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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28화 (12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8화

우물은 상당히 깊었다.

'언제까지 떨어져?'

차진혁에게 고소공포증은 없었으나 오디오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은 존재했다.

"아참,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뛰어내리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떨어지면 보통은 죽는다.

"저야 우물 위에서 세이브포인트를 지정해놨고, 어지간한 충격은 중계결계와 별의 방패로 흡수할 수 있으니까 얘기는 조금 다르지만요. 뭐, 제정신이면 저처럼 뛰어드는 경우는 잘 없겠죠?"

차진혁은 떨어지는 와중, 여러 차례 우물 벽면을 박찼다.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

지그재그 형식으로 몇 번이나 뛰면서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돌출부위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속도를 조절해 주는 게 좋겠지…… 응?"

으아아악!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길잡이가 떨어졌네……요?"

길잡이가 왜 저렇게 떨어져 내리는 거지?

차진혁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으아악!

또 누군가가 떨어졌다.

"군주?"

군주 강민혁도 떨어졌다.

"저렇게 떨어지면 죽을 텐데요. 왜 저러죠?"

실력이 뛰어난 길잡이니까 무슨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낙하속도 줄이겠다고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가.

차진혁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냥 떨어져도 상관없는 곳인가 봅니다. 그냥 떨어지겠습니다."

비효율적으로 에너지 낭비할 필요 없지.

쿵!

바닥에 떨어졌다.

'중계결계.'

중계결계를 사용해서 충격을 최소화시켰다.

바닥에 김무진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출혈이 상당했다.

"길잡이는 크게 다쳤고 군주는 사망했습니다."

차진혁은 김무진을 보며 약간 감명받았다.

"회피가 가능한 아슬아슬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듯, 길을 개척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김무진의 머리에 포션을 부어주었다.

바닥에 똑바로 눕힌 뒤 포션을 입속에도 흘려 넣어주었다.

"정확히 죽지 않을 만큼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린 것이군요."

물론 아니었다.

길잡이 김무진은 아까 차진혁의 뒤를 힘겹게 쫓았던 경험이 있다.

그건 길잡이로서 너무나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경험을 다시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그래서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든 것이었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생존했다.

"근데 다른 팀원들은 좀 오래 걸리는 거 같습…… 응?"

퍽!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요?"

옆을 힐끗 보았다.

"정말 뭐가 깨졌네요."

차진혁이 발견한 것은 아까까지 '봉킹이었던 것'이었다.

"스트리머가 엘튜브각 잡겠다고 너무 무리한 모양입니다. 즉사했네요."

그래도 저 마음과 열정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저지선이 무너진 지금, 존프릭은 어딘가로 도망칠 거 같습니다. 보아하니 워프포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녀석 같네요.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기 전에, 재빨리 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진혁은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쉽네요. 외롭겠지만 혼자 진행해 보겠습니다."

* * *

"길이 매우 복잡한 하수구 형태입니다."

말하자면 이곳은 지하미로였다.

길이 워낙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차진혁으로서는 정확한 길을 찾기 어려웠다.

설령 정확한 길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오랜 플레이어의 감으로, 차진혁은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길잡이가 가르쳐준 것인데요."

차진혁은 대검 라칸을 들어 올렸다.

"미로를 뚫고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미로를 부수는 거라고 했습니다."

이 방법은 한세린이 애용하던 방법이었다.

그건 차진혁의 팀에 뭐든지 잘 부수는 김정현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근데 이게 정석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늘 말해주긴 했었는데.'

스트리머가 벽을 부수면서 가면 좀 이상하려나?

그림이 좀 안 예쁠 거 같기도 한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차진혁은 예전의 한세린이 그랬듯, 나름대로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미로를 정확한 방법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스트리머라서 그 정도 능력이 없거든요."

차진혁은 벽 앞으로 다가가 벽을 만져보았다.

"이 미로 같은 공간은 존프릭이 시간을 벌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 조형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훨씬 편했다.

벽 앞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썸네일 각도 잡았고.'

차진혁 기준에서 낭만이 상당한 대사를 내뱉었다.

"내 칼은 인위를 부순다."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둘러 벽들을 베어냈는데, 그 작업이 차진혁의 기준에는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김정현은 훨씬 효과적으로 잘 부수던데.'

김정현을 기준으로 하면 또다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스킬 별로 안 좋아했는데.'

스킬의 이름은 '부수는 검'.

레벨 60에 얻게 되는 검술가 전용 스킬이었다.

[잠재스킬, '부수는 검'을 해금합니다.]

[스킬, '부수는 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차진혁은 늘 기본을 중시했다.

때문에 레벨 100 이하에서 얻게 되는 스킬들을 주로 애용했었는데, 이 '부수는 검'만큼은 예외였다.

'부수는 검'은 검을 둔기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변칙기술이었다.

차진혁 기준에서 검은 둔기가 아니었다.

둔기가 아닌 것을 둔기처럼 사용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베는 손맛도 별로 없었고.

그리고 이 능력을 사용하면 늘 김정현에게 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건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옛 동료들 중 누가 봐도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지만 차진혁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다.

"레벨 60에 획득하는 검술가 스킬, '부수는 검'을 처음으로 선보이겠습니다."

대검을 휘둘렀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대검 라칸이 벽에 부딪쳤다.

쩌저적-!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벽에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길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운이 좋군요."

* * *

왕유미는 흐뭇하게 웃었다.

'채팅 화력이 장난 아니네.'

왕유미가 딱히 유도하지 않아도, 콘텐츠 자체가 가지는 포텐이 워낙 뛰어났다.

시청자들은 알아서 잘 떠들고 잘 놀았다.

-따뜻한아아메: ㅋㅋㅋㅋㅋ 길잡이 사망실화냨ㅋㅋㅋㅋ

실제로 죽지는 않았으나 죽은 것처럼 보였다.

-두두둥이: ㅋㅋㅋㅋㅋ뱁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지쥬?

-파뿌릴까: 군주 사망, 스트리머 사망ㅋㅋㅋㅋ 아니 김철수를 왜 쫓아온 거임?ㅋㅋㅋ

-초록이침해: 저 김철수조차 제정신이면 저런 짓 안 할 거라는 행동을 해버리누 ㅋㅋㅋ

-따뜻한아아메: 걍 김철수처럼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네ㅋㅋㅋㅋ

방송 속 김철수는 다른 팀원들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미로 개척에 나섰다.

-아쉽네요. 외롭겠지만 혼자 진행해 보겠습니다.

시청자들은 목소리를 듣는 즉시 깨달았다.

-따뜻한아아메: 지금 하나도 안 아쉽다.

-신발롬아: 이제야 할 맛 나는 듯?ㅋㅋㅋ

-두두둥이: 솔직히 지금까지 심심했다 ㅇㅈ?

그런데 화면 속 김철수가 이상한 말을 해댔다.

-미로를 정확한 방법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스트리머라서 그 정도 능력이 없거든요.

-숭어갓: ㅋㅋㅋㅋㅋㄴr왔ㄷr! ㅊ1열맨!

-김치맛선인장: 겸손한 치열맨ㅋㅋㅋㅋㅋ

-신발롬아: 갓철수유니버스 등장이오ㅋㅋㅋ

-치열맨이야: 나는 치열하다 고로 치열맨이다 ㅋㅋㄹㅃㅃ

김철수 유니버스.

김철수 스스로는 모르는, 김철수가 최고인 세계관.

김철수의 겸손(?)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예기치 못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왕유미는 개중에서 비교적 정상적인 채팅들을 추려서 피드백해 주었다.

──────────

-여보용돈좀: 현 상황, 스트리머로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듯 ㅇㅇ

-절므니: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청춘이 아름답네요 ^.~ ㅎ 빛나는 청춘 파이팅 ㅋ

피드백 요약 : 정석은 아니지만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어요.

──────────

차진혁은 그 피드백이 마음에 들었다.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스트리머의 모습은 차진혁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으니까.

저도 모르게 텐션이 높아졌다.

"네! 그럼 계속 벽을 부수면서 전진해 보겠습니다."

['진퉁두더지맨'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아니 ㅅㅂ? 저게 된다고?"]

스스로 두더지맨이라 주장하는 시청자 한 명이 탄식을 내뱉었다.

왕유미는 두더지맨의 채팅을 고정시켰다.

┗이거 찐임?

┗찐두더지맨?

┗ㅈㄹ 120프로 사칭이짘ㅋㅋㅋ

┗쟤가 진짜 두더지맨이 아니라는데 네 손목 건다.

'진퉁두더지맨'은 자신이 '진짜 두더지맨'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진퉁두더지맨'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저건 길잡이가 아니야!!! 길잡이 저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응, 맞음. 진짜 길잡이 아님.

┗스트리머임.

┗스트리머한테 열폭하는 걸 보니 진짜 두더지맨인가?

김잘알TV의 닉네임 진퉁두더지맨.

각성명 두더지맨은 핸드폰을 집어 던질 뻔했다.

"독침 쏟아지는데, 두지?"

그건 중계결계로 막았다.

"날아드는 칼날은, 두지?"

그건 별의 방패로 막았다.

"저 거대한 팔의 공격은. 두지?"

'광야의 미치광이'의 팔과 똑같이 생긴 나무팔이 차진혁을 공격했다.

차진혁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피해냈다.

화면 속 차진혁이 말했다.

-광야의 미치광이에게 붙어 있던 팔과 같은데요, 공격패턴은 더 단순합니다.

차진혁은 피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이렇게 발을 움직여서 피하면 됩니다.

"누가 발을 움직이면 되는 걸 모르냐, 두지!"

참다못한 두더지맨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지금 김철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더지맨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한참을 지켜보던 두더지맨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왜 저게 되냐고, 두지?"

-존프릭의 발자국 같습니다. 존프릭에게 거의 근접한 거 같습니다.

화면 속 김철수가 물에 젖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 * *

차진혁은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찾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여러 가지 소소한 함정들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제일 성가셨던 건 '나무팔'이었는데, 광야의 미치광이랑 싸우면서 익숙해진 상태여서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아직 물이 마르지 않았네요. 도망친 지 얼마 안 된 거 같습니다. 얼른 쫓아가 보겠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이 나타났다.

너무 캄캄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스킬, '중계용 조명'을 사용합니다.]

"발자국이 벽면에 나 있네요? 벽을 타는 스킬이 있는 모양입니다."

발자국이 벽면을 타고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중계용 조명을 사용하여 어두운 벽면을 비춰보니, 발자국이 굉장히 많아졌다.

마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발자국을 찍어놓은 것 같았다.

차진혁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발이 많은가 봅니다."

어느 순간, 발자국이 사라졌다.

"근데 이상한 약품 같은 냄새가 납니다."

마치 병원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몸이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독 비슷한 무언가가 퍼져 있는 것 같은데요."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실험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차진혁은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쓴 거미가 있네요? 특이한 건 배가 엄청 볼록 나와 있습니다."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복부 비만인가?"

전체적인 형상은 거미였다.

'광야의 미치광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얼굴은 차진혁이 알던 외과의사 존프릭과 같은 모양새였다.

[LV128/생체연구가/존프릭/다수의 차원을 넘어]

"조금 더 미친놈인가 봅니다. 놈은 도망쳤던 것이 아니라 사실 함정으로 절 유인한 것 같습니다. 놈의 입에서 보라색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저게 마취약 같은 건가 봅……!"

차진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존프릭이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페이크였다!"

보라색 연기는 시선을 끌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는 이미 공기 중에 무색무취의 마취제를 뿌려놓은 상태.

"처음에는 혀가 마비될 것이고, 이후에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1분 내로 네 폐는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최고의 재료가 되어주겠지."

존프릭이 후후- 웃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실험체가 될 것 같구나."

존프릭이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썩은 나무팔로 차진혁의 몸을 더듬거리며 만졌다.

"아주 싱싱한 육체야. 흐흐흐. 정령들과 융합시키기도 아주 좋겠어."

존프릭이 기다란 나무팔을 덩굴처럼 뻗어내 차진혁의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고서는 유심히 관찰했다.

그때, 차진혁이 눈을 번쩍! 떴다.

"나도 페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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