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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59화 (15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9화

세뇌를 끝마친 험프리 밀런은 에건 폴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그는 비밀 벙커에 마련된 접견실로 향했다.

‘좋아. 미행은 없고.’

미로형식의 기다란 복도를 지나쳐 몇 가지 결계를 통과한 그는 한 방에 도착했다.

그 방 가운데에는 커다란 수정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험프리 밀런이 수정구에 손을 대자 알림이 이어졌다.

[요원, ‘험프리 밀런’의 신원을 확인하였습니다.]

[네트워크, ‘블랙’이 활성화됩니다.]

험프리 밀런은 범우주 연합인 ‘블랙’의 요원이었다.

그는 씨이프 서버 출신이었고 10여 년 전 블랙에 소속되어 여러 가지 파견임무를 맡아왔다.

레벨 150대 중반, 중수 수준의 그는 새로이 연결되는 신규 서버 등에 미리 침투하여 다양한 히든피스를 섭렵하는 등의 비밀스러운 임무들을 맡고 있었다.

홀로그램들이 생성되며 몇몇 사람형상의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존프릭은 완전히 사망하였나?”

-“정령왕의 딸 조련 계획은 완전히 폐기되었군.”

이번 험프리 밀런이 지구에서 수행 중이던 이번 임무는 그가 맡아왔던 임무들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책임이 막중한 것이었다.

레벨 150대가 맡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으나 신규 서버인 지구 서버를 보호하는 프로토콜 덕분에 그와 존프릭이 맡게 되었다.

-“뭐,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

-“정해진 수순이었다.”

무려 정령왕과 정령계를 건드리는 프로젝트였다.

레벨 150대 플레이어 둘이 맡기에는 너무 버겁기도 했었고, 블랙 상부에서도 딱히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벌목을 하겠다? 시선을 끌기 위한 군대를 지원해 달라?”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조직을 이용하여 알량한 복수 따위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험프리 밀런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어찌 제가 그리 불경한 마음을 품는단 말입니까? 저는 블랙을 위하여 살고, 블랙을 위하여 죽는 블랙의 요원입니다.”

험프리 밀런이 말을 이었다.

“지구의 황금 수호수는 아직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겨우 묘목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여러 보정을 억지로 취하고 있는 바람에 힘이 약화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충분히 옮겨심을 수 있습니다.”

* * *

등에 커다란 도끼 한 쌍을 맨 남자가 뉴욕 시내를 활보했다.

상당히 거대한 도끼여서 눈에 띄기는 했으나, 플레이어들이 흔해진 지구에서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한 커피숍에서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내려놓았다.

“오랜만이군, 험프리 밀런.”

“그러게.”

“날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싫어하지. 그렇지만 실력은 진짜니까.”

남자의 이름은 럼볼.

나무꾼 계통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레벨은 190 후반대였다.

“서버 들어오느라 개고생했으니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야 할 거야.”

신규 서버 보호 프로토콜 때문에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이동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다.

정식으로 연결된 서버도 스칸노르비아밖에 없으니, 비공식 루트를 뚫어야 했는데 상당한 인적/물적 자원이 소모되었다.

“여기. 이건 최고급 호텔 키. 네가 원했던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시중은?”

“몽마 셋을 붙여주지. 남성체 하나에 여성체 둘이다.”

“좋군. 셋 다 금발이겠지?”

“그래.”

럼볼은 만족한 듯 킥킥대며 웃다가 작전에 관하여 확인했다.

“정보는 확실하겠지?”

“확실하다. 어린 수호수에서 이제 갓 수호수로 성장했어. 자세한 얘기는 호텔로 가서 나누지.”

호텔에 도착한 뒤, 험프리 밀런이 지도를 꺼냈다.

“이게 지금 수호수가 커버하는 면적이다.”

“와우.”

럼볼은 지도의 축척을 확인해 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500제곱킬로미터가 넘겠는데?”

“600이 넘는다. 지금 수준의 수호수가 커버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범위지.”

“평균 레벨 겨우 70짜리 서버에 이 정도 규모의 대도시가 있을 줄이야.”

“과학문명이 크게 발전한 곳이다. 얕볼 곳은 아냐.”

럼볼은 호텔 미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이 정도 규모의 대도시를 커버하고 있으면 뿌리가 제대로 자리 잡기는 힘들겠어.”

럼볼의 눈이 반짝거렸다.

“잘하면 베어낼 수 있겠는데. 얘 파종꾼이 누구라고?”

“김철수.”

“김철수?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스트리머다.”

“스트리머가 파종꾼이야? 이거 쉽겠는데? 파종꾼부터 죽이면 되잖아.”

“그 스트리머가 생각보다 강해.”

“스트리머가 강해봤자 스트리머 아니냐?”

럼볼은 킥킥대며 웃었다.

“무슨 스트리머가 키우는 황금 수호수 하나 베겠다고 군대를 요청했어? 그런 양동작전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냐? 존프릭이 죽더니 심장이 콩알만 해진 거냐?”

“까불지 마. 상부의 허가가 떨어진 거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세상에 스트리머가 파종꾼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블랙에서 파견한 중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세 방향에서 서울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 혼란을 틈타 럼볼이 수호수를 베어내고, 또 그 틈에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이 스칸노르비아에 파견된 지구 플레이어들을 몰살할 거다.

“내 손으로 황금 수호수를 얻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방심하지 마라. 김철수는 일반적인 스트리머가 아니야. 존프릭도 그놈에게 당했다.”

“존프릭이야 원래 X밥이고. 걔는 원래 찐따로 태어나서 이것저것 붙여대기밖에 못하는 놈이었잖아.”

험프리 밀런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럼볼이 그런 험프리 밀런을 비웃었다.

“왜 치게? 할 수 있으면 쳐봐. 몸뚱어리를 두 동강 내줄 테니.”

“…….”

나무꾼은 비전투 계열로 분류되지만, 비전투 계열 플레이어들 중에는 가장 전투 계열에 가까운 플레이어였다.

“상부에서는 보다 확실한 작전 수행을 원한다. 각색가를 지원할 거야.”

“각색가까지 온다고?”

럼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평균 레벨 70대의 신규 서버에 무슨 각색가까지 동원한다는 건지, 원.”

시나리오가 발동되면 럼볼의 능력치가 급상승한다.

그는 시나리오 참여시 능력이 극대화되는 ‘시나리오 벌목꾼’이었으니까.

“상부의 결정이다.”

“그래. 뭐, 나한테 나쁠 건 없지.”

각색가는 아주 특별한 능력의 플레이어였다.

전투력은 모든 계열 플레이어들을 통틀어서 최약체로 평가되고, 온갖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단명하는 계열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강제적으로 퀘스트를 발동시키거나 특정 서사를 가진 시나리오를 발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뛰어난 각색가들 중 몇몇은 시스템이 직접 스카우트하여 관리자로 발탁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발동할 거다. 시나리오의 이름은 연희 함락전. 의외로 시스템 승인이 빨리 낫다더군.”

* * *

밤 12시.

키하엘이 우리 집으로 찾았다.

“시나리오가 발동될 거다. 예정에 없던 시나리오야.”

“그렇게 모자 눌러쓰고 온다고 안 들키냐?”

“나 같은 말단까지는 잘 감시 안 하니까.”

“말단치고는 정보를 많이 안다?”

키하엘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한테 일을 몰아주니까. 씨X놈의 세르찬이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일을 존X 물어오니까!”

워라밸을 지향하는 키하엘에게는 최악인 상황인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 새끼가 내 사수여서.”

“정 빡치면 하극상이라도 일으키지?”

“그놈의 근육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키하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열정맨 세르찬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거 순 풍선 근육인데.”

“……걔 3대 1,000이야.”

“싸움은 못하잖아.”

“……그건 네 기준이고.”

키하엘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투덜댔다.

씨X 저딴 게 무슨 스트리머냐면서 혼잣말로 계속 욕을 해댔는데, 확실히 성격이 많이 안 좋아졌다.

직장 스트레스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갑작스레 시나리오가 배정되는 경우는 보통 각색가가 동원되는 경우야.”

“으음.”

각색가가 벌써 튀어나온다고?

애초에 각색가라는 존재 자체가 꽤 희귀한 편이다.

있다고 해도 대부분 시스템 소속의 관리자들이고.

“긴급으로 승인이 났어. 아마 지구 서버에 위기감을 더 주어야 한다는 시스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겠지.”

키하엘은 첩자로 삼은 것은 꽤 좋은 선택이었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 걸리면 빈털터리로 잘리는 거 알지?”

“그럼그럼.”

얘는 여전히 나를 별로 못 믿는 거 같다.

“혹시 일이 잘못되면 MK재단에 취직시켜줄게. 걱정 마라.”

MK라는 이름이 나오자 키하엘의 얼굴이 밝아졌다.

요즘 MK재단의 이름값이 정말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 새삼스레 체감되었다.

* * *

시나리오의 진행은 꽤 급작스러웠다.

[돌발 시나리오, ‘연희 함락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서의 김포 방향.

북동의 노원 방향.

남동의 강남 방향.

세 갈래에 수천 명 규모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타 서버의 플레이어들로 확인되었다.

-“이런 조밥들이 모습을 드러내셨도다. 감히 내가 지키는 이 땅을 침략하셨도다. 무서운 참맛을 보여주시고 말겠도다.”

수호수는 내게 호기롭게 외쳤으나 그 호기로움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내게 아주 상극인 녀석들이 몇몇 포함되어 있으시도다.”

내 추측에 의하면 아마도 벌목계열의, 말하자면 수호수에게 카운터 격인 플레이어들이 꽤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 대해 대략적인 공부는 하고 온 모양이었다.

‘수천 명 규모의 플레이어들을 갑자기 이렇게 동원했어?’

이건 어떤 세력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었다.

머릿속에 몇몇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개중에서 가장 유력한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어쩌면 블랙이랑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신규 서버를 상대로 수많은 패악질을 부리는 걸로 유명한 범우주 플레이어 연합 블랙.

지구 기준으로는 빌런 연합이었고, 나는 블랙 소속 플레이어들과 꽤 많은 혈투를 벌였었다.

각색가까지 동원하는 꼴을 보아하니 최소 블랙 정도의 규모를 가진 세력이 움직인 것 같기는 했다.

‘벌써 블랙이 기어 들어온 건가? 목표는 수호수?’

수호수를 노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으으, 안 되겠도다. 내가 진짜 힘을 보여주어야겠도다.”

이윽고 알림이 들려왔다.

[‘수호수의 권역’이 축소됩니다.]

서울시 전체를 권역으로 삼고 있던 수호수의 영역이 점차 축소되었다.

이것은 실시간 속보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안전지대 서울의 몰락?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서울도 더 이상 안전을 장담 못 해.

이제 수호수의 권역은 반경 5㎞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서대문구와 인접한 마포구.

그리고 은평구, 종로구, 용산구의 일부만 수호수의 권역에 들어갔다.

-연이은 던전 브레이크, 마물의 출몰!

-마물들이 몰려든 강남구 일대, 아비규환.

수호수 덕택에 안전을 보장받았던 많은 도시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혼란이 야기된 와중, ‘연희 함락전’을 진행하고 있는 타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길을 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목표는 김철수뿐이다.”

“김철수를 향한 길을 열어라.”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여.”

그 소식을 접한 ‘HARD 운동’ 계승자 에이린은 주장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리는 김철수에 대한 심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옳지 못한 길로 인도한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침공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점점 김철수를 향해 접근했고, 사람들은 김철수를 주목했다.

그러나 김철수는 한동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에이린은 목 놓아 외쳤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김철수는 어디 갔습니까? 위험하게 플레이해야 성장할 수 있다던 그는 숨었습니다. 정작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숨어버리는 비겁자이자 위선자일 뿐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김철수라는 그릇된 기준에서 벗어나 정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뒤.

구독자 3억 명의 스트리머, 김철수가 드디어 방송을 켰다.

[지구의 평범한 스트리머가 SS급 비밀 무기를 꺼내 들자 우주 플레이어들이 혼비백산한 까닭은?]

요즘 트렌드랍시고 이렇게 적었던 차진혁은 고개를 젓고 다시 적었다.

[개박살]

‘역시 간결한 게 좋지.’

역시 이쪽이 더 취향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철수입니다.”

김철수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솔로잉 콘텐츠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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