘사람을 테이밍 대상으로 보면 안 되는 101가지 이유’라는 책을 저술한 적도 있었다.
그는 테이머가 ‘사람을 상대로한 테이밍’을 시도하는 것을 지극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보는 사람이었다.
“테르서박. 그러니까 이건…….”
“교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
“……어?”
테르서박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곧장 쓰러진 2번 늪지대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곧바로 테이밍을 시작했다.
“교감과 대화가 우선이 되어야 완벽한 테이밍이 이루어지는 거다. 그런데도 넌 오늘도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으로 일관한 거다!”
“…….”
차진혁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함을 느꼈다.
‘폭력만 안 쓰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네?’
테르서박의 사상이 변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심하게 때린 게 문제라고?”
“그래. 가끔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진정한 테이밍이 아냐.”
“그니까…… 사람 테이밍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웅이는 사람 아닌가?”
“……그것도 그렇네?”
테르서박은 사람을 테이밍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냥 폭력만 안 쓰면 뭘 어떻게 하든지 괜찮다는 것 같았다.
‘왜 저렇게 변했어?’
무엇이 테르서박을 이렇게 변하게 한 건지, 차진혁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