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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25화 (12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5화

어.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버렸네.

순간, 움찔하는 이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글렀다 글렀어.'

이프리트랑 저렇게 열심히 싸우는 와중에 내 목소리를 듣는다고?

전투 중에 들어야 할 목소리는 오로지 동료들의 목소리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투를 지휘하는 군주의 목소리.

반대로, 스트리머의 목소리는 최대한 듣지 말아야 한다.

스트리머는 방송하는 사람이지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근데 내 목소리에 저렇게 쉽게 반응한다는 건 이현성의 수련이 너무 부족하다는 뜻이다.

* * *

* * *

'어디 보자, 여기 군주는 강민혁?'

강민혁.

쟤도 훗날 10대 랭커 중 한 명이다.

나랑 사적인 친분은 별로 없지만 아무튼 꽤 훌륭한 자질을 가진 녀석으로 알고 있다.

[LV88/명령하는자/철혈군주/스킬/발자취를 좇다]

나는 강민혁에게 다가갔다.

"철혈군주, 그쪽이 군주죠?"

강민혁은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리저리 병력을 배치하고 군주의 버프스킬 등을 사용하면서 전장을 지휘 중이었다.

"내가 이 파티에 합류해도 되나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대답 안 했으니까 허락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보통은 허락한 거겠지?

나는 라칸을 빼어 들었다.

지금도 처절하게 이그리트와 싸우고 있는 이현성에게 다가갔다.

'아, 답답하네.'

열심히 하면 뭐 해, 잘 해야지.

'내가 알던 이현성과 너무 다르잖아.'

물론 내 기준이 높다는 건 인정한다.

내 기준은 200레벨 이상의 이현성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그러나 그걸 인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갑갑한 건 갑갑한 거다.

엄마가 핸드폰이나 컴퓨터 똑같은 거 여러 번 물어보면 답답해 죽을 거 같은 그 기분이다.

"답답해 죽겠네요."

아니,

저 좋은 검기를 가지고 이렇게밖에 못 해?

"이그리트의 패턴은 대략 여섯 개."

이현성과 이그리트 사이에 끼어들었다.

불타는 도마뱀을 보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전혀 너프 되지 않은, 진짜 이그리트!'

이현성이 버럭 소리 질렀다.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개중 상대하기 가장 쉬운 패턴은 지금의 이 패턴이죠. 좌우로 움직이며 불로 이루어진 혀를 내미는 채찍 같은 공격을 합니다."

칼질의 기본은 풋워크와 거리 조절에서 나온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유리한 거리에서 싸워야 하고, 그게 힘들 거 같으면 최소한 내가 상대보다 더 빨라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상대의 빈틈을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는 감각과 센스가 있든가.

"얘 몸과 혀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얘 몸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혀는 오른쪽에서 날아온다.

얘 몸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혀는 왼쪽에서 날아든다.

"공격 자체는 굉장히 위험합니다.이렇게 위험한 공격이 날아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처법은 아주 간단하다.

"발을 움직여서 피하면 됩니다."

이 쉬운 걸 못한다고?

여러 패턴 중 운 나쁘게 제일 쉬운 패턴이 걸렸다.

어려운 게 걸려면 싸우는 맛이 더 있을 텐데.

아쉽기는 해도 지금은 일단 이현성을 패는(?) 시간이니까 이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쐐액-!

혀가 날아들었다.

"이렇게 두어 발자국 앞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혀를 피할 수 있죠."

근데 이건 이거 나름대로 저놈의 함정이었다.

이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그렇게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화악-!

불길이 타올랐다.

이렇게 직선으로 접근하면 정령력이 가미된 불꽃이 상대를 공격하게 되어 있다.

"세상에 안 위험한 싸움은 없죠."

중요한 건 내가 이걸 맞고서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다.

나는 이미 3층에서 백색 폭발을 막아냈다.

그것도 막았는데 이걸 못 막을까?

"이런 건 맞아주고 싸워야지. 어떻게 이런 것도 안 맞고 싸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우 답답해라.

이것도 안 맞고 싸우려니 힘들지.

"이거 맞는다고 죽나요?"

안 죽는다.

피부가 많이 녹을 뿐이지.

나는 중계결계와 수호자의 반지가 있어서 피부가 녹는 수준에 그치지만 이현성이 맞으면 장기까지도 몇쯤 녹을 수도 있겠다.(물론 진짜 운 나쁘면 죽을 수도 있긴 있다.)

근데 이거 치료해 주라고 힐러 있잖아.

힐러 뒀다 뭐하는지 모르겠네.

"이그리트에게서 아주 큰 빈틈이 보입니다. 당연하죠. 쟤 입장에서도 하나의 트랩을 깔고, 혀를 사용하여 정령력이 가미된 불꽃을 일으키는 고난이도 동작을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하다못해 오른손이랑 왼손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글씨를 쓰라고 해도 어려운 게 보통이다.

이런 어려운 걸 하면 빈틈이 생긴다.

"이렇게 빈틈이 보였을 때, 찌르면 되죠."

푸욱!

이그리트의 몸통을 찔렀다.

"보통은 안 찔리는데, 이렇게 빈틈이 보일 때 찌르면 찔립니다."

한 번 찔리면 몸이 경직이 온다.

그때 칼을 휘둘러서 목을 베면 된다.

"원래 주먹도 알고 맞으면 안 죽습니다. 칼도 똑같죠."

이건 과거의 권왕 김정현한테 배운 거다.

김정현은 강한 상대와 싸울 때에도 굉장히 가벼운 주먹을 많이 섞었었다.

"으…… 응. 세게 치든…… 약하게 치든…… 잘 맞으면…… 어차피 가니까. 저…… 먼 곳으로."

"결국 중요한 건 타이밍이죠."

체술가 기준으로 하면 '모르고 맞는 주먹'이 제일 위험한 주먹이라고 했다.

아무리 강한 주먹이어도 알고 맞으면 맞을 만하다나 뭐라나.

"모르고…… 맞는 게…… 최고. 엄지…… 척!"

방금도 같은 원리다.

이미 빈틈투성이가 된 이그리트의 몸에 검을 찔러넣어 혼을 쏙 빼놓으며 놈의 보호막과 방어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궤도에서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며 이현성을 쳐다봤다.

'이걸 왜 못하지?'

이현성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짜증 나네.

봉킹은 비밀리에 킹갓제네럴유미와 대화를 나눴다.

봉킹은 육성으로 화낼 뻔했다.

-뭐라고? 지금 나더러 샷건치는 컨셉 가져가라고? 봉킹한테? 이 봉킹한테? 김철수한테 열폭하는 봉킹아조씨 컨셉을 하라고 말한 거냐? 진심으로?

-잘 생각해 봐요. 당신이 정공법으로 김철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봉킹은 이를 악물었다.

김철수는 천외천 스트리머다.

고레벨이 되면 몰락할 거라는 얘기가 아주 많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준으로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의 어나더레벨.

-당신이 김철수 같은 움직임 직접 보여줄 수 있어요?

-저건 스트리머가 아니잖아!

-그럼 1인칭 시점으로 해서 사냥 자체의 쫄깃함과 긴장감을 전달해 줄 수 있어요?

-저걸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도 아니면 김철수만큼 대단한 업적과 히든 피스를 쏙쏙 찾아내서 남들은 못하는 플레이 보여줄 수 있어요?

-시비 거는 거냐?

-지금 김철수가 방송하는 거 봐요. 상황 이해도 쏙쏙 되네. 저렇게 군주같은 플레이 보여줄 수 있어요?

봉킹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으나 인정할 건 인정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성장이 있다고 믿는 부류였으니까.

-자존심 상할 필요 없어요. 당신뿐만 아니라 어차피 나도 못하고, 민하TV의 강미나도 못해요. 전 세계 1위라는 에건폴도 못할 거고. 김철수가 독보적인 거지 우리가 못난 게 아니에요. 어쨌든 정공법으로는 김철수를 못 넘어요. 그건 인정하고 넘어가자고요.

봉킹은 한동안 채팅을 치지 못했다.

사실 그도 지금 현 상황 –김철수가 이상하리만치 쉽게 이그리트를 사냥하고 있는 상황- 을 중계하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왕유미와의 비밀대화도 이어가느라 혼란스러웠다.

왕유미가 계속 채팅을 이어갔다.

-근데 강미나한테는 김평범 있는 거 알죠? 루머인지는 모르겠는데 강미나가 김평범이랑 잤대요.

-뭐?

-강미나 씨 능력 알죠? 농밀한 스킨십하면 강제로 계약체결이 된다나 뭐라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점계약을 맺은 건 확실하고.

김철수는 어차피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의 스트리머다.

강미나에게는 김평범이라는 대체 불가한 무기가 있다.

'그럼 나한테 있는 건?'

봉킹은 결정을 내렸다.

비로소 그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자존심만 조금 내려놓으면, 성장할 길이 보였다.

"아, 저 정도는 누구나 다 하죠."

겉으로는 김철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비장했다.

'업보 스택을 쌓는다!'

김철수에게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무참히 패배하여 분노하고 당황하는 모습.

그것을 연출하기 위하여 봉킹은 모든 것을 내던졌다.

"사실 저희가 다 힘을 빼놔서 그런 거지, 김철수 씨가 마냥 대단한 건 아닙니다."

봉킹이 차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철수 님? 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운이 좋기는 했어요."

"하지만 3층부터는 얘기가 많이 다를 텐데요."

봉킹은 자신과 함께하는 플레이어들을 앵글에 한 번 쭉 담았다.

"혼자서 지금 같은 모습을 과연 또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전 안 된다고 봅니다."

차진혁은 봉킹이 마음에 들었다.

[……#방송은 방송일 뿐 #내 자존심 따위는_없다 #이제부터 봉킹은_튼튼한_장난감 #패도패도_안부서지는_슈퍼단단한_장난감]

봉킹이 뭘 하려는 건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스트리머로 각성한 차진혁이 봉킹에게 말했다.

"안 된다고요?"

"예. 3층은 아직까지 한 번도 공략된 적 없는 미지의 영역. 방송으로 살펴보니 3층을 좀 이상하게 클리어했더라고요?"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차진혁은 속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왕유미와 대화를 나누면서, 거기에 내 방송까지 모니터링했다고?'

한 번에 두 개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무려 세 개를 해냈다.

'봉킹은 봉킹이네.'

이러면 인정할 수밖에.

차진혁은 겸손해졌다.

'나는 소통만으로도 벅차서 중계자를 따로 두고 있는데. 이건 진짜 리스펙이지.'

역시 최상위급 재능을 가진 스트리머들에 비하면 차진혁 자신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의 기준이 또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봉킹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누가 더 훌륭하게 3층을 클리어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좋은 연출 뽑아낼 수 있는지 내기 한 번 가죠? 어차피 우리 쪽이 더 잘하겠지만."

[……#장난감이 되더라도 #밟으면 꿈틀하는_장난감 #꿈틀꿈틀_장난감]

수많은 시청자들이 킬킬대며 몇 가지 미션들을 걸었다.

시청자들의 여론은 '봉킹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가 주류였다.

봉킹이 버럭 소리 질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억울해 보였다.

"왜 내가 역배야! 우리가 사람도 훨씬 많고! 검술계열 랭킹 1위도 있고! 탱커계열 랭킹 1위까지 있는데! 진짜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네. 본때를 보여주갔어. 나중에 질질 짜지 말라고."

그는 차진혁과 함께 3층에 도착했다.

아, 개설레.

'진짜 마그나르랑 싸울 수 있다고?'

불의 상급정령 마그나르.

아까 제대로 싸우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이번에야말로 내 성장을 진짜로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다.

[필드, '불타는 요새 3층'에 진입합니다.]

[시나리오, '새로운 곳에 홀로, 그리고 함께 걷다'가 진행 중입니다.]

군주인 강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벽면! 벽면 조심!"

벽면으로부터 빛 구슬 몇개가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강민혁이 크게 외쳤다.

"최강벽!"

내 옛 동료, 최강벽이 오오쓰! 를 크게 외치며 빛구슬을 향해 뛰어들었다.

최강벽의 스킬 중 하나.

강철벽을 사용했다.

[스킬, '강철벽'이 사용되었습니다.]

저거 오랜만에 본다.

앞에서 접근하는 공격을 막아내는 벽을 소환하는 초급기술.

초급기술이어서 활용도가 굉장히 높은데도 상당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쿠구구궁-!

땅 아래로부터 5미터 높이의 강철벽이 솟아올라 빛구슬과 부딪쳤다.

최강벽이 크게 외쳤다.

"오래 못 버텨. 다들 숙여!"

강철벽을 구현한 최강벽이 몇 걸음 옆으로 움직여 군주를 보호했다.

폭발의 여파가 강민혁에게 닿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하는 듯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폭발을 막아내며 몸을 보호했다.

콰과과광!

빛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몇 번의 폭발과 함께 3층 전체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천장으로부터 빛구슬 서너 개가 떨어져 내렸다.

최강벽이 쿵! 하고 발을 강하게 내딛었다.

[스킬, '강철우산'을 사용합니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땅으로부터 강철로 이루어진 돔 같은 것이 형성되어 우리 머리 위를 덮었다.

봉킹은 약간 흥분한 듯했다.

"나왔다! 핵우산보다 강력한 강철우산! 마치 강철의 요새 속에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빛폭발이 강해도, 강철우산 속에 있으면 완전히 보호받는 느낌이죠. 오히려 포근하기까지 하네요!"

힐끗 나를 보고서 말했다.

"김철수도 이런 건 못할 걸요?"

나는 머리 위를 쳐다봤다.

확실히 최강벽의 '강철우산'이 단단해 보이기는 했다.

훌륭한 대단위 방어기술인 것은 맞다.

"……아."

나는 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탱킹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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