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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47화 (14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7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다.

-이봐, 김평범, 저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참을 셈이야?

-지구 플레이어들이 다 약해빠졌다잖아!

그 진심 어린 목소리가 내 마음에 닿았고, 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동생아. 임계점이 뭔지 알아?”

“임계점?”

“임계점이란 열역학에서 상평형이 정의될 수 있는 한계점이야. 그 점을 넘어가면 상의 경계가 사라지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의 마음은 99도씨의 물이었어.”

거기에 차진솔이 1도를 더해줬다.

100도가 되면 물은 끓어서 수증기로 변한다.

“네가 김평범을 애처롭게 불러대서 어쩔 수 없었던 거다?”

“뭐?”

나는 잘못 없다.

이건 다 차진솔이 옆에서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유혹에 얼마나 취약한데, 옆에서 저렇게 자극하고 유혹하면 안 넘어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무래도 한판 떠야겠다.”

평균 레벨 100의 전사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신나게 칼을 휘두르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상상만 해도 전율이 일었다.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한 가닥 이성의 끈이 톡! 하고 끊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토요일은 아니지만 김평범이 활약하기 좋은 날씨이기는 하지.”

“애들 다 불러 모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우리 애들도 다 부르고, 애들이 이끄는 2차 연합원들까지 다 부르면 영국맵에서 박 터지게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알았어. 그럼 내가 연합원들 다 소집할게.”

“차진솔. 근데 하나만 묻자.”

“뭐?”

“너도 혹시 쟤들이랑 싸우고 싶은 거냐?”

“…….”

나는 괜찮은데 얘까지 그러면 좀 곤란한데.

아니라고 맨날 부정하기는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아주 약간 미친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자극만 없으면, 나는 이성으로 내 자신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이고, 나 자신은 약간 미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동생은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마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그렇지?”

“……응. 당연하지. 나는 그냥, 김평범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을 뿐이야. 난 김평범의 팬이니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지 혼자서 도끼눈을 떴다.

“오빠 팬이 아니야. 김평범 팬이지.”

그게 그 말 아닌가 싶어서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이게 그 유명한 MZ세대식 사고법인가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그럼 난 연합원들 소집할게. 공식 통지서 돌릴 거라 시간이 조금 걸려. 조금만 기다려줘.”

“그래.”

……왜 저렇게 뒷모습이 신난 거 같지.

왠지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 같아서 나는 중계자의 시야 사용을 포기했다.

내 동생이 정상이면 좋겠다.

* * *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와 차진솔의 계획은 일단 보류되었다.

왕유미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이었다.

“김평범을 끌어들여서 영국으로 가겠다고요?”

차진솔의 움직임이 송하영에게 읽혔고, 송하영이 왕유미에게 전달했다나 뭐라나.

송하영과 왕유미가 언제 또 이렇게 친분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훨씬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보실?”

왕유미는 내게 틀린 조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조언할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어도 지나고 보면 왕유미의 말이 늘 옳았었다.

“김평범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최고의 효과를 가져다줄 거랍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뭐랄까.

왕유미는 내가 김평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눈치챘나?’

그 무서운 왕유미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도 왕유미도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 먼저 이 생각은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에요. 저 또한 뛰어난 자문위원과 함께하고 있거든요. 패스파인더라고…….”

“한세린?”

“네. 두 분 친분이 있죠? 아! 길잡이라고 무시하시면 안 돼요.”

무시한 적 없다.

길잡이로 시작한 한세린은 훗날 ‘절대군주’ 특성을 가진 위대한 군주로 성장하니까.

“식견이 탁월해서 종종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저희 생각은 이래요. 먼저 김평…….”

한세린이 이 시기에 벌써 군주 역할을 한다고?

얘도 성장이 빨라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 * *

영국맵이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에게 점령당하면서, 지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줄줄이 벌어졌다.

-HARD 운동의 대표주자, 찰스 화형에 처해져.

-끔찍한 인권유린의 현장,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세계는, EPU는 어째서 침묵하는가.

그러한 가운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굴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한국의 유명 스트리머 중 한 명, 강미나의 방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 SSS급 플레이어 김평범,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를 짓밟아주겠다”]

강미나의 방송에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라고 알려진 김평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평범이 말했다.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누구냐? 나와 한 판 붙자. 겁쟁이라면 도망쳐도 상관없고.”

아주 단순한 도발이었다.

-저게 무슨 소용임?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ㅋㅋㅋ

-영국으로 직접 날아가 싸워줘도 모자랄 판에 저게 뭐임?ㅋㅋㅋㅋ

-스칸노르비아 야만인들이 보긴 하겠누?ㅋㅋ

-이건 영국인들의 고통을 조롱하는 것이다. 이 끔찍한 재앙에 보다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그러나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은 그 도발에 쉽게 응했다.

그들은 영국 플레이어들 중 스트리머 몇을 데려와 영상을 공개했다.

스칸노르비아를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 ‘칸’이 직접 말했다.

-“너의 레벨, 원하는 위치, 장소, 시간을 말하라. 네놈의 머리통을 두 쪽으로 갈라주지.”

용맹한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칸은 김평범의 도발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제법 용맹함을 흉내 내는 놈은 있었구나.”

칸은 지구 플레이어의 첫 도전에 꽤 기꺼워하며 영국맵 수탈을 잠시 멈추었다.

-“똑똑히 보아라, 전사들의 위대함을.”

대외적으로 김평범의 레벨은 130대.

그래서 칸 또한 레벨 130대의 일류전사 퐁푸르를 간택하여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공식적인 결투에서는 레벨급을 맞추는 것이 전사들의 예법이었으니까.

“가라. 전사의 심장을 보여주고 돌아오너라.”

레벨 138.

일류전사 퐁푸르는 칸에게 고개를 조아리고서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

영국 총리의 전용기를 강탈하여 한국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과연 퐁푸르와 김평범의 전투가 어떻게 될지를 주목했다.

-드디어 지구도 반격하는 건가?

-김평범이 지구에서 제일 센 검술가 맞지?

-ㅇㅇ이레귤러급으로 세다 함 ㅋㅋ 근데 실전경험이 많이 딸릴 텐데?

그러나 둘의 결투는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놀라운 소식이 세계를 강타했다.

* * *

-일류전사 퐁푸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다.

-퐁푸르 사망, 암살자의 소행이라 짐작돼.

퐁푸르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살해당했다.

정정당당한 일대일 결투에서 퐁푸르를 죽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몇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암살은 달랐다.

암살자들은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도 쉽게 죽일 수 있다.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말이다.

-도대체 누가 죽인 거임?

┗영국 저항군 아니겠음?

┗그래도 영국이 한 건 하네?ㅋㅋ걍 ㅈ밥인 줄 알았더니

그런데 퐁푸르의 시신 옆에 ‘메롱’을 형상화한 표식이 남겨져 있었다.

-저건 천사소녀의 표식인데?

┗ㅂㅅ아 천사소녀는 도적이지 암살자가 아님ㅋㅋㅋ

┗메롱 표식이 천사소녀 전매특허인 줄 아는 무뇌아가 여기도 있누 ㅋㅋㅋ

┗메롱메롱,,§%^@§ 수익률 300% 메롱메롱 ♤♠♧♣ 보장 ◁◇클릭 §♠♧♣

정확히 말하면 천사소녀 송하영의 단독 소행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도적이었고, 암살자로서의 능력은 그리 탁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모사 곽도형과 함께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흑장미 연합의 비밀 은신처.

가슴팍에 크게 상처를 입은 곽도형이 침대에 누운 채 말했다.

“누님 도움 덕분에 비교적 수월했네.”

도적인 송하영과 암살자인 곽도형이 함께하자 그 능력은 배가 되었다.

“심장 쪼개질 뻔했던 건 괜찮아?”

“거의 회복단계에 들어섰어.”

“퐁푸르가 세긴 세더라.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데.”

“3㎝만 더 깊이 들어왔어도 나도 죽었을걸?”

퐁푸르를 암살한 건 ‘흑&흑 연합’의 힘이었다.

곽도형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

“형님께서도 나의 플레이를 인정해 주시겠지?”

“그렇겠지.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 으아아아악!”

“왜, 왜 그래?”

“비, 빌어먹을 긴고……!”

“뭐?”

송하영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한참 후, 차진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너희냐?”

-“제발 이것 좀 으아아악!”

송하영은 차진혁이 왜 긴고주를 외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일부러 표식을 남겨서 오히려 누가 그랬는지 더 헷갈리게 만드는 교란작전까지도 펼쳤다.

그야말로 정석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기본을 중시하는 차진혁이 무척 좋아할 플레이였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긴고주라니.

송하영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곽도형의 몸이 스르르- 사라졌다.

은신을 펼쳐서 자리에 없는 척했고, 송하영이 버럭 소리쳤다.

“방금까지 못 일어났던 놈이, 으, 으아아악!”

너무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곽도형이 어디 숨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악! 곽도형. 이거 다 곽도형 짓이야! 곽도형이 죽였어!”

* * *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송하영의 얼굴은 이미 핼쑥해졌고 곽도형은 가슴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송하영은 차진혁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머리로는 최대한 이해하고 납득해 보려 노력했다.

“이걸로 칸이 분노해서 그들의 침략이 세계대전급으로 확대될 것을 걱정하는 거야? 그거라면…….”

“뭔 소리야.”

“……응?”

“내가 군주냐? 그런 걸 신경 쓰게.”

차진혁은 자신에게 군주로서의 재능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군주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나 스트리머야. 스트리머가 왜 그런 걸 신경 써?”

“그, 그럼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건데? 요?”

곽도형도 조금 억울해 보였다.

“저희가 어떤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겁니까? 그렇다면 꾸중하여 주십시오, 형님.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너네가 기본을 지키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차진혁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김평범이 싸울 기회를 왜 뺏어, 니네가?”

“……응?”

“예?”

“김평범이 얼마나 타 서버의 침략자와 싸워보고 싶어 했는지 알아? 김평범의 마음을 니네가 아냐고.”

차진혁은 진심으로 분노했고 송하영과 곽도형은 그 절실함과 진실함 앞에 두 눈을 내리깔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둘이 절친이랬지.’

‘그렇다. 두 분은 신화급 카드를 빌려줄 정도로 친했다.’

“김평범의 간절함을 왜 너희가 뭉개!”

어쨌든 일류전사 퐁푸르는 사망했다.

이에 위대한 지도자 칸은 크게 분개하며 영국맵을 더욱 가혹하게 수탈했다.

-“전사답지 못한 놈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네놈들의 씨를 말려주겠다.”

칸의 격렬한 분노 가운데 스칸노르비아 전사들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는데,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퐁푸르를 암살한 세력은 한국의 검은가시 연합이다.

-살모사 곽도형, 퐁푸르 암살은 내가 주도했다 밝혀.

심지어는 곽도형이 직접 나서서 자신이 퐁푸르를 암살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배후에 김평범이 있다고도 알려왔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놈들!”

“심장을 꺼내 씹어먹을 놈들!”

스칸노르비아의 전사들은 분기탱천하여 당장에라도 한국맵에 쳐들어가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퐁푸르의 죽음은 사건을 예측불허의 카오스 상태로 몰아갔다.

그리고 차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진짜 이게 되네?’

이 모든 것은 왕유미와 한세린의 합작 시나리오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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