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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52화 (5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2화

'근데…… 뭐야?'

'검제'의 빛이 희미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빛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 검제의 빛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정체 모를 불안감이 밀려 들어왔다.

명상 속, 내 내면의 세계가 세차게 흔들렸다.

검제의 빛보다 더 어두운 어둠은 곧, 이 소우주 그 자체였다.

[특성, 검제가 흡수됩니다.]

[흡수율 0%…… 35%……]

이 소우주는 빌어먹게도 너무 어두워서 특성 검제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 * *

* * *

마치 블랙홀처럼.

'이런 미친!'

어떻게 만난 특성인데.

이게 왜 없어져 가는 건데?

나는 검제의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헤엄쳐보았으나 소용없었다.

[……70%……90%……100%]

잠시나마 내 내면을 밝혀주었던 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씨X……."

나도 모르게 욕이 새어 나왔다.

물론 직업이 스트리머이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직업과 특성의 효율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검제 특성을 얻으면 훨씬 더 자유로이 검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검과의 대화도 가능해지며 그에 따라 검신 합일의 경지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적어도 레벨 100 언저리까지는, 내가 예전에 가졌던 무위와 비슷한 힘을 지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이럴 거면 아예 나타나질 말든가.

애초에 기대를 안 했으면 이런 실망도 하지 않았을 텐데.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예전에도 특성이 흡수되는 경우들이 있기는 했었다.

'이유가 뭐였더라.'

흔하지는 않아서 그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누가 이거랑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었는데 누구더라.

'아, 한세린!'

아주 오래된 옛날이지만 걔가 워낙에 신랄한 육두문자를 쏟아냈었기에 기억이 났다.

'한참을 그렇게 욕을 하고 플레이 때려치운다고 잠수 탔다가…… 며칠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긋 웃으며 나타났었는데?'

한번 기억의 물꼬가 트이자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이건 새로 획득한 특성보다 더 상위특성이 있을 경우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었지!'

아주 희귀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였다.

'상위특성이 하위특성을 잡아먹으면…… 특성 자체가 강화된다고 했어.'

어라.

그러면 나한테 '검제'의 상위호환 격의 특성이 존재했단 말인가?

그런 게 있다고?

그게 말이 되려면 '만능잡캐'밖에 없는데.

결국,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만능잡캐는 어쩌면…… 성장형 특성일지도 모른다!'

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능동형 특성.

2. 수동형 특성.

능동형 특성은 중계결계처럼 내 의지를 끌어내 능동적으로 발동하는 특성이다.

수동형 특성은 제왕의 격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신체 혹은 영혼에 적용되는 특성이다.

능동형 특성은 정신력을 소모하고, 수동형 특성은 정신력 소모가 거의 없다.

보통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이 두 가지가 대부분이다.

길잡이로 시작하여 훗날 누구보다 뛰어난 군주로 군림했었던, 한세린의 '기적을 개척하는 자'가 그랬다.

특성 '기적을 개척하는'은 나중에 특성 '절대군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3. 성장형 특성.

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럼 내 만능잡캐는?'

나는 만능잡캐가 어떤 특성인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재능을 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는 것.

적당히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는 특성이다.

'그게 이제 검제를 먹어 치웠으니까, 검 쪽으로는 재능발현이 더 잘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세린의 경우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한세린은 '성장형 특성'에 매우 만족했었다.

'잠깐만. 검제를 먹어치웠으니까, 혹시 도제라든가, 마제라든가…….'

도제.

마제.

다 나를 정말로 애먹였던 괴물들이 지녔던 특성들이다.

그 외에도 권왕, 궁신, 기타 등등.

당장 떠오르는 최상위 특성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혹시 이것들 다 먹으면?'

그러면 이 만능잡캐가 이제 만능잡캐가 아니라, 예를 들어 '완성형 먼치킨' 같은 걸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허황된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지.'

너무 김칫국을 마시면 곤란했다.

만능잡캐라는 건, 세상에 단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다.

한세린의 경우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도 없다.

나도 모르게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회귀 이후로 7년이나 지났다.

그 세월이 내 현실감각을 잊게 만든 모양이다.

내가 경험한 세상에 먼치킨 같은 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진짜 사람은 안 변하나 보다.

나는 다시금 내가 깨달았던 진리를 상기해 냈다.

'하나만 갈고닦아도 대성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치열하게 미친놈이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한 분야의 일인자가 되었다.

'모든 분야의 먼치킨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헛물은 켜지 않기로 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만능잡캐'가 정말로 그런 가능성과 힘을 품고 있다면?

'그럼 레벨 200 언저리에서 사냥당하겠지.'

그쯤 되면 만능잡캐의 힘이 어느 정도는 정확하게 드러났을 때일 테고, 스카우터나 탐색 계열의 플레이어들은 이 힘을 파악하고도 남을 테니까.

그러면 각성자 사냥꾼들이 움직인다.

각성자 사냥꾼들은 레벨 200 이하의 플레이어들은 잘 안 건드리는데, 사실 만능잡캐가 진짜로 사기적인 특성이라면 또 다른 얘기다.

세계적으로 욕은 좀 먹겠지만, 나는 빠르게 살해당할 거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레벨 100까지는 달려야겠다. 이거 안 되겠다.'

일단 '검제'를 흡수한 것은 틀림없다.

저레벨 구간까지는 직업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검제의 힘을, 검술계열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딱 100까지만이다.'

내 애초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100까지만 중간 과정이 아주 살짝 바뀌었을 뿐이다.

아주 살짝이다.

세르찬은 나름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새로운 마물 '비상섬여(♀)'를 급히 투입했다.

여수 시나리오를 정상화하는데 꼬박 3일 밤을 새웠지만 어쨌든 해냈다.

'정상궤도로 돌려놨어.'

그동안 화장실도 거의 못 갔다.

'그놈은 어떻게 됐지?'

설마하니 진짜로 해금술을 획득하지는 않았겠지?

그는 조심스레 관리자의 권한으로 낙안읍성을 살펴보았다.

'미친놈.'

그사이, 이미 김철수는 '해금술'을 획득해 버린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얻었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이게 가능하려면 그나마 회귀자여야만 할 것 같은데 심지어 시스템의 공증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건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세르찬은 머릿속에서 김철수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해금술이 꽤 훌륭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여수 시나리오에 영향을 끼친다거나, 세계를 뒤흔들 마스터피스 같은 건 아니다.

이런 건 누가 획득하든 별로 상관없는 것이었다.

'나는 김철수를 만난 적도 없어.'

그는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승진을 위하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몇몇 기사들을 접했다.

-여수의 영웅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여수 검객, 그의 정체는?

-군대도 어쩌지 못한 마물을 단신으로 상대한 영웅의 정체.

엘튜브에도 그 영웅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꽤 많은 숫자의 드론이 기만자의 가면을 사용한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르찬이 등장하면서 드론은 모조리 파괴되면서 나는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강함이 무엇인지 아는 영웅이었다.

-강함을 실천한 영웅은 바닷속에 잠들었는가.

다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해경이 즉시 투입되어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으나…….

-16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하여…… 간절한 희망을…… 영웅의 귀환을…… 입니다. 이상, 박대정 기자였습니다.

일단 신상이 까발려지지는 않았다.

기만자의 가면이 꽤 역할을 잘해준 것 같다.

근데 이건 임시방편이다.

결국, 찾아내려면 언젠가는 찾아낸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생각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해.'

나는 다짐하듯 홀로 중얼거렸다.

"물론 딱 레벨 100까지만이지."

나는 침대에 누웠다.

검제를 흡수했다는 것은, 어쩌면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트리머 직업으로 검제를 획득했다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값진 시간을 최대한 소중히 써야 했다.

'투트랙으로 간다.'

어찌 되었든 스트리머로서 성장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이제 미친놈이 아니니까 스트리밍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 건 맞아.'

연희동 건물주가 되어 보편적이고 행복한 삶을 원한다.

나는 진짜 그걸 원하는 사람이다.

강해지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좋다.

진짜다.

'스트리머는 본업. 검으로 강해지는 건 취미.'

정상적인 사람이면 취미보다는 본업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러려면 내 신분을 조금 더 근본적으로 숨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그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다.

원래 내 계획에는 없었던 거라 아주 오래전 기억까지 끄집어내야 했다.

'아, 있기는 있는데.'

적절한 게 하나 떠올랐다.

'두 번째 신분'이라는 게 있다.

이 신비를 사용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지문이나 홍채까지도 달라진다.

게임으로 치자면 일종의 부캐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꽤 희귀한 신비였는데, 이걸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하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우리도 그놈에게 크게 당했었고.

'천사소녀.'

천사소녀가 바로 '두 번째 신분'을 아주 잘 활용했던 도둑이었다.

아, 이건 내가 알아낸 건 아니다.

우리는 천사소녀한테 된통 당하기만 했다.

천사소녀를 잡았던 건 결국 우리가 아니라 경찰청 소속의 탑급 플레이어들이었다.

결국 도둑 잡는 건 경찰이었고, 천사소녀의 수법들이 낱낱이 까발려졌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적 플레이어의 체포는 굉장히 큰 이슈였었다. 경찰청 녀석들이 우리 앞에서 굉장히 으스댔던 기억이 난다.

'천사소녀는 엄청 빨리 두 번째 신분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튜토리얼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레벨 60 이전에 그걸 얻었던 건 확실하다.

장소는 어디였더라.

서울 종로구의 어디였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났다.

'이걸 좀 찾아봐야겠어.'

취미를 즐기려면 이 정도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당장 검을 쥐고 싶기는 한데.'

해금술을 사용하면서 정신력 소모가 극심했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휴식을 취하느라 검을 쥐어보지 못했다.

이게 사용할 땐 몰랐는데 후폭풍이 좀 컸다.

'일단은 본업을 시작해 볼까.'

취미는 취미고.

내 본업은 스트리머다.

마침, 차진솔이 내 방으로 들어와 물었다.

"오빠, 근데 다음 콘텐츠는 뭐야?"

"음, 목걸이를 좀 강화해 보려고 해."

"목걸이?"

"이거."

나는 일단 예고편 격으로 방송을 켰다.

[다음 콘텐츠, 예고편입니다.]

차진솔이 고개를 돌렸다.

"으…… 그거 보기 싫어."

임꺽정의 피에 담긴 베라클라프 목걸이였다.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피를 머금었다.

"그래서? 그걸로 뭘 하는데?"

"귀금속 상점의 카트리나에게 이 책자를 받았거든."

베라클라프 목걸이를 어떻게 강화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성장시킬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이 능력을 발현시키려고 하거든?"

나는 책자를 살피다가 한 항목을 가리켰다.

차진솔이 가까이 다가와서 책자를 유심히 살펴봤다.

"네 생각은 어때?"

어차피 얘 의견은 고려 안 할 거지만 그냥 물어는 봤다.

"어떤 거라고?"

"이거."

차진솔은 내용을 좀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응? 엥? 어라?"

차진솔이 황당해하다가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이거 맞아? 확실해?"

왜 반응이 저런 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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