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화
실컷 칼싸움을 하려고 했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계략에 의해 칼 성장시키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4명만이 드디어 검으로 최종 진화시켰으니까.
남은 4명은 아쉬움에 뿅망치를 들고 있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무기니까 말이다.
선생님이 진화 못 시킨 4명에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요. 선생님에게 가위바위보를 이기면 검으로 바꿔줄게요. 하지만 지면 더 안 좋은 검으로 바뀌어요. 물론 도전 안 해도 돼요.”
4명의 아이. 그러니까 승준, 하나, 종수, 재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뿅망치를 무기로 할 것이냐 아니면 리스크를 떠안고 검으로 바꿀 것이냐.
그 기로에 서 있었다.
“나는 할래!”
먼저 당당히 도전한 것은 승준이었다.
스트라이커는 도전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한다면 점수를 딸 수 없다.
확률이 제로가 아닌 이상 언제나 집중력 있게 끝까지 시합에 임해야 한다.
“선생님. 해요!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으악!”
언제나 말하지만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다.
승준이 가위바위보에 지면서 다른 아이들이 그냥 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겼으면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승준은 졌다.
“아. 그럼 칫솔로 싸워야 해?”
승준의 말에 선생님이 고개를 젓는다.
히죽 웃으며 긴 풍선을 꼬아서 만든 검을 들고 온다.
그리고 승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엑! 이거 너무 가볍잖아.”
“터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알았죠?”
“으악! 망했어!”
승준의 검을 보고 종수는 마음을 먹었다.
도전하지 않겠어! 차라리 뿅망치가 훨씬 낫다.
재휘 역시 승준의 검을 보며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하나만은 도전할 것 같았다.
나는 오빠랑 다르니까!
“하나도 가위바위보! 오빠가 졌으니까 제가 이겨요!”
“응. 그래. 하자.”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아악! 졌어!”
어쩔 수 없이 쌍둥이는 풍선검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종수와 재휘를 한번 떠봤지만 하나가 진 게 결정타가 되었는지 확고한 생각을 보였다.
선생님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다들 칼싸움할까요?”
“네!”
드디어 시작된 칼싸움.
물론 칼이 아닌 뿅망치랑 검이라고 하기에는 약해 보이는 긴 풍선검도 있었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없다.
불리한 쪽도 있는 법이다.
아이들은 이런 무기라도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다.
“얍! 얍!”
시하는 이미 광선검을 가지고 온갖 포즈를 다 잡고 있었다.
허공에 누군가와 싸우는 것 같았다.
“시하야. 도와줄게!”
승준이 참가했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멋지게 칼질을 한다.
한 바퀴 돌아주고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시하 곁에 가서 검을 든다.
참으로 멋진 장면이었겠으나 파리채처럼 흔들리는 풍선검이 다 망치고 있었다.
“승준아. 적이 여기 이써.”
“응. 나도 알아. 우리 둘러싸였어.”
아무도 없는 허공이었지만 두 아이를 적이 둘러싸고 있나 보다.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적을 경계한다.
그때 하나가 등장한다.
“오빠! 시하야! 하나가 도와주께!”
둘러싸여 있는 걸 보고 파악했는지 가까이 가지 못하고 열심히 싸운다.
마치 시하와 승준 주위에 안 보이는 원이 형성된 것 같다.
“우리도 하나 쪽으로 가자!”
“응!”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들 빙글빙글 돌면서 열심히 검을 휘두른다.
취익! 취익! 지지직!
시하는 광선검이라서 소리가 난다.
“하나야. 위험해!”
시하가 소리친다.
어느새 하나가 위기에 처했나 보다.
그때 연주가 검집에서 검을 꺼내며 그대로 허공을 베어내었다.
지켜보다가 자연스럽게 놀이에 합류한 것이다.
“괜찮소?”
“응. 연주야. 고마워.”
“인사는 나중에 하지. 지금은 적을 쓰러뜨릴 때요.”
“응!”
연주야. 요즘 사극 보니? 말투가 아주 자연스럽네?
배우가 되고 싶은 연주는 이미 상황에 과몰입 중이었다.
연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애들이 열심히 베고 있는데 뿅망치를 어깨를 걸치고 오는 종수가 있다.
그 뒤를 재휘가 따른다.
“다들 비켜라!”
종수의 말에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었다.
“길을 열어라.”
종수가 두 손으로 길이 갈리는 표현을 했다.
아무래도 시하팀을 습격한 적의 두목 같았다.
역시 아군으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근데 마치 행태가 산적 두목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이었으면 껄렁한 검사 같았을 수 있겠으나 손에 들고 있는 건 망치니까 산적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꼬붕… 이 아니라 하수인인 재휘를 데리고 오고 있다.
종수가 말했다.
“너희들. 꽤 세네?”
“종수다!”
“야! 이시하! 여기서는 종수가 아니거든!”
“구럼 쫑수?”
“아니거든! 아무튼, 내가 상대해 줄게! 간다!”
종수가 뿅망치를 들고 다가온다.
재휘도 그 뒤를 따랐다.
광선검과 뿅망치가 부딪친다.
지지직! 뿅!
서로 다른 소리가 나면서 분위기가 와장창 무너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종수 망치로 광선검 못 마가. 잘려.”
“이건 특별한 망치라서 안 잘리거든.”
“!!!”
뿅뿅뿅! 취익! 취익! 취익!
둘이서 투닥투닥 부딪치고 있다. 재휘는 누구를 공격할까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랐다.
“하나야 간다.”
“그건 안 돼.”
“!!!”
연주가 하나의 앞을 막았다.
재휘가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뿅망치로 공격한다.
서로 토닥토닥 수준의 싸움.
저건 싸움인가 싸움을 가장한 염장인지 모를 정도였다.
“나도 싸울 상대! 윤동아! 붙자!”
“응?”
“간다!”
“근데 너 풍선검인데.”
“그게 왜?”
“아니. 너무 약하잖아.”
“괜찮아. 내가 강하니까.”
“으음.”
어쩔 수 없이 검을 부딪쳐주는데 윤동이 살짝 휘두르자 어딜 잘 못 맞았는지 풍선이 뻥 하고 터져버렸다.
무기를 잃어버린 승준이었다.
“하하!”
하지만 승준은 괜찮았다.
두 주먹이 있었으니까.
“내 펀치는 검도 못 막아!”
“으음.”
아무튼, 그런 설정이었다.
뭔가 엉망인 설정들이 한가득한 놀이었지만 아이들은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아무도 죽지 않는 싸움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으윽.”
승준이 쓰러졌다. 한참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하하하!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설정이다. 평생 끝나질 않을 싸움.
다만 끝나는 때는 정해져 있다.
만족했을 때 혹은 밥을 먹을 때다. 아니면 간식 시간이거나.
***
시하를 데리고 오는데 한참을 칼싸움 이야기만 했다.
오늘 광선검을 들고 가더니 아이들과 재밌게 놀았나 보다.
내가 선물한 펭귄 가방은 매일같이 쓰지만 삼촌이 준 광선검은 자주 가져가 논다.
뭐 매일 가지고 노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서로 용도가 다른 선물을 받아서 참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이렇게 좋아하니 질투가 난다.
“시하야. 광선검이 좋아? 아니면 페페 가방이 좋아?”
이런 유치한 질문을 던진다.
“시하는 둘 다 좋은데?”
이런 현명한 녀석. 둘 다 좋다는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원하는 대답이 나와야 끝나는 법이다.
“하나만 골라봐.”
짓궂은 질문인 걸 알지만 멈출 수가 없다.
오늘 나는 답정너다.
“구럼 시하가 생각하는 거.”
“오올. 그게 뭔데?”
“형아는 아라. 시하 조아하니까.”
“천잰데?”
어디서 그런 대답을 배운 거야? 형아도 좀 같이 듣자!
이건 내가 모르면 시하를 안 좋아한다는 거기 때문에 계속 추궁할 수 없다.
우리 시하 언제부터 이런 고급진 방어가 가능해졌지?
뭐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한 대답은 아닐 수 있다.
“자. 내리자.”
“응!”
집으로 돌아왔다.
삼촌이 씨익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언제나 다른 곳에 있어도 우리가 들어오면 일어나서 중간문 앞까지 온다.
귀찮을 수도 있는 행동일 텐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행동마저도 나는 민감하게 느낀다.
이렇게 큰 영향도 있으니까.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
“삼춘! 다녀와써!”
시하가 광선검을 흔든다.
“삼춘 이리 와봐.”
“또 왜!”
삼촌 손을 잡고 소파로 이끈다.
삼촌이 귀찮아하는 모습이 역력한데도 시하가 이끄는 대로 가준다.
사실 저건 늘 일상이라서.
“시하야. 손부터 씻어야지.”
“마따! 삼춘 기다려. 알아찌? 어디 가면 안대. 여기서 기다려.”
삼촌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시하야. 그거 대사가 강아지한테 하는 대사 아니야?
애완앙마에게 명령을 한 시하는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가서 손을 씻는다.
“삼춘. 안자바!”
“이미 앉아 있다.”
“오늘 시하가 머 했는지 말해주께!”
“후우. 또냐! 그거 형아한테 말하라니까 왜 매번 나한테 말하냐고.”
“형아한테 벌써 말해써!”
“그러니까. 말했으면 끝났지.”
“아냐. 삼춘도 알아야 해.”
“아니. 직장도 이제 퇴근하는 시간인데 내가 이 시간에 브리핑을 들어야겠니?”
아침 브리핑도 아니고 저녁 브리핑을 하는 시하였다.
“부리핑? 부리부리 눈 하면 핑 하고 돌아?”
“그런 말이 아니야.”
“시하 아라. 브리핑 영어야.”
“그건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알겠다.”
“삼춘. 이제 하께.”
이제 진짜 브리핑이 시작됐다.
오늘 광선검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했다는 시하였다.
삼촌이 가르쳐준 망치로 때리는 법도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니. 삼촌! 시하에게 뭔 이상한 지식을 가르쳐주고 있었어요! 망치 손잡이로 왜 때려?!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서 경악했다.
찰싹!
“아악!”
삼촌이 이야기를 듣다가 등을 문질렀다.
“시하한테 자꾸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요.”
“이게 왜 이상한 거야?! 망치고 치면 큰일 나니까 거꾸로 잡아서 손잡이로 때리라는데.”
“보통 그럴 때는 망치를 쓰지 말라고 말하거든요.”
이 삼촌이.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인드 뭐냐고.
“그럼 무기 안 써?”
“안 써요. 호신술로 제압하면 되지.”
“에이. 그래도 무기가 있는데 안 쓸 수 있나. 그래도 나무로 되어 있어서 죽지는 않아. 쇳덩이면 죽을 확률이 높으니까.”
“망치로 안 싸우는 게 전제라고요!”
망치 좀 멀리 버리라고 해!
나도 저런 삼촌 때문에 어릴 때 영향을 많이 받아서 중학교 때 싸움 한 번 했다.
이미 삼촌이 실전 무술 같은 걸 아빠 몰래 알려줘서 싸운 친구 팔을…….
음. 그 친구 지금 잘살고 있겠지? 탈골이야 살다 보면 한 번쯤 경험하는 거 아니겠나.
아니지. 경험 못 하는 사람이 많아. 정신 차리자. 시하가 삼촌에게 물들면 안 된다.
적당한 건 되는데 과한 건 안 된다.
어쩐지 아빠가 삼촌의 등짝을 자주 때리던 게 이제는 이해가 된다.
아니, 원래 알았는데 이제 피부로 느껴진다.
“삼춘! 시하 말 들어야지.”
“다 들었다. 광선검 좋지?”
“응! 조아!”
“그럼 광선검이 좋아? 아니면 페페 가방이 좋아?”
“페페 가방.”
“야! 아까 실컷 광선검 이야기해 놓고서는 페페 가방이 좋다고?”
“광선검은 페페 가방 다음에 좋아.”
“이거이거 완전 웃긴 애네.”
어라? 시하야. 아까는 둘 다 좋다며? 멋들어진 대답을 나한테 하지 않았나?
근데 삼촌에게는 페페 가방이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삼촌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음. 시하도 삼촌에게서 장난을 많이 배웠네. 이미 물들어버린 건가.
찰싹!
“아! 또 왜?”
“앞으로 감시할 거예요. 잘해요.”
“뭐? 내가 또 뭘 했는데?”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부엌으로 떠났다.
삼촌이 뒤에서 외쳤다.
“뭐 조심해야 하는지 말은 해주고 가야지!”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전적이 있으시니까.”
“아니. 그것도 한두 개여야지.”
찔리는 게 많아서 뭘 조심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삼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