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6화
서대문구 3번 GM 키하엘.
그는 전형적인 '비야망가 직장인 스타일'의 GM이었다.
받은 월급만큼만 일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던 그는 야근을 극도로 혐오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야근에 시달리게 됐다.
'내가 왜……!'
너무 싫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여수시에서 서울시로 넘어온 관리자 세르찬 때문이었다.
키하엘이 보기에 세르찬은 과도한 열정맨이었다.
"왜? 키하엘 주임, 벌써 퇴근하게?"
"퇴근 시간 지났습니다, 세르찬 대리님."
* * *
* * *
* * *
"그래도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가 있지 않나?"
"내일 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기일에 못 맞춰. 키하엘 주임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러니까 기일 더 넉넉히 잡자고 안 했습니까?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서두르면 맞출 수 있지 않나? 그럼 가능한 거지."
키하엘에게 야근은 피치 못한 사정일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세르찬에게 야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둘의 입장 차이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생각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법이야. 키하엘 주임도 열정을 좀 가지면 좋겠는데."
"하아."
최근, 키하엘과 세르찬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예상외로 지구 서버에 SSF가 빠르게 연동되면서 -이건 죠셉 때문이었다- SSF와 엘튜브를 보다 빨리 연결해야 하고 SSF 사이트와 앱을 빨리 개설해야 했다.
지구 서버의 사람들도 SSF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자자, 인상 펴고. 힘을 내보자고. 오늘의 치열한 경험이 우리의 자산이 될 거야. 키하엘 주임도 보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집중해 주면 좋겠군."
……죽일까?
그렇지만 저 압도적인 근육을 보니 전투욕구가 사라졌다.
'하아.'
키하엘은 오늘도 야근을 시작했다.
7일째였다.
검은 불곰과 상대하던 차진솔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너무 강해.'
하지만 이곳은 부활설정이 걸려 있는 필드.
이런 곳에서는 무조건 강한 놈과 싸우는 게 성장의 기본이다.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진솔뿐만 아니라 차진혁 팀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목재현만 빼고.
"이, 이제 그만 철수해야 할 거 같은데……."
그는 차진혁 팀의 탱커였고, 이들 중 가장 많은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 면역'과 '제왕의 격' 덕택에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없었지만, 죽을 때의 고통은 진짜였다.
그러나 서지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뭔 소리야? 아직 동 트려면 멀었는데."
평소 말수가 없는 서지아가 목재현을 스쳐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우린 성장했어."
그 말은 곧, 이 성장 기회를 왜 포기하려 하느냐는 질책이었다.
목재현은 울고 싶었다.
'누나들은 별로 안 죽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목재현은 다섯 번 죽을 동안 서지아와 서지수는 한 번 죽을까 말까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셋 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거였지만, 그들의 기준은 어느새 차진혁이 되어 있었다.
목재현만 비교적 정상에 가까웠다.
"정현이 형. 형이 좀 말려봐요. 다들 미쳤어……."
참고로 김정현은 방금 죽었다가 되살아났다.
"너는…… 느껴지지 않아?"
"뭐가요?"
"우리의…… 눈부신…… 발전이."
목재현은 김정현의 눈에서 광기를 읽었다.
목재현은 반쯤 포기했다.
'말투만 침착한 미친놈이 틀림없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이 악물고 어그로를 끌어오고 검은 불곰과 싸우는 수밖에.
그러던 어느 순간, 이상한 남자가 하나 보였다.
'어?'
그 남자의 머리 위에는 레벨과 각성명이 표기되어 있었다.
레벨과 각성명을 감추는 게 요즘 추세이기는 했지만, 원한다면 저렇게 드러낼 수도 있었다.
'레벨 1? 김평범?'
어쩌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에 들어온 뉴비가 틀림없었다.
그는 수목산성으로 검은 불곰의 앞발 공격을 막아냈다.
수목산성이 통째로 뜯겨나가며 목재현이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검은 불곰이 두 발로 일어서서 포효했다.
목재현이 빠르게 말했다.
"진솔 누나. 저 사람 좀 어떻게 해요."
"어?"
차진솔도 김평범을 발견했다.
'레벨 1?'
너무 위험했다.
어쩌다 보니 여기에 들어온 사람 같았다.
칼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는데,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꼴이었다.
차진솔이 불곰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봐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 우리팀 탱커가 어그로 잡고 있으니까 빨리 도망쳐요."
"……."
히죽,
김평범이 웃었다.
'날 진짜 못 알아보네?'
차진솔이 못 알아볼 정도면 됐다.
당분간은 아무에게도 안 들킬 자신 있었다.
그동안은 신나게 취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목재현의 실력 향상이 특히 두드러지네.'
역시 많이 죽어야 한다.
그래야 저렇게 실력이 쑥쑥 자라지.
차진혁은 칼을 들고 불곰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히죽,
차진혁이 다시 웃었다.
"이, 이봐요."
차진솔을 스쳐 지나갔다.
차진솔은 그 웃음을 보며 왠지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저 남자의 눈에는 분명 광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다.
'미친……!'
저건 절대 레벨 1이 아니었다.
레벨 1 플레이어가 단신으로 검은 불곰과 거의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앞발 공격을 유유히 피해내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저 질긴 가죽에 상처를 냈다.
숨 막히는 공방이 이어졌다.
김평범과 검은 불곰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며 서로를 향한 살기를 드러냈다.
김평범의 장검이 검은 불곰의 가죽을 찢어냄과 동시에, 검은 불곰의 날카로운 발톱이 김평범의 어깨에 박혔다.
히죽,
김평범이 또 웃었다.
'됐다. 드디어 내가 습관을 고치고 있어.'
자꾸 위험을 감지할 때면 저도 모르게 중계결계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중계결계에 너무 의지하면 검술가로서의 본질이 흐려진다.
결계를 사용하는 검술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가짜다!'
일부러 중계결계를 안 쓰는 훈련 중이다.
'오, 힐 타이밍이 좋네.'
차진솔의 힐이 전해졌다.
훌륭한 팀 플레이를 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성취감과 쾌락이 그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검은 불곰의 피가 튀고, 그의 피도 튀었다.
약 1시간이 흘렀을 때.
김평범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검은 불곰을 처치하였습니다.]
김평범은 시계를 살펴봤다.
어느덧 새벽 1시가 되었다.
'아직 한 시간 남았네.'
그는 팀원들과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뛰어갔다.
이 필드에 보스 몬스터가 한 마리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면서.
'제발 한 마리만 더 있어라. 이왕이면 생명력이 질긴 놈이면 좋겠어.'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하면서 강한 놈이 있을만한 곳을 탐색했다.
운 좋게도(?) 방어력이 아주 뛰어나기로 유명한 거북이 형태의 마물을 발견했다.
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노래방도 막곡은 긴 노래가 국룰이지."
나는 월요일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온몸에 묻은 피와 땀을 씻어내느라 조금 더 늦었다.
엄마는 무척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일요일에 야근이 있었던 거야?"
"아…… 응."
"쉬엄쉬엄해. 일도 좋지만 건강이 먼저야. 알겠지?"
"알겠어. 걱정 마요."
걱정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음부터는 조금 자중해야겠다.
왠지 모르게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난 학창시절에 게임을 좋아했었다.
5분만 더, 5분만 더, 5분만 더.
그 5분이 결국 모이니까 4시간이 되더라.
이번에도 결국 그거랑 똑같았다.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걸로 하자.'
처음이니까 내가 이렇게 즐긴 거지, 다음부터 또 이렇게 즐기지 않을 거다.
나는 부캐인 김평범으로 플레이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내 직업은 확실히 '스트리머'였다.
'직접 사냥은 레벨도 잘 안 올라.'
스트리머는 스트리밍을 통해 강해진다.
스트리밍을 하는 것이 곧 생산적인 활동이며, 사회인으로서 돈을 벌 수 있었다.
밤새 미쳐서 마물을 썰고 다녔는데 레벨도 안 올랐고 돈도 못 벌었다.
몇몇 아이템들을 얻기는 했는데 사실 후원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수준이다.
플레이 자체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본업과 취미를 구별할 줄 알지.'
이것도 구별 못하면 내가 진짜 사람이 아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는 다시금 각오를 새로이 할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서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기분 자체는 상쾌하네.'
하룻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몸이 개운했다.
이래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취미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보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대박사건."
"뭔데?"
"나 진짜 개쩌는 플레이어 발견했어. 반드시 우리 팀으로 영입해야 돼."
"개쩌는 플레이어?"
차진솔은 약간 기준이 이상하다.
조금만 잘해도 개쩐다고 표현한다.
얘는 요즘 엘튜브에서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영상 -SSF와 연동된, 시스템 스트리머의 영상이 아니라 일반 스트리머의 영상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 헤이리 마을에서 봤어. 이름은 김평범이야. 레벨 1인데 검은 불곰을 거의 혼자 썰었어."
"……레벨 1인데 검은 불곰을 어떻게 잡냐?"
"아, 진짜야. 검을 쓰는 플레이어였는데 진짜 개쩔었어."
"그렇게나 대단했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나 대단했나.
아, 이거 이러면 또 안 되는데 기분이 또 좋아지네.
[……#개멋있던데 #또 보고 싶어 #나 어쩌면 #사랑에 빠졌을지도]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꺼져."
고민을 많이 했다.
돈을 조금 더 모아서 진짜로 연희동 건물을 구매할까.
아니면 일단 지금에 더 투자할까.
'일단 지금에 투자하자.'
세르찬이 준 10억 원으로 작은 사무실을 하나 구했다.
이 또한 연희동이었다.
이 돈으로 번듯한 건물은 못 사기에, 아주 낡고 작은 건물이었다.
참고로, 지금은 10억이지만 몇 년 후면 100억 주고도 못 산다.
아무튼 우리는 사무실에 모였다.
"일단 다음 콘텐츠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다음 콘텐츠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내 목표는 베라클라프 목걸이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강화시킬 거다.
그러려면 재료들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불타지 않는 거미줄'이다.
"아라크네라는 특수한 마물을 사냥할까 해. 이 정보는 GM한테 얻은 거니까 확실하기는 한데 문제가 조금 있거든?"
아라크네는 '미궁형 던전'에 서식한다.
이동형 마물인데, 꼭 미궁형으로만 이동하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우리 팀에도 번듯한 길잡이가 한 명 필요할 거 같기는 하단 말이지."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길잡이는 내 동료였던 한세린이다.
근데 한세린은 너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목표랑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어쩌면 지금쯤 이미 정부랑 접촉했을지도 모르겠고.
"괜찮은 길잡이 아는 사람?"
아직 SSF가 제대로 활성화되기 전이라 인터넷을 통해 지구의 사람들끼리만 교류 중이다.
SSF 특유의 매칭 시스템이라든가, 추천 플레이어 시스템이라든가, 각종 편의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전.
이게 활성화되려면 적어도 몇 달은 더 있어야 한다.
차진솔이 번쩍 손을 들었다.
"나! 나 유명한 사람 알아."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라나 뭐라나.
나름 플레이어 사이트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이력을 열람할 수 있었다.
'아.'
딱 봐도 별로다.
얘가 어떤 던전을 클리어했는지, 어떤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지만 봐도 보면 안다.
'아…… 다들 상태가 왜 이러냐?'
내가 아무리 1등 대신 3등을 원한다지만, 그래도 눈이 내려가질 않는다.
'내가 그렇게 기준이 높은 것도 아닌데. 그냥 진짜 기본만 하면 되는데.'
이럴 거면 그냥 한세린이랑 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진짜 딱 눈 감고 레벨 100까지만 같이 할까?
조금 더 욕심내서 레벨 한 150까지는 같이 플레이해도 될 거 같은데.
'근데 지금 한세린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
[SSF 시스템이 지구의 네트워크와 연동되기 시작합니다.]
엥?
이게 왜 벌써 나와?
오픈베타 끝나고 진행되는 거였는데 벌써 연동이 시작됐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켰다.
[www.ssf.com]
익숙한 인터페이스 창이 열렸다.
내가 알고 있던 버전보다 많이 구식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익숙했다.
[플레이어 등록 정보]
현재 한국맵 길잡이 계열 랭킹 1위와 2위를 다투는 한세린이다.
각성명은 패스파인더.
다시 말해 랭킹보드에 등록이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플레이어 등록 정보에도 뜬다.
돈을 지불하면 얘 현재 위치까지 알아낼 수 있다.
나중에는 인권 문제로 폐지되기는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기능이었다.
[2위, 패스파인더]
나는 곧바로 패스파인더의 신상정보를 클릭했다.
100만 다이아를 소모하여 얘 위치까지 읽어냈다.
"나 잠깐, 어디 좀 갔다온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얘가 이 시기에 여기 왜 있어?'
[현재 위치 : 사러가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