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9화 (419/500)

419화

미국 NBS 방송국.

오늘은 감독님과 today show에 나간다.

물론 나는 게스트가 아니라 통역사로 나가는 거지만.

10월에 개봉한 미국 ‘일개미’. 이 폭발적인 관심을 계속 끌고 가려는 속셈이다. 앞으로 올 아카데미상을 위해서기도 하다.

많은 활동을 해야 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황금종려상도 대단한 영광이지만 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시하야. 여기 삼촌이랑 잘 있어야 해. 너무 심심하면 밖에서 삼촌이랑 놀고. 알았지?”

“응. 군데 시하 형아 보느라 안 심심해.”

“크흑.”

아무리 그래도 방송인데 길어지는 건 당연했다. 인터뷰 형식으로 한 토크쇼이기 때문에 예능보다는 적게 녹화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계속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좀이 쑤시지 않을까 싶다.

피곤하면 자고 싶고.

다행히 삼촌이 있어서 그런 문제는 잘 해결될 것 같다.

“삼촌 부탁해요.”

“응. 걱정 마. 나는 고향에 돌아와서 든든한 기분이거든.”

삼촌이 가슴 주머니를 토닥토닥 친다.

설마 싶지만 혹시 저기 총기가 있는 건 아니겠지? 고향이 미국이 아니라 총기라서 든든한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삼촌. 진짜 잘 봐줘야 해요.”

“걱정 말라니까. 아! 혹시 여기 방송국 사람이 이상한 걸 시키면 말이야.”

삼촌이 내게 가까이 다가가며 살며시 목소리를 낮췄다. 쏠까? 하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분명 작은 소리인데 엄청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쏘긴 뭘 쏴요. 아, 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

“에헤이. 걱정 마.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처리 안 해. 으슥한 곳에서 알지?”

“알긴 뭘 알아요! 쏘지를 말라니까.”

“죽여, 라는 신호를 만들자. 엄지로 코를 쓰다듬은 다음에 귓불을 만져. 그럼 내가 알아서 할게.”

“필요 없다니까요.”

뭔 신호를 만들고 자빠졌습니까!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 좀 제발 가만히 놔두세요! 다들 가정이 있으신 분들이라고요. 아마도지만.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 가요.”

일단 감독님에게 피신하자.

여기 있다가는 어떤 소리를 들을지 알 수가 없다.

감독님에게 가자.

“어! 왔어?”

“같이 왔잖아요? 왜 오늘 처음 본다는 듯이?”

“그냥 해봤지. 아, 맞다. 웬만한 질문은 내가 다 알아들으니까 내가 하는 말만 잘 좀 전해줘. 나도 가끔 영어를 써서 대답하기는 할 건데 이게 꼭 갑자기 생각 안 날 때가 있거든.”

“그렇죠.”

“그래서 대부분은 한국어로 할 거야. 이 단어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도 있으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책도 썼잖아요.”

“역시 믿음직해.”

그렇게 방송이 시작됐다.

투데이쇼 사회자는 조니라는 분이었다.

깔끔한 스타일인데 웃을 때 입과 눈이 큼지막해서 리액션이 아주 커 보였다.

작은 웃음도 굉장히 표정이 다채롭게 변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토크쇼의 MC가 된 것도 저 얼굴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니가 말했다.

「고감독님. 미국에서도 굉장히 영화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영화 소개 좀 해주시죠.」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에이. 너무 조금 알려주신다.」

「너무 많은 걸 알려드리면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럼 제가 조금만 말하겠습니다. 저도 일개미의 영화를 봤는데요. 처음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생활이다.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웃긴 장면도 나오고. 이게 초반 부분이에요. 악역도 나오고 선역도 나오고. 근데 이게 보다 보면 오! 노우!」

「그런 장면들이 있죠.」

스포일러 안 되게 조니가 잘 말한다.

원래 표정이 큼지막했는데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의 끼일 것이다.

이야기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감독님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요. 정말 축하합니다.」

방청객에서 박수 소리가 나온다.

짝짝짝.

「그런데 개봉했을 때 기립박수가 길게 이어졌어요. 그때 마이크를 드시고 다들 자러 갑시다. 이렇게 말하셨다고.」

「아, 그건.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너무 잠이 왔어요. 제 마음이 아직 어린이라 일찍 잠들어야 하거든요.」

「하하핰!」

「잘 시간이 너무 지나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들 웃기만 하고 박수는 끝나질 않았죠. 여기서 한국에서 자막으로 나왔어요. 침대로 가자.」

「오우 노오!」

「그냥 단어만 봤을 때는 저만 좀 이상해지잖아요. 자러 간다고 적어도 되는데 침대로 가자뇨., 이상하잖아요.」

「하하핰」

이것도 꽤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댓글로 꽤 위험한 수위의 드립도 이어졌다.

이런 단순한 해프닝이 있었으니까 더더욱 재밌어하고 화제가 되는 건 당연했다.

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더 하면 나는 그걸 통역한다.

「더 재밌는 점이 있는데 이제 시상식을 하고 황금종려상을 받았잖아요. 우리 한국말로 ‘황금 종려상’이라고 하는데. 황금은 골드이고요.」

「아무튼, 그 당시에 제가 하품을 한 적이 있어요. 피곤해서.」

「그걸 또 영화에 나오는 아이인 시하가 봤어요. 그래서 나중에 감독님 황금졸려상을 받았다고.」

조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하의 귀여운 말이 방청객들도 웃겼다. 여기 있던 스태프 역시도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시하가 이걸 보고 있어서 더 힐끗거린다.

「황금종려상을 팜도르라고 하잖습니까. 농담으로 고도르라고 많이 말했는데.」

「맞아요. 근데 시하 때문에 농담으로 저희 끼리 슬리피도르라고.」

「오우 노우. 하핰핰 와. 정말 웃기네요. 침대 가자, 보다 더 재밌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래도 보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상 받을 때는 하품 안 했습니다. 눈이 번쩍 떠지더라고요.」

「하하하. 오늘 이후로 별명이 슬리피도르라고 나오는 거 아닙니까?」

「괜히 얘기했나?」

다들 주변에서 빵 터졌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도 건질 장면이 많은 것 같다.

토크쇼가 이렇게 재밌게 흘러가면 굉장히 좋다.

현장 분위기가 시청률과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시청자들이 재밌어하는 것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유명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영향력도 상당했다.

공중파에 나오면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것과 같으니까.

조니가 말했다.

「사실 여기에 시하라는 아역 배우가 나와 있습니다.」

어? 이 얘긴 왜 갑자기 하지? 대본에 없는 거잖아. 그치? 없는 거지?

「혹시 괜찮으면 슬리피도르라는 별명을 지어준 배우도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마이크를 들고 곧바로 대답했다.

“No!”

단호박 같은 대답이었다.

조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핰. 역시 소문대로 단호하시네요. 사실 통역사분 소문을 미리 들었습니다. 본인에게 들어오는 질문을 다 쳐내신다고.」

노린 건 시하가 아니라 나였어?!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역시 유명 MC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제 이야기보다는 감독님 이야기로 돌아가죠.」

「역시 단호하네요. 기자들에게도 정중하게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끈질겨서 적당히 받아줘야겠다.

이대로면 안 끝날 테니까.

안 그래도 감독님이 일개미 홍보한다고 고생하시는데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되겠지.

여긴 방송국이니까 너무 단호하게 나가도 좋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녹화 분위기가 좋으니까.

「제게 집중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통역사니까요. 이를테면 피아노 소리가 잘 나오고 주목받을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이지 제가 피아니스트가 아니잖아요.」

「오우. 드디어 말을 받아줬어요! 와, 근데 역시 말을 잘하시는군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니가 말했다.

「질문 딱 하나 받았는데 거기에 대답이 통역사가 통역 잘하는 건 당연하다, 였는데 이게 굉장히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댓글도 많이 달렸어요.」

아마 여기서 자료화면이 나갈 것 같다.

사람들이 반응이 이랬다.

-그래! 통역사가 통역 잘하는 건 당연한 거야!

-아 질문 수준이 갑자기 부끄럽다!

-어느 나라 기자가 저 질문을 했냐?!

-근데 저렇게 말하는 게 너무 멋지다.

-당연한 걸 했을 뿐인데 왜 화제가 되지? 하면서 어리둥절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

-어리둥절한 강아지가 보였어!

조니가 말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 오히려 화제가 되었어요.」

「이게 왜…….」

「아마 이 방송 나가면 한 번 더 화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건 좀.」

내 곤란한 모습이 웃긴지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난다.

사실 불안하기는 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잘 묻어갔다.

대단한 스코어가 늘 새로 갱신되기도 했고 감독과 배우에게 포커스가 몰렸으니까.

10월에 개봉되면서 12월인 지금은 번역 이야기도 슬슬 나오고 있다.

하필 여기 나온 통역사가 그 번역가이다.

김석현 배우의 말처럼 충분히 배우와 감독의 이야기가 사용됐고 포커스가 나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기는 하다.

아씨. 큰일 난 거 같은데? 나중에 내 분량은 적게 나오게 편집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고감독님. 영화 번역도 시혁 리가 했다는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저랑 같이 작업을 했는데 이 친구가 굉장히 똑똑한 친구예요. 그리고 아주 몸값이 비싼 친구입니다. 나이는 어려도 경력이 화려하거든요.」

「오우. 정말입니까?」

「네. 아마 이 친구 인별에 찾아보시면 활동 내용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와. 말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스포일러를 싫어해서요.」

「오우 노우! 이건 토크쇼예요! 말을 해야 하는 프로라고요!」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숨기려는 고감독, 어떻게든 말을 꺼내려 하는 조니. 이 두 구도가 굉장히 캐릭터적으로 재밌게 느껴졌다.

역시 둘 다 프로기는 프로구나 싶었다.

「두 사람 다 이렇게 말 안 해주시면 잘 알만한 게스트 하나 더 부를 수밖에 없어요.」

「누구요?」

「저기 이시하 배우. 한마디 들어봅시다.」

내가 No를 외치려는데 시하는 조아! 하고 외친다.

“Yes! I’m!”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삼촌하고 집에서 영어로 대화하며 배웠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시하라는 말에 반응해서 귀를 쫑긋 세웠나 보다.

조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시하도 영어 할 줄 압니까?」

“Yes! very well!”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서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앉는다.

다들 붙잡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상하면 편집하면 되긴 하니까.

삼촌은 시하 안 잡고 뭐 하고 있나 보니 가슴을 붙잡고 있다.

오우! 노우! 조니 조심해야겠어요. 잘못하다가 총살당합니다!

내가 고개를 젓자 삼촌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손을 내린다.

아니. 왜 아쉬워하는데!

아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다.

하여간 시하 건드리면 큰일 난다.

「오우! 정말 잘한다고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시혁 리가 어떤 일을 했나요?」

시하를 위해 천천히 말해주었다.

이거 알아들었으려나?

시하의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어느 정도 눈치로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 워크?”

「네. 일이요. 일.」

“시혁 리? 형아?”

「네. 네.」

“형아 love 시하. very very love해. thanks!”

응. 형아가 너 사랑하는 게 일이지.

시하의 대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하는 눈이 보인다.

「사랑하는 게 일이라니. 멋지네요. 좋아요. 답은 저희 스태프가 고생해야죠. 뭐. 그런데 시하. 하나만 더 질문해도 돼요?」

“Yes! I’m 시하!”

너 시하인 거 여기 사람 다 안다.

자꾸 동문서답하는 시하였다. 너 그냥 아는 영어 말하는 거지? 그런 거지?

「좋아요. 저기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조니가 손가락으로 삼촌을 가리킨다.

아마 이것도 알아들었을 것 같다.

“어. 어…. 아! 시하 아라. Devil uncle!”

「오우. 나 악마에게 찍힌 거야?!」

이걸 마지막으로 시하의 인터뷰는 끝났다.

이제 감독님과 열심히 토크쇼를 진행했다.

후우. 무사히 끝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12월 중순에 토크쇼가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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