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몇 문제 더 내면서 아이들이 해적 룰렛 검을 좀 가지게 되었다.
시하도 3개를 획득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는 3번뿐이라는 것.
굉장히 불리했지만 그래도 시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선생님이 해적 룰렛을 아이들 앞에 놓았다.
“자! 그럼 해적을 튀어나오게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할래요?”
“저요!”
언제나 스타트를 끊어주는 승준이 손을 들었다.
자신만만한 얼굴과 다르게 손에는 조금 전에 진화시킨 검 하나뿐이다.
아쉽게도 승준은 단 한 문제도 맞히지 못했다.
OX 퀴즈가 50퍼센트 확률인데 운이 참 없었다.
깡깡이 대열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운 없는 대열이라고 하고 싶다.
사실 모르면 문제가 어렵기도 했고. 물론 찍으면 맞출 수 있지만 말이다.
“응. 승준아. 힘내.”
“네! 내가 봤을 때 여기다!”
해적 룰렛에 검을 푸욱 꽂았다.
달칵.
역시 한 번에 나오지는 않는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면 OX 퀴즈도 다 맞았겠지.
“아, 아깝다.”
하나도 안 아까웠다.
승준은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나중에 승준이 검 하나 가져가세요. 알았죠?”
“네!”
“자! 확률이 높아졌어요. 모두 도전해 보세요.”
“!!!”
아이들이 자신의 손에 있는 칼을 보고 눈치를 보았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때 종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그래. 종수.”
“하하! 나 10개나 있어.”
처음의 문제를 빼고 모든 문제를 다 맞혀서 종수는 10개를 꽂을 수 있다.
해적 룰렛에 꽂을 수 있는 구멍은 16개.
승준이 하나 제외해 줘서 15개가 남은 상황.
확실히 종수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잘 봐. 이렇게 많으면 툭툭 꽂으면 돼. 알겠지?”
역시 똑똑한 종수답게 퀴즈를 다 맞혀서 검이 많았다.
검의 개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가 중요해.”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멍한 표정으로 검을 꽂는다.
달칵. 달칵. 달칵.
순식간에 검이 줄어들며 어느새 손에 하나만 남는다.
“어?”
이건 예상치 못했는지 종수가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물론 실제로 흘리는 건 아니고 그런 표정이었다.
꿀꺽.
남은 기회가 하나라서 동공에 지진이 난다.
무심하게 툭툭 전법은 무심을 박살 내는 전법이 되어버렸다.
퀴즈를 아무리 잘 푼다고 해도 운이 없으면 해적은 나오지 않는다.
저 정도면 전형적으로 운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으으으. 아무 생각 없이가 중요해.”
이미 종수의 표정만 봐도 번뇌가 가득하다.
이걸 성공하지 못하면 면봉에서 진화할 수 없다.
“얍!”
팅! 해적이 튀어나왔다.
종수도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뱉는다. 가슴을 쓸어내리면 ‘다행이다.’ 하고 중얼거린다.
재휘가 종수에게 다가가 축하를 해준다.
“종수야. 축하해! 아무 생각 없이가 통하는구나!”
“뭐, 그렇지. 이런 건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댔어.”
성공하고 나서는 의기양양해진다.
아까 식은땀을 흘린 표정과는 딴판이다.
슬쩍 시하를 보았다.
“야. 이시하. 너도 손에 3개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툭 넣어봐. 다 돼. 내가 어! 가르쳐준 대로 어! 해보란 말이야.”
“아라써. 군데 시하는 다른 거로 하꺼야.”
“뭐로 할 건데?”
“형아 파워!”
시하가 팔을 하나 들면서 말한다.
종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설마 저런 게 통하지 않겠지. 겨우 3개로 뭘 하겠어.
종수가 생각하기에 시하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지켜봤다가 도전하는 게 좋아 보였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 해적이 다시 꽂혔어요. 다음은 누가 해볼래요?”
“시하여!”
“응? 시하? 시하는 3개뿐인데?”
“갠차나여. 충분해여.”
“신에게는 3개의 검이 있습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자. 시하야. 해 보자.”
시하가 형아 파워를 외치면서 칼 하나를 툭 꽂았다.
팅! 해적이 위로 바로 올라갔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시하 대박!”
“시하 대단해!”
쌍둥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종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시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번에 됐지? 나는 10개나 써서 겨우 됐는데? 어? 이게 뭐지? 이게 될 수 있나?
다시 번뇌가 가득 머리를 채웠다.
“형아 파워!”
아니. 형아 파워가 진짜 있나? 어?
정말 순간 그런 생각들이 종수의 머릿속에 지나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퀴즈는 못 풀어도 운이 좋은 게 시하였다.
아무리 똑똑해도 운 좋은 놈은 이기기 쉽지 않다.
“다음은 내가 할래.”
다음은 재휘가 선뜻 나섰다.
재휘도 8개나 있기에 해적이 팅 하고 튀어나왔다. 얼굴 가까이에 튀어 올라서 깜짝 놀라며 넘어져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연주를 힐끗 보더니 머쓱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도 검을 성공적으로 성장시켰다.
면봉이었던 아이들은 해적 룰렛 칼로 진화시켰고, 원래 해적 룰렛 칼이었던 아이들은 칫솔로 진화되었다.
“???”
장난감 칫솔을 본 아이들은 이게 맞나? 싶은 얼굴이 되었다.
***
선생님이 다음 게임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실컷 놀았으니 간식을 먹을 시간인데 손쉽게 주는 건 아니었다.
“여러분! 칫솔 하면 뭐가 필요하죠?”
“치약!”
“네! 맞아요. 그래서 오늘 여러 맛의 치약을 준비했어요!”
“!!!”
“케첩 맛도 있고 머스타드 맛도 있고 마요네즈, 딸기잼 등등이 있네요.”
사실 치약이 아니라 치약처럼 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했다.
오늘 간식은 바로 핫도그!
하지만 뭘 짜 먹게 될지는 바로 이 복불복 게임에서 판가름 난다.
“이 당첨된 치약들을 짜서 핫도그에 먹을 거예요. 괜찮아요. 맛없는 것들은 없어요.”
선생님이 씨익 웃었다.
맛이 없지는 않지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자. 그러면 이번 게임은 숨은그림찾기!”
“!!!”
“선생님이 크게 프린트해 왔어요. 열심히 청소하는 코뿔소가 보이죠?”
“네!”
“여기에 칫솔도 숨어있어요. 제일 많이 찾은 사람이 원하는 치약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줄게요.”
“!!!”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할 것을 탐색했다.
종이비행기, 아이스크림, 연필, 우산, 칫솔, 붓, 돛단배, 탁구채 등등.
찾아야 할 그림들이 전체 그림 옆에 있어서 거기에 맞는 것들을 찾으면 되었다.
“참고로 다 찾아야 핫도그 먹을 수 있어요.”
“!!!”
아이들이 더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핫도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10분이면 다 찾지 않을까 싶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하나씩 데우면 될 것 같다.
“시하가 다 차자!”
시하가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찾아야 할 그림들도 보았다.
머릿속에서 짜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림이라면 시하는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관찰력이 좋다. 퀴즈보다는 이쪽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다 차자따!”
“???”
몇 개 찾은 아이들이 의문 어린 눈으로 시하를 보았다.
종수가 말했다.
“야. 이시하. 거짓말하지 마!”
“아냐. 진짠데?”
“하! 그러면 해보던가.”
종수가 빨간펜을 시하 손에 쥐여준다.
시하는 거침없이 찾은 그림에 동그라미를 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점점 찾는 개수가 늘어난다.
손은 지연 없이 거침없이 뻗어 나가며 동그라미가 늘어난다.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시하를 보았다.
설마 시하에게서 이런 능력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다 해써!”
찾은 개수는 17개. 아이들이 몇 개 찾은 건 3개.
총 20개의 숨은 그림을 다 찾았다.
시하가 그림을 조망하고 동그라미 친 시간은 겨우 2분이었다.
삐빅!
마침 에어프라이기에 넣은 핫도그들이 한 타임이 끝난 시간이기도 했다.
“어?”
선생님은 당황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핫도그 돌려야 할 게 더 많은데?
“다희쌤. 진행해요. 제가 나머지는 알아서 할게요. 프라이팬도 꺼내야겠네.”
“아, 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다.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 섰다.
“흠흠. 승리는 시하네?”
“응!”
“어. 음. 그러니까 시하가 1등이고. 공동 2등은 종수랑 연주랑 하나네. 맞지?”
“네!”
“으음.”
하나라도 맞혀야 검이 성장하는데 시하가 너무 빨리 다 찾아버리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이렇게 빨리 끝내면 재미도 없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비한 숨은그림찾기를 한 번 더 꺼내자니 시하가 금방 찾을 것 같다.
“그럼 일단 치약부터 고르고 못 찾은 사람은 한 번 더 찾는 거로 하겠어요. 알겠죠?”
“네!”
“그럼 치약 선정이 있겠습니다.”
시하가 치약(?)을 쭉 둘러보았다.
어느 것이든 고를 수 있는 1등이다.
“우웅.”
종류는 8가지.
케첩, 마요네즈, 머스타드, 딸기잼, 사과잼, 망고잼, 콘버터, 고구마무스.
시하는 케첩과 딸기잼 중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왜냐면 둘 다 레드이기 때문이다.
맛은 상관없다. 오로지 레드다.
하지만 둘 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시하는 케첩 치약!”
“오!”
오리지널 핫도그를 선택한 시하다.
종수는 당당하게 마요네즈를 골라서 선생님이 눈을 의심했다. 응? 마요네즈?
연주는 사과잼, 하나는 딸기잼을 골랐다.
다음 숨은그림찾기에서 승리하는 순대로 남은 아이들이 고르기 시작했다.
은우는 의외로 머스타드를 골랐다.
“푸하하. 머쓱타드 푸하하. 머쓱머쓱. 재휘도 머쓱! 푸하하!”
선생님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저 말을 하고 싶어서 고른 게 틀림없어 보였다.
뭐 사실 좋아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나는 고구마무스!”
승준은 고구마무스, 재휘는 콘버터, 윤동은 망고잼이 당첨되었다.
괜찮으려나. 핫도그랑 망고잼이라니.
“먹을 만큼만 짜세요. 더 먹고 싶으면 또 짜면 되니까요. 알았죠?”
굳이 안 어울리는 걸 먹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한 입은 먹어야 했기에 선생님이 저렇게 말했다.
다들 눈앞에 핫도그가 나왔다.
각자가 가진 치약(?)을 가지고 뿌려 먹는다.
시하는 두리번거리다가 하나를 보았다.
“하나야.”
“응?”
“시하 더블 레드 하고 시퍼!”
“어?”
“딸기잼 뿌려져.”
“!!!”
선생님은 처음에 말렸다.
아니! 딸기잼에 케첩이라니! 나쁘지 않은 조합이기는 한데.
“시하야. 먹을 수 있겠어? 맛없을 수도 있어.”
“갠차나여. 레드자나여.”
“레드가 대체 뭔데! 뭐길래 다 괜찮은 거야!”
어찌 되었든 시하를 막을 수 없었다.
다 뿌리고 나서 핫도그를 맛있게 먹는다.
“마시써!”
의외로 맛있었나 보다.
다른 아이들도 시하가 하는 행동을 보더니 다른 아이들 걸 뿌려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 빌리면 되는 거였다!
심지어 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바꿔먹고 나누는 것도 교육의 일종이었으니까.
다만 이상한 조합은 한 번 말렸다.
도전 정신은 좋지만 때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
“그러면 나는 무지개 만들래! 여기 일곱 개 뿌려서!”
“승준아. 그건 아니야. 일곱 개는 안 돼요.”
“칫!”
“칫은 무슨 칫이니.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무지개 맛이에요!”
무지개 맛은 보통 맛없잖아!
“맛있을 거예요. 무지개니까.”
“무지개는 볼 때만 예쁘고 맛은 없어.”
“선생님이 먹어봤어요?”
“아니. 안 먹어봤어. 하지만 알아.”
“우웅?”
“선생님이 너무 마시면 가끔 무지개를 뱉… 아얏!”
그런 말을 하다가 원장님에게 등짝을 맞은 유다희 선생님이었다.
마요네즈를 선택한 종수는 시하를 보았다.
“야. 이시하.”
“왜?”
“나도 케첩 줘.”
“안 대.”
“왜!”
“마요네즈 안 대.”
“마요네즈랑 케첩이랑 뿌려 먹으면 맛있거든? 하! 먹을 줄 모르네!”
종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뿌려서 한입 먹게 해주께.”
“시하 꺼 이써.”
“그럼 마요네즈 빌려줄 테니까 뿌려 먹어봐.”
“시러.”
“그럼 케첩 좀 빌려줘!”
“시러!”
선생님은 생각했다.
뭐지? 시하에게 마요네즈에 핫도그는 선 넘었나?
“야! 너무하네! 마요네즈가 싫냐.”
“아니.”
“???”
“레드랑 화이트랑 서꾸면 안 대. 레드가 아냐.”
“엥?”
선생님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으면 분홍색이 되긴 하지.
어찌 되었든 레드에 진심인 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