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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57화 (5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7화

각성명 패스파인더.

직업명 '비밀 개척가'인 한세린은 묘한 기운을 느꼈다.

'이곳은…… 도대체 뭐지?'

다른 던전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무엇이 다르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던전 자체가 풍기는 기운이 너무 달랐다.

'뭐가 다른지 확인해 봐야겠어.'

그래서 며칠째 사러가 던전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에 숨겨진 필드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2층으로 이어진 흔적이 있다!'

그녀는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사러가 던전에 대해 검색했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뭐지?'

한세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무척 상할 일이었다.

누군가가 먼저 사러가 던전의 히든 필드를 개방했었다는 건데,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는 길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며칠이 흘러 그녀는 결국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냈다.

'그럼 그렇지.'

히든 필드를 찾아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의문점은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뭔가 달라.'

다른 던전과 다른 느낌.

그녀는 던전을 연재 중인 소설로 비유하곤 했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새로운 세상.

작가 외에는 결말을 알 수 없는 혼잡한 세계.

원래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녀는 던전을 탐사하고 숨겨진 길을 찾는 것이 즐거웠다.

던전을 탐사하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복해 가는 맛이 있었다.

'근데 여기는…….'

결말이 완전히 꽉 막힌 어떤 소설책 같았다.

그런데 소설책 겉봉에 자물쇠가 달려 있어서 결말을 확인할 수 없는.

뚜렷한 결말이 존재하는데 그 결말을 볼 수 없다는 암담함과 갑갑함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도대체 어떤새끼지 #그새끼는 아닌데 #결말 공유좀여]

차진혁은 한세린을 발견하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동족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쟤는 지금 약간 돌아버린 상태네.'

나는 나보다 검을 잘 다루는 놈이 있으면 미칠 거 같았다.

어떻게든 그놈보다 강해져야 직성이 풀렸다.

사실 내 주변 놈들은 다 그랬고, 한세린도 마찬가지였다.

길잡이계에는 한국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있었는데 한 명이 한세린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이 하승조였다.

'지금은 하승조가 랭킹 1위.'

그래서 한세린은 전의에 불타 있는 거 같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이곳이 '올 클리어'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올 클리어했는데 자신은 못하고 있다?

'자존심 엄청 상하겠네.'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

"패스 파인더?"

그러자 내 눈을 향해 독침이 여러 개가 뿜어졌다.

'중계결계.'

나는 중계결계로 독침을 막아냈다.

길잡이는 본신의 무력이 약하기 때문에 누군가 위협하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게 정석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누가 안 가르쳐줬는데도 벌써 이렇게 대뜸 독침부터 뿌리는 걸 보면 잘 성장 중인 거 같다.

뿌듯했다.

"아, 저는 수상한 사람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는 새끼들이 제일 수상하더라."

와, 초면에 반말에 비속어까지 쓰는 걸 보니 너무 반갑네.

나는 쟤가 저러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길잡이들은 던전 클리어 전에만 귀족인 직업이다.

본신의 무력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

던전이 클리어되고 나면 팽당하거나 그 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이용만 당하는 경우도 많다.

한세린도 이미 그런 경험을 몇 번이나 했을 거고 플레이어들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일 거다.

그리고 원래 다짜고짜 다가오는 플레이어가 위험 대상인 것도 맞고.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좋아요."

한세린이 방긋 웃었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얘가 이렇게 순순히 나온다는 건 나를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업적, '올 클리어(사러가 던전)'을 적용합니다.]

내 오른 손목에 올 클리어 각인이 생성되었고, 중계결계에 속성 방어술이 추가되었다.

참고로 사러가 던전 내에서는 내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폭탄 쓰려나?'

이 시점에서 과연 얘가 마력폭탄도 다룰 수 있을지는 좀 궁금했다.

길잡이들은 본신 능력이 무척 약한 대신 여러 가지 함정이나 폭탄 등을 제조하는 데에 능했으니까.

두근두근.

어느 정도 위력이려나?

콰과광!

폭발이 일었다.

'우와 진짜 폭탄이다!'

레벨 30 이하 플레이어들은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중계결계 없이 맞아볼까?'

그럴까 했는데 나는 지금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주중에는 내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나 진짜 수상한 사람 아닌데. 스트리머거든요."

폭탄은 일종의 연막탄이기도 해서, 내 시야를 가렸다.

그 사이 한세린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것 같았다.

[LV49/패스파인더/스킬/12개의비밀통로]

연기와는 상관없이 '중계자의 시야'는 얘 위치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나는 몇 걸음을 옆으로 옮겨 한세린의 손목을 붙잡았다.

곧바로 한세린은 나를 공격하려 했다.

아 진짜 너무 뿌듯하다.

'갑작스레 다가온 수상한 인물에게는 이렇게 하는 게 정석이지. 기본을 잘 지키고 있어.'

플레이 초기에 이걸 몸으로 체득해서 실행하는 걸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지금 한세린이 필요했다.

"네가 그러니까 랭킹 1위를 못 찍지."

"……뭐?"

이러면 랭커들 눈 뒤집힌다.

"두더지맨한테 밀렸더라?"

참고로 두더지맨은 하승조의 각성명이다.

한세린은 침묵하며 나를 노려봤다.

[……#가만 안둔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어떻게 죽이지?]

짜증 난다에서 멈추면 실망할 뻔했다.

역시 그 뒤에 따라오는 '어떻게 죽이지?'까지 있어야 정상적인 랭커의 사고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여기는 던전 안이라는 특수 상황이고, 이렇게까지 변수를 발생시키는 외부 요인은 마땅히 제거해야 하는 거니까.

"이거, 내 손목에 각인 보이지? 이게 올 클리어 각인이라는 거거든."

이 시점에서 얘가 '올 클리어'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길잡이 특유의 직감으로 이게 대단한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거다.

실제로 한세린은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다.

"올클리어 각인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아름다움과 마주하여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지."

얘 정도 되는 길잡이는 올클리어 각인을 본능적으로 느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얘 몸이 굳었다.

[……#저 미친 아름다움은 뭐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나는 빠르게 말했다.

"여기 사러가 던전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공략해 냈을 때 주어지는 업적이야. 이 던전의 모든 것을 클리어해 냈다는 징표로 올 클리어 각인이 주어지는 거지."

"이걸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어?"

보인다.

얘 눈의 광기가.

최상위 랭커로 올라갈 수 있는 진정한 자질이.

"여기에 숨겨진 3층이 있거든."

"거짓말! 3층이 있다고?"

"원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는데."

"……."

한세린은 엄청나게 고민했다.

[……#보고 싶다 #알고 싶다 #탐닉하고 싶다 #근데 뭘 믿고? #또 속으면 내가 사람 아니지]

잘은 모르겠지만 최근에 어떤 플레이어한테 속아서 큰일을 겪었나 보다.

그런 거야 길잡이들에게 워낙 자주 있는 일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층에는 보스가, 3층에는 히든 보스 마물이 존재해."

"……."

"무려 네임드가."

"네, 네임드?"

나는 잘 안다.

얘는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얘를 데리고 3층을 구경시켜줬다.

"3층 필드가 진짜 있잖아?"

예전에 왔던 곳.

위대한 왕주먹 원숭이들의 전신사진이 주욱- 걸려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한세린은 여러 가지 작업을 시작했다.

"뭐해?"

"쉘터 구축."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있었다.

여긴 함정도 없는데.

아, 이건 좀 실망인데.

예전의 한세린이었으면 척 보는 순간 여기가 안전한 곳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을 텐데.

나는 잠깐 한세린이 뭘 하나 봤다.

여기저기에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놓고, 길잡이가 피할 수 있는 은신처까지 생성시켜놓았다.

도피경로도 미리 짜놓는 것 같았다.

안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세린이 과거에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옛날에는 안전에 기이할 정도로 집착했어. 그것은 높은 임무 성공률을 가져다주었지만 별로 효율적이지는 못했지."

"나는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어. 가장 멀리 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거든."

"그렇지만 너를 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 가장 높이 오르기 위해서, 때로는 더 큰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적당히 높은 곳까지는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높은 곳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안전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

결국 도박이 필요하고 수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이 나를 높이 성장시키더라."

한세린이 합류하고 1년인가 지나고 내게 했던 말이었다.

그 이후로 급격한 성장을 보여줬었기에 나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해 줬다.

"그렇게 안전에 집착하면 영영 랭킹 1위 못 찍는다."

"……뭐?"

"두더지맨이었으면 곧장 저 앞에 보이는 문까지 직행했을걸? 여기 무슨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까지 과하게 굴어?"

"무슨 개소리야? 너는 여기 한 번 왔다지만 나는 처음이라고. 당연히 안전하게 대비하는 것이……."

내가 내 눈을 톡톡 두드렸다.

"내 눈 붉어진 거 보이지?"

"보여."

"나는 스트리머고, 중계자의 시선이라는 스킬을 사용해."

나는 '중계자의 시야' 대신 '중계자의 시선'으로 이름을 다시 변경해놓은 상태였다.

좀 알아보니까 중계자의 '시야'를 가진 플레이어가 나밖에 없는 거 같아서 약간은 숨길 필요가 있었다.

"유명한 스킬이니까 너도 대충 뭔지 알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보면 위험한 게 하나도 없다고. 스트리머 스킬로 한 번에 파악이 되는데 넌 왜 못하냐? 넌 길잡이 아냐?"

"……."

나는 진심으로 충고해 줬다.

"너무 그렇게 안전함 따지면서 가면 높이 못 간다."

나중 되면 스스로 깨닫는 거기는 한데 미리 좀 말해줘서 나쁠 건 없겠지.

당장 내 말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

나는 결국 히든 보스몬스터인 왕주먹 '알렉산델'도 보여주었고 일종의 신뢰를 얻어냈다.

"이래저래 해서 이 올 클리어 각인을…… 야, 안 떨어지냐?"

내가 이걸 보여줄 때마다 한세린은 눈빛이 몽롱해졌다.

급기야는 내게 달려들어 내 손등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미친 여자 같아서 기뻤다.

'이래야 한세린이지!'

올 클리어를 향한 이 집념과 집착.

이것이 곧 한세린의 정체성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니까.

"우리 팀에 들어오라고는 안 할게. 일단 유능한 길잡이가 한 명 필요해서. 잠깐 파트너십을 맺자."

나는 얘 성격을 잘 안다.

곧 죽어도 자기 싫은 건 안 하는 녀석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에 안 넘어올 수는 없다.

"네가 거부하면 두더지맨한테 갈 거야."

은근슬쩍 올 클리어 각인을 보여줬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 참고로 길잡이 없이도 이거 해냈다?

근데 길잡이랑 같이하면?

더 잘할 수 있겠지?

올 클리어를 또 얻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너랑 두더지맨의 격차는 더 벌어질걸?

[……#속지 말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고? #한두 번 속아? #던전 안엔 경찰도 없어]

어쩐지 저 이성적인 속마음들이 되게 낯익어서 반갑네.

다 넘어온 게 틀림없다.

"하긴 뭐, 랭킹 2위도 충분히 높은 거기는 해."

랭킹 1위를 갈망하는 자에게 랭킹 2위가 충분하다는 말하는 것만큼 굴욕적인 게 없다.

내가 경험해 봐서 너무 잘 안다.

[……#나레기는 사람새끼도 아니다 #올클리어 나도 주세요]

"하자. 언제, 어디서, 뭘 하면 되는데?"

넘어왔다.

"이동형 보스몹을 잡을 거야."

"이동형 보스몹? 그런 게 있어?"

한세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저 생생한 반응에 나도 신났다.

"어, 미공략 던전 위주로 옮겨 다니는 특성을 가진 보스몹이야. 이름은 아라크네. 우리 팀은 그걸 잡을 거거든. 아무래도 길잡이가 필요할 거 같아."

"뭐…… 약간 흥미는 돋네."

말투와 표정이 많이 달랐다.

콧구멍 벌렁거리고 있는 것이 이미 잔뜩 흥분했다.

[……#할래 #제발 시켜줘 #데려가주세요]

……그냥 처음부터 이동형 보스마물 잡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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