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90화
몇 달 전.
송하영은 두 가지 특성 중 어떤 것을 활성화시켜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1. 빛살도주.
2. 소도(蘇塗).
빛살도주는 위험한 상황에서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특성이었고, 소도는 일종의 안전지대를 형성하는 특성이었다.
고심 끝에 그녀는 차진혁을 찾았다.
“아니, 왜 이걸 나한테 묻냐?”
“정보를 취합하는 건 자신 있는데, 그 취합된 정보를 어떻게 쓰냐는 다른 얘기더라고.”
“그러니까, 그럼 군주나 한세린한테 물어보지 왜 나한테 왔느냐 이 말이야.”
차진혁은 약간 인상을 찡그린 상태였다.
이걸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다.
‘차진혁은 자기 자신에게 제일 엄격하고, 주변인들에게도 아주 엄격하니까.’
그의 기준은 이상하다 못해 괴랄한 수준이었다.
‘내가 이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군주가 아닌 자신에게 물으러 왔다는 점에서 짜증이 났겠지.’
차진혁은 그 자신에게 가장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이럴 때에는 엄청난 수준의 겸손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아. 결국 네가 내리는 결정이 최선의 결정이 되리라는 것을.’
“한세린한테도 물어볼 거야. 다만 스트리머 입장의 의견도 궁금해서?”
“아, 그래?”
“어. 가끔 나랑 플레이할 때는 방송각도 생각해야 하니까.”
“고맙다. 내가 널 오해했네.”
차진혁은 기분이 무척 좋아진 채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음, 내 생각에는.”
차진혁은 회귀 전 송하영을 떠올렸다.
‘그 개같이 짜증 났던 능력이 [빛살도주]였구나.’
송하영을 몇 번이나 잡을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잡지 못했던 건 저 특성 때문인 것 같았다.
“빛살도주가 굉장한 효용성을 보여주는 특성인 건 맞는 것 같거든.”
“그래? 그럼 네 의견은 빛살도주야?”
“아니. 그건 아니지.”
빛살도주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게는 매우 효율적인 특성이었다.
‘하지만 추포 및 나포 계열 플레이어들한테는?’
회귀 전 송하영은 결국 붙잡혔다.
그 신출귀몰했던 천사소녀가 잡힌 것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그 정체 모를 능력(빛살도주)를 지나치게 맹신하여 자만하였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단기적으로는 송하영에게 아주 유리한 스킬이야. 고수 영역까지는 최적의 효과를 보여주겠지. 그러나 초고수의 영역에서는 또 다른 얘기다.’
저런 건 편법이다.
결국 송하영이 범우주 규모의 대도적이 되지 못했던 것에는 ‘빛살도주’ 같이 간편하고 효율적인, 그러나 플레이의 본질에는 멀어져 있는 특성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빛살도주는 결국 플레이어를 좀 먹는 암 덩어리 같은 능력이라고 본다, 나는.”
“그, 그 정도야?”
“어. 도적의 생명이 뭐냐?”
“그…… 속도와 은밀함?”
“근데 네가 빛살도주를 익히면? 속도와 은밀함을 대신 내주는 특성이 생기면 네가 단련을 제대로 하겠냐? 거기에 의지 안 할 자신 있어?”
“…….”
차진혁은 ‘소도’에 한 표를 던졌다.
소도란 삼한 때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를 뜻하는 말이었다.
여기에 신단을 설치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를 올렸는데,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더라도 잡아가지 못하는 불침의 장소였다.
“결국 이런 특성은 극한의 상황에 가서 한 번씩 사용하는 것이 결국 최고의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어.”
소도는 7분간 7번의 안전지대를 생성해 주는 안전지대 특성.
대신 그 안에서는 움직일 수 없고 공격도 할 수 없다.
도합 49분의 안전만 보장할 수 있는 특성이었다.
“소도는 정말 극한의 상황에서나 사용하겠지? 이도 저도 못 할 때, 결국 스스로는 그 상황을 헤쳐나올 수 없을 때 최후의 보루로써 사용하게 될 거야. 비장의 한 수라는 건 결국 이래야 하거든.”
송하영은 차진혁의 눈빛을 보았다.
‘광기가 보여……!’
차진혁이 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이것은 훗날, 언젠가의 방송 콘텐츠로 쓰일 것이 분명했다.
엘튜브각을 잡은 차진혁은 지금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역시 차진혁은 플레이에 진심이었고, 그것은 또다시 송하영을 자극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결국 외부의 도움을 누리는 게 좋겠지. 49분이면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빛살도주를 사용하면 그런 극한의 상황을 애초에 피할 수 있는 거 아냐?”
“플레이를 뭐로 보는 거냐?”
차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송하영은 아직도 멀었다.
“극한의 상황이 안 오면, 그게 플레이냐?”
“…….”
“그리고, 결국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 세상에 먼치킨 같은 건 없거든.”
……먼치킨이 없다고? 그럼 넌 뭔데?
송하영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차진혁은 진심으로 자기가 별로 강하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지금.
차진혁은 당시 녹화해 두었던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올렸다.
* * *
송하영이 소도를 펼쳤다.
노란색 돔이 생겨나 송하영과 서둥이들을 덮었다.
노란색 돔 위에는 작은 제단과 더불어 하얀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깃발에는 시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6:57]
[6:56]
[6:55]
“거슬리는 능력이군.”
매켄드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차진혁이 라칸을 휘둘렀다.
“어디에 정신을 파는 거냐?”
매켄드라는 슬쩍 한 발자국 움직여 라칸을 피해내며 피식 웃었다.
“그 허접한 검술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
“끝없는 공포와 절망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가 뒤로 몇 걸음 움직였고, 그 앞으로 수많은 종이병정들이 섰다.
다리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매켄드라는 다리 건너편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종이병정 몇이 종이접기하듯 척척 접히더니 의자 형태가 되었다.
“어디 한번 재롱을 지켜보자꾸나.”
“…….”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서 절망을 느껴보아라.”
“수다스러운 놈이군요. 말이 진짜 많은 편인 거 같습니다.”
차진혁이 라칸을 들어올린 채 말했다.
“방송 보면 다들 튀어와. 특히 목재현. 와서 서둥이랑 애들 보호해.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49분이다. 워프 게이트 타고 이동하면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정확한 위치는 킹갓제네럴유미에게 문의하고.”
차진혁은 라칸을 휘둘렀다.
몇 번의 공격이 종이병정에 닿았으나 종이병정들에게는 그다지 큰 타격이 없었다.
아무리 베어내도 결국 재생하여 제 모습을 되찾았으니까.
“칫. 불사의 군대와 싸우는 느낌입니다. 종이병정 하나하나의 레벨은 10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저 재생능력이 너무 사기적이군요.”
김잘알TV에서도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김철수가 이렇게 대놓고 팀원들한테 도움 요청한 적 있음?
-평소보다 말 훨씬 빨랐음. 이건 ㄹㅇ 위험하다는 신호임.
한마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매켄드라의 종이병정 진짜 개사기급 능력 아님? 도대체 저걸 뭘로 어떻게 잡누?]
┗우주에는 저런새기들이 넘쳐나는 거냐?
┗너무 밸붕인 듯
[그나마 불 속성 능력에 좀 약하다는 얘기가 있기는 하던데……]
┗ㄴㄴ 그 프랑스 누구더라, 불 다루는 랭커도 매켄드라성님한테 깝치다가 디졌음 ㅇㅇ
┗절대적인 격차 앞에 속성은 무의미함.
차진혁의 예견된 실패를 조롱하고 좋아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지가 제일 잘난 척 하던 거 역겨웠는데 잘됐누 ㅋㅋㅋㅋ 잘가라 멀리 안 간다 ㅋㅎㅋㅎ]
┗미친 새기냐?
┗지구 평화를 위해 일선에서 싸우는 김철수한테 뭐라 씨부리노?
┗이런 새기는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함.
┗응, 안 잘려. 메롱메롱 ^^ㅎ 치열맨도 매느님 앞에서는 의미없쥬? 아무고토 모타쥬?
그런데 전황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매켄드라와 부딪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칸을 크게 휘둘러 앞선 종이병정과 거리를 벌린 뒤, 차진혁은 호흡을 골랐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것은 치열하지 못한 짓이죠. 이제부터는 조금 더 치열하게 싸워보겠습니다.”
테르서박, 카트리나, 뮬리누스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보물보석.
이제부터는 그걸 사용하기로 했다.
이 작은 보석은 기존의 아이템과 결합하여 사용하는 방식의 보조 아티팩트.
[‘보물보석(제작)’을 라칸에 적용합니다.]
차진혁이 라칸을 휘둘러 종이병정 하나를 베어냈다.
퍽!
요란한 격타음이 났다.
‘베이지 않아?’
보물보석의 효과 때문인지 종이병정이 베이지 않았다.
대신 종이병정의 몸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움직임이 굉장히 무겁고 느려졌다.
‘오, 이렇게 되네?’
차진혁으로서도 놀라웠지만 놀란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템을 바꿔들었다.
“어차피 베지 못할 것이라면, 더 가볍고 빠른 망치를 꺼내는 것이 낫겠습니다.”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더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보물보석(제작)’을 룰 브레이커에 적용합니다.]
차진혁은 양의 무리에 뛰어든 늑대처럼 종이병정들을 향해 망치(룰 브레이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직접 데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물보석 효과에 의한 상태이상을 노린 공격들이었다.
치명적인 공격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차진혁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빨랐다.
슬쩍 쳐내기만 해도 되어서 효율이 무척 좋았다.
결국 종이병정들은 매켄드라의 통제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흐물거리기도 했고 일부는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지원군이 한 명 등장했다.
“나는…… 재빠른…… 사나…… 이.”
한국의 권왕이라 불리기 시작한 권왕 김정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공격은…… 빠르고…… 강맹…… 하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차진혁을 돕고 싶었다.
방송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김정현의 진심이었다.
그는 김철수의 애청자였으며 김철수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구독자이기도 했다.
“받아…… 라…… 나의…… 정의로운…… 주…… 먹.”
“나의…… 오른 손엔…… 묵빛룡이…… 깃들지.”
그의 말은 무척이나 느렸으나 동작마저 느린 건 아니었다.
느린 말과는 별개로 그의 움직임은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몸동작이 확연히 느려진 종이병정들은 김정현의 체술에 속수무책이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저거 보세요. 청불의 주먹에 얻어맞은 종이병정들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이내 빵! 하고 터져 버렸다.
아무리 베어내도 재생하던 종이병정은 더 이상 신체를 복구하지 못하고 바람결에 흩어져 버렸다.
김정현은 자신의 성과가 꽤 만족스러운 듯했다.
‘나의 검은 항문을 가른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현성에게도 큰 영감을 받았던 김정현은, 벼르고 별렀던 대사를 내뱉었다.
“나의 주먹은 종이를…… 파.개.한.다.”
한편,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흡족했다.
‘김정현과 호흡을 맞추는 게 나쁘지 않은데?’
차진혁 자신은 그저 상태이상을 걸리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치명타는 김정현이 먹인다.
이 조합으로 함께 전투를 치르는 것이 꽤 즐거웠다.
차진혁과 김정현의 조합 앞에서 종이병정들은 아무런 힘도 못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역겹다고 꼴깝 떨던 역겨운 새기 어디갔누? ㅋㅋㅋㅋ 나와봐랔ㅋㅋㅋㅋ]
┗튀어버렸즄ㅋㅋㅋㅋㅋ
┗손가락 잘렸쥬 ㅋㅋㄹㅃㅃ
┗치열의 치자도 모르는 새기ㅋㅋ 지껄여봐랔ㅋㅋㅋ
┗이미 글삭튀함ㅋㅋㅋ
[얼마나 치열하면 저런 제작 아티팩트를 미리 준비함? 근데 저거 비싼 거 아님?]
┗치열맨 앞에서 돈을 논하다니 무엄하다!
┗저번에 보니까 전재산 100조 넘는다 함.
┗헐? ㄹㅇ?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실시간으로 퍼져가는 가운데, 차진혁과 김정현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종이병정들을 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