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7화
차진혁은 봉킹에게만 감탄한 게 아니었다.
자신을 치료해 줬던 힐러 임종민의 힐량에도 감탄했고 –사실 이건 차진혁의 체질 자체가 힐을 워낙 잘 받는 체질이라서 그런 거지만- 길잡이인 김무진에게도 감탄했다.
"그 사이, 책장 뒤쪽의 비밀공간을 발견해 냈네요. 대단한 실력입니다."
전투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길잡이 김무진은 책장 뒤의 비밀공간을 발견해서 틈을 만들어냈다.
"비밀공간을 개방하는데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길잡이가 혼자서 그 조건들을 다 만족해 낸 모양입니다. 역시 길잡이의 능력은 대단하네요."
사실 김무진이 이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차진혁의 영상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 * *
* * *
차진혁의 칭찬에 김무진은 약간 당황했다.
'내, 내가 대단해?'
그는 검술가인 이현성과 탱커인 최강벽이 혼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이현성과 최강벽이 탈탈 털렸는데 내가 칭찬을 받았다고?'
김무진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김무진도, 차진혁도 깨닫지 못했다.
차진혁의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그의 기준은 라이벌이었던 이현성, 옛동료였던 최강벽에게 지나치게 높았다.
같은 것을 해내도 이현성이나 최강벽이 하면 당연한 거고, 다른 사람들이 하면 대단한 것처럼 인식되는 인지의 부조화를 그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참고로 그 기준은 차진혁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했다.
그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조금 낮았더라면 '나는 스트리머니까 150까지밖에 못하겠지'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자기객관화가 많이 부족했다.
한편, 차진혁의 칭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김무진은 조심스레 차진혁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먼저…… 들어가시겠어요?"
[……#나의 첫 영광을 김철수에게]
자신이 발견해 낸 첫 영광을 김철수에게 바치고 싶었다.
만약 같은 말을 한세린이나 목재현이 했다면 '스트리머가 왜 먼저 들어가냐? 개념이 아직도 그렇게 없어?'라고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한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잡이가 그렇게 선택했다면 따라야죠."
김철수의 그 한 마디가 김무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려 김철수가 길잡이인 자신을 인정해 준 것이었으니까.
가슴이 또다시 벅차올랐다.
'나는 최강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오늘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차진혁은 감동한 김무진을 뒤로한 채, 비밀공간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상한 비밀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수상한 비밀통로'를 발견하였습니다.]
첫 판정이 떴다.
[히든피스, '발자국을 남기는 자들과의 조우'가 활성화된 상태입니다.]
[신세계 시나리오, '새로운 곳에 홀로, 그리고 함께 걷다'가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첫 판정.
히든피스.
신세계 시나리오.
이 세 가지 조건이 어우러져 차진혁에게 시나리오 아이템이 하나 주어졌다.
[시나리오 아이템, '존프릭이 분실한 연구일지 한 조각'이 주어집니다.]
[시나리오 보상으로 필드, '수상한 비밀통로'가 필드, '존프릭의 비밀통로'로 변경됩니다.]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존프릭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 거 같습니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존프릭의 비밀통로'를 따라 걸었다.
저만치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이 보입니다."
빛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여 결국 밖으로 이동했다.
[필드, '존프릭의 은신처(구, 동쪽 성읍)'에 진입하였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런 식으로 동쪽성읍에 진입한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응?'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아무도 안 따라오지?
몇 분 뒤, 길잡이인 김무진만 헥헥대며 뛰어왔다.
"가, 같이 좀 가주세요."
플레이어들은 한참 후에야 존프릭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동쪽 성읍. 다른 플레이어들의 영상을 많이 보기는 했는데, 존프릭의 은신처로 변경된 곳은 처음 진입합니다."
차진혁도, 봉킹도 모두 흥분했다.
봉킹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슈퍼 초 간지나는 거 보여준다고 했냐, 안 했냐! 세계최초! 존프릭의 은신처다!"
-볼빨간산사춘: 응, 그거 김철수빨이쥬.
-유한도전: 응, 슈퍼 초 간지는 김철수구요.
성벽 안쪽으로 폐허가 된 마을이 보였다.
"등장하는 마물들도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레벨은 90대. 메마른 광야와 비슷한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기괴한 키메라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메마른 광야에서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들의 형태가 각양각색이었다면, 이곳은 인간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낸 키메라들 같았다.
차진혁은 전투에서 한 발 빠진 채 그 나름대로 방송을 이어갔다.
봉킹이 물었다.
"김철수 님. 왜 전투에는 참여 안 합니까?"
"그야 전 스트리머니까요."
-유한도전 : ???
-M이냐App이냐: ?
-외조맨이야 : ?????????????
봉킹의 채팅창에 수많은 '?'가 달렸다.
김철수가 스트리머라는 걸 잊었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봉킹은 김철수의 의도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제가 보기에는 시시해서 그런 거 같네요."
"……."
"맞죠?"
차진혁은 부인했다.
"스트리머라서 방송에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팀원들 간의 협력플레이가 뛰어나네요."
봉킹은 말하고 싶었다.
이현성과 최강벽을 그렇게 후드려 패고 나서는, 팀원들 간의 협력플레이가 뛰어나다고?
확실했다.
여기 나오는 90레벨대 마물들을 상대하기는 너무 시시해서 직접 전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차진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시한 건 사실이지만.'
시시한 마물을 사냥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짜릿함은 많이 줄어도, 치열한 전투에서 배웠던 것을 반복 숙달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이번에 그것을 포기하고 봉킹 옆에 붙은 것은 차진혁이 봉킹을 '훌륭한 스트리머'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봉킹 님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어떻게 방송을 진행하나.
부족한 내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봉킹은 시청자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봉킹은 순간 당황했으나 티 내지 않고 히죽 웃었다.
"들었냐, 얘들아?"
채팅창에 수많은 '???'가 떠올랐다.
봉킹이 다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죠? 김, 철, 수, 님?"
"봉킹 님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라고 말했는데요."
봉킹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봤냐고? 이게 내 위상이다?"
겉으로는 온갖 허세를 부려대며 말했지만 실상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철수의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인 김무진과 달리 봉킹은 조금 더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김철수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진짜로 나한테 뭘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 거잖아.'
그럴 리 없다.
봉킹 생각에 김철수는 천외천의 플레이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한 수 가르쳐드리죠, 후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곳에도 부활설정이 걸려 있어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여러 번 죽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군주인 강민혁은 무엇인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어.'
김철수를 만난 이후로 팀 전체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머리가 으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물을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다면 팔다리가 잘리는 것 정도는 예사였다.
'위험한 플레이'에 대한 기준이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었다.
다들 과감해졌다.
군주인 강민혁의 기준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확실히…… 효율적이야.'
저러다가 누구 한 명의 정신이 박살 나서 폐인이 될 거 같기는 했다.
그렇지만 효율만 따지고 본다면 대단한 효율이었다.
'원래는 위험해서 지양했을 텐데.'
평소였다면 이런 식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자꾸 눈에 밟혔다.
'놀랍게도 다들 멀쩡해!'
연속해서 죽임을 당하면 위험하다라는 건 평균적인 얘기였다.
봉킹과 함께 신세계에 들어왔을 정도면 각 계열의 랭커.
강민혁의 기준이 점차 바뀌었다.
'랭커들은 죽어도 되나 봐?'
안전이라는 요소를 조금 덜 지향해도 될 것 같았다.
'왠지 이게 기본 같기도 하고?'
결국 꾸역꾸역 생성되던 마물들을 모조리 사냥했다.
인간 여럿을 이어붙여 지네 형태로 개조한 마물.
'존프릭의 장난감'이 쓰러졌다.
['존프릭의 장난감'을 처치하였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마물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필드는 고요했다.
이따금 까악- 까악- 하고 까마귀가 울었으나 별다른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강민혁이 차진혁에게 다가갔다.
"마물은 모두 처치했습니다. 더 이상의 진행이 막힌 것 같은데요."
"그걸 왜 저한테?"
"……예?"
강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김철수는 스트리머지.'
이런 상의는 길잡이인 김무진과 해야 하는 건데.
저도 모르게 스트리머인 김철수에게 의견을 묻고 말았다.
"미안합니다."
"저한테 미안할 건 없죠. 그렇지만 길잡이분한테는 미안해해야겠는데요?"
마침, 길잡이 김무진이 땀을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폐허가 된 집들을 일일이 뒤지면서 단서를 찾았다.
개중 커다란 우물이 있는 집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우물에서 안개 같은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그래. 내가 아까 봤던 게 맞구나.'
사실 아까 성벽 위에 올라갔었을 때 발견했었다.
낙안 읍성에서 해금술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방송으로 노출하지는 않았다.
방송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콘텐츠의 지나치게 빠른 진행은 오히려 시청자들을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진혁과 봉킹팀은 김무진의 안내를 따라 우물가로 향했다.
차진혁이 말했다.
"정말 수상한 우물이 있군요. 이걸 어떻게 발견했습니까?"
만약 한세린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걸 이제야 발견했냐?'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김무진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여러 마물들의 필요한 부분들을 절단해서 이 우물에 집어넣었습니다. 길잡이의 스킬로 잘 들어보면 자꾸 배고프다는 소리를 중얼거렸거든요.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는데, 정령의 불길로 고기를 익혀서 넣으니까 이렇게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김철수는 보며 김무진은 또다시 감격에 차올랐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을 확인했으며, 본인이 지니고 있던 한계를 부쉈다.
"몇몇 해석스킬을 동원해서 살펴보니, 이 우물에는 얇은 결계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데요."
김무진이 이름 모를 가루를 꺼내 우물 쪽으로 후욱- 불었다.
그러자 허공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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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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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하게 정령력이 느껴집니다. 정령력을 활용해서 만들어낸 방어선같은 느낌이네요. 다만, 이 방어선을 어떻게 뚫어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차진혁이 우물 앞에 섰다.
그리고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다.
사실 룰 브레이커가 필요한 작업은 아니었으나, 망치 형태의 아이템을 들고 연출하는 것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룰 브레이커를 꺼냈다.
'무슨 대사를 치지?'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연출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차진혁은, 차진혁만의 멋드러진 대사를 생각해 냈다.
"나의 칼은 인위를 부순다."
망치를 높이 들어 올려 꽝! 내리쳤다.
적용된 업적은 '인위를 부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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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를 부수는 자]
인위적인 모든 것을 무너뜨리라.
신세계의 법도를 무시한 모든 행위에 판단의 철퇴가 내려지리니, 그날에 모든 것은 부서지리.
업적 효과 : 인위에 의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 증폭. (단, 해당 효과는 신세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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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킹TV의 시청자들이 합리적인 의문을 표했다.
-칼?
-칼이라고?
-망치 아니고?
여론이 하나로 모아졌다.
-김철수가 쓰면 망치 아니고 칼임. 아무튼 칼임.
업적을 적용한 상태로 차진혁은 '해금술'을 사용했다.
결계와 룰 브레이커가 부딪치면 붉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차진혁 입장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연출이 되었다.
'부쉈다.'
차진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최후의 저지선이 파괴되었다는 건, 존 프릭에게도 남은 패가 많지 않다는 뜻일 겁니다. 아마 조급해지겠죠. 상황이 이쯤되면 도망치려고 할 텐데요.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 될 거 같습니다."
차진혁은 곧바로 어두운 우물 안으로 몸을 던졌다.
"쫓아보겠습니다."
봉킹은 차진혁이 떨어져 내린 우물 안쪽을 내려다보았다.
"씨X, 나 고소공포증있단 말이야. 밑이 보이지도 않는데 여기서 어떻게 뛰냐고! 야이씨! 내가 못난 거냐! 김철수가 미친 거지! 이런 데서 떨어지면 보통은 죽어! 아래 뭐가 있을 줄 알고 뛰어내려! 길잡이가 먼저 파악도 안 했는데! 미쳤냐! 난 안 뛰어! 못 뛰어!!"
봉킹은 비교적 상식적인 동료라고 믿었던 강민혁을 쳐다봤다.
"군주. 우리는 어떻게 하죠? 분명 이런 무식한 방법 말고 다른 방……."
이미 강민혁은 우물 위로 발을 걸치고 있었다.
"뭐해요? 안 오고?"
그 옆에는 길잡이 김무진도 함께였다.
봉킹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들 미쳐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