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화
그 와중에 차진솔은 나를 또 발견했다.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아무래도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흉악하게 생긴 놈 하나가 나를 밀쳤다.
얘를 흉악1이라 하겠다.
"넌 뭐냐?"
"나? 얘 오빠."
차진솔이 발악하듯 외쳤다.
"꺼지라고!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7년 만에 와서는 개뿔 오빠야."
싸가지 없이 말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래도 저 마음 자체는 알 것 같다.
내가 혹시라도 해코지 당할까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흉악이들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들었으면 갈 길 가라."
"잠깐만. 일단 신고부터 하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112를 불렀다.
사실 이건 요식행위였다.
어차피 경찰은 안 올 거다.
지금은 치안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도 이 최소한의 요식행위를 한다는 건, 성실하고 선량한 공무원이었던 내 마지막 양심 같은 거였다.
"신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들었냐? 신고를 한댄다. 푸하하하!"
신고하려는 노력도 했고.
최소한의 양심을 지켰으니까 이제 나도 할 일을 해야겠다.
나는 단도를 꺼내 들었다.
"어쭈?"
굳이 중계자의 시선을 사용하지 않아도 쟤들의 실력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튜토리얼 구간이니, 내 실력은 현시점 최상위 랭커들과 비슷하다.
그리고 최상위 랭커들은 이런 헛짓거리를 할 시간이 없다.
최상위 랭커 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런 짓 하고 있으면 최상위 랭커 못 된다.
그런 객관적인 사실은 둘째 치고서라도, 놈들의 자세와 나와 유지하는 거리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단도로 뭘 어쩌시게?"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거리부터 벌려야지. 나 무기 들고 있잖아? 곧 찌를 거거든?"
아, 이렇게 친절하게 안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이래서 습관이란 게 무섭다.
나는 국정원 소속이었고 상대가 아무리 흉악한 빌런이어도 상대에게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했었다.
태도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그렇지만 손속은 자비 없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단도를 휘둘렀다.
단도가 놈의 오른 손목을 베었다.
"크아아악!"
요란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동맥이 절단 났는지 피 분수가 솟구쳤다.
'아, 이게 아닌데.'
원래는 저렇게 덜렁거리면 안 된다.
한 방에 깨끗하게 잘랐어야 했는데.
소프트웨어는 되는데 하드웨어가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
'비명도 한 템포 늦게 나와야 되는데.'
자기가 잘린 줄도 모르고 잘려야 제대로 잘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방금은 내 단도가 닿음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아, 너무 약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강해지고 싶다.
……아, 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해버렸다.
나는 다시금 내 마음을 다잡았다.
'약한 게 당연하다.'
스트리머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너, 너 이 새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크아아악!"
푹!
놈의 옆구리를 찔렀다.
옆구리는 갈비뼈로 보호받고 있어서 찌르기 상당히 불편한 곳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잘 노리고 적당히 잘 찌르면 갈비뼈 사이를 뚫는다.
아 근데 또 마냥 이러면 차진솔이 너무 놀라 나자빠질 것 같았다.
내가 또 시민들 안심시키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이 상황을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설명해 주는 게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그게 시민들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갈비뼈는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뼈거든. 반대로 말하면 갈비뼈 안쪽은 치명적인 약점이야. 갈비뼈 사이를 적당히 관통할 수만 있다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 어때? 별거 아니지?"
내가 이렇게 차분하게 잘 설명해 주면 차진솔도 겁을 덜 먹겠지?
흉악이는 쇼크가 왔는지 피를 흘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남은 놈은 하나였다.
궁지에 몰렸다 느꼈는지 놈은 황급히 차진솔의 목을 끌어당겼다.
그 목에 단도를 대며 협박했다.
"카, 칼을 버려."
너무 뻔한 전개였다.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고.
"칼 버리라고!"
"그래. 알겠어."
휘익!
나는 냅다 단도를 집어던졌다.
'오.'
몸을 좀 풀어서 그런가.
궤적과 타이밍이 제법 정확했다.
던지는 순간 감이 온다.
내가 원한 지점에 정확히 도달할 것이다.
푹!
단도가 남자의 미간에 꽂혔다.
남자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힘의 격차를 완전히 느끼고 나면, 빌런들은 대부분은 인질을 잡으려 용을 써.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질을 잡은 그 순간에 방심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그때를 노린 거야. 설명이 좀 됐지? 내가 왔으니까 안심해."
"……."
차진솔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주저앉았다.
역시 내 차분하고 담담한 설명에 안도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울고 있는 엄마 딸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잘 몰랐다.
안도한 줄 알았는데 왜 저렇게 서럽게 우는 거지?
"일단 집에 가자."
"……."
차진솔의 눈에 초점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사소한 사건에 이렇게나 큰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유리멘탈이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오, 별 기대 없이 신고했는데 경찰이 왔다.
"즈, 즉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널 혀,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바들바들 떨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는데 뭐가 저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나는 단도를 바닥에 내리고 차분히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저는 피해자고요, 저쪽이 가해자입니다."
나는 순순히 손을 내밀어 수갑을 찼다.
아, 뭔가 허전한데.
"맞다. 미란다 원칙 고지하고 체포해야죠."
나 미란다 원칙에 좀 민감하다.
겨우 이거 했느냐 안 했느냐로 언론에서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3,000명을 연쇄 살인한 방화살인마였는데, 놈이랑 싸우다가 나도 여러 번 죽을 뻔했다.
그건 즐거웠었는데 미란다 원칙 고지 안 했다고 언론에서 몰아붙이던 건 짜증 났었다.
개중에는 내가 구해준 기자도 있었는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는 다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아, 곧 돌아갈 테니까 엄마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괜히 걱정하시니까."
* * *
경찰서에 연행된 것까지는 좋은데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는 피해자라니까요?"
"피해자는 무슨. 이름."
눈 밑에 다크써클이 거무죽죽한 형사였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이 밀려서 지친 게 뻔히 보였다.
"걔들도 잡아 왔어야죠."
"이름 말하라고."
세상이 엉망이 되니까 여러모로 다 엉망이구나.
나는 선량한 시민인데 나를 잡아다가 반말을 한다.
나는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몰라도 돼."
"뭐?"
많이 지쳐서 약간 맛이 갔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인 건지.
형사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내 머리를 치려고 했다.
"치지 마라. 네 손 다친다."
"……이 새X가 돌았나!"
형사는 내 머리를 때렸다.
'중계결계.'
내 중계결계는 단단하다.
쟤 입장에서는 벽을 세차게 친 거랑 비슷했다.
"억!"
그러게 치지 말라니까.
왜 내 경고를 안 듣는지 모르겠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나는 GM(게임마스터) 콜을 눌러 놓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대격변을 맞이한 변혁의 시대이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마침 경찰서의 천장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드디어 왔네.'
마법진 속에서 사람의 하반신이 보였다.
하반신부터 조금 조금씩 사람의 형상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키하엘이네?'
서대문구 지역을 관리하는 3번 GM 키하엘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10대 중후반 소년의 형상이었고, 등에는 날개 한 쌍이 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
키하엘은 전형적인, '비야망가 직장인 타입'의 GM이었다.
그냥 주어진 할 일만 적당히 끝내고, 받은 만큼만 일하고 싶어 하는 성향.
무난하고 평온한 생활을 바탕으로 한 워라밸을 추구한다.
키하엘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
"베타 서비스에서 GM콜을 때리는 미친놈은 처음 보네."
"보다시피 플레이 도중, 국가 공권력에 의하여 제압된 상황이라서."
"기다려."
형사들이 키하엘에게 뭐라 뭐라 소리치긴 했지만 소동은 금세 잦아들었다.
키하엘의 레벨은 100가량.
지금 시점에서는 대적할 수 없는 강자였다.
키하엘이 손가락을 튕기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키하엘은 기록영상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플레이어 간 정상적인 결투 상황이므로, 국가 개입을 금지한다."
덕분에 나는 손쉽게 풀려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세계 각지의 경찰청장들이 GM들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GM들은 다소 과격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류에게 시스템을 적응시키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일에 공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플레이어들의 일에 관여하거나 시스템에 반대하는 경찰청장과 유력 정치인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살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의 일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말고, GM들이 나타나면 그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라는 공문이 떨어진 상태였다.
"GM콜 기능은 어떻게 알았냐?"
"플레이어 매뉴얼에 다 있던데."
"그걸 다 읽었다고?"
"읽으라고 만들어놓은 거 아니었어?"
키하엘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플레이어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좋으나 싫으나 그게 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나는 플레이 초반부의 기억이 전혀 없으므로 언제 이걸 다 외웠는지는 모른다.
다행인 건 플레이어 매뉴얼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근데 너 왜 반말하냐?"
"반말은 네가 먼저 했잖아."
키하엘은 인상을 찡그리고서 나를 훑어봤다.
"뭐야 너? 플레이어 정보가 전부 비공개잖아?"
"왜? 그러면 안 되는 법이라도?"
"디폴트가 공개잖아. 보통은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는데. "
"내가 원래 약간 사회부적응자야."
경찰서의 상황이 종료됐는데도 키하엘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키하엘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잘 됐다.'
서대문구 3번 GM, 키하엘은 내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GM이었다.
키하엘은 계속해서 이것저것을 물으면서 내 신상을 캐내려 했다.
결국 사용제한이 있는 '관리자 권한'을 사용해서 내 신상을 캐내기에 이르렀다.
"레벨 28? 현시점 최상위 랭커잖아?"
관리자 권한을 사용하면 레벨과 각성명, 그리고 직업까지는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직업은 만능 스트리머. 각성명은 김철수?"
"뭐야, 그걸 다 알 수 있는 거였어? 근데 뭘 그렇게 코치코치 캐물었대?"
키하엘은 턱을 매만졌다.
"이 시기에 최상위 랭커. 그런데 정보는 비공개. 랭킹보드에도 이름 안 올렸고. 스트리머면 유명세가 중요할 텐데 유명세에도 별로 관심도 없어 보이고. 아까 영상에서 보아하니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던데. 수상한 것투성이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걸 보면 슬슬 진짜 본론을 꺼낼 때가 됐는데.
아마 키하엘은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너, 회귀자냐?"
시스템은 공식적으로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도 진짜 회귀를 하기 전까지는 그게 없는 줄 알았다.
추후 알게 된 건데 회귀는 GM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로 의견이 분분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실존하든 실존하지 않든 회귀는 버그이며, 회귀자는 바이러스라는 것이었다.
'회귀'는 GM들에게 경기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내가 회귀자다!'라면서 만용을 부리는 녀석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모두 GM에 의해 살해당했다.
"회귀? 그게 뭔데? 과거로 돌아가는 거?"
키하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짜로 회귀자가 아냐?"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알림이 들려왔다.
[GM 퀘스트, '진실의 방'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언젠가 GM을 상대로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게 플레이 초창기면 초창기일수록 더욱 좋고.
그 상대가 키하엘이면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