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39화
"지금 그거 불법인 거 알지?"
"어린 새끼가 혀가 짧다?"
반말을 들은 네모인간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왜 지들이 먼저 반말한 건 생각 안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입이 무척 험한 네모인간과 마주쳤습니다. 마치 걸레를 문 것 같군요."
나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 시비 건 적이 없는데 시비를 걸어온다.
"아, 신경 쓰지 마. 너한테 하는 말 아니니까. 나 방송 중인데, 아무튼 이거 불법이라는 거 알려주려고."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시에서 허가받았는데?"
* * *
그러더니 품에서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서 장사해도 된다고 시에서 허락을 해줬다나 뭐라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위조됐겠지.
경찰들이 단속을 못하는 건 얘들이 플레이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 테고.
"내가 진심으로 경고 하나 하는데."
"뭐?"
"비플레이어가 플레이어 사칭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행위는 불법이야. 매뉴얼에 적혀져 있는데 못 봤나 보다."
험상궂은 네모인간들 몇몇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서 김정현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는데, 우리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사람은 김정현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내가 아니라?'
김정현이 더 세 보인다고?
원래 이런 마음을 여지껏 부정하고 외면해 왔다.
근데 이제 방향을 좀 바꾸기로 했다.
그냥 인정하고 가야 고치든 말든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거 진짜 불법이야. 나는 친절하게 경고했어. "
"이 X만한 새끼가. 자꾸 뭐라고 지껄여?"
네모인간 하나가 씩씩대며 다가와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악력이 생각보다 너무 약해서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네모인간은 내가 겁먹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 다시 말해봐."
"말."
"미친 새X가."
"왜? 시킨 대로 했잖아?"
네모인간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지만 나는 딱히 대응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도 아닌 비각성자가 저렇게 무식하게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면 결과가 썩 좋지 못할 거다.
"아플 텐데."
빠각!
꽤 요란한 소리가 났다.
주먹으로 벽치는 소리랑 비슷했다.
아마 그 정도일 거다.
내 중계결계는 꽤 단단하니까.
"뼈에 금이 간 것 같네요. 선빵 필승은 옛말인 것 같습니다."
손이 너무 아팠는지, 네모인간은 나를 놓쳤다.
나는 내 목덜미를 탁탁 털고서 말했다.
"참고로 나 GM콜 때린 상태고, 차라리 이쯤에서 그만두면 GM콜 취소할 수 있어. 그러면 무사히 넘어갈지도 모르지."
여기 관리하는 GM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쯤 되면 나타날 법도 하지 않나?
내가 영상까지 첨부해서 GM콜을 때렸는데 도무지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안 한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은 강남구 1번 관리자도 3초 만에 튀어오던데.
나는 제 주먹을 감싸 쥐고 꺽꺽대고 있는 네모인간을 스쳐 지나갔다.
"얘들아, 가자."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또 다른 네모인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내 경고를 안 듣네."
"곱게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진심이야. 너네 GM 오면 진짜 큰일 난다니까? 왜 진심으로 하는 경고를 안 듣지?"
운 나쁘면 얘네 GM한테 살해당한다.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친절하게 경고해 줬다.
"죽을 수도 있어."
"이 시X놈이."
네모인간들은 내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GM이 빨리 오면 좋겠는데 아무튼 느려 터졌다.
이럴 때는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게 최고다.
나는 단도를 꺼내 내게 선빵을 때린 녀석의 어깨를 찔렀다.
푸욱!
피가 솟구쳤다.
각도를 잘 조절해서 피만 많이 튀도록 했다.
이 정도만 해도 겁먹겠지.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가만히 있는 착한 사람 건드리지 말고."
빌런 주제에 선량하고 착한 플레이어를 자꾸 자극하네.
네모인간들의 기세가 위축되었다.
나는 반대편 어깨를 또 찔렀다.
푸욱!
다시금 피가 솟구쳤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네모인간을 움켜쥐고서 인질로 삼았다.
"네. 다음은 목을 찔러 보겠습니다."
"……미, 미친 새끼가."
결국 네모인간들은 길을 터주었다.
나를 필두로 우리 파티는 호수 쪽을 향해 걸어갔다.
칼에 두 번 찔린 채 내게 질질 끌려오던 네모인간이 중얼거렸다.
"사…… 살려줘……."
이상하다.
나는 죽인다고 한 적이 없는데 왜 살려달라고 하는 건지.
호숫가에 도착한 나는 네모인간을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네모인간은 황급히 제 친구들을 향해 뛰어갔다.
겨우 살았다는 듯 헥헥거렸다.
제 친구들에게 돌아가자마자 네모인간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저 새끼 죽여!"
"다 죽여 버려!"
품속에서 칼을 꺼내는 놈들도 있었다.
눈에 독기를 품은 것이, 우리를 진짜 죽이려는가 보다.
"오, 오빠, 어떡해?"
쫄 사람이 없을 거 같았는데 우리 애들은 좀 쫄았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뭘 어떡해? 저 앞에 마법진 보이잖아."
느려터진 GM이 이제야 나타났다.
금방 좀 나타났으면 피 안 보고 좋았을 텐데.
'아. 이 시점에 여기 GM이 죠였어?'
죠.
내가 한창 활동하던 시점에는 양천구 1번 관리자였다.
관리자들 중 가장 잔혹한 성정을 지닌 녀석이었고, 나랑도 몇 번이나 부딪쳤었다.
쟤 진짜 성깔 더러운데.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죠가 여기 상황을 몰랐을까?
아닐 거다.
그냥 귀찮아서 내버려 뒀을 텐데 GM콜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이 움직였을 거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테고.
"가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정도 깊이의 물에 배 타고 들어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여기에 무슨 수중 마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르다.
내가 앞장서서 걸었다.
수심이 별로 깊지 않아서 걸어가기에 충분했다.
뒤쪽에서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죠'의 짓이겠지.
"그러게 제가 경고할 때 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별로 중요하거나 특별한 장면은 아니니 화면에는 안 잡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착하게 경고했는데 왜 안 듣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우리는 '황금 두꺼비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황금 두꺼비 던전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황금 두꺼비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목재현을 필두로 우리는 황금 두꺼비 던전에 입장했다.
이미 꽤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던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중형견만 한 크기의 '뿔 두꺼비'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커다란 동굴 형태의 필드였는데, 바닥이 끈적끈적했다.
"굉장히 습한 곳이군요."
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이곳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천장과 바닥 가장자리에는 이빨 모양의 돌들이 자라나 있습니다. 뾰족뾰족하네요. 저걸 종유석이라고 하나요?"
애들은 잔뜩 긴장한 채 나와 함께 주변을 살폈다.
차진솔이 내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오빠."
"왜?"
"허공에 시간 보이지?"
타이머가 작동되고 있었다.
분과 초 단위로 이루어진 타이머였다.
"저거 타이머가 0이 되는 순간,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서 플레이어를 낚아채 간대. 그거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 무조건 행방불명 된대."
나도 인터넷에서 보기는 했다.
진짜인가 싶었는데 진짜였다.
"와, 진짜네요. 타이머가 나옵니다."
필드의 공격 시간을 미리 예고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니.
이렇게 친절할 수가.
회귀 전 '황금 두꺼비 던전'에는 이런 거 없었다.
아마 오픈 베타 기간이라 난이도가 대폭 하향된 모양이다.
나는 몹시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계속 살피며 중계를 이어갔다.
뿔 두꺼비와 열심히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삐죽삐죽 솟은 바위들 뒤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타이머가 아직 1분이 넘게 남았는데, 벌써 숨는군요."
초보 구간 플레이어들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겁이 많았다.
1분이라는 긴 시간을 저렇게 아깝게 허비하다니 말이다.
나는 시간을 꽉꽉 채운 뒤 애들과 함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00:03]
[00:02]
[00:01]
휙!
타이머의 시간이 종료되자, 저만치 멀리 어두운 곳에서 시뻘건 무엇인가가 휙! 튀어나왔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몸을 숨겼고, 대신 주변을 배회하던 뿔 두꺼비 한 마리가 그 채찍에 휘감긴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와 동시에 타이머가 리셋 됐다.
[30:00]
30분마다 한 번씩 저게 발동하는 모양이었다.
와, 난이도가 이렇게 낮아도 되나?
내가 들어왔을 때는 이런 타이머도 없었고, 저 공격도 여러 갈래였을뿐더러, 심지어 랜덤으로 나타났었다.
보통 1분에 하나 이상은 튀어나왔었는데 예측이 거의 불가능했었다.
'진짜 쉽네.'
이 정도면 난이도가 최하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시금 뿔 두꺼비와 싸우기 시작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뿔 두꺼비와 많이 싸워본 모양이네요. 그렇다면 저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인터넷에서 꽤 유명해진 곳이다.
이쯤 했으면 저걸 잡는 게 클리어랑 별로 상관없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왜 다들 저기서 힘을 빼고 있는 건지 원.
저걸 잡으면 가끔가다 황금 조각을 드랍하기는 하는데, 사실 그 시간에 여길 클리어하는 게 훨씬 가성비가 좋다.
"채찍이 튀어나오던 곳으로 가보죠. 뭔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습관적으로 앞장설 뻔했다.
아, 이러면 안 되지.
"우리 팀의 훌륭한 탱커 목재현이 앞장설 겁니다."
"……네?"
목재현은 약간 포기한 듯한 모양새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차진솔은 물론이고 김정현도 잔뜩 긴장한 모양새였다.
"잠시 팀원과 인터뷰 해볼게요. 아기, 아니, 차씨집안장녀 님, 현재 심정이 어떤가요?"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는 심정."
"왜 그렇죠?"
엥?
이렇게 난이도가 낮은데?
"몇몇이 저쪽으로 탐사를 갔다가 모두 행방불명 됐대. 그래서 지금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안 간다고."
"그렇다면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 더더욱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비밀이 숨겨진 곳에 길이 있다는 게 기본 아닐까요?"
"……기본."
내 말에 차진솔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차진솔이 기본을 배워가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근데 바닥이 너무 끈적거리네.'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가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사이, 30분 타이머가 많이 줄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딘 진행이었다.
'답답하다.'
그냥 빨리 클리어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참았다.
자꾸만 내가 직접 나서서 활약하고 싶은 이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나는 스트리머니까.
팀의 역경과 고난을 생생히 중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일단 좀 피하겠습니다."
타이머가 0이 되었고 다시금 붉은 채찍이 주변을 휘감았다.
운 나쁘게도, 플레이어 하나가 그 채찍에 휘감긴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으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사람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무척 안타깝네요. 저희는 더 전진해 보겠습니다."
아까 플레이어가 빨려 들어간 쪽을 향해,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바닥이 끈적거렸고, 우리 움직임도 더뎌졌다.
"혀, 형. 저 몸이 안 움직여요."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니 끈끈이 트랩에 당했다.
목재현은 끈끈이 트랩에 걸린 건지 더 이상 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타이머가 이제 3분 남았다.
3분 안에 트랩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음.'
목재현은 울상을 지었다.
"저, 저 어떡해요?"
다른 애들은 바위 뒤쪽으로 몸을 숨겼고 내가 목재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자, 생각을 해보자."
"새, 생각을 해보자고요?"
시간은 2분 30여 초 남았다.
"어떻게 하면 아까 플레이어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3분.
아직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니 스스로 깨우칠 시간을 줘보기로 했다.
"생각을 잘 해봐야지."
"혀, 형!"
"잘 생각해 봐."
2분 남았다.
"모, 모르겠어요."
"진짜로 모르겠어?"
1분 30초 남았다.
얘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담아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말해봤다.
일부러 최대한 편안한 모습을 연출해서 보여줬다.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는데 이상하게 목재현한테는 안 통했다.
"모, 모르겠어요. 형, 제발, 진짜 모르겠어요."
"아냐. 할 수 있어."
30초 남았다.
이제는 여유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방법을 알려줘야 하나 싶었는데, 목재현이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오?'
내가 생각한 정답과 같았다.
역시 사람은 극한의 -사실 겨우 이걸 극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환경에 집어넣어야 빨리 성장한다.
"드디어 목재현이 정답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거봐, 하면 되잖아.
엘튜브 각이 떠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