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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58화 (15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8화

스칸노르비아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군주.

칸은 한 가지 포인트는 확실히 짚어냈다.

‘침략에 대한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있어.’

스칸노르비아에서는 승자가 패자의 모든 것을 갖는다.

뇌룡이 김철수의 편에 선 이상, 김철수가 무조건 승자였다.

패자인 자신은 김철수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줘야 할 수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묘하게 내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면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자신의 침략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벌이고 있는가.

김철수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결국 그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조작 방송에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처음에는 당연히 숨겨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아닌 것 같았다.

김철수는 ‘주작 방송’ 그 자체에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그는 스칸노르비아를 통일한 유능한 군주였고,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자부했으나 차진혁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런 식으로 주작하면 그건 정의롭지 못하지. 안 그러냐?”

정의가 뇌와 육체를 지배한 인간인가.

“마, 맞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동조하기로 했다.

“주작방송이 맞다고 인정하지?”

“……예.”

그를 통해 맺게 된 계약의 내용이라든가, 칸이 얻게 된 이득이라든가, 그러한 것들에 관하여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칸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다음부터는 그런 검은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이제야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봤냐, 에건 폴. 진실은 거짓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아, 그리고 말이야.”

차진혁은 에건 폴의 주작방송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건 에건 폴이 칸의 필요를 더없이 잘 채워줬기 때문이었다.

에건 폴의 이익과 칸의 이익이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 조작된 방송이 이루어졌다.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감히 내 1등을 넘봐?

차진혁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소리가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다.

“주작했다는 거 공식적으로 서류화해서 인정하도록 해. 증거 있으면 제출하도록 하고.”

“…….”

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자신이 먼저 비밀유지 조항을 위반하게 되면, 에건 폴과 했던 약속과 원조가 모두 날아가 버릴 테니까.

그러면 이 땅의 수많은 전사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대신 너희들 식량은 내가 책임져준다.”

배려 있게 미친 성자.

김철수의 공식적인 첫 행보가 시작되었다.

* * *

트리니티 클럽의 일원이자 지구 서버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미셸장(돈쭐)은 몹시 흥분했다.

“벌써 이렇게 실전 투입을 할 수 있다고?”

이건 그녀가 창립한 ‘MK재단’에서 육성 중인 플레이어들이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안 그래도 비선호 직업군 플레이어들을 전폭적으로 키워보고 싶었는데.”

남들이 다 하는 건 재미없다.

재미있고자 플레이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데, 너무 주류인 것들 위주로 플레이하면 흥미가 떨어진다.

그래서 그녀는 비선호 계열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게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개중에는 농업 관련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재미있겠어!”

지구의 보다 발전된 농업문명에 최근 재능을 개화하기 시작한 농부 계열 직업 플레이어들이 스칸노르비아 서버에 투입되었다.

“정말로 우리에게 땅을 준다고?”

“정말이라니까?”

꽤 많은 수의 농부 계열 플레이어들이 스칸노르비아로 향했다.

“근데 거기는 척박해서 농사를 못 짓는다며?”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우리에게는 플레이어의 이능이 있잖아. 거기에 땅도 주지, 혹시 농사가 망해도 괜찮아. 지원금도 준대.”

“그게 된다고?”

“그러게. 그게 되네.”

스칸노르비아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번 뇌룡의 폭주로 인하여 얘기가 달라졌다.

“근데 생각보다 훨씬 비옥한 평지가 있는데?”

“여기가 원래 숲이었다나 봐.”

중앙 숲은 완전한 평탄화가 진행되어 지평선이 보이는 거대 평야로 탈바꿈되었다.

“MK재단에서 물의 정령사들도 지원해 준대. 꿈을 맘껏 펼쳐보래.”

“지원 진짜 빵빵하구만.”

농부 계열 플레이어들이 스칸노르비아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MK재단 소속 플레이어들이 속속들이 스칸노르비아 서버로 넘어가 실전을 경험하고,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에게 기술들을 전수했다.

그 과정에서 MK 소속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그리고 미셸장은 매우 뿌듯해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커다란 성과가 있을 것 같네요. 호호호.”

“마음에 드십니까?”

“그럼요. 훌륭한 아바타 키우는 느낌이야.”

차진혁도 히죽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미셸장은 지금 이 사업에 매우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트리니티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자본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적자가 나도 상관이 없다.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차진혁은 미셸장 옆에 조신하게 앉아 있는 마리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얼굴 좋아졌네.’

국정원 소속일 때보다 한결 편안해진 모양새였다.

역시 예산 문제가 해결되니까 사람 얼굴이 밝아진다.

미셸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스칸노르비아 대평원을 한 번 둘러봐야겠어요. 우리 플레이어들이 아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니까 구경을 해야지.”

미셸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나갔고 이 자리에는 차진혁과 마리아 둘만 남게 되었다.

마리아는 정말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어째서 스칸노르비아에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딱히 은혜를 베푼 기억은 없는데…….”

최근 차진혁의 방송은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 계속해서 노출되며, 조회수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독자는 이제 3억 명을 달성했다.

“설마 뇌룡을 활용하여 평탄화 작업을 진행할 줄이야.”

“그건…….”

뇌룡이 지 혼자 날뛴 건데.

차진혁은 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저쪽에서 알아서 좋게 해석해 주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스칸노르비아 서버에 일종의 희망을 심어주면서 지구 서버에 대한 우호도를 전폭적으로 끌어 올렸죠. 이건 훗날 다가올 서버 연결들에 있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건 잘 된 일이네.”

“그러나 미국맵 쪽 압력이나 견제는 조심해야 할 겁니다. 이번에 망신을 당했으니까요.”

칸이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에건 폴과 험프리 밀런이라는 자가 비밀리에 접촉해 왔고, 그들이 사건 조작을 제안했다.

마침 한국맵 입성이 내키지 않았던 칸은 그 제안을 수락하면서 미국의 원조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에건 폴과 험프리 밀런은 유명세를 얻었고,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뽐낼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에건 폴과 험프리 밀런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는 있으나, 사실 정부도 연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뭐, 그렇겠지.”

차진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

“따,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왕년에는 온갖 각성자 사냥꾼과 싸우면서 생존해 왔다.

각성자 사냥꾼들의 방식은 교묘하고 치밀해서, 함정이나 미인계 등을 동원하여 차진혁을 공략하기도 했었다.

‘걔들에 비하면 미국은 별거 아니지.’

해봤자 이런 식으로 암살자들이나 보내서 경고하고 말겠지.

차진혁은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천장을 향해 던졌다.

“컥!”

짧은 비명과 함께 어벤저스 사단 소속 암살자.

검은 나비가 땅에 떨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나비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심장에 박힐 뻔했잖아.”

“그것도 못 피하면 암살자냐?”

차진혁은 손수 검은 나비의 가슴팍에 꽂힌 단도를 빼주었다.

“한국 맵에서는 어지간하면 시도하지 말지? 네가 공격한다고 나한테 타격이 있기는 있을 거 같냐?”

“……시도 안 했잖아.”

검은 나비는 약간 억울했다.

공격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차진혁의 동태를 살피려고 했을 뿐이었다.

차진혁은 아주 잠깐 당황했으나 뻔뻔하게 말했다.

“들켰으면 시도한 거지.”

“…….”

그게 무슨 기적의 논리냐.

검은 나비는 반박하고 싶었으나 반박해 봤자 딱히 얻는 건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억울하면 들키지 말든가.”

“…….”

“벌써 여섯 번째 암살시도다. 기회는 한 번 남았어. 알지?”

“……그래.”

차진혁은 검은 나비를 대충 들어 올린 뒤 창문 밖으로 던졌다.

여기는 6층밖에 안 되니까 괜찮을 거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 * *

“으아아아아아!!!”

에건 폴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김철수!!!”

김철수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에건 폴의 조작을 조롱하고 놀려댔다.

미국 정부는 에건 폴과 험프리 밀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에건 폴은 죽을 맛이었다.

때문에 에건 폴은 [해당 영상은 사전 협의하에 연출된 영상입니다]라는 문구를 강제적으로 삽입할 수밖에 없었다.

-응 주작ㅋㅋㅋ

-주작껒여랔ㅋㅋㅋ

-이제 와서 안내문구 오져따맄ㅋㅋㅋ

-주작충 OUT!

이로 인해 에건 폴은 일시적인 대인기피증을 앓을 정도였다.

그의 스트리밍 인생에 가장 큰 고난이었다.

그는 며칠간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험프리 밀런이 찾아왔다.

“에건 폴. 내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

“좋은 생각?”

“MK재단에서 농부 계열 플레이어들을 스칸노르비아로 파견한 건 기억나지? 김철수의 주도 아래 말이야.”

“……그런데?”

“그들이 하루아침에 변사체로 발견된다면? 김철수를 나락으로 보낼 수 있을 거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렇게 억지로 일을 진행시킨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아니, 그건 좀…….”

김철수가 증오스럽기는 했지만 에건 폴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자였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밀어넣을 생각은 없었다.

“김철수만 없으면 네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리머라고.”

“…….”

험프리 밀런이 품 안에서 회중시계하나를 꺼내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뭐 하는 거야?”

“네 불안해진 마음을 안정시켜줄 거야.”

마치 최면을 걸듯이.

험프리 밀런은 속삭이듯 말했다.

“김철수만 없으면 돼. 네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리머야.”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에건 폴의 눈에서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스칸노르비아에도 극단적인 무장세력들이 존재해. 그들을 이용하면 아주 쉬워질 거야. 나를 보내줘. 내가 그들을 움직여볼게.”

“김철수만 없으면…….”

“그래, 김철수만 없으면.”

에건 폴의 눈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려면 김철수의 시선을 빼앗을 만한 어떤 사건을 벌여야 해. 일종의 양동작전이지.”

“양동…… 작…… 전.”

“세상은 지금 이능을 지닌 농부들에게 기대와 찬사를 보내고 있어.”

“……으으…… 어어…….”

에건 폴의 몸이 축 늘어졌다.

험프리 밀런의 정신계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는 반쯤 시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뛰어난 나무꾼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존재하지. 그들 또한 이능으로 무장한 상태고. 나는 천재 벌목꾼을 알고 있어. 내 고향 출신이고, 레벨은 무려 200에 달해.”

“…….”

“그를 통해 서울의 수호수를 벌목하자. 벌목에 성공하면 더없이 이슈가 돼서 좋은 엘튜브 각일 거고. 실패하더라도 김철수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으니 상관없어.”

“……으으…… 으으…….”

에건 폴은 저항하듯 몸을 뒤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험프리 밀런은 또다시 회중시계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속삭였다.

“김철수만 없으면 네가 1등이야.”

“……으으……!”

“너는 그저 작전 계획에 사인만 하면 돼. 모든 것은 우리가 알아서 진행할게.”

험프리 밀런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고 에건 폴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 뒤, 지장을 찍었다.

지장을 받아낸 험프리 밀런은 등을 돌리고 걸어 나오며 히죽 웃었다.

‘김철수, 너는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김철수는 둘도 없는 친구인 존 프릭을 살해한 원수이자, 존 프릭과 함께했던 실험과 계획을 망쳐 버린 원흉이었다.

험프리 밀런은 김철수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도록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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