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6화
국정원으로 복귀하는 내내 마리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철수의 영향은 극히 극단적이야.'
김철수는 지구 서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녀 입장에서 좋은 영향을 꼽자면, 수많은 랭커들이 김철수의 영향을 받아 마리아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구 서버를 위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김철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여왕개미의 습격 때 김철수가 너무 수월히 막아냈었지.'
사실 그렇게 끝났으면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적어도 한국 서버는 통째로 먹혔어야 했고, 인류는 더 심각한 멸망의 위기를 체감했어야 했다.
김철수가 너무 쉽게 여왕개미를 막아냄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막아버린 측면도 있었다.
'긍정적인 영향력과 부정적인 영향력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
그런 김철수와 합류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고민이 많이 되는 사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분명 워프포탈은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가 될 거고, 김철수의 말대로 하루 예산이 수십억에 달할 수 있어.'
그렇다면 마리아 자신이 꿈꾸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리아는 지구 서버가 시스템에 잘 적응하여서 남 부럽지 않은 강대 서버로 자리잡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실적 압박도 덜하겠지.'
국정원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무려 트리니티 두 명이 즐거움을 위해 운영하는 재단.
심지어 그 트리니티 두 명이 돈쭐과 돈벼락이다.
'가끔은 이성과 합리보다는 감성과 마음이 앞서야 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투자에 대한 것이 그렇다.
현 국정원 소속일 때에는 아무래도 상급자들 눈치를 봐야 한다.
이 플레이어가 정말로 투자하기에 적합한가에 대해서 굉장히 합리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마저도 까다로운 심사와 검증을 통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돈쭐과 돈벼락이라면?
-음, 재미있어 보이는군. 투자해!
-플레이 스타일이 마음에 드네요, 잘 키워보죠.
은혜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깟 푼돈이 뭐 대수라고. 열심히 시도했다는 게 아름다운 거 아니겠는가! 으하핫!
-치열한 시도가 아름다웠어요, 보기 좋았어. 기죽지 말고 계속 아름답게 진행해 봐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표정으로 말하던 김철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김철수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게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김철수에게 연락했다.
"합류하죠."
* * *
한마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돈벼락, 돈쭐 지구 서버 합류했다고 함.
┗그건 이미 유명한 사실 아님?
┗작업공방 최갑수 갤러리였나? 그걸로 이미 플레이 하고 있던데.
┗그게 아님. '아름다운 플레이를 위하여'라는 플레이어 육성기관 설립했다고 함.
┗헐? ㄹㅇ?
'아름다운 플레이를 위하여.'
그것은 거의 비영리 자선단체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서울 한복판에 엄청 큰 땅 매입해서 학교를 짓고 있다던데?
┗플레이어 아카데미? 그런 호화로운 건 강대 서버에나 있는 거 아님?
┗전 우주적으로 12개도 안 됨.
┗이제 갓 오픈베타를 벗어난 서버에 아카데미가 생긴다고? ㅋㅋㅋㅋㅋ 도랏맨ㅋㅋㅋ
재미있는 건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 라이벌, '돈벼락'과 '돈쭐'이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은 사이좋았던 거 아님?
┗지구 서버 설정도 먼 친척 관계라 함.
┗누가 사이 안 좋다고 했누ㅋㅋㅋㅋㅋㅋ 저 정도면 씹절친이지
그런데 돈벼락과 돈쭐의 재단 설립이 분명 이례적인 기행이기는 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니까.
-근데 왜 트리니티느님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임?
┗그거 인터뷰 따온 거 있음.
┗링크졈
┗eltube.com/watch.......
최갑수의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이 지구에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여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큰 영감을 받았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출해 주기 원합니다.
최갑수가 말하는 '아름다운 플레이를 보여준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한 명으로 좁혀졌다.
-김철수 얘기 아님?
┗지구 수준에서 돈벼락 마음에 들려면 채소 김철수임.
┗ㅇㅈㅇㅈ 개쌉ㅇㅈ
-근데 지구 서버 스트리머 계열 1위는 에건 폴 아님?
┗그게 조금 이상하다 함.
┗화력 보면 김철수가 압도적인데 시청자 숫자는 에건폴이 더 많음 ㅇㅇ
┗라이트 시청자가 많은가 보지.
사실상 차진혁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재단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차진혁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타 서버의 시청자들이 한마갤에 수많은 의견을 내었다.
-지구인들은 들어라. 이건 솔직히 개사기급 혜택임을 알아야 한다.
-너네는 진짜 운빨 터진 거임ㅋㅋ 김철수한테 절 백번 해야 함.
-아 개부럽누, 우리도 김철수 복붙해 주라,
이른바 김철수 효과라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오히려 'HARD 운동'은 비판을 받게 되는 형국에 이르렀다.
-멀리 보면 결국 김철수처럼 해야 살아남는 거 아님?
┗맞말ㅋㅋㅋ 듣기 좋은 말 누가 못함?ㅋㅋㅋ 찰스인지 찰수인지 던전에서 존나 웃겼는뎈ㅋㅋㅋ
┗그게 팩트임. 말로만 평화평화 인권인권 ㅋㅋㅋ
┗평화무새 ㅈ되눜ㅋㅋㅋ
김철수 효과가 대세 여론으로 떠오르면서 영국 기자 찰스는 마음 놓고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되었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
퍽!
누군가가 찰스를 향해 계란을 던졌다.
"하드나 처먹어!"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급히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결국 밤 늦은 시각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가고 말았다.
'미치겠군.'
그는 그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철수의 플레이는 김철수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동료 중 한 명 정도는 미쳤어야 했는데. 그래야 HARD 운동에 탄력이 생겼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어떻게 한 명도 미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했는지, 하늘이 김철수를 도운 모양이었다.
"김철수처럼 플레이하면 안 돼. 이건 인간존엄의 문제잖아. 어째서 사람들은 이리 어리석은 것에 열광한단 말이냐!"
그는 수없이 탄식했다.
김철수의 '옳지 못한' 플레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고 또 많은 이들의 인권을 짓밟을 것이다.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몰상식한 기치 아래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스러져 가겠지.
어린이들이 옳지 못한 것을 보고 배우고 자랄 것이었다.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 가르치면 돼.'
그는 지식인이었고 배우지 못한 대중들을 계몽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방법을 생각하자.'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지구와 연결된 첫번째 서버인 '스칸노르비아'는 용맹한 전사들의 서버였다.
"긍지높은 전사들아. 새로운 땅이 열렸다."
원래 스칸노르비아는 수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진 서버였었다.
대륙 하나에 대략 10억 명 내외의 인구가 몰려 살고 있는 서버.
땅이 매우 척박하여 농사도 어렵고 서버 자체의 자원이 빈약한 편이어서 그들은 약탈과 침략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 수천 년간, 부족단위의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약탈하며 강자만 살아남았으나 최근에는 그 기조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 스칸노르비아는 역사상 가장 강맹하다."
"칸! 칸! 칸!"
"칸! 칸! 칸!"
커다란 도끼를 든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이 발을 구르며 '칸'을 연호했다.
'칸'은 스칸노르비아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부족 간의 전쟁을 멈추고 대륙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부족의 힘을 통합하여 자원이 풍부한 타 서버를 침략했다.
단순히 약탈에 그치지 않고 힘으로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스칸노르비아는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맞이했다.
"지구 서버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배고픔을 모른다."
광장 한가운데.
지구 서버와 관련된 영상이 허공에 재생되었다.
수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모습, 음식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골라먹는 사치스러운 모습(뷔페) 등이 보였다.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행위였다.
"그리고 보아라. 저들이 얼마나 헛된 평화에 찌들어 있는지를."
HARD 운동에 관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깃발을 들고서 HARD를 외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굴렀다.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저런 전사답지 못한!"
"저런 유약한 놈들이 어떻게 저렇게 풍요로운 땅에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이냐!"
전사들은 분개했고, 칸은 그런 전사들을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는 저들에게 전사가 무엇인지, 전사의 심장이 무엇인지, 전사의 정신이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가라, 용맹한 전사들이여. 전사의 심장을 이식하라! 전사들에게 출항을 명한다."
그들의 1차 목표는 영국맵이었다.
* * *
서버의 연결이 반드시 축복과 번영을 약속하는 건 아니었다.
"용맹한 전사들이여! 이 땅을 짓밟아 전사들의 발아래 놓아라!"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첫 목적지로 삼은 곳은 영국이었다.
전사들의 평균 레벨은 100을 상회했고, 영국 플레이어들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도무지 막아낼 수 없었다.
영국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일.
총리와 여왕이 항복을 선언함과 동시에 전 세계 플레이어들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지구 서버, '영국맵'이 스칸노르비아 서버의 식민지령으로 등록됩니다.]
영국맵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이 스칸노르비아 서버에 강제 전송당했다.
지구는 스칸노르비아에 비해 훨씬 더 문명적으로 발달한 서버였고 풍요로웠다.
스칸노르비아에는 축복이었다.
-충격! 18세 이하 소년, 소녀들을 노예 착출.
-끔찍한 인권유린의 현장. 오늘을 과연 21세기라 할 수 있는가.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 EPU가 나서야!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목과 팔다리에 사슬을 차고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또 꽤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플레이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논의했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 또한 플레이의 영역이었고 군대가 개입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플레이어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 되었다.
EPU(유럽 플레이어 연합)의 연합장 루이스는 플레이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영국이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저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구의 모든 플레이어가 힘을 합쳐 저들의 반인륜적인 탄압과 착취를 저지해야 합니다. 힘을 모아 주십시오. 영국 다음은 누가 될지 모릅니다.
차진혁은 TV를 통해 상황을 보면서 오징어다리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길래 기본을 지켜야 한다니까."
HARD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에 동조하였고 '인간다운 플레이'를 지향했다.
덕분에 플레이 부작용이 가장 적은 나라로 손꼽히고, 자축하며 타국 플레이어들을 야만스럽고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저래 되지."
조금 고민했다.
'저기 가면 레벨 100 넘는 전사들이랑 싸울 수 있겠지?'
김철수 아니고 김평범으로 가서 싸우면 무척 신이 날 것 같기는 했다.
그렇지만 숫자에서 너무 밀린다.
방문이 활짝 열리고 차진솔이 씩씩대며 걸어 들어왔다.
"오빠, 이거 봐."
"뭐?"
차진솔이 가져온 건 '칸'의 도발영상이었다.
영상은 끔찍했다.
HARD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찰스가 나무에 묶여 불타고 있었다.
전사들이 전사답지 못한 찰스를 화형에 처한 것이었고,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차진혁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영상을 살펴보았다.
지구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행위지만, 우주 전체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이기도 했다.
지구 기준으로는 노예가 끔찍한 제도지만, 전 우주적으로 봤을 때 노예제도는 너무 보편적이고 당연한 제도이기도 했다.
다가올 세상은 절대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힘이 없으면 유린당하는 세상이다.
미래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죽음을 수없이 경험한 차진혁에게 화형 같은 건 그리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었다.
질겅질겅.
버터 풍미가 가득해서 맛이 참 좋았다.
-"지구 플레이어들은 다 이렇게 나약한가?"
잠깐. 약하다고?
차진솔이 거기서 영상을 멈추고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이건 선 넘었지."
"……."
차진솔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는 김평범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