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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55화 (5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5화

팟!

상자의 봉인이 해제됨과 동시에 녹색 문양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상서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척봐도 기연이었다.

중계자의 시야에,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의 이름이 보였다.

──────────

[소모신비, 극상강화]

──────────

신비는 사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시스템 자체로도 '불가사의한 힘'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니까.

* * *

* * *

그래도 인류는 신비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구분을 해놓았는데 '소모신비'도 그중 하나였다.

'다른 신비에게 잡아먹히는 신비.'

재료로 소진되어 타 신비에 영향을 끼치는 신비가 바로 '소모신비'였다.

'근데 신비에도 밑줄이 쳐 있네?'

신비는 불가사의한 힘이며 시스템도 규정하기 어려운 힘인데 무려 상세설명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관리자의 입김이 엄청나게 깊게 작용했을 것이 뻔하다.

저 '극상강화' 또한 관리자의 영역에서 최대한 조작해 낸 신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치 인간이 유전자를 조작하듯 말이다.

──────────

[극상강화]

…….

최근 1시간 이내에 획득한 신비의 능력을 극도로 강화시킨다.

──────────

'…….'로 표시된 부분은 아마 원래 신비 그 자체.

불가사의한 힘 그 자체일 것이고, 뒤쪽에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설명이 아마 관리자 권한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힘일 것이다.

나는 녹색 문양에 손을 댔다.

마력이 팽창하며 초록빛 폭풍이 생성되었다.

폭발하듯 부풀어 오른 녹색 빛이 내 몸에 흡수되었다.

[소모신비, 극상강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소모신비 '극상강화'가 신비 '두 번째 신분'을 강화합니다.]

[신비, '두 번째 신분'이 강화되었습니다.]

[신비, '다중 인생(多重人生)'을 획득하였습니다.]

신비인데 스킬이나 특성처럼 밑줄이 생겼다.

──────────

[다중 인생]

…….

- 레벨 200급 이하의 탐색계열 능력 등에 의하여 신분/능력 등이 발각되지 않습니다.

- 외모/신분/능력 등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변경 및 저장 가능합니다.

- 거짓 신분을 랭킹보드 등에 등록 가능합니다.

- 본체와 같은 아바타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

얻은 건 바로 써봐야 한다.

[신비, '다중 인생'을 사용합니다.]

시스템 인터페이스와 교묘하게 결합된 신비가 발동되었다.

'각성룸?'

레벨 15 때 입장하여 각성명을 설정하는 공간.

각성룸과 매우 흡사한 공간이 생성되었다.

내 앞에는 천사 형태의 AI가 보였다.

"각성명을 지정하여 주십시오."

와,

이건 말 그대로 부캐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거네.

무척 흥미로웠다.

신비에 관한 연구가 이 정도까지 진행이 되었을 줄이야.

"각성명을 지정하여 주십시오."

김철수보다 더 평범한 이름을 떠올렸다.

"김평범."

"각성명을 김평범으로 설정하겠습니다. 맞습니까?"

나는 각성명을 김평범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특성, '만능잡캐'를 숨김 목록에 저장합니다.]

[신비, '두 번째 신분'을 숨김 목록에 저장합니다.]

"와, 이게 된다고?"

탐색계열 능력자들은 상대의 스킬이나 레벨 등을 모조리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는 탐색당하는 본인이 몰랐던 스킬의 효용이나 단점까지도 발견해내어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탐색계열 능력으로부터 내 능력들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숨길지 숨기지 않을지 설정도 가능했다.

[레벨을 15로 설정하여 보여줍니다.]

[레벨을 37로 설정하여 보여줍니다.]

[현재 레벨을 초과하는 레벨은 설정이 불가합니다.]

본신의 레벨 이하의 레벨로는 레벨 설정도 자유로웠다.

심지어는 조작까지도 가능했다.

[특성, '중계결계'의 설명을 '졸라 센 방어막'으로 수정 및 저장 완료하였습니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의 설명을 '하나도 안 예리함'으로 수정 및 저장 완료하였습니다.]

'본체 소환, 이건 뭐지?'

이걸 사용하니 내 모습과 똑같은 아바타가 하나 생성되었다.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은 불가능하지만 침대에 눕혀놓기만 해도 내 알리바이가 생성된다.

'부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동안 차진혁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등의 얘기가 가능해진다는 소리였다.

'이 능력이 있으면, 100레벨 좀 넘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는데?'

레벨 200 이하급 탐색에는 내 능력이 걸릴 일이 없다.

좀 더 자유로워질 거다.

'아, 정신 차리자.'

물론 각성자 사냥꾼들이 어중간한 레벨의 각성자들은 잘 안 건드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난 내 첫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다.

'일단은 100레벨까지만이야. 진짜로.'

히죽,

웃음이 나왔다.

종로구 1번 GM, 베르비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런 미친 새끼!"

도대체 어떤 놈이 사슬 상자를 풀어내고 결국 신비를 획득했단 말인가.

오픈베타 서버에 이런 게 가능할 리 없다.

그 어떤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도 이런 건 불가능했다.

"젠장."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 신비는 마약왕 구스타프가 연관되어 있으며, 그뿐만 아니라 상부의 몇몇 관리자들 또한 연루되어 있다.

'죽여서라도 빼앗아야 한다.'

아직 신비를 획득한 지 얼마 안 됐다.

놈을 죽여서라도 신비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러던 찰나, GM콜이 울렸다.

'어?'

위치가 바로 그곳이었다.

'잘 됐군!'

GM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서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 자체로도 큰 문제가 된다.

왜 그곳에 갔는지에 대한 알리바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미친 플레이어가 알아서 GM콜을 울려주었다.

GM콜이 울리고 3초가 채 지나기 전, 베르비가 차진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 정체가 뭐냐?"

그러고서 곧바로 관리자의 권한으로 차진혁을 읽어내렸다.

'레벨 1? 각성명 김평범? 직업은…… 메롱, 안 알랴줌?'

이건 놀리는 게 틀림없었다.

이 새끼가!

베르비는 버럭 소리칠 뻔했으나 참아냈다.

"너, 뭐냐?"

"관리자 권한으로 살펴봤을 텐데."

베르비는 거기서부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 그는 자신이 접속해 있는 서버부터 다시 확인해 봤다.

'지구가 맞는데?'

저 묘한 여유.

적어도 레벨 200대 이상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태도였다.

오픈베타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거, 뭔가 있다.

"정체가 무엇입니까?"

"진짜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네. 관리자 권한으로 봐도 안 보이나 봐."

베르비의 레벨은 180.

레벨 180의 GM이 차진혁 자신의 신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 기록영상 살펴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텐데, 아마 그것도 없지? 숨기고 싶은 것을 꼭꼭 숨겨놨으니까, 기록도 남기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

베르비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모든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설마 감사를 나온 건가?'

시스템에도 감사팀이 존재한다.

GM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감사팀이었다.

'젠장. 감사팀이구나.'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구스타프와의 거래를 끝으로 GM에서 은퇴하려고 했는데 끝나버린 것 같다.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들켜버림 #왜 나만 갖고 그래 #다들 이러는데 #더러운 세상]

레벨 180의 GM 상태가 비교적 자세히 읽혔다.

그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한테 원본 영상이 있거든? 내가 마스터피스를 어떻게 획득하는지가 다 녹화되어 있어."

어차피 방송으로 공개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진혁은 본업이 스트리머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강함에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래서 공개하든, 공개하지 않든 늘 영상을 녹화했다.

"1시간 뒤, 자동으로 공개되도록 설정을 걸어놨지."

이건 차진혁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패이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였다.

혹여 베르비가 자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금제를 걸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베르비 입장에서는 달랐다.

'나를 체포하지 않는다? 영상증거까지 다 확보해놓고? 그저 협박만 하고 있다? 이건 뭘 의미하지?'

그는 깨달았다.

저 감사원이 원하는 것이 따로 있구나.

저자도 부패한 자구나!

그는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원하시는 게 따로 있으신지요?"

"있지."

[#꿈은 이루어진다 #간절한 자에게 길이 있으리 #우리 함께 부패해]

차진혁으로서는 베르비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심장을 찌르든 목을 베든 어차피 마물은 죽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어딜 찔러도 죽이면 그만이다.

"10억 다이아."

베르비는 침을 꿀꺽 삼켰다.

10억 다이아는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그간 부정부패로 쌓아 올린 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싸게먹혔어 #괜찮아, 다 잘될 거야 #힘내자 내 청춘]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10억 다이아, 혹은 이동형 보스몬스터 '아라크네'의 이동경로를 가르쳐 달라고 하려고 했다.

아라크네를 사냥해야 '베르클라프의 목걸이'의 주 강화재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10억 다이아를 먼저 제시했던 것은 결국 아라크네의 이동경로를 더 쉽게 알아내기 위한 연막 같은 것이었다.

GM들을 상대할 때, 차진혁 팀의 군주였던 한세린이 종종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그들은 돈에 민감해. 막강한 권한을 지닌 것과는 별개로 직장인이거든. 부유한 GM들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일단 돈을 제시해서 빈틈을 만든 다음 진짜 원하는 걸 요구하는 것이 좋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내 생각엔 그냥 원하는 거 말해도 될 거 같은데. 그도 아니면 칼로 찌르거나."

"무식한 새끼. 잘 해봐라. GM들이 얼마나 깐깐하게 구는데."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여기 한세린을 불러왔어야 했는데.'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좀 아쉬웠다.

차진혁은 현찰 10억 원을 받았다.

다이아로 하면 거래 내역이 남기 때문에 한화로 받았는데, 차진혁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아라크네의 실시간 위치와 이동경로."

"그건……."

"안 돼?"

"됩니다."

이동형 보스 마물인 '아라크네'의 실시간 위치와 이동경로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베르비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비밀 거래에 감사드립니다."

차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꿀이네.'

심지어 원본영상을 지우겠다는 약속도 안 했다.

원본영상을 지워주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보상을 받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차진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보였다.

[……#됐어 #한배를 탔다 #이제 살았다]

무슨 한배를 탔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현재 시각 오후 10시 40분.

'아직 일요일이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네.'

1시간 20분 남았으나 2시간 남았다고 생각했다.

차진혁은 송하영과 헤어진 뒤, 곧바로 파주 헤이리 마을로 향했다.

헤이리 마을은 밤 10시 이후가 되면 마물들이 훨씬 강해진다.

레벨이 높아지는 건 아니고 '어둠 버프' 때문에 더 강력해진다.

강력해진 마물을 잡는다고 해서 이득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10시가 되기 전에 헤이리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차진혁의 기준은 달랐다.

'당연히 사냥 중이겠지?'

사람이 빠진다?

그건 그만큼 사냥하기 좋다는 뜻이다.

마물이 더 강해진다?

더 즐겁게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마물은 강해졌는데 경험치 이득이 없다?

평소와는 달라진 것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차진혁 기준에서는 그랬다.

'한때 이런 특성을 지닌 마물들만 골라서 잡으러 다녔는데.'

동레벨인데 더 센 놈들.

그런 놈들이 많은 깨달음을 주곤 했었다.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있다!'

저 멀리, 차진혁의 팀원들이 보였다.

필드 보스 몬스터인 '검은 불곰'을 사냥하고 있었는데, 차진혁이 보기에도 연계가 꽤 괜찮았다.

"컥!"

검은 불곰의 앞발 공격에 목재현이 사망했다.

그렇지만 이곳은 3분 만에 부활하는 설정이 걸린 필드.

서둥이들이 사력을 다해가며 검은 불곰의 시선을 끌었고, 그 사이 목재현이 부활했다.

'실력들이 꽤 늘었어.'

정말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검은 불곰의 상대는 못 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싸우는 모습.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히죽,

웃음이 났다.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었다.

"아직 2시간 남았네."

기적의 계산을 마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나 아직 김평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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