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6화
탱킹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최강벽도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는 스킬을 운용하며 팀원들을 보호하는 한편,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이지?"
"뭐가?"
"방금 나를 모욕했잖아."
"모욕했다고?"
내가 뭐라고 했지?
차진혁은 스스로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탱킹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는 마음의 소리였다.
최강벽은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탱킹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 * *
"……아!"
"아?"
"혹시 내 생각을 읽어?"
최강벽한테 그런 스킬도 있었나?
"계속해서 나를 모욕하면 더 이상 참지 않겠어."
"그 말 후회하게 될걸."
차진혁은 후우- 한숨을 내쉰 다음 앞으로 나섰다.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빛구슬은 일단 닿아서 폭발하면 광범위 공격을 일으키지만, 닿지 않았을 때에는 공격 범위가 상당히 좁은 공격입니다."
닿지만 않으면 광범위 공격이 아니다.
"아니 왜 벽을 그렇게 길게 펼쳐서 전부 터뜨리는 건지 모르겠네요."
물론 이렇게 하면 방어는 가능하다.
그렇지만 체력소모가 어마어마하다.
안 맞아도 될 것까지 다 얻어맞고 있으니까.
"마침 저도 탱커랑 비슷한 능력이 있죠. 바로 방어기술, 환상검희죠."
최강벽은 묻고 싶었다.
비슷하다고? 어디가?
"국소부위의 방어기술이니까요."
천장 위에서 상급정령 마그나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그나르는 이그리트보다 조금 더 커다란 도마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그리트가 일반적인 도마뱀이었다면, 마그나르는 이족보행이 가능한 도마뱀이다.
"상급정령 마그나르가 위풍당당하게 서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또 공격이 날아들 거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빛구슬이 다시 생성되었다.
"최강벽처럼 막으면 몇 번 못 막고 퍼지겠죠?"
다 막을 필요 없다.
치명상 아닌 것들은 그냥 맞게 내버려 둬야 한다.
팀원들이 무슨 애기들도 아니고.
마그나르가 손을 좌에서 우로 슥- 훑었다.
허공에 6개의 빛구슬이 떠올랐다.
"도합 여섯 개. 그중 두 개는 안 막겠습니다."
날아드는 궤적은 이미 아까 봤다.
겨우(?) 100레벨 대의 마물들은 공격패턴이 그렇게 복잡한 편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올챙이 적을 생각하지 못하는 차진혁의 기준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나머지 네 개인데."
힐끗 뒤를 봤다.
최강벽은 최강벽 나름대로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자세를 보아하니 하나는 알아서 막을 모양이다.
"전체를 한꺼번에 막는 게 아니라."
결국 모든 플레이는 풋워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차진혁은 적절한 위치로 움직여서 환상검희를 사용했다.
"환상검희."
환상검희가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빛구슬 하나를 배에 품었다.
콰과광!
폭발이 일었다.
"폭발의 여파가 퍼지지 않게 잘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차진혁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지만 차진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최강벽 너도 충분히 이렇게 막을 수 있잖아?'
아까 사용했던 '강철벽'을 넓게 퍼뜨리지 않고, 좁은 범위에 집중해서 상자 형태로 만들면 되는 거니까.
"이러면 하나는 없어졌죠. 이러면 어그로는 거의 완벽하게 잡혔습니다."
차진혁은 곧바로 허공에 뜬 마그나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건 중계결계로도 가능할 거 같네요."
환상검희로 대신해서 맞아보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직접 맞아봐야한다.
남은 다섯 개 중 무려 세 개가 차진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차진혁이 마그나르의 몸을 꽉 껴안았다.
마그나르는 강대한 폭발력을 가진 빛구슬을 사용하지만, 본신의 물리력 자체는 거의 없다시피 한 타입의 마물이었다.
"중계결계를 비교적 약한 강도로 균일하게 유지하면, 상급정령의 불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마치 호흡을 가늘고 길게, 오래 뻗어내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죠."
소리를 한 번 내뱉는 것보다는, 옅은 숨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더 힘들다.
스킬의 운용도 마찬가지였다.
'못하는 애들이 더 많기는 했지만, 최강벽 네가 못하면 안 되지!'
차진혁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이현성! 최강벽! 너네는 진짜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순간,
차진혁을 향해 날아들던 빛구슬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마그나르에 부딪쳤다.
콰과과광!
빛구슬이 마그나르와 함께 폭발했다.
"이렇게 강한 폭발은 빛의 방패로 막아내면 됩니다."
차진혁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땅에 떨어져 내렸다.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너네가 못하는건 말이 안 되잖아?'
그 사이, 하나의 빛구슬을 막아낸 최강벽이 얼른 달려와 차진혁의 몸을 받아냈다.
"힐러!"
차진혁에게 힐이 주어졌다.
힐러인 임종민은 깜짝 놀랐다.
'내 힐이 이렇게 뛰어나다고?'
임종민이 본 차진혁은 거의 반 시체였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온몸이 녹아내렸던 상태.
심각한 중상해를 입었는데 얼마 걸리지 않아 회복했다.
차진혁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쉽고 간결하게 막아낼 있죠."
힐의 효과가 극대화된 것은 차진혁의 올라운더 신체 때문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그나르의 공격이 생각보다 덜 치명적인가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나았지.
차진혁의 엄격한 기준에서, 차진혁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이현성을 비롯한 딜러들이 맹공을 퍼부어서 마그나르를 곤란하게 하고 있네요."
차진혁은 최강벽을 힐끗 바라봤다.
최강벽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차진혁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버릴 건 버리고, 받을 피해는 받아야 해. 내 몸을 바쳐가면서라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행동으로는 잘 안 되던 것.
그것을 차진혁이 직접 보여주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과 직접 목격한 것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나는 강철벽을 운용하여 정육면체 형태의 스트럭처를 구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하나의 빛구슬을 그렇게 막아냈다.
강철벽을 넓게 펼쳐 광범위 공격을 막아냈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차진혁이 물었다.
"후회했냐?"
"……."
"거봐. 내가 후회한다고 했지."
최강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모욕하던 게 아니라 가르침을 주고 있던 거구나.'
그러니까 최강벽 자신은, 스승이자 은인에게 '나를 모욕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 경고를 해댔던 것이었다.
"부끄럽지?"
"……."
"사과해라."
"사과는 마그나르를 사냥한 이후에 하겠다."
차진혁도 마그나르 사냥에 합류했다.
'근데 내가 너무 잘난 척했나?'
답답한 마음 때문에 너무 나섰다 싶기도 했다.
차진혁의 기준에서 차진혁의 공격능력은 '전성기의 이현성'에 비하여 한참 모자랐다.
방어능력 또한 '전성기의 최강벽'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진혁은 조금 겸손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직업 경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은 구간이라 이런 것들이 가능한 거 같습니다."
보통 100레벨쯤 되면 직업 경계가 뚜렷해진다.
차진혁도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고 말해왔다.
그도 어렴풋이 뭔가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150까지는 이런 식의 플레이가 가능할 것 같군요. 보아하니 최강벽도 조금 성장한 거 같습니다.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마그나르 사냥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네요."
대략 6시간 정도 걸렸다.
차진혁이 활짝 웃었다.
"정말 조금 걸렸습니다."
['마그나르'를 처치하였습니다.]
"누구한테 대표 아이템이 주어질까요?"
대부분의 경우, 가장 많은 딜을 넣은 사람에게 아이템이 주어진다.
"어차피 저는 아닐 테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기대했다.
봉킹도 옆에서 거들었다.
"당연히 김철수는 아니겠죠. 스트리머가 어떻게 대표 아이템을 먹겠어요?"
['상급 불의 정령석'이 주어집니다.]
차진혁에게 아이템이 주어졌다.
후원의 빙자한 조롱이 쏟아졌다.
['볼빨간산사춘'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 : 사실 저희가 다 힘을 빼놔서 그런 거지. 김철수 씨가 마냥 대단한 건 아닙니다."]
['법규먹어'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 : 혼자서 지금 같은 모습을 과연 또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전 안 된다고 봅니다."]
['안졸리냐졸려'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김철수도 이런 건 못할 걸요? ← 실제로 한 말 ㅋㅎㅋㅎㅋㅎㅋㅋㅋㅋ"]
계속되는 전자음이 봉킹을 놀려댔고 시청자들은 'ㅋㅋㅋ'를 쏟아냈다.
봉킹은 세상 억울한 표정을 연기하며 온갖 핑계를 대었다.
"아니, 처음에 우리 탱커가 잘 막아줘서 가능했던 거라고!!! 먼저 어느 정도인지 딱 보여줬으니까! 그러니까 김철수도 탱킹 잘할 수 있었지!"
봉킹은 스스로 광대를 자처했다.
귀까지 시뻘게져서 울분을 토하는 봉킹의 모습을 보며 차진혁조차 감탄했다.
차진혁이 본 봉킹은 프로였다.
['유한도전' 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추킹아 봉하다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철수는 탱커 아니고 스트리머인데 ㅋㅋㄹㅃㅃ♩♪"]
"아니, 뭐가 추해? 우리 애들이 딜량도 훨씬 높았어!"
수많은 전자음이 이어졌다.
["응, 근데 아이템은 김철수 거."]
["응, 아니야."]
"김철수만 솔로잉 모드로 인정되는 특수한 시스템 때문에 딜량이 제일 높게 측정된 거라고!"
["응, 아니야."]
["시스템은 거짓말 안 하쥬?"]
추하다 봉킹아. 봉하다 추킹아.
봉킹아 추하다. 추킹아 봉하다.
수많은 조롱과 'ㅋㅋㅋ'와는 별개로 후원은 두둑하게 쌓여갔다.
봉킹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시청자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이것은 그에게 감격이었다.
이렇게 많은 'ㅋㅋㅋ'가 달린 것이 도대체 언제였단 말인가.
'킹갓제네럴유미의 말이 맞았어.'
시청자들의 즐거움이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짜릿한 희열과 기쁨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형님, 저 새끼 우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울킹이눜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 왜울어퓨ㅠㅠㅠㅠᅟᅲᆿㅋㅋㅋㅋㅋ"]
시청자들 눈에는 억울해서 우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먼발치의 차진혁은 봉킹을 이해했다.
'역시 사람이 겸손해야 돼.'
어떻게 저런 컨셉을 생각해 냈을까?
나였다면 저런 건 못했을 거 같은데.
'사람을 감탄하게 하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지.'
차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멋있는 사람이네.'
봉킹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현성과 최강벽을 힐끗 쳐다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도 좀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