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 (229/500)

229화

겨울은 색으로 검은색이다.

그래서 검을 현, 겨울 동을 써서 현동(玄冬)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만물이 싹 트는 시기를 대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 계절.

검은색인 이유는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서 그렇게 정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하얀 눈을 생각하겠지만 검은색이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곳에서 견뎌내야 하는 게 있기에.

선생님도 그런 의미로 다른 게임을 생각했다.

“여러분.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라는 말이 있어요.”

오늘 준비한 것은 아이들이 인내심을 길러주는 게임이다.

겨울의 만물들이 힘을 비축한다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 힘을 비축해야 할까?

잘 먹고 누워서 티비 보면 될까?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긴 겨울이 왔을 때 인내하며 달콤한 과실을 얻기 위한 마라톤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인내심이다.

실제 선수들도 긴 재활치료를 통해서 복귀하지 않나.

“아!”

승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응. 승준아. 왜 그러세요?”

“똥이 급한데 돌아서 화장실 가면 바지에 싸는데요!”

“…….”

선생님도 급똥은 못 참는다고 생각한다.

어디 주변에 문 두들겨서라도 화장실에 들어가야지. 만약 바지가 묵직해지기라도 하면…….

아니, 이게 아니지.

“흠흠. 만약 너무 급하면 갑자기 충동대로 움직이지 말고 주변에 빨리 화장실 좀 쓰게 해달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화장실 가기 위해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에요.”

뭔가 설명할수록 이상해진다.

대체 왜 똥 얘기로 넘어갔는가. 그건 다 오승준 때문이었다.

“흠흠.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가다 보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어요.”

앞의 달콤한 과실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말뿐으로 하는 강의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샘. 화장실 가?”

“그래. 묵묵히 가다 보면 똥을 쌀 수 있…. 이게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어요.”

“하하하! 똥이래. 똥!”

이미 아이들 머릿속은 똥 얘기로 신이 나고 있었다.

대체 왜 똥 방귀 얘기를 애들이 좋아할까.

더러운데 말이야.

혹시 아기였을 때 기저귀에서 엉덩이와 똥의 만남이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때 우정이 싹이 텄든가.

“선생님이 이번에 도미노를 준비했어요. 다들 도미노 알아요?”

“아니요!”

“아, 이건 모르는구나. 잘 봐요. 이렇게 네모난 장난감이 도미노예요. 이렇게 바닥에 놓아서 넘어뜨리면!”

툭.

5개로 줄지어진 블록이 넘어간다.

아이들이 이제야 도미노가 무엇인지 알았다.

실제로 이름을 몰랐을 뿐인 애들도 있었다.

“아, 그거 아는데!”

“네. 알죠? 선생님이 이번에 이렇게 상자에 가득 담아왔거든요. 다 같이해 봐요. 각자 멋진 걸 만들면 전부 연결할 거예요. 알았죠?”

“네!”

“만약 여러분들이 이걸 성공한다면 ‘잘했어요’ 도장을 두 개! 찍어드릴게요.”

도미노 게임이 시작되었다.

각자 바가지 하나 들고서 블록을 퍼갔다.

승준이 말했다.

“나는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공을 만들 거야. 시하는 뭐 만들 거야?”

“시하 형아 만드러.”

“엥? 이걸로 어떻게 시혀기 형아 만들지?”

“할 수 이써.”

하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나는 꽃 만들래~ 넘어지면 활짝 필 거야.”

뭔가 다들 상상하는 게 있는지 거창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열심히 자기 작품을 만든다.

때로는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해야 했다.

지루한 과정.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완성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한 겨울과 같은 긴 터널을 지난다.

조심조심 놓은 블록.

다들 집중하는지 어린이집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와. 이제 연결하면 되겠다!”

“마자!”

한 줄씩 빼 와서 연결하는 과정.

아이들 각자의 작품이 만나는 일은 서로의 협력이 필요했다.

잘못하다가는.

“아악. 넘어졌다!”

재휘가 휘둥그레한 눈을 떨며 오들오들 손을 떨었다.

종수랑 연결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드르르륵.

기세 넘치게 종수의 작품으로 가려는 순간!

윤동이 재빨리 중간에 있는 곳을 손으로 쳐내서 나머지를 살렸다.

“위험했다.”

종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휘가 종수에게 ‘미안해.’라며 사과를 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종수의 입가가 떨렸지만 말은 그렇게 했다.

만약 대참사가 일어났으면 굉장히 허탈했을 거다.

은우는 그 모습이 너무 웃긴지.

“푸하핫! 다시 해야 한다. 다시!”

“야! 뭐가 그렇게 웃겨!”

“아, 왜! 또다시 하면 되지~”

“그럼 네 꺼 넘어뜨려도 되겠네?”

“응. 난 그래서 작게 만들었어! 짜잔! 모자야.”

“치, 치사하다!”

“푸하하!”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게 작게 만든 은우.

은근히 똑똑한 면모를 보였다.

종수는 시하랑 승준보다는 훨씬 크게 만들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다.

그게 뭐든 말이다.

“어? 음. 윤동아. 고마워. 안 막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래. 빨리 다시 하자.”

윤동은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작품으로 돌아갔다. 신발을 만들었다.

은우가 물었다.

“윤똥. 그거 뭐야?”

“이거. 신발이야. 신발.”

“푸하하!”

“야, 왜 웃어?”

“아니야. 신발이구나. 난 똥인 줄 알았네.”

“야! 누가 봐도 신발이거든.”

춤 빼고 예술에는 영 재능이 없는 윤동이었다.

그렇게 다들 작품의 연결이 시작되고 완성이 되었다.

“와! 여러분! 다들 완성이 되었어요!”

“네!”

“그럼 기념사진 한번 찍을까요?”

“네!”

다들 도미노 뒤에서 잘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이런 장면을 선생님은 만들어주고 싶었다.

같은 겨울을 보내도 저마다 피는 꽃이 다르다.

그게 바로 개성.

각자가 만들게 놔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로 연결.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누군가와 관계가 되어서 함께 옆에서 꽃을 피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인내심과 더불어.

물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큭큭. 윤동이 똥 만들었어?”

“윤동 똥 만들어써?”

“아니라니까. 승준하고 시하. 너희들까지 왜 그래!”

어쩌면 똥으로 뭉치게 되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의도한 게 아닌데……?

“자, 그럼 이제 도미노를 쓰러뜨려 볼까요?”

“아냐!”

시하가 팔을 벌려 막았다.

왠지 모르게 쓰러뜨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른 아이들도 지금 쓰러뜨리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이 예뻐 보였다.

“그러면 좀 더 있다가 쓰러뜨릴까요?”

“네!”

“아아!”

“그럼 언제 쓰러뜨리죠?”

“형아. 형아. 바.”

그래. 시하는 형아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나 보구나.

시하가 그러니 아이들도 엄마에게 보여주겠다고 난리였다.

어쩔 수 없이 다들 그렇게 하기로 합의 보았다.

“얘들아? 어디 가니?”

아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장난감 벽돌을 들고 바리게이트를 치기 시작했다.

시하가 말했다.

“못 가.”

도미노는 벽돌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비무장지대가 완성된 셈이었다.

침범하면 아이들의 원망을 받게 될 것이다.

“하하하.”

선생님은 아이들의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시하를 데리러 왔는데 하나같이 아이들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다른 엄마들도 이게 뭐라고 기다리고 있지? 하는 얼굴로 앞에 계셨다.

원래라면 마주치는 경우가 적었는데 이렇게 다 같이 보니까 뭔가 색다른 기분이다.

“형아.”

“응. 시하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빨리빨리.”

시하가 한국인이라는 게 느껴진다.

벌써 ‘빨리빨리’를 배우다니.

내 손을 끌고 간 곳은 벽돌이 세워진 곳이다.

안을 보니 멋들어지게 도미노들이 세워져 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의도를 알 것 같기에.

이걸 보여주려고 이렇게 기다린 건가 싶기도 했다.

“시하야. 정말 잘 만들었네?”

“아아. 시하 잘해써? 형아야. 형아.”

“응. 그렇네.”

누가 봐도 시하가 만든 도미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모난 모양으로 주르르 세워져 있었는데 대부분 붉은색을 썼다.

중간중간에 검은색 도미노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ㅇㅅㅎ]

시하와 나의 초성.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저건 이시하가 만들었겠구나 싶은 노골적인 이름이었다.

“형아 업어써. 형아랑 가치야.”

“형아는 없었지만 형아랑 같이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쭈욱 내밀었다.

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다 도착했네요. 그럼 모여주세요.”

선생님이 모두를 모았다.

아이들이 쓰러뜨릴 도미노를 보며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외치며 톡 건드렸다.

7개의 손가락이 닿았는지 모르지만 도미노가 주르륵 넘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시간을 내서 열심히 만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머시써!”

시하도 뿌듯함을 느꼈는지 눈을 반짝인다.

나는 그저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엄마 손을 잡았다.

“형아. 집 가?”

“아니. 시하야. 이렇게 도미노로 놀았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치어. 치어.”

“그래. 치우자.”

내 말에 시하가 열심히 치우기 시작한다.

집에서 달콤한 휴식은 조금 더 참아줬으면 좋겠다.

마무리까지 깔끔하면 집으로 가기 더 좋을 테니까.

“아앗! 나도 치워야지!”

“하나도!”

아이들이 시하와 내 말을 들었는지 치우기 시작한다.

물론 나 역시도.

***

-시하의 그림. 픽시브 업로드.

[제목 : come back]

1. 펭귄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그림.

2. 공이 하늘로 날아가는 그림.

3. 하늘에서 공이 있던 자리에 공은 없어지고 갈매기로 대체된 그림.

공이 날아간 것과 반대로 갈매기는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4. 팔뚝만 크게 그려져 있고 거기에 수술 자국이 그려진 그림.

[좋아요] [하트] [퍼가기] […]

[siha.pepe.] [작품 목록]

#penguin #baseball #4cutcartoon

#inverted-W #TommyJohnsurgery

[댓글]

-시하페페♡♡♡

-와 이번에 야구네.

-그냥 이야기를 봤을 때 공을 맞았던 투수가 토미 존 수술을 받고 다시 돌아온 것 같은데?

-맞아! 제목도 컴백이잖아. 그런 이야기가 확실해!

-해시테그에 인버티드W는 투구폼을 말하는 거잖아. 갈매기 그림이 그걸 말하는 것 같아.

-와 표현력 봐. 대박.

-압축적으로 잘 그렸네.

이것이야말로 시하가 제대로 처음 4컷으로 만든 이야기였다.

자신의 경험과 타이론을 보며 떠올린 내용.

왕의 귀환처럼 갈매기로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쯧쯧쯧. 여기 댓글은 어찌하나 달라진 게 없어.

-???

-아ㅋㅋㅋ 또 나왔네. 우리가 또 뭘 못 봤는데?

-맞아! 저기 해시태그로 자세히 적혀 있는데 우리가 스토리를 못 읽었다고?!

투수의 컴백처럼 여전히 그렇듯 해석가가 등장했다.

-쯧쯧쯧!

-말을 하라고!

-설마 그것만 담겨 있을까. 애초에 토미 존 수술이 얼마나 투수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지 아나?

-뭔데. 이 그림이랑 상관있어?

-당연하지! 수술은 1시간인데 재활은 약 12개월에서 24개월 걸린다고! 얼마나 ‘인내심’ 있게 긴 재활을 꾸준히 해서 견뎌내야 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와. 그렇게 길어?

-당연하지. 심지어 이 재활을 못 견디면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해서 복귀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랬구나.

여기까지 판을 깔아둔 해석가가 차근차근히 설명해 줬다.

-시하페페의 그림에는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지. 이번 그림도 그래. 그냥 단순히 투수가 돌아온 게 아니야.

-그럼?

-갈매기는 평화의 상징이지. 하지만 평화는 굉장히 오랜 시간 ‘인내’가 필요하기도 해.

-오?! 그래서 재활을 말했구나!

시하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

그냥 타이론이 다시 잘 던지게 된 이야기를 그린 것뿐이다.

-결국, 수술 자국이 남듯이 평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걸 수술로 표현한 것은 우리 인간이 직접 집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고.

-오오오!! 그럴듯한데?

-그럴듯한 게 아니라 시하페페 그림은 언제나 숨은 이면이 그려져 있어. 이 평화를 말하기 위해 야구를 통해 내보인 거야.

그냥 야구를 말하는 게 맞다.

-역시 시하페페야. 이런 단순히 다가오는 일상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다니!

-외쳐!! 시하페페!!!

언제나 해석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해석가의 해석이 너무나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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