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45)

48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케이든은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 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케이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문과 마주 보는 위치에 창문이 달려 있었고, 식당은 1층이었다.

케이든은 칼날 위를 걷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창문을 향해 움직였다.

그는 잠금쇠를 푸는 동안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다. 손끝이 눈에 보일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달칵.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창문의 잠금쇠가 돌아가며 창문이 벌어졌다.

케이든은 창턱에 발을 올리려다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그 바람에 그의 상체가 창문 밖으로 기울어졌다.

쿵!

“크윽…….”

이제는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어졌다. 케이든은 식당의 창가 아래 고꾸라진 채 제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발작이야 항상 힘겨웠지만, 지금은 유난히 고통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케이든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결혼식 날을 제외하고는 디아나가 발작 조짐이 보일 때마다 다급히 그를 진정시켰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고통이었다.

“허억……!”

케이든은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노력하다가, 식당에서 소란이 들려오자 더듬더듬 땅을 기어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움직였다.

‘조금만, 제발…….’

손끝이 땅을 파고들며 손톱이 꺾이고 피가 흘렀다.

눈가가 뜨거워지며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의 입술은 진즉에 피범벅이 된 채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수풀 사이로 몸을 감춘 케이든은 무의식중에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디아나.’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채 부름이 되지 못하고 가쁘게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흐려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조했다.

이런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디아나라니.

아무리 디아나가 그의 발작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보이고, 신기하리만치 적절한 때에 무너지려는 그를 위로해 주었다지만.

그녀가 케이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작을 일으킬 줄 알고 그에게 와 준다는 말인가.

게다가 케이든은 최근 자꾸만 디아나에게 쏠리는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티 나게 그녀를 피해 다녔다.

디아나는 그로 인해 상처받았고, 끝내는 다른 이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와 줄 리가, 없지.

‘……그래.’

그저 원래의 삶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케이든은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디아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혼자서도 발작을 잘 견뎌 왔고, 홀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러니 지금도, 디아나가 없었을 때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이다.

그녀가 없어도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고통이었다.

지금까지 혼자서도 잘 살아왔지 않은가.

디아나는 그저…… 잠시 그의 삶에 찾아왔다가 떠나갈 나그네였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

“흐…….”

케이든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울음 섞인 신음을 뱉었다.

엉망이 된 얼굴 위를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 새로이 뒤덮었다.

“디, 흐윽, 디아, 나…….”

사실 괜찮지 않았다.

[싫지는 않아요.]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며 손을 마주 잡아 오던 온기가 너무나 따스해서.

[조금 추워서 그런데…… 이렇게 껴안고 자면…… 안 될까요?]

그 온기를, 위로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돌아갈 수가 없어서…….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었다.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수시로 그를 덮치려 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케이든은 어느새 제게 행복과 같은 의미가 되어 버린 이름을 애타게 반복했다.

그러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입 밖으로는 색색거리는 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

고통으로 인해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온몸이 굳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리 생각하는 찰나.

“……든!”

거짓말처럼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든은 자신이 디아나를 너무도 간절히 원한 나머지 환청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숨죽인 외침은 점점 가까워졌다.

“아…….”

직후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탄식이 귓가로 내려앉았다.

케이든은 제가 꿈을 꾸나 싶어 가물가물한 눈을 굴려 필사적으로 위를 쳐다보았다.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는 시야로 보인 것은.

“……케이든.”

원망과 안도, 걱정과 괘씸함이 어지럽게 뒤엉킨 채 방울방울 눈물을 떨구는 디아나의 얼굴이었다.

“당신은 왜 항상 이렇게…….”

디아나는 서러운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케이든을 덥석 끌어안았다.

그녀와 맞닿는 순간, 갑작스레 숨통이 트였다. 온몸을 난도질하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누그러졌다.

케이든은 디아나의 어깨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참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떻게 당신은 매번, 이런 순간에…….’

그 순간, 시야가 암전되며 의식이 툭 끊겼다.

* * *

케이든은 늦은 밤 정신을 되찾고 눈을 떴다.

“으음…….”

그는 옅게 신음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주위는 온통 고요했다. 시계의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건가?’

케이든은 어느새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진 몸을 일으키다가 멈칫했다.

“…….”

케이든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깃들었다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는 이불 위로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디아나를 깊이 침잠한 눈으로 응시했다.

디아나의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가슴이 저릿했다.

어쩐지 목이 메는 듯한 기분에 그가 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한동안 잠든 디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었다.

그는 디아나의 얼굴을 덮고 있는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조용히 귀 뒤로 넘겨 주고 손을 물렸다.

“으음.”

그때 디아나가 미간을 옅게 찌푸리며 신음했다.

케이든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크게 흠칫하며 어깨를 굳혔다.

그가 숨마저 멈춘 것이 무색하게도, 이내 디아나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저를 바라보는 케이든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셨어요?”

“…….”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일단 사용인들을 다 물리고 제 방으로 오긴 했는데…… 별다르게 처치를 할 수가 없어서…….”

디아나의 말을 듣고서야 그녀의 등 뒤로 협탁에 놓인 대야와 물수건이 보였다.

케이든은 평소와 달리 웃음기 하나, 여유 한 조각 남지 않은 얼굴로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꽉 조이는 듯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울컥 차오르는 듯도 했다.

그에 지금까지 내심으로만 짐작해 왔던 생각이 입 밖으로 속절없이 밀려 나왔다.

“……역시 그대였던 거지.”

“네?”

“우리가 황궁에서 처음 만났던 날.”

“…….”

“쓰러져 있던 내 옆에 다가왔던 사람.”

디아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케이든이 저를 피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후.

[힐라사.]

[삐이이.]

디아나는 힐라사들을 케이든의 주변에 티 나지 않게 배치해 두며 혹 그의 몸 상태가 나빠지진 않는지 알려 달라 일렀다.

그리고 오늘.

힐라사 한 마리가 케이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낸 직후, 그의 마력에 짓눌려 역소환되었을 때.

디아나는 역소환의 여파보다 그의 발작 소식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케이든. 케이든은 어디 있어?]

디아나는 힐라사들을 동원해 케이든의 위치를 찾고 싶었지만, 그의 주위로 날뛰는 마력이 너무 거칠어서인지 힐라사들은 식당 근처로 다가가기도 전에 역소환되어 버렸다.

결국 디아나는 벨라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케이든을 찾아 나섰다.

[케이든!]

케이든 한 사람 때문에 3황자궁 주변의 마력이 전부 흔들리고 있었다.

디아나는 엉망으로 뒤엉킨 마력의 흐름 속에서 케이든이 몸을 숨긴 곳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또다시 초라하게 홀로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있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당신은 왜 항상 이렇게…….]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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