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243화
웅이와 싸우면 누가 이기냐?
차진혁에게는 꽤 예민한 질문이었다.
검왕 시절의 차진혁이었다면 ‘당연히 내가 이기지’라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순히 웅이와 싸우기만 하는 거면 이기겠지만 스트리머답게 스토리를 만들고 연출에 신경 써가며 이길 자신은 없었다.
“음.”
그런 건 이겼다고 할 수 없겠지.
그렇다면 아예 압도적으로 찍어눌러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줘야 하는데, 솔직히 그건 불가능했다.
“이기지는 못할 듯.”
“……오빠, 약하네.”
“그러게 말이다. 앞으로 노력하면 더 나아지겠지.”
“응. 나도 힐러로서 열심히 도울게.”
차진솔의 기준도 어느덧 차진혁에게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한편, 4층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2번 늪지대’는 클리어된 던전 안에 아직 숨어 있었다.
‘놈은 교활하고 영리하며 치밀한 놈이다. 나의 존재를 눈치챈 이상 이대로 그냥 나갔을 리 없어.’
함정을 파두고 기다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아직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좀 더 기다려야 해. 놈은 지나치게 치밀한 놈이다.’
일부러 던전 안에서 오래 대기했다.
‘최소 3일 이상. 그래야 놈도 포기하겠지.’
최소 3일 이상은 이곳에서 버티며 타이밍을 잡기로 했다.
혼자만 필사적이던 그 시점 즈음, 차진혁도 2번 늪지대를 떠올렸다.
“아, 근데 거기 내 팬 있었는데…….”
“오빠 팬이 던전에 있었다고?”
“어. 무사히 빠져나왔으려나?”
몰래 잠입할 수 있었으니까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그 찰나.
“어, 잠깐만!”
차진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생각해 보니 팬 한 명이 던전 안에 들어왔다면 원래 예상했던 인원보다 1명이 늘어났다는 얘기였다.
인원수에 따라 진행이 달라지는 던전인데 말이다.
“왜 그래?”
“던전 안에 변수가 있었어. 어쩐지 올 클리어가 안 뜨더라니!”
“…….”
“다시 가봐야겠다.”
올 클리어 못 해서 찝찝했는데 잘 됐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차진혁을 보며 차진솔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하! 올 클리어 아니면 클리어가 아니구나.”
그냥 평범한 클리어를 해놓고 좋아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 *
봉미나TV의 봉킹과 강미나는 에건 폴과의 단독 인터뷰를 따냈다.
말하자면 한국 랭킹 1위 스트리머와 미국 랭킹 1위 스트리머의 합방이었다.
“예. 한국 플레이어들의 기준은 저희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에건 폴이 경험한 한국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김철수와 그 주변인들.
“기본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더군요. 어째서 한국맵이 플레이의 강국인지 알 것 같습니다.”
특히 길잡이인 흑표범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벤저스의 길잡이는 K사단과 플레이하면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흑표범의 근간이 흔들린 상태.
여태까지 플레이해 왔던 방식이 모조리 부정당한 것 같았고, 그것은 흑표범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플레이 방식이 틀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새로운 것들을, 어쩌면 더 옳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강미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국뽕 콘텐츠다!’
국뽕 콘텐츠는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조회수는 보장하는 콘텐츠였다.
너무 대놓고 국뽕이 드러나지 않게, 적당히 수위를 잘 조절하면 호불호도 많이 없앨 수 있고.
“K사단 플레이어들과 함께 플레이했을 때, 솔직한 말로 벽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국뽕이라기보다는 김철수뽕에 훨씬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채팅창에 한차례 난리가 났다.
-와 ㅁㅊ 찐이냐?
-헐? 찐이네!
-김철수 등장!
-철수up! 철수up! 철수up!
채팅을 관리하던 봉킹은 서둘러 [김철수]를 찾았다.
곧장 김철수에게 임시 매니저 권한을 부여하고, 채팅창을 열었다.
“김철수 님, 진짜 본인 맞나요?”
그 짧은 사이, 김철수가 실시간 방송에 등장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 수많은 시청자들이 봉미나TV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미나는 순식간에 차오르는 시청자 숫자를 보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와, 김철수뽕 인정이다.’
김철수의 등장과 동시에 무려 3만명의 시청자가 더 늘었고 그것은 실시간으로 더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에건 폴은 차진혁과의 통화를 마쳤다.
“아쉽지만 합방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네요.”
“네? 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었는데?
한국의 유명 검술가인 항문검 이현성과 어벤저스 사단 플레이어들과의 친선대련 콘텐츠가 잡혀 있었다.
“김철수가 부릅니다.”
그 모습은 마치 국가가 나를 부른다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비장했다.
“해운대 던전에 다시 들어가자고 합니다.”
일단 클리어되기는 했지만 인원수를 맞추려는 것이었다.
해운대 던전은 인원수의 영향을 받는 던전이니까.
“저희가…… 아주 무능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에건 폴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K사단과 플레이하면서 자괴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 플레이에 있어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철수의 생각은 다른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김철수가 왜 굳이 다시 자신들을 호출해서 해운대 던전에 재입장하자고 말을 하겠는가.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김철수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동료들을 외로이 두지 않는 일.”
김철수는 모래지렁이의 서식처에서 두 구의 시체를 찾아왔다.
그것은 클리어와 동시에 가족들에게 인계되었고, 그 모든 장면은 에건 폴의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아직 찾지 못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사실 에건 폴조차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김철수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K사단 플레이어들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기준은 미쳤고, 플레이 방식은 더욱 미쳤다.
“아름답게 미친 자들입니다.”
에건 폴은 합방을 끝냈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비장했다.
* * *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쯔쯧, 완전히 플레이 중독자구만.”
한세린은 해운대 던전을 빠져나오고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한 던전에 입장했단다.
현재 연락 두절 상태.
그래서 두더지맨과 함께하기로 했다.
“김철수. 내게도 요구사항이 있다, 두지.”
“뭔데?”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두더지맨의 눈에는 상당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차진혁이 딱히 중계자의 통찰을 사용한 게 아닌데도 상태가 보였다.
[#제발 #나에게도_기회를]
도대체 뭐가 저렇게 간절한 건지 들어 보았더니 별거 아니었다.
“나도 K사단 소속이라는 공증서를 만들어줘, 두지!”
“공증서?”
그게 뭐라고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K사단에는 딱히 공증서 같은 게 없었다.
심지어 K사단이라는 건 사람들이 편의상 그냥 부르는 말이지 공식명칭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 건 없는데…… 근데 그건 왜?”
“…….”
“우리 정도면 그냥 팀 아니냐?”
“……!”
두더지맨이 끝에 두지두지거리는 것만 제외하면 차진혁도 두더지맨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한세린이 길잡이로서 은퇴한 지금, 두더지맨은 길잡이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동료였다.
차진혁은 실제로도 두더지맨을 꽤 마음이 잘 맞는 동료라고 생각 중이었다.
“너어…… 이 자식.”
두더지맨은 감격한 나머지 끝에 두지 붙이는 것을 잊고 말았다.
“나를 팀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럴 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K사단의 대.표. 길잡이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두더지맨이 물었다.
“그래서? 시체를 찾으러 간다는 건 그냥 핑계지?”
어벤저스 사단을 비롯하여 일반 시청자들이야 감동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차진혁을 추앙하고 있지만 두더지맨의 생각은 달랐다.
겨우 그런 이유로 한 번 클리어했던 던전을 또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훌륭한 플레이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분명! 다른 생각이 있겠지!’
마침, 방에서 나온 차진솔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올 클리어가 아니면 클리어가 아니니까요.”
……!
두더지맨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차진솔에게 들었다는 것 또한 매우 큰 충격이었다.
‘김철수도 아니고 그 동생에게?’
김철수에게 지는 건 그렇다 쳐도 그 동생에게까지 질 수는 없었다.
이걸 생각 못 했다는 건 마인드의 패배였다.
“하, 하긴. 오, 올클리어가 아니면 클리어가 아니긴 하지, 두지.”
* * *
차진혁은 다시 한번 해운대 던전에 입장했다.
그리고 재입장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들어가자마자 타이머가 눈에 보였다.
[01:22:15]
남은 시간 1시간.
두더지맨도 타이머를 발견했다.
“우리가 해운대 던전을 빠져나온 직후로부터 대략 46시간가량이 지났다, 두지. 그러니까 이 타이머는 약 48시간으로 설정된 거 같다, 두지.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알림 이후로 48시간 내에 무언가를 더 해야만 완벽한 클리어가 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두지!”
두더지맨은 또 다른 사실 하나를 파악했다.
길잡이의 눈으로 던전의 정보를 읽어낸 것이었다.
“모두가 던전에서 빠져나온 게 아니었다, 두지! 누군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아.”
차진혁은 두더지맨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저기,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는 애가 보이네.’
두더지맨은 지금 던전 정보를 읽는 것에 정신을 팔려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던전에서 만났던 팬이 틀림없었다.
‘진짜 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보다.’
그 팬(?)의 이름은 2번 늪지대.
2번 늪지대 덕분에, 던전의 설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
‘고마운 팬이구나.’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말을 걸지는 않기로 했다.
차진혁은 나름대로 배려 중이었으나 2번 늪지대는 자신의 은신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
‘김철수. 네놈의 눈과 기감은 이 정도였구나!’
이것은 그의 데이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 은신 능력이면 들키지 않는구나.
‘데이터는 쌓여가고 있다. 이것이 곧 나의 힘이 되겠지.’
오늘은 물러가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었다.
혼자만 필사적인 2번 늪지대는 던전을 빠져나갔고, 차진혁은 플레이어들과 함께 4층에 도착했다.
“그렇다, 여기에는 5층이 있었다, 두지!”
웅이는 분명 5층에서 내려왔다.
던전 클리어는 4층에서 이루어졌으니, 이 던전을 완벽히 공략하지 못한 것이었다.
“5층으로 안내하겠다, 두지.”
두더지맨이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꽤 높았고, 올라가다 보니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으음. 이 벽을 해제하고 지나가야겠는데, 두지. 잠시만 기다려라, 두지!”
남은 시간은 시간은 20분가량.
1분, 2분, 시간이 흘러갔다.
두더지맨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벽 주변을 탐색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왕유미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응? 긴급? 한세린의 메시지라고?’
한세린이 던전에서 빠져나온 뒤 방송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뭐지?’
내용을 확인한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뭐하냐? 그냥 부수면 될 걸 가지고. 웅이도 부수고 내려온 거 몰라?]
한세린의 컨펌도 있었겠다, 차진혁은 곧바로 미리를 꺼냈다.
‘엥?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미리가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