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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244화 (24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4화

차진혁이 꺼낸 미리는 한껏 거대해져 있었다.

그랬다가 이내 다시 점점 줄어들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응?’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게 다뤄주세요.”

육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뒤를 힐끗 바라보니 반투명의 유령 같은 것이 차진혁의 목을 감싸 안고 둥둥 떠 있었다.

“설마 미리냐?”

“네.”

의지가 피어오르다 못해 아예 실체화까지 이룬 모양이었다.

‘이거 오랜만이네.’

무기와의 공명이 극대화되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과거, 검왕 시절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오빠, 뭐해?”

“아냐, 아무것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구의 형상.

굳이 비유하자면 실체화한 환상검희와 비슷한 모양새였는데, 아무래도 미리가 환상검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피폐한 타락천사. 그것의 소녀스러운 버전이랄까.

차진혁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미리의 몸집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제 크기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느낌인데?’

의지가 형상화한 것은 그렇다 치고.

자꾸 크기가 들쭉날쭉 변하고 있었다.

여의봉처럼 말이다.

차진혁은 문득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엑토리얼 어디 갔어?”

“제가 삼켰어요.”

미리는 차진혁의 목을 껴안았다.

“제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요?”

영혼 결속을 통해 미안한 감정이 전해졌다.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미리와의 유대감이 더 깊어진 상태여서 질책하지는 않았다.

“아니, 신기해서.”

‘근데 이게 어떻게 되지?’

차진혁으로서도 이유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어벤저스 사단의 군주 힉슨이 앞으로 나섰다.

“김철수. 우리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나?”

“기회?”

힉슨이 손가락을 앞으로 까딱하자 어벤저스 사단의 딜러 홀리홀리가 나섰다.

홀리홀리는 성기사 계열의 딜러였고 빛이 번쩍이는 ‘광채의 메이스’로 파괴적인 공격을 자랑하는 플레이어였다.

“내 이름은 홀리홀리.”

번쩍이는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육중한 무기여서 공격력이 상당히 강해 보였다.

차진혁은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네가 부술 수 있겠냐?’

중계자의 통찰로 보면 보인다.

이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홀리홀리의 공격력이 강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벽을 부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차진혁은 어벤저스 사단에게 배운 것들이 있다.

별거 아닌 것들조차 비장하고 멋진 것으로 포장하는 연출을 배웠다.

차진혁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부탁하지. 광채의 성기사.”

홀리홀리는 그 손을 맞잡았다.

“기회를 줘서 고맙다.”

* * *

두더지맨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니, 내가 이걸 부수는 방법을 생각 안 한 줄 아는 거냐, 두지!’

처음 벽을 봤을 때부터 부수는 방법을 고려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니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벽이 너무 크고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랭킹 2위였던 주제에!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그는 확신했다.

광채의 성기사 홀리홀리의 육중한 메이스도 저 벽을 부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헉…… 헉……!”

홀리홀리는 전력을 다해 벽을 두드렸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두더지맨은 계속해서 이 벽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가량.

이 벽을 뚫고 올라가고, 5층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정말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차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고생 많았다, 광채의 성기사.”

차진혁이 미리를 들어 올렸다.

두꺼운 벽 앞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는 척했다.

겉보기로는 진중하고 숭고해 보였다.

‘진심 휘두르기랑 파쇄벽, 둘 중에 어떤 이름이 더 멋있지?’

결국 그는 선택했다.

“진심 파쇄벽.”

미리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엄청나게 몸집을 키운 미리가 벽을 강타했다.

강타하는 그 순간, 짜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이거지!’

벽과 미리가 맞닿은 그 부분.

그곳을 중심으로 쩌적- 쩌적- 하고 벽이 갈라지며 갈라진 틈 사이로 황금빛 광채가 새어 나왔다.

홀리홀리는 넋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김철수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광채라고.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광휘의…… 스트리머.”

단 일격이었다.

벽 앞에 서서 호흡하고 단 한 번에 집중하여 벽을 쳐냈다.

이내 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 *

전 우주 최강의 서버인 아르비스.

그곳의 랭킹 1위 스트리머이자 우주급 랭커인 마시멜로는 김철수의 방송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야.’

그가 보기에 김철수는 매일매일 발전하고 있었다.

‘여기서 저 찌끄래기한테 순서를 넘긴다고?’

시간이 20분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는 김철수가 왜 저렇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김철수는 쟤가 못할 걸 알았겠지.’

광채의 성기사가 젖 먹던 힘을 다해서 해도 하지 못한 것을, 김철수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해버렸다.

그것은 극적인 연출이 되었다.

-ㅋㅋㅋㅋㅋ 한방컷 실화냨ㅋㅋㅋㅋ

-스트리머 김철수 딜량 미쳤네 ㅋㅋㅋ

-아니라고욧! 우리 광채의 성기사 오빠가 다 부숴놔서 가능했던 거라구욧!

-벽: 그만, 제발 그만! ㅠㅠㅠ

마시멜로는 흐흐- 웃었다.

김철수의 실력이 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건 단순히 딜량의 문제가 아냐.”

“뭐야, 언제 왔냐?”

“아까.”

마시멜로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아무리 이곳이 편안한 집이라지만, 아무리 상대가 친한 친구 백과사전이라지만, 그래도 기척을 이렇게까지 못 느꼈다니.

“김철수 방송에 푹 빠져서 내가 온 줄도 모르던데.”

“…….”

내가 그렇게까지 김철수 방송에 빠져 있었다고?

마시멜로는 심정을 감춘 채 물었다.

“딜량의 문제가 아니면?”

“특수한 힘이 있어야 했다. 저 벽은 아무나 부술 수 없어. 특별한 재질의 무기로만 깰 수 있는 벽이다.”

“되게 잘 알고 있네?”

“그런데 룰 브레이커로 저 벽을 부쉈다는 건…….”

백과사전은 핸드폰을 들어 김철수의 과거 영상을 보여주었다.

──────────

[엑토리얼]

──────────

“아무래도 김철수의 미리가 이걸 삼킨 것 같다.”

“룰 브레이커가 무기를 삼킨다고?”

“아마도 세피아-그란델의 능력이 일부 전이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와우. 그게 된다고?”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백과사전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김철수의 플레이가 더욱 흥미로워졌다.

“근데 남은 시간이 이제 별로 없지 않나?”

“그렇기에 더 긴장감이 살지.”

“……연출이군.”

마시멜로의 표정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그런데 백과사전은 더욱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우주급 시나리오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 * *

차진혁 일행은 5층에 도착했다.

4층과 구조적으로는 거의 비슷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기둥이 많은 신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 멀리, 계단 위에는 유독 어두운 장소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관이 놓여 있었다.

‘웅이가 잠자던 관인가?’

계단을 올라 관 뚜껑을 열어보았다.

‘이건……!’

예상했던 건 아니었는데 이곳에 두 사람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시신을 발견한 어벤저스 사단의 플레이어들 몇몇이 오열했다.

“스미스!”

“윌슨!”

저번 공략 때 백옥갑옷기사에게 사망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관의 효과 덕분인지 시신은 무척이나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목재현이 예전처럼 관을 짜서 넣었고, 어벤저스 사단의 플레이어들은 시신을 향해 묵념했다.

그 사이 두더지맨은 열심히 주변을 탐색했다.

“이봐. 흑표범. 뭘 좀 알아냈나, 두지?”

“저 관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두지.”

흑표범이 한 가지 의견을 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관은 시신을 넣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 두지.”

“저 관이 원하는 시신을 넣어야 이 던전이 완벽하게 클리어되는 것 아닐까?”

흑표범은 지난 상황들을 떠올렸다.

“던전보스인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던전보스가 아니었던 자. 그러나 던전보스가 전심을 다해 모셨던 자. 버려진 사원의 진정한 주인인 버려진 여왕. 김철수의 즉살에 사망했으나 없어지지 않고 잿빛의 형상으로 변해버린 4층의 주인. 어쩌면 저 관은 여왕을 위한 관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다시 4층으로 내려가 여왕의 시신을 가지고 올라와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흑표범의 꼬리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래! 사라지지 않은 시신! 그것이 키 포인트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불과 2분가량.

지금 당장 계단을 내려가서 가져오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혹시라도 아까 부서졌던 벽이 다시 생성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완벽한 클리어는 물 건너간 셈이다.

‘응?’

흑표범은 두더지맨으로부터 약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약간…….’

이건 뭐랄까.

‘시간을 살짝 끄는 거 같은데?’

묘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분이 남았을 때, 두더지맨이 인벤토리에서 관 하나를 꺼냈다.

‘저, 저건……!’

여왕의 시신을 담은 관이었다.

관의 형태나 모양새로 보았을 때, 목왕의 준비해 준 것 같았다.

“미리 챙겨놓길 다행이군.”

4층과 5층 사이.

벽 앞에서 플레이어들이 시간을 버리고(?) 있을 때, 두더지맨은 목재현과 김정현에게 부탁했다.

여왕의 시신을 수거해 달라고.

두더지맨이 멀어졌다. 김철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흑표범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건 또 언제 챙겼어?’

그리고 약간의 자괴감이 또 밀려들었다.

‘근데 시간을 끌어?’

일부러 시간 1분에 맞춘 것이었다.

김철수가 더 극적인 연출을 할 수 있도록.

황당한 건 김철수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이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만 몰랐던 거냐? 흑표범은 떨떠름했다.

‘이 미친놈들은 도대체……!’

또다시 충격에 휩싸인 흑표범을 뒤로한 채 두더지맨이 말했다.

“여왕의 시신이다.”

“여왕이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군.”

김철수는 조심스레 여왕의 시신을 안아 올려 관 안에 눕혔다.

김철수의 표정은 경건하기 그지없었다.

어벤저스 사단의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엄숙하게 자리를 지켰다.

잿빛으로 변해 있던 여왕의 시신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저주가 모두 사라지고 아름답게 변한 여왕이 입을 열었다.

“영원한 안식을 선물해 주어 고맙구나. 나의 백성이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skip, skip을 외쳤으나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여왕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버려졌으나 버려지지 않았다. 그대처럼 충성스러운 백성이 나를 잊지 않았으니.”

여왕이 팔을 들어 올려 차진혁의 볼에 손을 대었다.

그 모습을 본 강은우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무 멋진 장면이다.’

저주를 풀고서, 최후의 안식을 맞이한 여왕.

그리고 그를 경건한 태도로 마주하고 있는 김철수.

‘찍는 것마다 S컷이네.’

이건 정말로 장당 10억씩 팔아도 팔릴 만한 가치가 있는 장면이었다.

잠시나마 생기를 되찾았던 여왕의 모습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의 마지막을 기억해 줄 이가 있어 외롭지 않겠구나. 기억하라. 내가 그대의 왕이었고, 나를 마지막으로 영접한 이는 그대이니라. 그대가 나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리니.”

흐릿해지는 여왕의 머리 위로 반짝이는 황금빛이 천천히 새어 올라 차진혁의 머리 위에서 부서졌다.

마치 별가루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어?’

[버려진 여왕, 베셀리티가 당신을 선택하였습니다.]

[유산의 소유권이 플레이어 ‘김철수’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유산이라는 말에 차진혁은 뛸 듯이 기뻤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볼에 손을 댄 여왕의 손을 붙잡고 눈을 감은 채 경건한 태도를 유지했다.

눈을 뜨면 욕심 가득한 눈망울을 들킬 것 같아서 그랬는데, 어쨌든 겉모습 자체는 꽤 숭고했는지 어벤저스 사단의 몇몇이 눈시울을 붉혔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빛가루가 거의 사라졌을 무렵. 이윽고 여왕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차진혁에게 새로운 알림이 들려왔다.

[우주급 시나리오, ‘버려진 여왕의 유산’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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