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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54화 (5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4화

[특성,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합니다.]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한 채로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낙안읍성 때와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한 곳에서 녹색 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전투계열 전용 소던전, 봄날아트홀]

"여기를 또 들어가요? 아까 세 번이나 들어갔던 곳인데?"

여기도 사실 아까 클리어했던 곳이기는 했다.

신비가 숨겨진 곳을 못(안) 찾았을 뿐이다.

* * *

* * *

* * *

"이번에는 달라. 느낌이 왔어."

"도대체 날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어요."

"빵 사주려고."

"또 불러줘요. 헤헤."

[비전투계열 전용 소던전, '봄날아트홀'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말 그대로 소던전이다.

규모가 굉장히 작았고, 대략 10여 마리의 고블린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마물들은 한 마리 남기고 모두 처리했다.

쟤마저 잡으면 여기가 클리어되어버릴 테니까.

'음, 어디지?'

중계자의 시야로 주변을 훑어보니, 천장에서 녹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눈부신 조명 때문에 바로 보기가 불편했다.

"저 위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진짜요?"

내 말에 송하영이 반색했다.

"벽을 탈 수 있어?"

"당연하죠."

역시 얘가 하얗게 질려 있던 이유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던 거 같다.

자기가 활약할 기회가 오니 저렇게 반색하는 걸 보면 말이다.

"잘 봐요."

얘는 진짜 거미처럼 벽을 타고 올랐다.

굉장히 신이 나 있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보며, 진짜 도둑질에 재능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좀 더 왼쪽. 그래 조금 더. 거기. 거기 뭔가 이상한 거 없어?"

"어? 있어요. 사람 팔뚝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데요?"

"손을 넣어봐."

"위험한 함정 같은 건 없겠죠? 팔이 잘린다거나."

"없을걸?"

있었다면 내가 알던 천사소녀의 오른팔이 없었겠지.

송하영이 오른팔을 깊이 밀어 넣었다.

"어?"

순간, 녹색 빛이 폭사되었다.

송하영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영차."

나는 송하영의 몸을 받아들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녹색 빛이 송하영을 몸을 뒤덮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갑자기 너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 신비를 받아들일 때는 저런 현상이 발생한다.

어느 정도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줘야 신비를 몸에 흡수할 수 있다.

"고맙긴."

"어지러워요. 도, 독에 당한 것 같아요."

우욱, 우욱,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 품에서 벗어난 송하영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인 채 우웨에엑!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내가 도와줄게."

퍽!

나는 송하영의 관자놀이를 세게 쳤다.

중계결계의 힘을 담아 친 거였는데, 억! 소리도 못 내고 바로 기절했다.

송하영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던 녹색 빛이 표류하다가 허공에 기이한 문양을 형성했다.

──────────

[신비, 두 번째 신분]

──────────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송하영은 이걸 흡수하느라 힘들어했지만 나는 달랐다.

제왕의 격 덕분인지 그다지 큰 거부반응 없이 바로 흡수할 수 있었다.

[신비, '두 번째 신분'을 획득하였습니다.]

얼마 후 송하영이 깨어났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독에 당했나 봐. 해독제 넣어줬으니까 괜찮을 거야."

"고, 고마워요."

원하는 것도 얻었겠다, 오늘의 취미 생활은 이쯤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업적, 고블린 학살자를 확인합니다.]

.

.

[업적, 난폭한 사슴 학살자를 확인합니다.]

.

.

.

[마스터 피스, '신비를 훔쳐 간 소던전 파괴자'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소극장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났다.

……개이득.

마스터 피스는 히든 피스보다 한 단계 위의 조각이다.

당연히 히든 피스보다 난이도가 더 높고, 보상이 훨씬 컸다.

거대한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 연계되어 있을 확률도 높았다.

'어라?'

아까 한 마리 남겨놓았던 고블린의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LV20/고블린 하급전사/스킬]

천사소녀가 찔끔 놀랐다.

"더 커지고 있어요."

[LV25/고블린 중급전사/스킬]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송하영이 재빨리 달려들어 표창을 날렸다.

도둑질에는 재능이 있었는데 공격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저렇게 나약한 표창을 누가 맞는다고.

'……맞네?'

변태 중이서 그런가.

고블린 중급전사는 표창에 목이 찔려서 피가 났다.

그렇지만 그게 고블린 중급전사를 크게 위협한 건 아니었다.

[LV30/고블린 상급전사/스킬]

더 이상 몸집 자체는 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잘 단련된 전사처럼 근육이 단단해지고 잘 다듬어진 도끼가 생성되었다.

"뭐해요? 빨리 공격해야죠."

"왜?"

"더 강해지면 어떡해요?"

"그럼 좋지?"

"뭐라고요?"

놈의 몸에 하얀 빛이 깃드는가 싶더니 온몸에 은색 갑주를 둘렀다.

[LV40/고블린 최상급전사/스킬]

이제 천사소녀의 표창 같은 건 피부에 박히지도 않았다.

설마 퀸 고블린까지 성장하려나?

[LV45/킹 고블린/스킬]

"빨리 공격해요!"

"기다려봐."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고요!"

참고로 고블린은 암컷이 우두머리다.

킹 고블린보다 퀸 고블린이 훨씬 세다.

게다가 다수의 고블린 최상급 전사를 소환하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개체다.

[LV50/퀸 고블린/스킬]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진짜로 퀸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나는 천천히 놈이 고블린 최상급 전사들을 소환하기를 기다려주었다.

'이 정도면…….'

나는 단도 대신 검을 들었다.

진짜 손맛을 느낄 때가 됐다.

종로구 1번 GM, 베르비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어떤 미친놈이 마스터피스를 활성화시켰어?'

그는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게 정상적인 마스터피스였다면 그도 이렇게 초조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정상적인 마스터피스가 아니었다.

그는 상급 관리자의 권한을 사용하여 이 마스터피스를 인위적으로 생성시켜놓았다.

'지구 플레이어를 위해 만든 게 아닌데!'

이곳의 신비 '두 번째 신분'과 '마스터피스'는 지구 플레이어가 얻을 수 없도록 꼭꼭 숨겨놓은 것이었다.

'저건 구스타프를 위한 신비라고!'

그와 거래한 사람은 마약왕 구스타프.

부패한 GM들과 새로운 신분이 필요한 범죄자들 사이에 빈번한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GM은 큰 부를 얻을 수 있고, 범죄자는 새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이건 암묵적인 관행이었다.

'설마 비전투 계열 플레이어가 퀸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지는 않겠지?'

그는 전력을 다해 신비를 관리해 왔다.

비전투계열 전용 던전에 신비를 숨겨놓고, 도무지 클리어할 수 없는 조건들을 줄줄이 달아서 마스터피스가 발동되도록 설정해놨다.

그걸로도 모자라 레벨 50에 달하는 퀸 고블린을 보스 몬스터로 설정해놨다.

그는 황급히 화면을 띄워 던전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지나치게 흔적을 남기면 안 돼.'

플레이어를 특정해서 확인하면 기록이 남는다.

그는 발만 동동 구른 채 퀸 고블린이 플레이어를 죽여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안 되겠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혹시라도 퀸 고블린이 사살될 경우를 대비해서 한 가지 안배를 더 하기로 했다.

그는 황급히 권리자 권한의 시스템을 활성화시켰다.

'그래, 이거면 되겠다.'

[설정, '사슬 상자'를 적용하시겠습니까?]

오픈베타 기간 중 설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금고였다.

이걸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레벨 100 이상의 기술자 혹은 결계사 등이 필요했다.

그는 '마스터 피스' 보상에 사슬 상자를 적용시켰다.

일단 '두 번째 신분'은 빼앗겼지만, 마스터피스 보상까지 가져가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좋아. 이거면 완벽해.'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몹시 실망했다.

'약해.'

중계결계를 사용하지 않고 싸웠는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레벨이라서 좀 기대했건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푹!

[퀸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아이템이 하나 드랍되었다.

'퀸 고블린의 정수'라는 아이템이었다.

내 기억에 없는 걸로 봐서 그렇게 중요한 아이템은 아닐 것 같았다.

'너무 실망스럽다.'

겨우 17번밖에 안 찔렀는데 죽어버렸다.

송하영의 얼굴이 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 다행이야."

"뭐가?"

나를 걱정했나?

"내가 그쪽이랑 같은 편이어서요."

"……."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어요. 아, 칭찬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미친놈을 칭찬으로 듣는 미친놈이 있냐?"

"미, 미안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혼란스러운 모양새였다.

하긴, 비전투계열 전용 던전에서 레벨 50짜리 보스 마물이 튀어나왔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심지어 레벨 40짜리 최상급 전사들을 떼로 부리는 놈이었으니까 비전투계열인 도둑 입장에서는 놀랄 만도 하지.

'이게 끝은 아니겠지?'

무려 마스터피스인데.

이렇게 끝일 리는 없었다.

중계자의 시야에 녹색 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응? 이건 신비 느낌인데?'

저만치 앞.

무대 아래였다.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건데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다음 관문이 있었구나.'

그래.

겨우 퀸 고블린으로 끝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천사소녀도 무대 아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저기가 이상해요. 뭔가 생성된 것 같…… 그쪽도 알고 있었어요?"

"어. 저 아래 통로가 생성된 거 같다."

진짜 미친놈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무대의 바닥을 뜯어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생성되어 있었다.

'강렬한 초록빛.'

그 빛에 홀린 듯 따라 걸어 내려갔다.

이렇다 할 함정이나 위험한 마물은 없었다.

짜증 나네. 왜 없는 건지 원.

저만치 멀리, 두꺼운 쇠사슬로 칭칭 감긴 상자가 하나 보였다.

엄청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천사소녀도 굉장히 흥분했다.

"저거, 보물 느낌이 팍팍 나는데요?"

천사소녀가 상자에 손을 댔다.

"근데 안 풀리도록 설정된 것 같아요."

이건 자기 주특기라는 듯 품에서 쇠꼬챙이 같은 걸 꺼내서 이리저리 후벼보았다.

시간이 점차 흐르고 천사소녀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도둑 맞아?"

"조, 조금만 기다려봐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물쇠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이내, 쿵!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내려왔던 계단 통로가 두꺼운 벽으로 막혀 있었다.

함정인가 싶어 약간 설렜다.

'출구를 억지로 막았어?'

이건 관리자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상급 관리자일 거다.

'감이 온다.'

누군진 몰라도 이 마스터피스를 철저히 숨기고 싶어하고 있다.

출구를 없앴다는 건 우리를 말려 죽이겠다는 심보다.

우리를 죽여야 할 만큼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고.

기연 냄새가 폴폴 난다.

"흐흐흐."

"왜, 왜 웃어요, 무섭게? 나, 나 죽이지 마요. 나, 나는 맛 없어요."

자꾸만 해괴망측한 소리를 해댔다.

아마 자물쇠를 푸는 것에 너무 큰 심력을 소모한 나머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이걸 풀어야 나가죠."

"줘봐."

"주면 무슨 방법이 생겨요?"

"일단 줘봐."

받아들었다.

[설정, '사슬 상자']

멀리 있을 땐 안 보였는데 직접 손에 대보니 중계자의 시야에 한 가지 설정이 잡혔다.

오? 사슬 상자?

레벨 100 이상급 결계사가 있어야 해제할 수 있는 설정으로 아는데.

음.

이게 될까?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철컥.

자물쇠가 열렸다.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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