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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3화 (1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화

'진실의 방'은 GM들이 플레이어들의 진위를 판단하는 일종의 재판이었다.

이걸 수락할지 말지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였으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진실의 방' 난이도도 높아진다.

다시 말해 저레벨에서 난이도가 제일 낮다.

'게다가 키하엘은 어영부영 비야망가 직장인 스타일이니.'

키하엘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진실을 탐구하는 연구자 타입은 아니었다.

일단 내가 맡고 있을 때 문제가 안 터지면 좋겠다는 성격을 가졌다.

일이 커지는 것보다는 적당히 덮는 걸 선호하는 성향.

'지금은 튜토급이니까, 진실 수정의 유효시간은 1분이겠지.'

레벨 30 이하, 진실의 방에서는 진실 수정이 1분 동안만 유효하다.

"방송해도 되지?"

"플레이어의 합법적인 플레이를 내가 저지할 권한은 없지."

차진혁이 채널을 열었다.

역시 적당한 제목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심플하게 만들었다.

['진실의 방' 입장합니다.]

시청자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8,000명을 돌파했다.

정원 8,400명 방에, 방송을 켠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8,000명이 입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이었으나 차진혁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냥 초반 버프가 잘 먹혀서 시청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GM퀘스트, 수락해 보겠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떤 퀘스트일까요? 저한테 회귀자냐고 묻더라구요."

[GM 퀘스트, '진실의 방'을 수락하였습니다.]

차진혁이 곧바로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회귀자가 아냐."

타이밍이 중요했다.

아직 '진실 수정'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

차진혁이 거짓말을 해도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는 없다.

이윽고 '진실 수정'이 나타났다.

허공에 둥둥 떠서 빠르게 회전하는 보라의 수정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저 보라색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차진혁은 모른 체 물었다.

"저게 뭐지?"

"진실 수정. 네가 거짓을 말하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나는 여자다?"

수정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다시 봐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진짜네?"

"안 변했어도 재미있었을 텐데."

"나는 잘생겼다?"

보라색이었다.

시간을 끌기 위한 장난이었는데 반응을 안 했다.

"뭐냐? 이거 가치판단도 하는 거야? 이런 명제가 진실 거짓 판별이 돼?"

"……."

보라색이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리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좋은 녀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진혁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진실을 밝혀야 하지?"

일부러 허튼소리를 하면서 20여 초를 보냈으니 남은 시간은 이제 40여 초.

키하엘이 빠르게 말했다.

"말해봐. 네가 어떻게 이렇게 베타 서비스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GM콜을 사용하여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는 건지 말이야."

"으음."

약간의 시간을 더 끈 뒤 말했다.

"나는 대예언가에 대해서 알고 있어."

"대예언가?"

"몰라, 그렇게 주장해. 한 커뮤니티에서 대예언가로 활동하고 있거든. 나보다 더 빨리 각성한 선제 각성자 같아."

대격변 이전에 각성한 사람들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베타 서비스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선제 각성자들보다도 더 빨리 각성한 사람들.

훗날, 그들을 일컬어 베타 테스터라고 부른다.

그중에는 대예언가 김신원도 있었다.

"아무튼 걔가 예언가 행세를 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올렸거든."

물론 조회수는 처참했다.

보통 그가 남기는 글에는 '컨셉충 ㅇㅈㄹ'이라든가, '병먹금', 이라든가 '컨셉질 ㄴㄴ 개노잼요.'라든가.

비웃는 댓글이 달리다가 그마저도 최근에는 무플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김신원이 남겼던 글들이 재조명되면서 김신원은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여기 보면 말이야."

차진혁이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김신원이 남긴 글 중에는 '매뉴얼'도 존재했다.

"플레이어 매뉴얼이 있고, 그걸 난 미리 숙지했을 뿐이야."

수정은 여전히 보라색.

"그걸 미리 숙지했다고? 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려고?"

보라색.

"마물이 등장할 거라는 것도, 튜토리얼 필드가 나타난다는 것도, 치안이 어지럽고 개판이 된다는 것도, 뭐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는 다 쓰여 있었어."

진실 수정의 회전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진실 수정이 작동하는 시간이 거의 끝났다는 뜻이었다.

"난 미래를 알고 있었던 거지."

보라색.

"그리고 결국 오늘이 온 거고."

여전히 보라색.

결국 진실 수정의 회전이 멈췄다.

키하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메모지를 꺼내 무언가를 메모했다.

"대예언가의 예언, 그를 통해 미래를 알고 있었고, 오늘을 잘 준비했다."

키하엘은 자신이 작성한 메모지를 수정에 흡수시킨 뒤 입을 열었다.

"최종 점검을 시작하겠다. 과거 기록 열람."

[과거 기록을 열람합니다.]

[열람 키워드 : '회귀']

관리자 권한을 사용하여 차진혁의 최근 3년간 기록을 읽어냈다.

고레벨 구간이었다면 3년이 아니라 10년을 읽어냈을 것이고, 열람 키워드도 다양했을 것이었다.

차진혁의 과거 기록들을 열람하여 '회귀'라는 말을 언급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과거 기록 열람 결과, 각성명 '김철수'는 '회귀'를 언급하거나 자백한 적이 없습니다. 의심될 만한 기록이 없습니다.]

키하엘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정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진실을 판독하여 최종 증명서를 출력했다.

'됐다.'

진실의 방은 일종의 재판이고, '일사부재리원칙'이 적용된다.

일단 처리된 사건은 다시 다루지 않는다.

진실 수정은 마치 프린터처럼 종이 한 장을 출력해 냈다.

키하엘이 종이를 먼저 살펴보고는 차진혁에게 건네주었다.

──────────

[진위여부 증명서]

* 감별 종류 : 각성명, 김철수의 지나치게 빠른 적응 및 회귀에 대한 감별.

* 감별 상세 내용 :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회귀자가 아냐."

.

.

.

"대예언가의 예언, 그를 통해 미래를 알고 있었고, 오늘을 잘 준비했다."

* 감별 결과 : 진실

*본 진위여부 증명서는 거짓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본 진위여부 증명에는 '과거 기록 열람 기록'이 포함됩니다. 별지 참조.

*발급자: 서대문구지역 3번 GM 키하엘

──────────

키하엘이 수정을 손으로 건드렸다.

같은 내용의 진위여부 증명서를 한 부 더 출력했다.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증명서였다.

'설령 내가 회귀자든 말든 별로 신경 안 쓰는 모양새긴 하네.'

어쨌든 차진혁의 진실 여부는 시스템이 판독했고, 키하엘은 GM으로서 해야 할 책무를 다했다.

키하엘에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차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어.'

언제, 어느 타이밍에 '진실의 방'을 클리어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키하엘 덕분에 한 방에 해결되었다.

키하엘은 기분이 좀 좋아진 모양이었다.

"즐거운 플레이 돼라, 고객님."

그리고 사라졌다.

* * *

경찰서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빠!!!"

차진솔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는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긴밀한 스킨십이 이루어질 것 같아 몸을 피했다.

다행히 엄마 딸과 몸이 밀접하게 닿는 불상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진솔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두 남자와 함께였다.

"누구……?"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두 명의 남자는 내게 각각 명함을 건네주었다.

글로벌 대기업 '구글 페이스' 소속의 변호사들이었다.

아주 유능한 변호사가 둘이나 왔다.

"와, 회사 복지 좋네."

겨우 몇 달 전에 입사한 신입사원한테 소속 변호사를 둘이나 붙여주다니.

들어보니 차진솔이 생각보다 꽤 유능하고 유망한 인사라고 했다.

나는 약간 이해가 안 됐다.

"그럴 거면 진즉에 경호원이라도 붙여주든지."

"경호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변호사보다 경호원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나 뭐라나.

아무튼 나는 얘기를 잘 해줬다.

"……해서, 별 탈 없이 그냥 나왔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걱정했냐?"

"미쳤냐? 널 걱정하게."

말을 저렇게 할 거면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이질 말든가.

눈에 그렇게 눈물을 매달고 있을 거면 말을 따뜻하게 하든가.

아무튼 신기한 생명체였다.

'어째서 얘는 날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엄청 충격을 받았을 텐데.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태인가?

대부분 초심자의 경우, 저런 경우에는 일단 현장을 피해 숨어서 벌벌 떠는 게 일반적이다.

나는 얘가 그 길로 집으로 도망쳐서 엉엉 울기만 했다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얼른 정신을 차려서 변호사를 대동하고 경찰서로 찾아온 걸 보면 어지간히 강심장인 것 같았다.

'7년간 나랑 교류도 거의 없었는데.'

5만 시간 달성한답시고 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얘랑 통화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 것 같고, 실제로 만난 건 1년에 두 번 될까 말까였다.

그마저도 얘가 날 찾아와서 밥 먹은 것 정도가 전부다.

문득, 회귀 전 차진솔이 떠올랐다.

전남길에 의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던 그때 그 모습.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이따금 자꾸 떠오른다.

'애틋해도 내가 애틋해야 하는데.'

근데 왜 얘가 더 애틋하단 말인가.

나랑 교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좋은 오빠인 것도 아니고.

물론 이제부터 잘해줄 예정이기는 하지만 아직 잘해준 건 하나도 없었다.

얘 눈에 나는 그냥 한심한 등골브레이커일 텐데.

이런 게 가족인가 싶어 괜히 혼자 뭉클해졌다.

차진솔이 퉁명스레 말했다.

"다친 데는?"

"없어."

"진짜 없어?"

"있겠냐?"

내가 아무리 연약한 스트리머여도 그렇지, 그런 조무래기들과 싸우는데 다칠 일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나?

자존심 상하면 안 되는데 자꾸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단 말이지.

"다쳤잖아!"

자세히 보니 손등이 조금 까져 있었다.

이게 아까 싸우다가 다친 건지, 아니면 어디 쓸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걸 다쳤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싶기는 했지만 얘 입장에서는 이게 다친 거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가만 있어 봐. 치료해 줄게."

"됐어."

이렇게 예민해서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라고 생각했는데 얘가 갑자기 초급 힐을 사용했다.

대단한 스킬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작은 찰과상에는 꽤 효과가 있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무는 것으로 보아 재능과 실력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너 각성했어?"

"어.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내 주변에서도 다들 각성하던데."

미래가 조금 달라졌다.

내가 알기로 차진솔은 죽는 그 시점까지 플레이어로 각성한 기록이 없었다.

'뭐지?'

미래가 바뀌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나는 적극적으로 미래를 바꿀 거다.

나한테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내 가족의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좀 쓰였다.

'중계자의 시선.'

정보를 살펴보았는데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LV18/아기상어/혈사제/스킬/천일(千日)의 기도]

단 한 줄의 정보였으나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아기상어?'

아기상어는 내 방송의 유일한 고정 시청자였다.

나를 몇 년 동안 묵묵히 후원해 주고 응원해 주던, 그 천사 같은 시청자의 닉네임과 같았다.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이게 그냥 무시하기에는 또 석연찮았다.

'최근 몇 달 전부터 통 큰 후원을 해줬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쟤가 구글 페이스에 입사한 이후부터였다.

근데 또 차진솔이 나한테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착한 스타일은 아닌데.

'일단 아닌 걸로 하고 넘어가자.'

괜히 따지고 묻지 않기로 했다.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 뻘쭘해질 것 같고, 가끔은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게 나은 것들도 있는 것 같았다.

'근데 혈사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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