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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4화 (1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화

붉은색 표기.

9성이었다.

나는 저 '혈사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육성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직업.'

혈사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피를 다루는 직업이었다.

그 피로 상대를 치료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

치료하면 치유형 혈사제가 되고, 공격하면 공격형 혈사제가 된다.

능력 자체는 사기적일 정도로 뛰어나지만 자신의 피를 매개체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위험부담이 컸다.

실제로 대다수의 혈사제들은 과다출혈로 죽었다.

덕분에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당시에, '혈사제'는 3성으로 분류되는 헤프닝도 있었다.

'혈사제는 [흡혈], [초인], [초재생], 이 세 개를 모두 획득해야 의미가 있는 직업인데.'

흡혈은 레벨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획득하는 스킬이다.

다만, '초인'과 '초재생'은 후천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특성이었다.

'저걸 얻게 해줘야 되나?'

약간 고민이 되었다.

얘가 진지하게 플레이를 하겠다고 하면 초인과 초재생은 필수였다.

저게 없는 혈사제는 별 볼 일 없는 3성 쩌리다.

그러나 저걸 갖춘 혈사제는 9성 중에서도 상위 등급의 뛰어난 직업이 된다.

나는 얘가 굳이 뛰어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구글 페이스는 훗날에도 아주 잘 나가는 기업이니까 그냥 저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뭐가 됐든 쟤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면 좋겠으니 나중에 얘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천일의 기도는 또 뭐고?'

베타서비스가 시작된 지 천 일이 안 됐는데, 천 일의 기도가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얘도 베타테스트 플레이어라는 뜻인데.

그때, 차진솔이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

"아."

"아는 무슨,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걱정했냐?"

"그걸 말이라고 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얘는 아까의 충격이 꽤 컸는지 한동안 횡설수설했다.

손목이 덜렁거렸다느니 뭐가 어쨌다느니.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느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느니.

종합해 보자면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인 것 같은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잘은 기억 안 났다.

"……그래도 고마워."

"뭐가?"

"오빠 덕분에 살았어. 나 아까 솔직히 오빠가 너무 무서웠어."

이상하다.

아까 분명 예의와 격식을 아주 잘 차려서 차분하게 설명 다 해줬는데.

"그렇게 무감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익숙하게 사람을…… 그렇게 해서."

"너무 친절해서 당황스러웠다는 거지?"

"……."

차진솔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든든했어."

"그럴 줄 알았어."

"뭐?"

"내가 네 오빠여서 다행이지? 안도가 막 되고 그러지?"

실제로 그랬다.

[#깊은 안도 #무서운데_ 든든쓰 #다행쓰 #날 막 대해야 내 혈육이지]

얘는 내가 이렇게 막 대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었다.

* * *

나는 다시 집 앞에 섰다.

7년 전에는 내가 살던 집이었는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회귀 전, 나는 일순간에 가족을 모두 잃었었다.

연쇄살인마 전남길이 차진솔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도 한 번에 죽였으니까.

그때의 나는 가족들 곁에 없었고, 아무도 지키지 못했었다.

바로 다음 달에 전남길을 추적하여 죽일 힘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진짜 나도 어지간히 미쳐 있었나 보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내 성장에만 몰두했었다.

이제는 진짜 그러지 말아야지.

아무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가면 어머니랑 아버지가 있겠지?'

회귀 이후로는 별다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간간이 통화를 했지만 그뿐이었다.

7년간 등골을 빼먹었는데 딱히 잔소리도 안 했다.

그냥 묵묵히 내 뒤에서 나를 믿고 기다려주었다.

내가 불편해할 거라 생각했는지, 내게 연락도 잘 안 하던 분들이었다.

"엄마, 나왔어!"

"어, 우리 딸 왔어?"

"어딨어?"

"주방!"

차진솔이 신발을 벗었다.

주방 쪽으로 뛰어가서 대파를 썰고 있는 엄마를 뒤에서 껴안았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그냥, 안기고 싶어서. 나 좀 안아줘."

"저리 안 가? 엄마 칼 들고 있는 거 안 보여? 위험해!"

"아잉,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라. 응?"

차진솔은 우리 집의 햇살 같은 아이였다.

나한테 말을 좀 싸가지 없이 해서 그렇지, 내가 봐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차진솔은 오늘 큰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집에 알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까 그 일이 있고 나서 곧바로 회사로 뛰어가 변호사들을 불러온 것 같았다.

"오빠도 같이 왔어. 오빠. 뭐해? 안 들어오고?"

"진혁이가 왔어?"

그 말에, 식탁에 수저를 놓고 있던 아버지가 현관 쪽을 쳐다봤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뭐랄까, 이 기분이 뭔가 묘했다.

수십 년 만에 제대로 된 재회를 하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나는 아버지와 아주 친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데, 아버지는 아빠라 부르는 게 어색할 정도였으니까.

좋은 사람이란 것도 알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어려운 사이였다.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왔냐?"

오랜만에 자식을 본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저 서랍 속에서 숟가락과 젓가락 하나를 더 꺼내 올려놓았다.

그냥 한 마디를 무심히 툭 건넸다.

"밥은?"

"아직요."

"밥 먹자."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고, 엄마는 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소란스러웠다.

"어휴, 얘 살 빠진 것 좀 봐."

살 안 빠졌다.

방송 때문에 계속 앉아 있느라 오히려 조금 쪘다.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쯤 비만이 됐을 거다.

엄마랑 차진솔은 살갑게 대화를 나눴다.

"얼른 앉아. 너 좋아하는 계란말이 했어."

"치즈는?"

"당연히 넣었지."

나는 오랜만에 가족과 식탁에 앉았다.

가족들은 그다지 유별나지 않게 나를 대했다.

오늘이 그냥 일상인 것처럼, 특별하지 않은 날인 것처럼,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 평범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언제 와도 이곳은 변함이 없는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그것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지키지 못했었는데.'

별거 아닌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많은 감정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류의 감정은 무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또 툭 물었다.

"아픈 데는 없고?"

"네, 멀쩡해요."

"그럼 됐다."

아버지는 식사를 끝냈는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내게 작게 말했다.

"저렇게 쿨한 척하면서, 네 사진 보면서 울었어."

"……우셨다고요?"

"자식이 엄청 걱정되나 봐. 밥은 먹고 다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용돈은 안 부족한지. 또 우리가 막 용돈을 넉넉히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잖니?"

"……."

아, 참고로 아버지는 허리가 불편해서 일을 오래 못하신다.

그래서 우리 집은 부유하지 못했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7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없이 자취방에 박혀 있었고, 이 정도면 사실 지칠 법도 한데 말이다.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

"무슨 소리야?"

"나 취직했어."

"취직을 했다고?"

엄마의 눈이 커졌다.

묻고 싶은 것이 한가득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참는 것이 보였다.

너무 호들갑 떨면 오히려 내가 상처받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재미있는 건, 닫혔던 안방 문이 살짝 열렸다는 것이다.

마법도 아니고.

아버지가 살짝 연 것 같은데, 저런 걸 보면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어. 월급도 많이 주고 복지도 좋아. 첫 월급도 탔고, 이제 용돈도 드릴게."

스트리머를 한다고 얘기할까 하다가 그냥 취직했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냥 좋은 직장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세대니까.

이렇게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안심되겠지.

나는 하얀 봉투를 꺼냈다.

50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봉투를 받아든 엄마는 기절 직전이었다.

"세상에.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넣었어?"

안방 문이 조금 더 열렸다.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모님은 내가 드린 용돈을 거부했다.

이렇게 큰돈 받을 이유가 없다나 뭐라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저축 열심히 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걱정 마시라, 건물주가 될 거다, 라고 말했더니 그냥 꺄르르 웃으셨다.

어느새 거실로 나온 아버지는 딱 10만 원을 빼서 가져가시더니 490만 원을 돌려주었다.

됐다, 너 해라,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깨끗하네.'

7년이나 비워져 있었는데 여전히 깨끗했다.

감회가 무척이나 새로웠다.

회귀 전에 내가 머물던 숙소(나는 동료들과 함께 최고급 호텔에서 숙소생활을 했다)에 비해서는 너무 보잘것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이 훨씬 더 안락하고 좋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 들어간다."

"무슨 노크야?"

내가 기억하는, 7년 전의 차진솔에게 노크 매너 같은 건 없었는데.

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오빠 진짜 취직했어?"

"취직으로는 부자 못 돼."

이건 내가 경험한 거다.

나는 말하자면 국가에 취직한 반 공무원이었다.

나와 비슷한 실력의 다른 플레이어들은 재벌 못지않은 부를 누렸으나 -물론 평균 수명은 엄청 짧았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연봉이 5억쯤 되었는데, 물론 크다면 큰돈이지만 최상위급 플레이어들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돈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었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강함뿐이었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정부인사들은 그런 내 성향을 좀 이용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럼?"

"스트리머하고 있어."

"그럼 저 500은?"

"스트리머해서 모은 돈이지."

"7년 동안 한 걸 모았다는 뜻이야?"

"아니? 하루 동안 번 건데."

차진솔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오빠."

"왜?"

"물론 오빠도 내게 숨기고 싶은 게 있을 수 있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줘."

뭘 어떻게 더 솔직하게 말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오빠가 7년 동안 500만 원을 모았다고 해도 오빠를 비난하거나 욕할 생각은 전혀 없어. 아니,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500만 원이나 모은 거잖아. 오빠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멋있다고 생각해."

얘가 왜 이렇게 밑밥을 까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빠가 뭘 하든 충분히 응원하고 도와줄 거야."

말하는 게 진짜 아기상어 같네.

차진솔은 아무래도 내가 하루 만에 500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지금 작은 성공으로 위세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연희동 건물주가 된 다음에 증명해도 늦지 않을 거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고.

"근데 진솔아."

"헐? 날 왜 그렇게 불러?"

양팔로 자기 팔을 끌어안고 닭살 돋는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뭐가 이상한가?

"내가 어떻게 불렀지?"

"방금 진솔이라고 했잖아."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내 이마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더니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큰 병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얘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근데 회사 재밌냐?"

"회사가 재미있는 사이코도 있냐?"

"……가끔 있겠지."

국정원 시절, 나는 꽤 재미있었다.

지옥여제의 저주에 걸리기 전까지, 나는 사실 대부분 즐거웠다.

그렇지만 차진솔은 회사 가기 싫단다.

"그럼 플레이는 어떤데?"

"음, 난 이거 재미있어. 누군가 치료되는 걸 보면 희열도 있고 성취감도 있어."

희열, 성취감이란다.

역시 핏줄은 어디 안 간다.

내심 뿌듯해졌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일단은 특성, '초인(超人)'과 '초재생(超再生)'을 얻어주기로 했다.

저걸 얻는다고 해서 무조건 최상위 랭커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일단은 즐겁게 플레이하면 좋겠지.

'사러가 던전으로 가야겠네.'

거기 2층에 히든 스테이지 있는데.

재미있겠…… 아니, 이거 아니지.

그저 던전 들어가는 게 신나고 설레는 이 몹쓸 버릇도 고쳐야 할 것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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